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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디세이”…강요배 “그림은 모르는 나를 끄집어내는 일”[박현주 아트클럽]

등록 2026-08-11 15:14:43  |  수정 2026-08-11 16:39:47

4년 만의 학고재 개인전 ‘소소, 반색’…신작 등 28점

4·3의 동백에서 전쟁터 해바라기까지…세계로 넓어진 시선

“설명보다 먼저 느껴야”…74세 지금 ‘난중일기’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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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강요배 작가가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 '소소, 반색'을 선보인다. 026.08.1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자기가 모르는 자기를 끄집어내는 거예요.”
'그림이 무엇이냐'고 묻자 화가 강요배(74)가 내놓은 답이다.

그는 이제 눈앞의 풍경을 그대로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물감을 묽게 풀어 흘리고, 캔버스를 눕혀 우연히 번지는 흔적까지 받아들인다. 오래 생각하지만 그리는 시간은 짧다.
“10분도 길죠. 생생한 맛이 좋아요. 옛날에는 찐득찐득하게 그렸는데 지금은 설렁설렁합니다.”

서울 삼청동 학고재에서 12일 개막하는 개인전 '소소, 반색'은 그렇게 가벼워진 강요배의 붓을 보여준다. 학고재에서 4년 만에 여는 개인전으로, 제주 작업실 주변의 나무와 열매, 새와 고양이부터 바람과 바다, 전쟁터의 해바라기와 심해의 혹등아귀까지 28점을 선보인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중심에서 제주 4·3의 비극을 그렸고, 이후 고향 제주로 돌아가 30여 년간 섬의 자연을 화폭에 담아온 화가의 시선이 이제 작고 미미한 존재들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강요배는 이를 작품 세계의 '전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멀리 보던 사람이 가까이 보기 시작했을 뿐이다.

11일 전시장에서 만난 강요배는 4년 전보다 한결 가벼워 보였다. 백발과 수염은 더 희어졌지만 눈에는 장난기가 돌았다. 이전에 제주의 땅을 오래 걸은 사람의 질감이 짙었다면, 지금은 바람을 오래 통과한 사람처럼 불필요한 것이 빠진 모습이다.

그림도 닮았다. 예전의 제주 풍경이 자연의 기운을 끌어올려 쏟아냈다면, 신작은 붙잡으려는 힘마저 조금 놓아준다. 꽃과 나무, 파도는 '내가 이것을 그렸다'고 주장하기보다 화면 위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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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11일 강요배 작가가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에서 연 개인전 '소소, 반색'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8.11. [email protected]


◆“설명 듣기 전에 국물부터 맛봐야”
이번 전시에서 강요배가 가장 경계한 것은 뜻밖에도 '설명'이었다.
“음식 먹을 때 국물 한 숟갈 딱 먹어보고 '맛있다' 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설명 듣기 전에 먼저 맛보는 거죠.”


그림 앞에서 무엇을 알아야 한다는 부담부터 버리라는 얘기다. 하늘을 보고 “하늘 잘 그렸네”, 나무를 보고 “좋네” 하는 첫 감각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강요배는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미학까지 끌어왔다.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개념이나 설명이 끼어들기 전 직관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음식의 ‘첫맛’에 비유했다.

작품 제목 역시 정답을 알려주는 설명서가 아니다.

“말에는 뉘앙스가 있잖아요. 이미지하고 말이 서로 보완하기도 하고 강조하기도 하고, 큰 덩어리로 확장해서 생각하게 하기도 해요.”

그래서 제목 하나도 함부로 붙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림을 먼저 맛본 뒤 제목과 연결해 상상력을 넓히는 것이 그가 바라는 감상법이다.
“선입견이 없으면 볼 수 있다고 봐요. 우리가 방해받는 게 선입견 때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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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배_영등바람, 2026, Acrylic on canvas, 194x259cm *재판매 및 DB 금지


◆폭포에서 파도로…제주의 영등바람까지
전시장 입구에서는 '대서'와 '소서'의 폭포가 관람객을 맞는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의 움직임은 500호 대작 '창파'에 이르러 거대한 파도의 운동으로 확장된다.

이어지는 '영등바람'은 입춘 무렵 제주의 바다와 땅을 휩쓰는 북서풍을 그렸다. 제주에서는 음력 2월 바람의 신 영등할망을 맞아 해신제를 올린다.

“영등할망이 한림 쪽에서 들어와 보름 동안 한라산을 돌아다니다 우도 쪽으로 나갑니다. 그때 해녀들은 일을 안 하고 굿을 해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어떻게 그렸느냐고 묻자 대답은 간단했다.

“바람만 그리면 되니까요.”

물을 많이 섞은 물감을 흘리고 캔버스를 눕혀 말린다. 물감이 어디로 흐르고 어떤 얼룩을 만들지는 작가도 완전히 알 수 없다.

“우연도 받아들여야죠. 어떻게 나타날지 잘 몰라요.”

그 우연까지 그림의 일부가 된다. 꼼꼼하게 완성도를 쌓아 올리는 방식과는 반대다.

“세필을 들고 점처럼 하루 종일 그리는 체질은 아니에요. 금방 후딱후딱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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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에 선보인 대서소서.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 마당의 새와 고양이까지
시선은 거대한 제주 풍광에서 작업실 마당으로 좁혀진다.

'열매 한 알'에는 나무에 열매가 수없이 달려 있는데도 하나를 두고 다투는 새들이 등장한다. 그 사이로 빨간 열매 하나가 떨어진다.

왜 하필 싸우는 새들이냐고 물었더니 강요배는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왜 서로 그러는지. 자리 다툼 같은 건가. '여기는 나 혼자 독차지한다'는 건지,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붙어서 툭툭 싸워요.”

거창한 의미는 붙이지 않았다. 제주 작업실 뜰에서 본 장면이다.

고양이도 등장한다. 키우는 고양이냐고 묻자 또 특유의 답이 돌아왔다.

“왔다 갔다 해요. 쫓지도 않고 챙기지도 않고. 도망도 안 가고, 그렇다고 아끼지도 않아요. 그냥 내버려 둡니다.”

'소소, 반색'이라는 전시 제목 그대로다. 작고 사소해서 지나치기 쉬운 존재를 붙잡거나 소유하지 않고, 그저 반갑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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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배_목련꽃 그늘 아래서, 2025, Acrylic on canvas, 130.3x162c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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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배_열매 한 알, 2024, Acrylic on canvas, 162x130.3cm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 동백에서 우크라이나 해바라기로
그러나 강요배의 시선은 제주에만 머물지 않는다.

신작 '해바라기-쿠르스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룬 TV 영상에서 출발했다.

“눈이 하얗게 쌓인 해바라기밭이 나오는데, 전사들이 거기 숨어 있다가 죽기도 하고…. 드론으로 다 보이잖아요. 눈밭에 있는 해바라기를 그려본 거죠.”

직접 본 풍경은 아니다.

“관찰해서 그린 게 아니고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해서 그린 거예요.”

이 작품은 강요배의 제주 4·3 연작 '동백꽃 지다'(1991)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당시 그는 흰 눈 위로 떨어지는 붉은 동백 한 송이에 제주 4·3의 죽음을 담았다. 35년이 흐른 지금, 설경 위에는 동백 대신 전쟁으로 말라비틀어진 해바라기가 서 있다.

불혹을 앞둔 화가가 고향의 비극을 동백으로 그렸다면, 70대 중반의 화가는 세계의 전쟁을 해바라기로 바라본다.

그러나 그는 작품에 '전쟁'이나 '평화'라는 정답을 붙이는 것 역시 경계했다.

왜 그 장면에 끌렸느냐고 묻자 말했다.

“나도 그걸 모르겠어요. 자기가 모르는 것에 끌리는 게 재미있는 거예요.”

모른다고 했지만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4·3의 비극을 파고들었던 청년기부터 그의 그림에는 시대의 폭력과 부조리를 외면하지 않는 반골의 시선이 있었다. 제주 동백에서 쿠르스크의 해바라기로 대상은 달라졌지만, 시대의 상처에 반응하는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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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배_해바라기-쿠르스크, 2025, Acrylic on canvas, 162x130.3c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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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배_혹등아귀, 2025, Acrylic on canvas, 116.7x91cm *재판매 및 DB 금지

◆심해에서 올라온 낯선 생명
'혹등아귀'도 TV에서 우연히 본 이미지에서 시작됐다.

수심 수백에서 수천m의 심해에 사는 혹등아귀는 커다란 입과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기괴한 생명체다. 화면 속 물고기는 검은 심해에서 튀어나올 듯 관람객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절대악처럼 보인다'는 말에도 강요배는 해석을 관객에게 돌렸다.

“그건 그림 보는 분들이 해석해주는 거죠.”

자신이 왜 그 생명체에 끌렸는지조차 작가가 모두 알 필요는 없다고 했다.

“내 뒤통수를 내가 잘 모르잖아요. 본 적도 없고. 옆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볼 수 있죠.”

강요배에게 작가는 작품의 모든 것을 알고 관객에게 정답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 자신도 모르는 무엇인가가 그림을 통해 올라오고, 관객은 그것을 다시 자기 방식으로 발견한다.

“옆에서 잘 봐주는 사람이 좋은 감상자예요. 내가 모르던 걸 봐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가 되는 거죠.”

그에게 그림을 본다는 것은 작가의 뜻을 받아 적는 일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발견하는 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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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만에 그린 그림. 강요배 '나무' *재판매 및 DB 금지


◆“옛날에는 찐득찐득, 지금은 설렁설렁”
8년 전 전시에서 강요배는 '추상(抽象)'을 두고 “마음속에서 상(象)을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그는 제주 자연을 오랫동안 관찰한 뒤 기억 속에 남은 '강렬한 요체'를 화면으로 끌어낸다고 했다. 군더더기를 버리고 단순화해 명료하게 만드는 것이 그림이라고도 했다.

같은 질문을 던졌다. '예전에 그림은 군더더기를 버리는 일이라고 하셨는데, 지금은요?'
“간략해야 생생하니까.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점점 압축되고 요약되면서 명료해지고 무게감을 갖게 되죠.”


잠시 말을 멈춘 그는 말을 살짝 뒤집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까지 무거울 필요가 있나 싶어요.”

그래서일까. 최근 그림에는 빠른 필치와 묽은 물감, 번짐과 흘러내림이 많아졌다. 나무를 바짝 당겨 보고, 무청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화면 밖으로 형태를 잘라내기도 한다.

군더더기를 버려 본질에 도달하려 했던 화가는 이제 그 본질이라는 것조차 움켜쥐려 하지 않는 듯하다.
“그걸 보고 따라 그리는 게 답답해요. 그것의 종이 되는 거예요. 내가 세상에 그걸 따라가면서 뭘 합니까. 그냥 내가 만들어버리지.”
그래서 그는 “모든 사람이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잘 그려서 전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랑하려고 그리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려보면 금방 느껴요.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것도 마음속에서 같이 따라 올라오는 게 굉장히 재미있어요.”

그에게 그림은 자신을 표현하는 일보다 자신에게 아직 보이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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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강요배 작가. 2026.08.11. [email protected]


◆“내가 오디세이”…20년 방랑 끝 제주로
강요배는 제주에서 태어났지만 스무 살 무렵 섬을 떠나 서울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 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교사 생활을 했으며, 1980년대에는 민중미술 운동과 제주 4·3 연작에 몰두했다. 그러다 1992년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 제주로 돌아갔다.

“내가 오디세이예요.”

그는 자신의 삶을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에 빗댔다. 오디세우스가 오랜 방랑 끝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듯 자신도 육지에서 “20년을 헤매다가” 제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된 영화 '오디세이'를 두고 농담처럼 던진 말이지만, 그의 작업을 돌아보면 묘하게 겹친다. 제주를 떠난 뒤 고향의 비극인 4·3을 공부했고, 다시 섬으로 돌아온 뒤에는 땅과 바다, 바람을 30년 넘게 그렸다.

그런데 섬으로 돌아온 그의 그림은 오히려 세계로 넓어졌다. 4·3의 동백은 우크라이나 전쟁터의 해바라기로 이어지고, 제주 바다를 바라보던 눈은 인간의 시선이 닿기 어려운 심해의 혹등아귀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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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학고재 강요배 개인전 전경. 2026.08.11. [email protected]


◆요즘은 '난중일기'…74세에 찾아온 이순신
독서광인 강요배는 최근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빠져 있다.

막걸리를 몇 잔 마시자 이야기는 어느새 국밥에서 칸트의 미학을 건너 이순신에게 다다랐다.

특히 이순신이 어머니를 기록한 대목에서 오래 머문다고 했다.

“어머니를 '천지(天只)'라고 했더라고요. 하늘 천(天) 자를 써요. 어머니를 하느님처럼 생각한 거죠. 그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머니를 극진하게 생각하는 그와 맞닿은 문구다.

왜 일흔을 훌쩍 넘긴 지금 '난중일기'일까.

“사람한테 오는 주된 테마 같은 게 있어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밀어놓고 있다가 어느 순간 '지금 한번 봐야겠다' 하는 때가 오는 거죠.”

그림이 다가오듯 책도 때가 되면 사람에게 다가온다는 얘기다. 독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한국 미술에 대한 비판으로 번졌다.

그는 한국 근현대미술이 서구에서 만들어진 '인상주의' '추상' '전위' 같은 미술사의 코드를 배우는 데 지나치게 익숙해졌다고 지적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데 머리를 채우는 공부가 아니라 자기 중심으로 보는 공부를 해야 해요.”

그가 문제 삼는 것은 서양미술 자체가 아니다. 남이 만든 언어를 자기 눈보다 먼저 놓는 태도다. 그림 앞에서 설명부터 읽지 말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먼저 보고, 느끼고, 판단할 것.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도 결국 자기 눈으로 세계를 보고,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이전 전시 때 만난 60대의 강요배는 마음속에 남은 강렬한 기억의 요체를 끄집어내는 것이 '추상(抽象)'이라고 했다. 이제 일흔이 넘은 그가 끄집어내는 것은 자연의 형상만이 아니다. 자신도 아직 알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다.
“자기 그림 앞에서는 속일 수가 없어요. 그림을 그려서 좋아요. 나를 알게 되니까.”


전시는 9월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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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풍경을 그린 강요배 '녹음'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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