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

“샤갈은 유행에 흔들리지 않았다" 장윤진 학예사와 대화[박현주 아트클럽]

등록 2025-05-27 01:00:00  |  수정 2025-05-27 09:53:25

예당 한가람미술관서 '마르크 샤걀' 특별전

회화·스테인드글라스 등 170점 전시

세계 최초 미공개 유화·스케치 등 7점 공개

몰입형 미디어아트 공간 의미·감상 꿀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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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마르크 샤갈 특별전 : 비욘드 타임' 전시 전경. 예술의전당, 아튠즈, KBS미디어, 머니투데이와 함께 선보이는 마르크 샤갈 특별전은 오는 23일부터 9월 21일까지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한다. 샤갈의 미공개 유화 7점이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되며 총 170여 점의 작품을 새로운 전시구성으로 엮어낸다. 2025.05.2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샤갈은 유행에 흔들리지 않았다."

7년 만에 귀환한 '마크크 샤갈 특별전:비욘드 타임'은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다. 시간과 차원을 초월한 영혼의 회귀다.

샤갈(1887~1985)은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시적인 화가로 불린다. 러시아 비텝스크에서 태어난 유대인 화가로, 파리 베를린 뉴욕 예술살렘 등을 오가며 국경과 언어, 시대를 초월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초록 말을 탄 신부와 꽃다발을 든 광대, 붉은 사랑과 푸른 꿈, 화려한 꽃의 향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고 스러져가는 사람들, 그 위를 날아오르는 한 마리 새의 이미지까지.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러시아혁명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샤갈은 작품마다 전하지 못한 회한을 남겼다. '색채로 쓴 영원의 순간'은 그의 서사를 더욱 간절하게, 그리고 아련하게 만든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 열린 이번 샤갈 특별전은 회화, 드로잉, 석판화, 스테인드글라스 등 총 170여 점의 작품이 관객을 기다린다.

특히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미공개 원화 7점은 이번 전시의 중심이다. 개인 수집가로부터 직접 협의해 국내로 들여온 이 작품들은, 오직 이번 전시에서만 볼 수 있는 단 한 번의 진경(眞景)이다.

파리 오페라극장의 천장화와 이스라엘 하다사 메디컬 센터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현한 몰입형 미디어아트 공간도 주목할 만하다. 해외에서 기획·제작된 이 설치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방식이며, 관객은 빛과 색으로 구성된 샤갈의 세계를 더욱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배우 박보검이 참여한 오디오가이드는 전시 개막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이탈리아·프랑스 큐레이터와 함께 샤갈 전시를 공동 기획한 예술의전당 장윤진 학예사는 “연대기보다 감정의 흐름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샤갈이 말한 ‘빛의 언어’, ‘감정의 기록’은 지금 여기, 서울에서 어떻게 다시 이야기되고 있을까.

"무엇보다 새로움에 초점을 맞췄다"는 장 학예사의 시선에서, 이번 전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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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전을 공동 기획한 예술의전당 장윤진 학예사; *재판매 및 DB 금지

◆국내에서 7년 만의 샤갈 특별전시다.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기획했나.
샤갈은 한국에서 이미 많은 사랑을 받는 거장이다. 전시도 여러 차례 열렸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샤갈의 또 다른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

먼저 첫 번째로, 그동안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일곱 점의 원화를 공개하는 전시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두 번째로, 샤갈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회화 작품을 넘어서는 광범위한 작품 영역이 있다는 점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 가져올 수 있는 단순한 회화를 넘어서 더욱 깊이 체감할 수 있도록 몰입형 미디어 공간을 함께 연출했다. 예술의전당이 오페라극장이 있는 공간인 만큼, 파리 가르니에 오페라극장 천장화와 같은 작품을 재현하거나, 샤갈의 작품을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모티프로 한 연출로 몰입감 있는 전시를 구성하려고 했다.

◆이번 전시 키워드이자 제목 ‘비욘드 타임(Beyond Time)’은 어떤 의미인가.
샤갈은 시간을 선형적으로 다루지 않는 작가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 화면 안에서 뒤섞이고, 감정과 기억이 자유롭게 흐른다. 처음에는 연대기적 회고전을 구성해볼까도 했지만, 곧 그것이 샤갈의 언어와 맞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연대기보다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구성을 택했다.

전시제목 '비욘드 타임'은 샤갈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 화면 위에 겹쳐 놓듯 공존시키며 보여준 독특한 시간의 개념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와 같은 ‘샤갈’의 시간 개념을 따르고자 했다. 주제와 이미지가 교차하고 반복되면서 느껴지는 작가의 감정에 한층 더 이입할 수 있는 감상이 될 수 있도록 관람의 흐름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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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2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마르크 샤갈 특별전 : 비욘드 타임'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장을 살펴보고 있다. 2025.05.22. [email protected]

◆동시대 전시가 많은 가운데, 지금 이 시점에 샤갈을 다시 소개하는 이유는.
'서거 40주년’이라는 숫자만 보면 과거의 인물 같지만, 사실 샤갈은 꽤 ‘현대적인 예술가’다. 그는 러시아 혁명과 세계대전, 망명과 유대인 정체성이라는 복잡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이다.

그럼에도 놀랍도록 일관된 예술 세계를 구축했고, 시대의 변화나 유행에 흔들리지 않았다. 망명생활, 심지어 금전적 성공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스럽게 작업하는 게 오히려 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시대적 흐름과 담론을 바탕으로 한 오늘날의 많은 전시 중에서 오히려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이는 샤갈의 작품들은, 시간을 초월한 확고함을 기반으로 현재의 관람객들에게 자기만의 세계를 확립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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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로 구성한 몰입형 공간, 파리 오페라극장의 천장화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에 '새롭다'는 '몰입형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됐나.
전시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현대적' 요소들을 완전히 배재할 수는 없었다. 몰입형 공간은 해외측 큐레이터 폴 슈나이터와 설계자 가엘 르네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오페라극장이라는 요소는 예술의전당에도 상징적이기에, 한가람미술관 1층 전시실 내부의 특징인 높은 공간감을 살려 제작하게 되었다.

샤갈이 1960년 하다사 병원 스테인드 글라스 헌정 연설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나에게 스테인드 글라스 창은 내 마음과 세상의 마음 사이의 투명한 벽이다.” 샤갈이 빛을 통해 살아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던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 같은 경우는, 아무리 판화로(평면작품으로) 가져와도 그 공간의 현장감을 표현할 수 없었기에 미디어 프로젝션과 사운드를 이용한 현장감을 조성하여 회화와는 또 다른 감상을 전시 내에서 만들어 내고자 했다.

이번 전시는 이렇게, 방법으로서의 미디어 연출과의 접목을 통해 샤갈이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을 관객이 더 공감하고 체감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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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2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마르크 샤갈 특별전 : 비욘드 타임'전시에 세계 최초로 유화 등 7점이 공개됐다. 이 가운데 샤갈 '평화' La paix (1949)188×125cm, Oil on canvas작품. 2025.05.22. [email protected]


◆이번 전시에 7점이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어떤 작품인가.
이번에 공개된 7점은 강렬할 컬러감을 보여주는 대형 회화도 있지만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판화를 완성하기 위한 스케치로서의 페인팅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에스키스(스케치)로 보존되었던 것이라 그 동안 이 회화 자체가 드러난 적은 없었다.

1920~1930년대의 시기는 시각예술품의 배급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쇄술과 에디셔닝 제작의 방법은 예술가에게 단 하나의 클라이언트를 위한 회화작품 보다 더 널리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새로운 작품 활동의 플랫폼이었다.

샤갈의 입장에서는 최종 결과물인 판화를 완성하기 위한 과정으로 그려내었던 원화를 이번 전시에서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이렇게 초기 스케치에 해당하는 회화와 판화를 함께 나란히 보면서 작가의 창작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독특한 감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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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병(The Jug with Flowers), 1925, Oil on canvas, 69.8x49.5 c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전시에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가장 주목할 작품 중 하나는 '꽃병(The Jug with Flowers, 1925)'이다. 이번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 전시된 이 작품은 가장 초기작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생동감을 보여준다. 강한 붓터치, 아직 마르지 않은 듯한 물감의 질감,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아는 ‘샤갈 블루’와는 또 다른 색채의 깊이가 담겨 있다.

샤갈에게 ‘꽃’은 단순한 정물이 아니라 정체성과 감정, 생명력의 상징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 때로는 작가의 정체성, 생명력, 한편으로는 자화상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주요 오브제다.

이런 삶의 전반을 아우르는 꽃을 주제로 하는 작품 중에서도 특히 이 초기작품을 보고 있으면, 이 그림을 그린 이후의 샤갈의 작품 속에 펼쳐질 수 많은 감정의 흐름과 상상력의 세계를 예견하는 작품인 것 같아 그가 걸어갈 예술적 여정을 미리 엿본 듯한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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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2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마르크 샤갈 특별전 : 비욘드 타임'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장을 살펴보고 있다. 2025.05.22.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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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마르크 샤갈 특별전 : 비욘드 타임' 전시 전경.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70점 작품이 많다. 관람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감상법이 있다면.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1920년대 작품부터 1980년대 작품까지 반세기에 가까운 기간의 작품들을 보여드리고 있다. 전시는 연대기 순서가 아닌 샤갈의 정신 구조를 따라 8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기억, 주요 의뢰작, 파리, 영성, 색채, 지중해, 기법, 꽃이라는 주제를 통해 샤갈 예술의 다층적 구조를 읽어내도록 유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젊은 시기의 작품인 1920년대 작품은 가장 마지막 섹션에, 그리고 가장 노년의 작업이었던 80년대 작품은 첫 섹션에 위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상하는데 전혀 앞뒤 작품과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시간을 따라가는 전시가 아니다. 샤갈의 감정을 따라가듯, 느리게, 천천히, 이미지와 색채의 반복과 변주를 느껴보셨으면 한다. 작품을 정확히 이해하려 하기보다, 이미지가 불러오는 기억과 감정을 믿고 따라가다 보면 자기 안에 있는 어떤 이야기가 불쑥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샤갈은 그렇게, 아주 조용하게 마음에 말을 거는 작가다.

전시는 9월 21일까지 열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