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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수근, 시장의 사람들oil on masonite24.9×62.4cm, 1961signed on the reverse,추정가 40억~55억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시대는 끝난 것일까.
11년만에 다시 최고가를 경신할지 관심이 높았던 터여서 싱겁게 끝난 '유찰'은 미술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가하고 있다.
케이옥션에서 21일 열린 경매에서 박수근 ‘시장의 사람들’은 시작가 39억원에 올랐지만 단 한명도 응찰하지 않았다. 추정가는 40억원에서 55억원이었다. '국민화가'의 굴욕이기도 하지만, 여파는 크다. 그동안 박수근은 이중섭과 함께 국내 양대 경매사를 견인하며 경매시장을 불붙게 했었다.
경매 때마다 박수근 vs 이중섭 매치로 낙찰만 되면 국내 최고 낙찰로 1,2위를 다퉜다. 물론 10여년전 일이지만, 올해 다시 존재감이 꿈틀댔다.
이중섭 대표 작품 '소'가 8년만에 경매장에 나와 47억원에 낙찰되면서다. 지난 3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18억원에 시작, 치열한 경합끝에 이중섭 '소'는 11억4000만원이나 몸값을 불려 새 주인을 찾았다. 2010년 경매에서 35억6000만원에 낙찰된 작품으로, 추정가는 20억~30억짜리였다.
이 때문에 11년만에 최고가에 도전한 박수근 작품도 기대감이 증폭 됐었다. 현재 박수근 최고 낙찰가는 2007년 5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45억2000만원에 낙찰된 '빨래터'(1950·세로 37㎝ 가로 72㎝)다.
그렇다면 '시장의 사람들'은 왜 유찰됐을까?
추정가 40억~55억원이라면 최소 40억원은 받을수 있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작품도 '박수근 표' 기법이 모두 담긴 수작으로 평가됐다. 위작의 위험도 없다. 박수근을 존경하던 국외 소장자가 40년 가까이 간직하다 한국인에게 되판 것이라고 옥션측이 확인하고 발표했다. 박수근 작품의 독특한 특징도 있다. 시장을 찾은 여성 12명을 굵은 선으로 담아내, 박수근 작품 중 인물이 유독 많이 등장한 것으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왜 이중섭 작품처럼 새 주인을 찾지 못했을까? 미술시장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일단 '크기'가 문제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시장의 사람들'은 세로 24.9㎝·가로 62.4㎝다. 요즘 말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의 준말)가 떨어진다는 것. '소품인데 가격이 너무 비쌌다'는 것이다. 만약 2m가 넘는 크기였으면 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 측면에서 최고가를 경신하는 김환기 작품은 모두 200~300호 크기다.
서진수(강남대 교수)미술시장연구소장은 "박수근 관련 호재가 없는 상황에서 작은 크기에 너무 높은 가격대가 무리였다"고 했다.
경기불황 탓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김환기의 1973년 작 ‘22-X-73 #325’가 30억원에 낙찰됐기 때문이다.
케이옥션 마케팅 전략 부재라는 평도 있다. 김환기 시대, 시장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지적이다.컬렉터들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이다. 특히 수십억대가 오가는 작품은 '머니 게임'이 치열한데, 큰손 컬렉터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 전략 부재도 주요 실패 요인중 하나라는 것.
실제로 미술시장이 다각화된 만큼 현실적인 치밀한 마케팅 전략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좋은 작품만 수배하면 당연히 팔릴 거라는 논리를 지양하고, 섭외된 작품을 누구에게 어떻게 판매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사전 마케팅 수립이 철저해야한다"고 했다. 경매에서 유찰은 곧 작품에 빨간줄, 상처가 생긴 것과 같은 흠이기 때문이다.
'김환기 대세'가 큰 이유다. 같은 값이면 김환기 작품을 선호하는 심리가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현재 국내 경매시장 최고가 낙찰 기록은 김환기가 1위부터 6위까지 장악하고 있다.
김환기 작품은 당장 팔아도 돈이 되지만, 박수근 작품은 타이밍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내수용과 해외용의 차이다. 국민화가 박수근 작품이 국내에서 인기였다면, 김환기 작품은 세계성을 획득, 해외 경매에서도 낙찰되고 있는 점이 근거다. 지난 5월 85억에 낙찰, 국내 최고가를 기록한 김환기 작품도 서올옥션 홍콩경매에서 최고가를 경신했다.
결국 "트렌드에 밀렸다"는게 설득력 있다.
김영석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위원장은 "지난 10여년간 작품값을 조사하고 시가 감정한 경험으로 비춰보면 작품값은 시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수근의 작품이 완전한 구상화는 아니지만 전통적인 풍으로, 지금 시대는 구상보다 추상 시대"라며 "단색화가 국내 미술판을 바꾼게 주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현재 대세인 김환기 작품과 비교할때 시대성과 작품성에 차이가 커, 인테리어측면과 투자측면에서도 큰 손들이 선뜻 나서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난 80년대 미술시장을 주름잡았던 한국화 6대가(이당 김은호, 심산 노수현, 심향 박승무, 소정 변관식, 청전 이상범, 의재 허백련)도 그렇게 저물었다는 것. 실제 현재 경매시장에서 6대가들의 작품은 현대미술작품값의 1/10 수준을 밑돈다.
케이옥션도 인정했다. "큰 손들은 이미 박수근 수작을 보유하고 있어 판매가 쉽지 않다"고 했다.
큰손들이 움츠린 것은 경매 예고가 화를 불렀다는 지적도 있다. '돈 세탁' 창구로 인식된 미술시장에서 세간의 이목을 끈 작품이 40억이상에 팔린다며 누군가 신상 털리고 세무조사와 함께 그림 가진 적폐로 몰릴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접은 것이라는 의견도 내놓았다.
'박수근은 유찰되고 김환기를 낙찰'된 것과 관련 정준모 미술 비평가는 "'박수근 경매'한다고 예고되면서 이미 누가 이 작품을 가져갈까에 대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는데, 상대적으로 김환기는 조용하게 시작하지 않았냐"면서 "욕심은 나지만 낙찰받기에는 너무 경제외적인 부분에서 부담이 커서 큰 손들이 주저했을 듯하다. 오히려 경매 끝나고 애프터 세일에서 경합이 붙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의견도 보였다.
결국 경매는 '리세일' 장이다. 럭셔리하고 비싼 중고 장터다. 시장 흐름을 끌고 가는 것은 화랑전시, 아트페어, 비엔날레다. 구매한 그림을 다시 되파는 경매가 미술시장을 이끄는게 아니다. 경매는 시장을 뒤쫒아가는 것으로 이제 김환기 이후, 어떤 작가를 프로모션하고 마케팅해야할지를 화랑에서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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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케이옥션 11월 경매에서 김환기의 <22-X-73 #325>이 30억원에 낙찰, 이날 최고가를 기록했다. |
한편, 박수근 작품이 유찰된 케이옥션 11월 경매 낙찰률은 77%(146/190), 낙찰총액 115억(114억7100만원)기록했다. 70%가 넘는 낙찰률은 경기불황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날 30억에 팔린 김환기의 1973년 작품 '22-X-73 #325'가 최고가를 기록했다. 고미술 최고가는 송석 이택균 '책가도'로 5억6000만원에 낙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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