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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기자 = 오용길 화백이 14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제 24회 개인전을 연다. 중국의 명산을 다니며 감탄한 느낌을 우리나라 전통기법인 수묵 담채화로 화폭에 풀어냈다.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조선시대 겸재 정선(1676~1759)이 있었다면 대한민국에는 한국화가 오용길(70)이 있다. 정선이 진경산수화를 창시했다면, 오용길은 진경산수화를 이어받아 21세기 버전으로 업데이트중이다.
LTE급으로 급변하는 현대미술 흐름속에서도 한눈 팔지 않았다. 먹과 붓, 지필묵이 사라져가도 오로지 '수묵 풍경'에 천착했다. 50년째 한 길로 걸어오자 한국화단은 '오용길'로 이어졌다.
올해 고희가 된 그는 겸재 정선처럼, 새로운 그림을 그려냈다. 지난 몇년간 중국의 명산들을 돌아본 후 터지는 감탄을 화폭에 담아냈다.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한 오용길 개인전은 한국화단의 기념비적인 전시로 기록 될 것 같다.
100호에서 500호, 2m~3m 이상의 대작들로 웅장하고 수려한 명산의 모습을 포착한 수묵 산수풍경이다. 중국의 명산 (황산, 무이산, 태행산, 안탕산)을 다룬 그림 25점을 걸었다. 생동감 넘치는 봄 풍경을 담은 그림은 수묵담채의 깊은 여운을 살려 빼어난 동양적 미감에 압도된다.
작품에 달린 '태행(太行)'이라는 제목이 이번 전시를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중국의 명산을 만난 과정이 오 화백에게 큰 감흥과 행보였음을 보여준다. 맑고 파릇파릇 청아한 기운을 머금고 있는 나무와 온갖 식물들이 대형 화면속에 어우러져, 감상하고 있으면 마치 봄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듯한 흡입력이 느껴진다.
근경과 중경은 오용길 특유의 잔붓터치로 마감한 담필의 특성을 제대로 살렸다. 가까이 보면 나무 이파리들, 풀 하나에도 생명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원경에 배치된 산의 묘사는 하늘과 맞닿을 만큼 높게 치솟은 기암절벽을 먹색의 연한 담묵으로만 처리함으로써 그 규모와 멀어져가는 자태를 보기 쉽게 대비시켰다. 덕분에 기운생동하는 암벽의 특성을 유지함으로써 풍광의 장엄함과 함께 대형 화면의 긴장감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먹으로 그린 그림, 촌스러운듯 하지만 직접 보면 그 생각이 변한다. 꼼꼼하고 차분하게 이어지는 화면속 리듬과 풍경은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옛날 그림 같지만, 우리가 늘 보고 느꼈던 풍경을 거울처럼 비춰내고 있다. 늘 사생을 다니고,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깊은 수묵의 전통미와 신선한 현대적 미감이 교묘하게 융합된 하모니는 새삼 놀라움을 선사한다. 화면 곳곳에 작게 등장하는 점경인물을 찾아보는 맛도 있다. 나들이 나온 듯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과 등산복을 입고 하산하는 사람들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점경인물의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법은 오용길 수묵풍경만이 갖는 특별한 장치다.
"일부러 엉뚱하게 그려야 대접받는 시대다. 나처럼 하면 고리타분하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오용길이 그린 그림에 갈채를 보내지만 현대미술 흐름으로 보면 완전 구닥다리다. 하지만 나는 구닥다라라도 상관없다."
전시장에서 만난 오 화백은 자신을 '구닥다리'라고 칭하면서도 즐거움이 넘쳤다.
"그림같지 않은게 그림 대접받는 세상은 짜증나지만 그렇게 돌아가는 세상, 나는 나 좋은대로 해왔다"며 "나만큼 먹을 잘 다루고 사물을 다뤄 본 사람 있냐, 나는 늘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1980년대부터 그는 실경산수화를 발표해왔다. 기존의 관념적 전통산수화에서 탈피해 친근한 풍경을 다룬 수묵화로 한국화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특히 1990년대부터 시작한 매화, 산수유, 벚꽃 등을 화면 가득히 그린 화사한 그림은 작가 특유의 화풍으로 많은 작가들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80년대 미술시장에서 이왈종, 이숙자, 황창배, 박대성 등과 함께 스타작가로 꼽혔다. 90년대 서양화의 인기속에 인기 작가들도 '서양화같은 한국화'로 변했지만 그는 먹을 놓지 않았다. 한국화 전문 화랑도 동양화를 외면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전통 수묵화의 대를 이으면서 현대적으로 계승한 독보적인 한국화가로 꼽힌다. 이제 한국 미술사를 이야기할때, 오용길을 빼고는 안될 정도로 존재감 있다.
수묵담채화 대가인 그는 "무엇보다 그림은 품격이 있어야한다"고 정의했다. "서울예고때 김병기 선생이 해준 말씀으로, 지금도 마음 바닥에 그 말이 있다"고 했다.
서울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27세에 1973년 국전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아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한국화의 권위있는 상인 월전미술상·의재 허백련 예술상·이당미술상·동아미술상 등 상이란 상은 휩쓸었다.1978년 수도사대 교수가 된후 이화여대로 옮겨 미대 학장을 역임했고, 현재 이화여대 명예교수이자 한국 수묵화의 맥을 잇는 후소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화가가 된 건 "팔자"라고 했다. "어떤 시절에 누구를 만나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가 중요하다. 난 태어날적부터 끄적거렸고, 내가 봐도 잘 그렸네! 할 정도였다. 그림 그리는게 좋았다. 누구도 가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예고에 들어갔다. 당시에 형과 누나가 소질을 살려야 되는 세상이라니까 부모님도 그냥 보내주었다. 좋은 학교 들어가니 좋은 선생을 만났고 교수가 됐고, 그래서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다"며 "그런대로 팔자가 좋았다"며 미소지었다.
한국화를 전공한 것도 그냥 좋아서였다. "중학교때였다. 경복궁 향원정 건물에서 국전을 선보였다. 그곳에서 본 동양화는 멋있고 가슴이 뛰더라. 유화도 있었는데 칠한 물감이 보이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먹으로 그린 작품을 보면 와우~감탄이 났고 나도 저렇게 해야지, 한게 벌써 50여년이 넘었다"
왜 그림을 좋아했을까?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좋은데, 시켜서 하는건 안돼, 좋아서 해야지."
그는 그림처럼 담담하고 뚜벅뚜벅 걸어왔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이것도 갖고 저것도 갖고 그건 욕심쟁이"라면서 "무리없이 대학도 가고, 교수도 됐고, 화가로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특히 "그림이 부끄럽지 않게 나오니까" 화가로서도 만족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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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오용길 개인전이 14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20일까지 열린다. 2m~3m 크기 대작 25점을 걸었다. |
'한국화가 죽었다'는 세간의 말들과 달리 그의 해법은 단호했다. "한국화 작가들이 좋은 것을 보여주면 되는데, 그게 약하다. 박대성 화백같은 비중있는 작가들이 많아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그런 작가가 많지가 않은게 문제다"
"젊은작가들도 지필묵을 아예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한국화는 몇년해서 되지 않는다.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견딜 재간이 없다. 환호와 반응도 없고, 그러니 얄궂은 울긋불긋 그림으로 가지 않나"
한국화 호시절도 있었다. 그는 "80년대는 한국화가 걸리기만 해도 팔리던 시대였다"며 "당시 송영방 이영찬 이종상 같은 선배들이 한국화 붐이 일었을때, 일명 '돈맛'을 본 세대였다. 이젠 그 세대가 너무 조용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오 화백은 "급변하는 시류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화단은 좋은 작가들이 좋은 그림을 보여주면 살아난다. 한국화가 침체된 요인 중 하나가 작가들이 좋은 것을 보여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은 대규모 전시장으로 웬만한 화가들이 엄두를 못내는 전시장이다. 대개 그룹전과 아트페어로 활용하는 전시장으로 이번 오 화백의 전시는 그래서 주목된다. 최근 몇년간 보기 드문 대형 한국화전시여서 이례적이다.
"나는 자랑할게 있다면 내 그림에는 누구하나 털끝 하나 안 건들었다. 오용길이가 다했다, 이건 자랑"이라며 활짝 웃었다.
주변에서는 젊은 작가들보다 더 왕성하게 작업한다고 입을 모은다. 부지런하고 성실함과 정확함은 오 화백의 최고 덕목이다.
이번 전시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차곡차곡 그려 쌓았다 공개하는 신작이다.
중견작가의 잠재된 역량과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하는 대작을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서양화 일색인 현대미술시장속에서 한국화는 죽었다고 단정하는 시선이 있지만, 제 몫을 해내는 중견화가의 활약이 있기에 한국화의 또다른 비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당연히 하겠지. 조바심 낼 것도 없고, 좋은 것 계속 보여주면, 오용길 안 부르고 누굴 부르겠어. 입으로 떠들어선 안돼. 이번 그림 보고 아, 역시~오용길이는 한국화에서 빼먹으면 안되겠네 이런 소리 나올 것 같지 않아?"
나이 70에도 대형 작품을 완성해 전시하는 화백은 신바람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인 '오용길 삼행시'를 건네자, 역시나 자신감과 자부심을 과시했다.
오~. "오호라"
용~."용길이가 힘 좀 썼네"
길~. "길길이 날뛰면서, 좋아하면 미쳤다고 그렇겠지? 하하하!"
전시는 21일까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