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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병진,사랑의 막대기(162x130cm_oil on canvas) 2017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최근 몇년간 미술시장서 보기 드문 화풍이 등장했다. 매끈한 극사실회화와 팡팡튀는 팝아트류의 작품이 주를 이뤘다면, 이 그림은 한마디로 규정할수 없어서 신선하다.
그렇다고 아주 색다르거나 독특한 기법은 아니다. 어디선가 본 듯하고, 오래된 그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색감이 묘한 '표현주의나 입체파 그림' 같기도 하다.
"미술사적으로 접근한건 아니다. 파편화돼 보인다는 그런 느낌때문에 차용했다."
화가 최병진(45)은 예술가로서의 천형을 견디고 있다. 말로는 글로는 쓸 수없는 느낌을 그림으로 풀어낸다. '그림은 모든 걸 아우르는 종합예술'이라는 측면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의 그림은 자신의 몸에서 나온다. '강박'과 '콤플렉스'가 작업 밑천이다.
13년전부터 시작된 강박증 때문이다. 강박에 쌓일때면 일어나는 "경화되는 느낌"이 강력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물질의 위협과 공포는 상상이 더해져 "숨을 쉬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 압도된다. 병원에서도 딱히 치료법은 없다.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물치료가 고작이다.
강박이 시작되면 몸이 딱 굳는다. "공포에 감각이 곤두서며 살결에 닿는 모든 공기가 느껴지고 임계점(臨界點)에 다다르면 서서히 얼어붙는 것 같은 말로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
그러다 "작업으로 해볼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이전에도 그 같은 증상이 나왔지만 밖으로 나타내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틀안에 가두고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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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병진, 008(73x53cm_oil on canvas) 2016 |
그 '경화된 느낌'을 화폭에 끄집어내자 증상이 완화되는 듯했다. 강박으로 일어나는 기분 나쁜 몸의 변화와 그 체험을 그려본 작업은 공포의 무게와 강박의 공기를 점점 누그러트렸다. 그렇게 나온 그림은 철벽을 두른 듯하다. 회색의 조각들이 들러붙어 얼굴을 감싼 그림, '초상 시리즈'가 탄생한 계기다.
강박을 그려내면서 점차 자아의 실마리를 찾아갔고, 무심코 콤플렉스가 고개를 다시 들었다.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소년으로 남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화폭은 다시 콤플렉스를 꺼내왔고, '군상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작가는 자신의 강박과 콤플렉스를 '팟홀'에 빗대어 설명했다. "반복해서 복구해도 비가 오면 다시 드러나는 팟홀처럼 인간의 강박과 콤플렉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극복되리라 기대했지만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는 것.
'팟홀'은 하천 침식작용에 따른 기반암의 구멍이나, 빗물에 의해 도로 아스팔트 포장에 생기는 구멍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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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기자 = 최병진 작가가 신작 군상시리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박과 콤플렉스라는 불쾌한 증상에 근원을 둔 작품은 표현주의 입체파 그림처럼 파편화된 기법이 특징이다. |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팟홀(Pothole)'을 주제로 최병진의 제 4회 개인전을 열고있다.
2007년 그룹전에서 이화익 대표가 눈여겨본 후 2012년 개인전을 열었고, 6년을 기다려 최병진의 신작을 선보이는 전시다.
이번 전시에는 초상 시리즈와 군상시리즈 25점을 걸었다. '초상' 시리즈가 강박을 테마로 삼고 있다면 '군상'시리즈는 자신의 콤플렉스에 대한 이야기가 뿌리다.
'군상 시리즈'중 이번 전시 대표작으로 내세운 '사랑의 막대기'는 작가의 성장기 성적인 콤플렉스를 표현했다.
남자 3명이 기둥에 묶여 있는 그림에 대해 작가는 "보이지 않는 막대기를 짊어지고 뭔지 모르지만 신체를 부벼가면서 싸우는, 늪에 빠진 것 같았던 삐뚤어진 학창시절을 담았다"고 했다.
웬지 '겉늙어'보이는 인물들은 작가의 모습이다. 그는 "나이를 먹어도 콤플렉스가 하나도 해소가 안되고 컸구나라는 생각이 이 작업의 동기가 됐다"며 "그래서인지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모습과 그로데스크하게 신체를 왜곡시키고 자연스럽게 명암과 면을 파편화시킨 작품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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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병진, 두번째 MT(145.5x97cm_oil on canvas) 2018 |
'성장기의 콤플렉스'를 담아낸 군상 시리즈는 자조적인 유희, 블랙 코미디에 바탕을 뒀다. ‘어른의 탈을 쓴 미숙한 청년’같은 화면속 인물들은 꽉차게 들어앉아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여준다.
작가는 "꿈틀대고 일그러진 몸짓, 접촉하여 욕구를 채우는 인물들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배치되는 공간을 좁아보이게 왜곡시켰다"면서 "결여를 채우지 못한 채 시간에 의해 어른으로 포장되어서 어색하게 자리 잡은 나의 모습"이라고 했다.
평면이면서 입체적으로도 보이는 작품은 탄탄한 기본기로 무장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미술입시를 거친 예원예고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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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병진,005(92x65cm_oil on canvas) 2015 |
작가의 '강박'과 '콤플렉스'가 완성한 그림은 아이러니하다. 회색톤의 철갑을 두른 듯한 '초상 시리즈'는 마치 게임속 캐릭터 같아 재미있다는 반응으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보는이의 다양하고 열린 해석이 그림의 매력이다. 대개 그림 제목에 '무제'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게임 캐릭터 같은 초상 시리즈는 군상시리즈와 달리 제목이 없다. 딱딱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숫자를 달았다. 전시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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