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김용익, 얇게… 더 얇게 |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지난 9월 1일부터 11월 6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40년 화업 회고전을 연 김용익 화백(69)이 다시 상업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일민미술관 전시는 70년대 단색화 시기부터 2010년대 공공미술 이후까지 이어지는 그의 작품 100여점을 선보여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미술가로서 고뇌했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어 주목받았다.
특히 40년 남짓 진행해 온 작품 활동의 결과를 수장한다는 취지의 '관 시리즈' 신작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시신을 염하고 장례를 치르는 듯한 작품은 관 형태의 나무 상자에 봉인하고 그 위에 고인의 명복을 비는 도상과 글을 덧붙이는 제의적 행위에 집중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회고전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신작전이 국제갤러리에서 개막했다.
더욱이 신작은 '땡땡이' 시리즈다. 이미 90년대 초 태동한 작품이다. 국제갤러리는 "지난 2년간의 신작 30점을 선보인다"며 "단색화 이후 세대의 실천적 미술과 경향을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단색화 흐름을 탄 상업화랑의 발빠른 마케팅으로 보였다. 지난 10월 열린 KIAF에 국제갤러리에 출품된 '땡땡이' 작품은 인기를 끌었고 팔려나갔다. 그는 "한두 달 전부터 작품이 팔리기 시작했다"면서 "감개무량하지만 느닷없이 온 행운이라 불안하기도 하다"고 했다.
22일 김용익 화백을 전시장에서 만났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했다. 젊음과 늙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스키니한 자주색 바지와 달리 웃옷은 정장 느낌이 났다. 짙은 회색 목폴라와 재킷엔 자주색빛 행거칩이 꽂혀있다.
이번 전시는 메이저 화랑에서의 개인전은 생애 처음으로, 갤러리 전시는 10년만이다. 2015년부터 2016년에 제작된 '모더니즘의 묵시록', '얇게 더 얇게', '20년이 지난후'등 90년대 땡땡이 연작의 소회를 드러낸 1층과 달리 2층에는 '유토피아'연작이 걸렸다. 땡땡이 색감이 화사하고 부드러운게 특징이다.
그의 작품설명은 미술과 철학을 넘나들었다. '땡땡이 시리즈'에 대한 '우문현답'이 이어졌다.
|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김용익 화백이 원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김용익 화백:"'유토피아' 작품을 통해 아련한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고단하고 힘들고 울화통이 터지고 분노에 가득찬 삶을 대처하는 방법은 터트리는 방법이다. 뒤집어 엎는 것, 그것은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취했던 태도다. 도저히 불가능한 세계를 꿈꾸어보는 것, 그것을 '유토피아적 아방가르드'라고 부른. 21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꿈꾸었던 세계가 완벽한 꿈으로서 이상주의 사회, 공산주의 사회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는 꿈이다. 유토피아는 이루어지질 수 없다는 것과, 또 고단한 삶에서 견디기 위한 방법으로서 이상향을 꿈꾸어보는. 좌절과 절망을 교묘하게 겹쳐진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게 이번 작품의 의도다."
▲기자: '원'의 의미는 무엇인가.
▶김용익 화백:"원의 의미? 하하. 일단 그리기가 쉽다. 간단하지만 쉽고 완벽한 형태가 나온다. 왜 원을 사용하게 됐는가? 두가지 의도를 가지고 했다. 처음엔 페인팅을 해놓고, 그걸 원으로 가렸다. 또 나무판에 페인팅을 마치 추상표현주의 잭슨폴락이나 드쿠닝 처럼 흉하게 모사하고 구멍을 뚫어버리는 것이다. '모더니즘의 묵시록'이 제목으로 어울릴 정도로, 새까맣게 원으로 가린적도 있다. 왜? 원과 원 사이에 구멍으로 뒤가 살짝 보인다. 제 작품에서 예술가로서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완벽하게 다 가리는게 래디컬하게 나가는게 아니라, 항상 못 미친다는 것, 유보조항을 달고 있다. 과격한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보여줬던, 전복적이고 폭력적 아방가르드가 아닌 예술가다. 거기서 나온 원이 '전유'되면서 변주를 보이고 있다."
▲기자:'데미헌 허스트 작품 같다'는 인식이 있다. (허스트는 90년대 후반부터 매튜 바니와 더불어 세계 예술계 최고의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색색 땡땡이'시리즈는 한점쯤은 소장해야 컬렉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2008년에는 세계영향력있는 아티스트1위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김용익 화백:"너무 나이브한 질문이다.(그는 살짝 발끈했다) 데미언 허스트하고 아무 상관없다. 그 사람은 동그라미에다 물감을 기계적으로 몇 %로 섞은 원색이다. 프로세스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중요한 것은 데미언 허스트보다 내가 먼저했다는 거다. 나는 89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기자: 구사마 야요이, 데미언 허스트등 왜 화가들은 땡땡이를 그리는가.
▶김용익 화백:"영원한 유행이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그건 중요한게 아니다. 누구랑 비슷한 얘기는 상당히 나이브한 얘기다. 나의 맥락을 읽어줄수 있는게 중요하다. 결국은 데미언 허스트보다 먼저했다는 거다.(그는 다시 돌아서서 말했다)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 데미언 허스트보다 내가 먼저했다."
▲기자: 작품에 연필로 휘갈기듯 사인이 되어있다. 이유가 있는 건가.
|
【서울=뉴시스】얇게... 더 얇게...#16-83 2016 Mixed Media on Canvas
91 x 117 cm 사진: 박준형,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
▶김용익 화백: "저안에 있는 어쩔수 없는 본능적인 것, 아무것도 없는 캔버스를 더럽히는 의미다. 나의 예술에 대한 원상흔 같은 것이다."
▲기자:(2층 전시장 벽 구석엔 연필로 그린 그림이 있다) 왜 이걸 그린 건가. (땡땡이와는 다른, 구름과 나무가 있는 풍경그림이다)
▶김용익 화백:"2016 11월 22일 벽에 그렸다. '잉여 욕망'이다. 사실 작품을 한다는 것 자체도 발표한다는 것 자체도 이미 라캉 식의 얘기로 하자면 '상징 질서'에 속하는 거다. 내가 작품을 해서 전시를 한다는 것은 상징 질서와 규율과 훈육 으로 이뤄진 세계속에 나를 올려놓는 것이다. 밑바닥에는 '상징 질서'속에 올라올수 없는 욕망이 있다. 담기지 않은 잉여욕망이 없으면 개별 인간들의 삶도 불가능하다. 예술가는 더 심하게, 전시라는 상징틀로 잉여욕망이 많은 사람이다. 그 잉여 욕망의 그 끄트머리를 제시해본 것이다. 이것이 무엇이냐 물어도 대답 안 할 것이다."
▲기자:'미술이 창작의 시대가 아니고 편집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지난 회고전에 수장의 시대로 마감했다. 그런데 이번 신작은 90년대 땡땡이로 회귀했다.무슨 이유인가.
▶김용익 화백:"90년대로 전유했다는 것이다. 옛날 작업을 재전유하고 있다는 프로세스, 현실이 중요한 것이다. '의미 없는 옛날 작업의 반복이네' 이렇게 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의미가 있는지는 내가 판단할 수 없다.
(김화백이 흥분감을 보였다. 큐레이터가 치고 들어왔다)
▶국제갤러리 전민경 팀장: "이번 전시와 지난 회고전은 다른 접근이다. 광주·부산비에날레에서 각국 미술계 관장 큐레이터들이 와서 단색화 이후의 세대 작가로서 김용익의 작품을 보면서 역사성을 읽어보게 되고, 원자체가 갖는 의미, 재전유라는 개념들이 서구에서는 익숙한 개념과 연결이 됐다. 이해가 됐고 공유가 된 지점이 컸다. 개념적인 지점, 평면회화의 이 시기에 연작을 더 보여준다는 의미가 크다."
▶김용익 화백:"아, 저 말을 하니까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화중의 하나가 '예술은 진보하고 혁신하고 발전하는 것'이라는 것은 20세기 만들어진 모더니즘 신화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느다. 예술은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 시대착오를 통해서, 시대착오가 진보일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또 필요하다. 세상이 바뀌면, 누군가가 앞서가지만 돌아보면 꼴찌가 첫째가 될 수 있다. '시대착오', 20세기 굳어진 수렴되지 않은 지점이 있다는 것을 나는 내면화 시키고 있다. 옛날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 다시 말하자면 "그래서 어쩔래?" "그런데 뭐가 문제야?", 예술은 아나크로니즘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수 있는 거다. 그게 내 대답이다."
|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22일 김용익 화백이 국제갤러리에서 작품설명을 하고 있다. 1980년 홍익대학교 회화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91년부터 2012년까지 경원대학교 미술디자인대학 회화과 교수를 역임했고, 1990년 대안공간 풀의 창립에 참여, 2004~2006년 대표로 재직했다. |
그는 이번 신작은 "땡땡이 그 자체가 아니라 조합, 패턴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했다. '재전유'를 강조했다. "진보와 새로움은 모더니즘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편집이라는 말에 나온다. 그동안 글을 많이 쓰고, 책도 많이 썼다고 했다.
▶김용익 화백:"창작의 불가능성, 창작은 사실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 작가의 경우 자기 복제의 연속으로 이뤄지는게 창작의 일부다. 아무것도 없던 것에 새롭게 이뤄지는 것 창작은 사실상 말자체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 그것은 예술에 대한 내 신념이다.오래전 부터 글을 썼다. 창작의 불가능성에 대한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 있다."
(다시 큐레이터가 설명했다)
▶국제갤러리 전민경 팀장: "이전에 '원'이 들어간 작업은 사회비평적인 성향을 풍긴다. 흠집내기, 외부에서 폭력을 가하는게 아니라 균열을 통해서 뭔가를 비틀어 보는 개념이라면, 이번 '원'의 개념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유토피아'라고 한 것 같다. 차별화된 지점을 봐줘었으면 한다."
▶김용익 화백:"나를 조현증 환자로 보면 된다. 왔다갔다 하는 사람으로 보면 된다. 질문에 갇히면 안된다.무시하고 나가야 한다. 조현증처럼…그 질문에 갇혀서 설명하려고 하면 안된다. 그러면 예술가는 껍데기밖에 안된다."
▲기자: 스스로 개념미술가로 정의하고 있으니까 개념을 명확히 알고 싶고, 설명을 해달라는 얘기였다.
▶김용익 화백:"나한테 미술비평가나 이론가를 기대하면 안된다. 납득이 안가면 안가는대로, 가면 가는대로 진행되면 된다. 내가 올마이티도 아니고…, 하지만 도전적인 질문은 자극적이고 좋다. 이런 논쟁을 즐긴다. 대학에서 오랫동안(30여년간)학생들과 생활했다. 가장 못견디는 것은 아무 질문도 없다는 것이다. 도전적인 질문이 나와야 재미있고, 무시하고 선생의 권위를 무너뜨려야 좋은 것이다."
▲기자:그동안 단색화에서 민중미술로 공공미술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김용익 화백 개인전이 국제갤러리에서 22일부터 12월 30일까지 열린다. |
▶김용익 화백:"그런 질문 많이 받았는데, 이제 너무 피곤하네, 자료로 참고해달라."
그는 질문을 할때마다 가까이 다가와서 한쪽 귀를 바짝 댔다.
▲기자:귀가 안좋으세요?
▶김용익 화백:"왼쪽이 안들린다. 오래전에 병을 앓아서 오른쪽도 조금 들린다."
이번 김용익의 국제갤러리 개인전은 그의 모습처럼 반반이다. ‘가벼움’과 ‘얇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신작들은 얇은 질감과 가벼운 색채로 재전유됐다. 이전 비판적이던 '모더니즘의 묵시록'은 시대착오가 됐지만, 비판적 서사는 다시 모순된 유토피아를 꿈꾼다. 여유와 여운이 주는 나이탓일 수도 있다. 시대착오가 진보일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 '틀린 것이 옳다'는 모순이 예술가 심보로 보인다. ‘밝고 가뿐함’과 ‘아련한 공허감’이 공존하는 전시다.
▲기자:그렇다면 '김용익의 땡땡이'는 무엇인가.
▶김용익 화백:"무엇이냐고 물어봤더니 아무 대답도 안하더라. 이게 내 답이다. 하하하."
팔순에 봄날을 맞은 단색화가들처럼 상업과는 거리가 멀었던 칠순의 김용익 화백도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몰라보거나 잘 보지못했던 '김용익 땡땡이의 반란'이다. 이 전시 이후 해외 전시에 잇따라 초대됐다. 런던과 서울, 상하이에서 열린 아트페어에서 솔드아웃 여세를 몰아 12월에는 미국 마이애미 아트바젤에도 나간다. 내년 5월에는 뉴욕에서 개인전도 예정돼 있다. 전시는 12월 30일까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