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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 1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특별 강연에 앞서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 전시품의 검증 미흡에 대해 사과를 하고 있다. 2026.09.10. [email protected]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5만원짜리 글씨 한 점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의 권위를 흔들고 있다.
싸게 산 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글씨에 누가 권위를 부여했느냐다.
2019년 온라인 경매에서 '박덕원'의 글씨로 출품된 유묵 한 점. 낙찰가는 5만원이었다. 올해 이 글씨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서 애국지사 박원근의 작품으로 소개됐다.
그러나 애국지사의 글씨가 아니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글씨였다.
작품은 철거됐고 박물관은 사과했다. 잘못된 작품 설명으로 끝날 줄 알았던 사건은 15일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한 끼 밥도 나라의 은혜'라는 뜻의 유묵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이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개인 소장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유 관장은 2019년 온라인 경매에서 이 작품을 구입했고, 박물관은 국회에 관장의 추천으로 전시에 활용했다고 밝혔다.
개인 소장품이 국립박물관의 전시품이 됐다. 그 과정에서 작품의 필자 표기도 달라졌다.
박물관은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소장자(유 관장)의 전언 등을 종합해 박 지사의 작품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관장이 작품을 추천했을 뿐 아니라 필자 판단에도 그의 설명이 반영된 것이다.
경매 당시 '박덕원'으로 표기됐던 글씨는 어떤 근거로 '애국지사 박원근'의 작품이 됐는가. 관장의 설명을 뒷받침할 독립적인 검증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유 관장은 "애국지사 작품인 줄 알고 좋은 뜻으로 전시했다"고 해명했다.
좋은 뜻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학문에서 선의는 증거가 아니다. 더욱이 개인 소장품을 국가기관의 전시에 올리는 일이라면 그 판단은 개인의 확신을 넘어 객관적인 검증을 거쳐야 한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다음 해명이다.
유 관장은 "실수이기도 했지만 실력이 부족했다"며 "우리 박물관에 서예사와 근대미술, 일제강점기를 전문으로 하는 큐레이터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가 없었다는 말은 설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면책 사유는 아니다.
전문 인력이 부족했다면 외부 전문가의 검증을 충분히 거쳤어야 한다. 실제로 문제가 불거진 뒤 박물관은 7명의 자문단을 구성해 필자를 확인했다. 그렇다면 전시 전에는 어떤 검증 절차를 거쳤는가.
무엇보다 전문가가 없는 조직을 이끄는 사람은 누구인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박물관의 최고 책임자다. 인력과 전문성의 공백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그 공백에서 발생한 오류의 책임을 조직에만 돌릴 수는 없다.
유홍준은 오랫동안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대중에게 알려온 미술사학자다. 그가 쌓아온 학문적 명성과 대중적 영향력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바로 그 명성 때문에 이번 사건은 더 엄중하다.
학문적 권위가 높을수록 그 판단을 의심하기는 어려워진다. 특히 그 권위의 주인공이 조직의 최고 책임자라면 더욱 그렇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관장의 판단을 검증하는 조직인가, 관장의 판단을 추인하는 조직인가.
현재까지 전시 선정 과정에서 어떤 검증이 이뤄졌는지, 담당 학예진이 관장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관장의 권위가 실제로 검증을 가로막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결과는 분명하다. 잘못된 작품 설명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이름으로 관람객에게 전달됐다. 그 오류는 외부 제보를 계기로 드러났다.
유홍준의 오판은 개인의 실수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오판이 국립중앙박물관의 공식 판단이 된 것은 조직의 문제다.
그렇다고 학예진 개개인에게 책임을 돌릴 일은 아니다. 관장의 권위 앞에서도 독립적인 판단과 이의 제기가 가능한 조직이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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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지난해 관람객 500만 명을 돌파한 국립중앙박물관. 이곳은 작품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무엇이 역사적 사실인지, 어떤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연구하고 검증하는 기관이다. 관람객은 작품 옆에 붙은 설명을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박물관의 학술적 판단으로 받아들인다.
박물관의 권위는 한 사람의 명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누구의 판단이든 의심하고, 검증하고, 필요하면 바로잡을 수 있는 체계에서 나온다.
5만원짜리 글씨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걸릴 수는 있다. 가격이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장의 개인 소장품이라면 검증의 문턱은 오히려 더 높아야 한다. 학문적 권위와 기관장의 지위가 객관적인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국립중앙박물관이 답할 차례다. 누가 작품을 선정했고, 누가 필자를 확인했으며, 어떤 근거로 전시를 승인했는가. 관장의 개인 소장품이라는 사실은 선정 과정에서 어떻게 다뤄졌는가.
이번 사건을 '실력 부족'이라는 사과 한마디로 마무리해서는 안 된다.
관장도 틀릴 수 있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까지 함께 틀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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