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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제주아트플랫폼 옛 극장 객석에 제주 주민들이 그린 초상화가 빼곡히 놓여 있다. 우크라이나 작가 자나 카디로바는 제주 주민들과 초상화 워크숍을 열어 자신의 얼굴과 가족, 이웃의 모습을 그리게 했다. 과거 관객이 영화를 보던 객석이 제주 사람들의 얼굴과 기억으로 다시 채워졌다. 2026.09.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제주=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문 닫은 옛 극장 객석에 사람들이 다시 앉았다.
영화를 보러 온 관객은 아니다. 제주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이다. 주민들이 직접 그린 자신과 가족, 이웃의 얼굴이 붉은 객석을 빼곡히 채웠다.
사람이 떠났던 극장은 그렇게 다시 사람으로 가득 찼다.
제주 원도심의 옛 극장을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제주아트플랫폼에서 펼쳐진 전시는 완성된 작품을 가져다 걸어놓는 데 머물지 않는다. 제주라는 장소와 사람, 기억을 작품의 재료이자 출발점으로 삼았다.
우크라이나 작가 자나 카디로바(Zhanna Kadyrova)의 작업이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카디로바는 지난달 제주 주민들과 초상화 워크숍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자화상부터 주변 친구와 가족의 얼굴을 그렸다. 그렇게 모인 얼굴들이 옛 극장 객석에 하나둘 자리 잡았다.
과거 관객이 영화를 바라보던 객석은 이제 제주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무대가 됐다. 개인의 기억과 제주 원도심의 역사, 동시대 관객의 시선이 한 공간에서 겹친다.
제주에서 이웃 어른을 친근하게 부르는 ‘삼춘’들의 그림도 유난히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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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제주 원도심 옛 극장 객석에 제주 삼춘들이 그린 초상화가 관객처럼 앉아 있다. 90세 해녀 강희선 삼춘은 자신의 몸에 문어발을 달아 평생 바다에서 살아온 기억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2026.09.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90세 강희선 삼춘의 작품이 특히 눈길을 끈다. 평생 물질한 해녀는 자신의 몸에 문어발을 달았다. 오랜 노동의 기억이 엉뚱하고 유쾌한 이미지가 됐다. 능숙한 기교보다 살아온 시간이 먼저 보인다.
고단한 삶을 품었지만 그림은 비장하지 않다. 오히려 씩씩하고 자유롭다. 90년을 살아낸 시간이 유머와 상상력으로 터져 나온다.
옛 극장의 어둠도 작품이 됐다.
안정주는 제주에서 풀벌레와 바람, 미세한 노이즈 등 자연의 소리를 채집했다. 달빛에 비친 돌문화공원의 현무암은 별도의 조명 없이 이미지 센서로 촬영했다. 신화와 기억을 품은 제주 돌이 디지털 데이터로 다시 기록된다.
작품 ‘문베스’가 펼쳐지는 극장은 일종의 ‘미디어 달빛 공간’으로 변한다. 해변의 선베드를 연상시키는 ‘문베드’에 누우면 달빛과 제주의 자연 소리에 둘러싸인다. 한때 영화를 상영했던 극장의 어둠 자체가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장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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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옛 극장에서 안정주의 문베스가 영화처럼 상영된다.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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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뱅상 모리세와 캐롤라인 로베르의 영상 설치 작품. *재판매 및 DB 금지 |
뱅상 모리세와 캐롤라인 로베르의 ‘테라(TERRA)’에서는 관객이 아예 작품 속으로 들어간다. 높이 6m, 폭 15m의 벽을 가득 채운 화면에 관객의 얼굴과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뒤섞인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형상이 흩어지고 다시 태어난다. 보는 사람과 작품의 경계도 자연스럽게 허물어진다.
이들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제주에서 왜 이 작품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제주를 배경으로 삼거나 해녀와 돌 같은 익숙한 상징을 진열하는 방식과 다르다. 작가는 제주에서 소리를 채집하고 주민을 만난다. 관객은 작품 제작과 작동에 참여한다. 폐극장의 객석과 어둠까지 작품의 일부가 된다.
장소가 작품을 바꾸고, 작품은 다시 장소를 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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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 기자]제5회 제주비엔날레 전시가 열리고 있는 제주 원도심 제주아트플랫폼 입구 전경. 옛 극장을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이곳에서는 제주라는 장소와 사람, 기억을 연결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2026.09.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이종후 예술감독은 제주를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들어와 섞이고 변용되며 만들어진 섬으로 바라봤다.
그는 “제주의 역사와 문화, 지리와 생태에 새겨진 변용의 흔적을 유배·신화·돌문화라는 세 축으로 조명했다”며 “인간과 자연의 공생, 연결과 융합을 통해 만들어질 미래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 거대한 담론은 제주아트플랫폼에서 사람의 얼굴로 구체화된다.
평생 바다에서 물질하고 밭을 일군 삼춘들의 삶은 작품 속에서 뜻밖의 웃음과 상상력으로 터져 나온다. 오래된 극장도 그 에너지를 받아 다시 활기를 얻는다.
폐극장을 깨운 것은 건물만이 아니었다. 그 안으로 다시 들어온 제주 사람들의 삶이었다.
삶을 이미지로 바꾸고, 사람이 떠난 공간에 다시 사람을 불러들이는 것. 제주아트플랫폼에서 만난 것은 그런 예술의 힘이다.
한편 지난 8월25일 개막한 제5회 제주비엔날레는 ‘허끄곡 모닥치곡 이야홍: 변용의 기술’을 주제로 오는 11월15일까지 열린다. 제주도립미술관장인 이종후 예술감독과 독립기획자 이병희 총괄큐레이터가 기획했다. 국내외 20개국 69팀이 참여해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돌문화공원, 제주 원도심 일대에서 전시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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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17일 제5회 제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제주도립미술관에 오석훈의 ‘한라영곡(漢拏靈谷)’(2026)이 설치돼 있다. 제주 한라산 영실기암을 광목천 위에 먹으로 그려낸 대형 작품으로, 제주 사람들이 한라산을 유람하며 남긴 한시를 함께 담았다.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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