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청담 떠난 글래드스톤, 한남동 확장 이전…에드 앳킨스 韓 첫 개인전

등록 2026-08-31 15:49:06  |  수정 2026-08-31 16:34:37

기존 청담 공간보다 2배 확대…조민석 매스스터디스 설계

에드 앳킨스, 한 달간 1분마다 촬영한 4만3200장

신작 ‘Passive Mech’ 공개…가족의 일상·흔적 시간과 상실, 존재와 부재 탐구

associate_pic
에드 앳킨스(Ed Atkins) 개인전 《1 day in space》 설치전경, 글래드스톤, 서울, 2026 © Ed Atkins Courtesy of Ed Atkins and Gladstone 사진: 전병철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해외 메이저 갤러리 글래드스톤 서울이 청담동을 떠나 한남동 시대를 열었다.

글래드스톤 서울은 3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새 전시 공간을 열었다. 2022년 한국에 진출한 글래드스톤은 그동안 청담동에서 서울 지점을 운영해왔다. 이번에 리움미술관을 비롯해 페이스 서울 등 국내외 주요 갤러리가 밀집한 한남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개 층에 걸쳐 조성된 새 공간은 기존 청담동 공간보다 약 두 배 넓다. 설계는 건축가 조민석이 이끄는 매스스터디스가 맡았다. 글래드스톤은 한남동 확장 이전을 통해 한국과 아시아에서의 장기적인 활동 기반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뉴욕과 브뤼셀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서울에 공간을 두고 있다.

associate_pic
글래드스톤 서울. 사진 전병철 *재판매 및 DB 금지


새 공간의 첫 작가는 영국 현대미술가 에드 앳킨스다.

극사실적인 컴퓨터그래픽(CG) 인간과 디지털 이미지로 알려진 앳킨스가 이번에는 가상 세계에서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집과 가족의 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남동 개관전으로 마련한 한국 첫 개인전 ‘1 day in space’는 신작 영상을 중심으로 사진, 조각, 프로타주 작업을 선보인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폴라 차이 (Paula Tsai)  글래드스톤갤러리 파트너가 31일 서울 용산구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영국 현대미술가 에드 엣킨스(Ed Atkins)의 '1 day in space' 개관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6.08.31. [email protected]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영국 현대미술가 에드 엣킨스(Ed Atkins)이 31일 서울 용산구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개관전 '1 day in space'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6.08.31. [email protected]



전시의 중심은 신작 영상 ‘Passive Mech’다.

덴마크 질랜드에 있는 작가 소유의 주택 밖에 골판지 무대 세트를 만들고 어린 딸의 방 창가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한 달 동안 1분마다 한 프레임씩 촬영했다. 그렇게 쌓인 이미지만 4만3200장이다. 여기에 수많은 오디오 클립을 더했다.

카메라는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시간을 묵묵히 기록한다. 자연에 노출된 골판지 구조물도 조금씩 허물어져 결국 무너진다. 사람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빈 무대에서 성장과 죽음의 시간이 흘러간다.

associate_pic
앳킨스 신작 영상  *재판매 및 DB 금지



앳킨스가 카메라에 맡긴 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카메라에 ‘보는 권한(authority of vision)’을 부여한다.

사진은 순간을 붙잡지만 촬영되는 순간 이미 지나간 시간이 된다. 앳킨스는 이미지가 순간을 보존하는 동시에 그 순간과 함께 소멸해가는 방식을 파고든다.

영상이 상영되는 공간도 작품의 일부다. 암전된 구조물 후면에 스크린을 설치했다. 골판지 무대 세트를 뒤집어 놓은 듯한 공간은 영화관이자 극장, 조종석이자 침실처럼 보인다. 관객은 그 안에 들어가 누군가의 집과 흘러가는 시간을 들여다보게 된다.

영상 속 4만3200장의 이미지 가운데 일부를 골라 제작한 유니크 프린트 연작도 선보인다. 서로 다른 크기와 방식으로 출력·설치해 일상의 기록 사진과 예술 사진 사이의 경계를 흔든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글래드스톤 서울은 31일 서울 용산구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영국 현대미술가 에드 엣킨스(Ed Atkins)의 '1 day in space' 개관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가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2026.08.31. [email protected]


associate_pic
에드 앳킨스(Ed Atkins) 개인전 《1 day in space》 설치전경, 글래드스톤, 서울, 2026 © Ed Atkins Courtesy of Ed Atkins and Gladstone 사진: 전병철 *재판매 및 DB 금지


가족의 생활 흔적도 작품이 됐다.

시리얼 상자와 동물 플래시카드 등 가족의 일상에서 나온 사물들을 조합해 릴리프를 만들었다. 대량 생산된 물건들은 본래의 용도에서 벗어나 작가가 아이들과 함께 보낸 조용한 순간을 담은 아상블라주로 변했다.

가족이 사용한 침대 시트를 흑연으로 떠낸 실물 크기의 프로타주 연작에서는 사람의 모습조차 사라진다.

사진이 빛을 통해 이미지를 만든다면 앳킨스는 사물과 직접 접촉해 흔적을 떠냈다. 시트의 표면을 그대로 복제하면서 그 위에서 잠들었던 사람의 몸은 부재한다. 검게 떠낸 시트는 사진의 네거티브를 연상시킨다. 몸은 사라졌지만 몸이 머물렀던 흔적은 남는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글래드스톤 서울은 31일 서울 용산구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영국 현대미술가 에드 엣킨스(Ed Atkins)의 '1 day in space' 개관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가의 사진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2026.08.31. [email protected]


이번 전시에서 앳킨스는 완벽하게 만들어낸 가상의 인간보다 사라지고 무너지고 흔적만 남는 현실에 가까이 다가간다. 카메라와 사진, 프로타주를 통해 가족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는다.

사진 한 장에는 이미 지나간 순간이 있다. 시리얼 상자에는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남고, 침대 시트에는 보이지 않는 몸의 흔적이 새겨졌다. 한 달 동안 카메라 앞에 서 있던 골판지 무대는 결국 무너진다.

무엇이 진짜처럼 보이는가를 탐구해온 작가가l 이번에는 무엇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가를 들여다본다.

에드 앳킨스의 한국 첫 개인전 ‘1 day in space’는 10월31일까지 열린다. 9월1일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는 앳킨스와 미디어 아티스트 김아영이 참여하는 아티스트 토크가 열린다. 큐레이터 최장현이 진행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