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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천=뉴시스] 박진희 기자 =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과 구라야 미카 일본 요코하마미술관(YMA) 관장이 13일 경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국립현대미술관·일본 요코하마미술관 공동주최 전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6.05.13. [email protected] |
[과천=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나라와 나라의 관계는 언제나 복잡하지만, 개인과 개인은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을 이번 전시를 통해 실감할 수 있다.”
13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만난 구라야 미카 요코하마미술관장은 “이번 전시가 바라보는 한·일의 미래는 공존인가, 긴장 속 동행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 요코하마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은 바로 그 질문 위에 세워진 전시다. 한국과 일본의 미술관 직원들이 3년여에 걸쳐 협력한 결과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계기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1945년 광복과 일본 패전 이후 현재까지 이어진 양국 현대미술 교류의 궤적을 대규모 아카이브와 회화, 설치, 영상 작업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전시는 지난해 12월 일본 요코하마미술관에서 먼저 열렸다. 구라야 관장은 “당초 예상 관람객은 2만7000명 정도였지만 실제 관람객은 3만7499명이었다”며 “예상보다 1만 명 이상 많은 관객이 찾았다”고 밝혔다.
특히 젊은 세대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매일 전시장에 갔는데 갈 때마다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다니’라고 느꼈어요. 일본 미술관에서는 사실 보기 드문 현상이었습니다.”
그는 “역사나 미술에 큰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젊은 세대들도 미술관에 3~4시간씩 머물며 전시를 즐겼다”며 “한국과 일본은 늘 가까이 있는 존재이기에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복잡하고 때로는 충돌하기도 하는 관계”라고 말했다.
이어 “음악이나 패션은 좋아하지만 역사 문제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젊은 세대가 자연스럽게 전시장에 와서 무언가를 배우고, 양국 관계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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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천=뉴시스] 박진희 기자 = 전유신(왼쪽)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와 히비노 민용 일본 요코하마미술관 주임 학예연구사가 13일 경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국립현대미술관·일본 요코하마미술관 공동주최 전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6.05.13. [email protected] |
전시를 기획한 히미노 민용 요코하마미술관 주임학예연구원 역시 “한국과 일본은 항상 옆에 있는 나라이고, 아무리 갈등해도 결국 같은 기후권 안에 존재한다”고 표현했다.
미카 관장은 “친구 관계 역시 항상 평탄할 수는 없지만, 서로 해소할 수 없는 갈등이 있어도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앞으로 한·일 양국의 미래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도 이에 화답하듯 “예술은 국가 간 관계를 넘어 개인과 개인의 상호작용 속에서 영감과 영향을 주고받게 한다”며 “이번 전시는 예술가들이 국경을 넘어 어떻게 소통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단단한 연구 기반의 전시”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예술은 결국 관계를 녹여내고 이어주는 지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며 “한·일 관계 역시 여전히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전시는 거창한 외교 담론보다 ‘국가의 역사보다 먼저 연결된 개인들의 감각’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전시에는 한·일 미술가 43명(팀)의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 200여 점이 소개된다. 냉전과 분단, 국교 정상화, 지역 교류, 비공식 네트워크, 연대 운동 등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양국 예술가들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5개 섹션으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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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천=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일본 요코하마미술관과 공동주최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 기자간담회를 13일 경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갖고 일본 히라타 미노루 작가의 '백남준의 클린징 이벤트' 사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6.05.13. [email protected]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시작되는 전시는 재일조선인의 기억과 삶에서 출발한다. “영주권을 쟁취하자”라는 문구가 적힌 조지현의 흑백사진 속 사람들은 일본 시장 골목을 걷고 있지만, 문장은 아직 돌아가지 못한 조국의 시간을 붙들고 있다. 광복 이후 일본에 남아 활동한 재일조선인 미술가들의 궤적을 다룬다. 조양규, 곽인식 등의 작품과 함께 미공개 편지, 갤러리 자료 등이 처음 공개된다. 동시대 작가 남화연과 하야시 노리코의 작업도 함께 소개된다.
두 번째 섹션 ‘백남준과 일본 예술가들’에서는 백남준을 중심으로 한 한·일 전위예술 네트워크를 조명한다. 백남준은 일본에서 구보타 시게코를 만나 협업을 이어갔고, 일본 전위예술 그룹 하이 레드 센터와 교류했다. 전시에는 위성 프로젝트 ‘바이 바이 키플링’, 구보타 시게코의 영상 ‘브로큰 다이어리: 한국 여행’ 등이 출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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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천=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일본 요코하마미술관과 공동주최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 기자간담회를 13일 경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갖고 일본 사이토 요시시게 작가의 '연관작용'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6.05.13. [email protected] |
세 번째 섹션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넓어진 길’에서는 1965년 이후 제도화된 미술 교류를 다룬다. 이우환, 박서보 등의 작품과 함께 명동화랑·도쿄화랑 교류 자료가 소개된다. 또 1979년 대구현대미술제를 비롯해 지역 기반 교류 사례와 곽덕준의 활동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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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천=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일본 요코하마미술관과 공동주최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 기자간담회를 13일 경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갖고 일본 다카미네 다다스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6.05.13. [email protected] |
네 번째 섹션 ‘새로운 세대, 새로운 관계’는 1990년대 이후 청년 작가들의 자발적 교류와 네트워크에 주목한다. 나카무라 마사토와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시를 중심으로, 한·일 청년 작가들의 협업과 동시대 감각의 공유 과정을 살펴본다.
김인숙은 재일코리안 가족의 제사와 성인식, 일상의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병풍과 한복, 일본식 다다미방이 뒤섞인 공간은 단일한 정체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층위를 드러낸다.
다카미네 다다스의 영상 작업 ‘베이비 인사동’은 재일한국인 여성과 결혼하며 마주한 차별과 혐오의 구조를 따라간다. 영상 속 드래그퀸 ‘나자(Nadja)’는 한국어와 일본어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존재로 등장해 경계 바깥의 화해 가능성을 상징한다.
특히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외교보다 먼저 움직였던 예술가들의 감각적 연대가 드러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1990년대 이후를 다룬 ‘새로운 세대, 새로운 관계’ 섹션에서는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진다. 국가 중심 교류 대신 청년 예술가들의 이동과 비공식 네트워크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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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천=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일본 요코하마미술관과 공동주최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 기자간담회를 13일 경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갖고 고낙범 작가의 '포트레이트 뮤지엄-신체에서 얼굴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6.05.13. [email protected] |
도쿄예술대 학생이던 나카무라 마사토는 1987년 한국을 방문해 홍익대 주변 작가들과 교류했고, 이후 한·일 젊은 작가들을 연결하는 전시를 기획했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무라카미 다카시의 이름도 등장한다.
전시장에 걸린 고낙범의 대형 초상은 단순한 인물화가 아니다. 녹색과 노란색 얼굴로 그려진 인물들은 1990년대 이후 한국 미술이 국제 담론과 접속하기 시작하던 시대의 공기와 관계망을 압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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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천=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일본 요코하마미술관과 공동주최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 기자간담회를 13일 경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갖고 정연두 작가의 '마술사의 산책' 영상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6.05.13. [email protected] |
전시의 마지막은 뜻밖에도 ‘마술’이다.
마술사 이은결은 일본 거리 곳곳을 걸으며 새장과 손기술을 활용한 퍼포먼스를 펼친다. 영상 속 그는 “어떤 나무는 서로의 뿌리를 얽으며 버틴다”는 말을 남긴다.
국가와 민족, 경계와 차별을 다뤄온 전시의 서사는 마지막 순간 ‘마술’이라는 은유로 전환된다. 마술은 사라짐과 연결, 믿음과 환영의 감각을 통해 고정된 경계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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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마술사 이은결이 일본 거리를 걸으며 마술을 펼치는 정연두 영상 작품. *재판매 및 DB 금지 |
해방 이후 80년. 한국과 일본 현대미술은 때로는 국경을 건너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었고, 때로는 상처를 응시하는 창이었다.
전시 제목인 ‘로드 무비’는 이동과 만남, 충돌과 변화를 담는 영화 장르에서 착안했다. 전시는 국경과 시대를 넘어 이어진 예술가들의 다층적 교류를 하나의 긴 여정처럼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이번 전시는 실내 전시를 넘어 과천관 야외조각공원까지 확장된다. 1986년 과천관 개관 당시 설치된 곽덕준, 곽인식, 이우환 등의 야외조각과 함께 일본 작가 다나베 미쓰아키, 니즈마 미노루의 작품도 함께 소개된다. 전시 기간 중에는 작가와의 대화, 전문가 강연, 학예사 대담, 워크숍 등 연계 프로그램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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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덕준, 〈10개의 계량기〉, 1988, 계량기, 400 × 300 × 85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전유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한·일 양국 미술가들이 어떠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도 교류를 이어왔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과거의 교류사를 되짚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어떤 관계를 이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던지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람객들이 전시를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9월 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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