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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조카 켄 “무어만 ‘TV 브라’ 착용 도왔다가…난리 났었죠”[문화人터뷰]

등록 2026-04-01 17:57:43  |  수정 2026-04-01 19:11:01

美 가고시안, APMA 캐비닛서 백남준 전시

에스테이트 협력 25년 만 서울 개최…조카 켄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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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1일 백남준 조카인 하쿠타 백 켄이 첼리스트 샬롯무어만에 'TV브라' 착용을 도왔다는 에피소드를 전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2026.04.01. hyun2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이 이걸 착용하게 도와달라고 했어요. 저는 흔쾌히 OK했죠. 그런데 나중에 삼촌이 알고 난리가 났어요.”

백남준의 1969년 작품 ‘TV 브라’ 앞에서 만난 켄 백 하쿠타(75)는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유리 케이스 안에는 테이프가 누렇게 변한 작은 비디오 장치들과 전선이 얽힌 앰프가 놓여 있다. 그 옆에는 누드의 샬롯 무어만이 ‘TV 브라’를 착용한 채 첼로를 연주하는 흑백 사진이 걸려 있어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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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하쿠다 켄이 백남준의 1969년 작 'TV브라'를 소개하고 있다. 퍼포먼스 이후 켄이 가지고 있던 작품으로 한국에서 최초 공개다.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그날을 또렷이 기억했다.

“샬롯은 ‘켄은 충분히 성숙하고 섬세한 아이다’라고 했고, 저도 괜찮다고 했죠.”

하지만 백남준은 달랐다. 어린아이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수 있느냐며 격하게 화를 냈다.

“현장은 고성이 오갈 정도로 긴장감이 높아졌어요. 그때 제 나이가 16살이었거든요. 하하.”

하쿠타가 기억하는 백남준은 거장이기 이전의 인간이었다.

“어린 시절 삼촌과 나는 소호에서 차이나타운까지 매일 걸어 다녔어요. 산책을 하며 그는 늘 신문 가판대에 들러 뉴욕타임즈를 샀어요. 어느 날 ‘백남준’이라는 이름이 신문에 실렸을 때, 삼촌은 이렇게 말했어요. ‘뉴욕타임즈에 이름 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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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백남준 조카 하쿠다 백 켄이 환하게 웃으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1일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본사 APMA 캐비닛에서 열린 ‘백남준: Rewind / Repeat’ 전시장에서 만난 하쿠타는 연신 “행복하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한국 미술계와 거리를 두었던 그가 서울에서 보인 표정은 그 자체로 변화였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이 태어난 서울에서 25년 만에 열리는 유족이 관리하는 에스테이트 협력 전시다.

켄의 기억에 강렬한 에피소드로 남은 ‘TV 브라’는 2001년 호암미술관 이후 약 25년 만의 국내 공개다. 뉴욕 구겐하임에서 시작해 빌바오를 거쳐 한국으로 이어졌던 순회전 이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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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작 ‘미디어 샌드위치’를 하쿠다 켄이 설명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장에는 초기작 ‘미디어 샌드위치’도 함께 공개됐다. 백남준이 음악에서 전자매체로 이동하던 전환기의 작업이다.

독일 전자공학 잡지와 일본 레코드판, 오래된 인쇄 이미지가 결합된 이 작품은 동양과 서양, 음악과 기술이 교차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남아 있는 작업 중 하나만 고르라면 이걸 집에 두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는 이 작품을 두고 “백남준이 회화가 더 이상 의미 없다고 판단하고 매체로 나아가기로 결심한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가고시안 아시아 매니징 디렉터 닉 시무노비치는 “백남준은 누구보다 확장적인 사고를 가진 작가였다”며 “예술과 과학, 비즈니스까지 아우르는 글로벌한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봤다”고 평가했다.

이어 “백남준은 1971년 ‘전자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를 언급했는데, 오늘날 아마존·유튜브·틱톡·줌으로 이어지는 플랫폼 사회는 그가 예견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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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전시 전경.© Nam June Paik Estate. Photo: Jeon Byung Cheol Courtesy Gagosian *재판매 및 DB 금지


■ “나는 어려운 사람이 아니다”…엇갈린 20년
그는 그동안 신뢰할 수 없다는 한국 미술계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일을 하기 어려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연락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의 제도와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답을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그 사이에서 오해가 쌓였다는 설명이다.

“제가 답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백남준이 2006년 세상을 떠난 이후, 그의 유산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하쿠타는 큐레이터 존 호프만과 함께 10년에 걸쳐 방대한 아카이브를 정리했다.

“그때는 어떤 전시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후 홍콩에서 가고시안과 협업하며 2015년부터 전시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생전 백남준이 “비즈니스는 가장 세련된 예술”이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며, 예술과 과학, 기술과 시장을 하나의 영역으로 본 그의 사고가 지금도 유효하다고 했다.

하쿠타 켄은 백남준의 큰형이자 태창방직 사장이었던 백남일의 장남이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일가가 부정축재자로 몰리면서 가산이 몰수됐고, 가족은 일본으로 건너가 귀화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이름을 일본식 ‘하쿠타 켄(白田健)’으로 바꾸고 그곳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백남준과 각별한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제가 9개월쯤 됐을 때, 삼촌 등에 올라타려던 사진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늘 가까이 지냈죠.”

그는 “왜 자신이 가장 가까운 조카가 되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면서도 “유독 잘 통했고, 거의 매일같이 만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숙부인 백남준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하버드대에서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한 뒤 장난감 사업과 방송 활동 등으로 성공을 거뒀다.

이후 1990년대부터 백남준의 작업을 곁에서 도왔다. 2006년 백남준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뉴욕 스튜디오와 저작권을 승계받아, 현재 에스테이트를 대표하는 법적 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같은 처지의 이들과의 독특한 인연도 언급했다.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의 조카와 함께 ‘유명 작가의 멍청한 조카들’이라는 모임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삼촌 기준에선 멍청함이 곧 똑똑함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냥 멍청함은 멍청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이 농담은, 방대한 유산을 떠맡은 ‘조카’라는 위치와 그 책임을 동시에 드러낸다.

까칠하다고 소문난 백남준 조카로서, 여전히 유산을 관리하고 있는 그의 목표는 단순했다.

“가장 좋은 작품을 최고의 미술관과 컬렉션에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에스테이트(Estate)는 사라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면서 “100주년 전시가 한국에서 열린다면 가장 좋은 일일 것”이라는 바람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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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켄 백 하쿠타와  존 호프만 큐레이터. *재판매 및 DB 금지


25년 만에 자신이 보관해 온 작품을 처음 공개하며 서울에서 전시를 연 그는 “삼촌이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히 기뻐했을 것”이라며 환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존 호프만(Jon Huffman) 큐레이터가 내가 더 잘 안다는 듯 말을 보탰다. “아마 질문 하나만 더 받고 ‘밥 먹으러 가자’고 했을 겁니다.”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는 두 사람은, 동서양의 경계를 넘어 형제처럼 보였다.

이들의 관리 속에 갇힌 미술사적 인물이 아니라, 백남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TV와 로봇으로 시작된 그의 세계는, 기발함과 유머를 잃지 않은 채 오늘의 AI 시대까지 이어진다. 전시는 5월 16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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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 본사 APMA 캐비닛에서 열리는 백남준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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