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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수련' 팔고 '로스코 룸'…미술품 공공화 나선 日 기업 DIC

등록 2026-02-06 09:16:46  |  수정 2026-02-06 09:52:57

로스코 채플과 파트너십…2030년 개관

일본 국제문화회관에 조성..SANAA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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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룸(Rothko Room)’에 전시될 로스코 작품 이미지. © 1998 Kate Rothko Prizel & Christopher Rothko / ARS, New York / JASPAR, Tokyo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 프랭크 스텔라, 사이 톰블리 등 전후 미국미술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 수준의 미술 컬렉션을 보유한 기업 컬렉터로도 유명한 일본의 화학기업 DIC Corporation이 미술과 건축을 축으로 한 협업 프로젝트를 본격화한다.

일본 국제문화회관(International House of Japan)에 따르면, DIC는 미국 휴스턴의 로스코 채플(Rothko Chapel)과 파트너십을 맺고, 일본 건축사무소 SANAA가 설계한 상설 전시 공간 ‘마크 로스코 룸(Rothko Room)’을 2030년 개관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예술을 매개로 기업 활동과 공공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새로운 협업 모델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DIC는 잉크·안료·전자소재 등을 생산하는 일본의 대표적 화학기업이다. 동시에 로스코를 비롯해 폴록, 스텔라, 톰블리 등 전후 미국미술을 중심으로 한 20세기 미술 컬렉션을 구축해 온 기업 컬렉터로 미술계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컬렉션은 그동안 가와무라기념 DIC미술관을 통해 공개돼 왔으며, DIC는 이를 단순한 기업 자산이 아닌 사회적 문화 자산으로 보고 연구·보존·공개·국제 협력의 관점에서 관리해왔다. DIC는 2030년까지 예정된 소장품 이전 기간 동안에도 일본과 해외에서 관람 기회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다만 DIC는 과거 가와무라기념 DIC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클로드 모네의 '수련(Water Lilies)' 등 일부 작품을 매각하며, 기업 컬렉션의 공공성을 둘러싼 논쟁을 불러온 바 있다. 이러한 전례 속에서 이번 로스코 프로젝트는, 기업 컬렉션을 해체하는 대신 공공적 활용 모델로 전환하려는 시도로도 읽힌다.

DIC는 화학기업으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미술품 보존과 복원 지원을 본격화한다. 이를 위해 미술 보존 전담 조직인 IACC(Institute of Art Conservation Chemistry)를 설립하고, 예술 보존을 통한 사회적 기여와 기업 가치 제고를 동시에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건축사무소 SANAA는 국제문화회관 서관(West Wing)에 조성될 상설 공간 ‘마크 로스코 룸’의 설계 개념을 발표했다. 설계진은 가와무라기념 DIC미술관과 로스코 채플, 영국 테이트 모던 등을 방문해 작품과 공간의 관계를 연구했다.

‘마크 로스코 룸’은 국제문화회관이 지닌 일본 모더니즘 건축과 정원의 특성을 반영해, 정원에서 진입하는 동선과 자연광이 스며드는 명상 공간을 거쳐 전시장으로 이어지는 구조로 설계됐다. 지하 전시장 내부에 위치하지만 독립적이고 응축된 공간으로 구성돼, 관람객이 작품에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DIC와 국제문화회관은 각각 로스코 채플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기존 가와무라기념 DIC미술관에 소장돼 있던 로스코의 ‘시그램 벽화(Seagram Murals)’ 7점은 향후 국제문화회관 서관의 ‘마크 로스코 룸’으로 이전돼 공동 운영된다.

특히 DIC는 2024년 허리케인으로 피해를 입은 로스코 채플의 작품 복원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화학 소재와 기술을 활용한 보존 협력을 진행한다. 국제문화회관은 로스코 채플과 함께 예술을 통한 평화와 대화를 목표로 한 민간 외교 프로그램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 미술계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기업이 축적한 대형 미술 컬렉션을 매각할 것인가, 공공 자산으로 전환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미 국내에서도 반복돼 왔다. 기업 미술관의 지속 가능성, 소장품의 공공성, 그리고 민간 컬렉션의 사회적 책임을 둘러싼 논의 속에서, DIC의 이번 선택은 ‘해체’가 아닌 ‘공공화’라는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는 사례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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