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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이 만든 세계'…도널드 저드 가구 국내 최초 공개

등록 2025-11-27 01:01:00  |  수정 2025-11-27 01:10:23

이태원 현대카드 스토리지 27일 개막

20세기 미니멀리즘 아이콘

가구 38점·구조 뼈대 드로잉·판화 등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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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저드 : 퍼니처'의 전시 전경.. 사진=현대카드, SACK, Korea. Donal Judd Furniture ⓒJudd Foundation.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직선만으로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예술가가 있다.

회화와 조각, 건축과 가구…모든 형식이 결국 같은 철학에서 태어난다고 확신했던 사람.

20세기 미니멀리즘의 아이콘,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다.

현대카드가 27일부터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여는 ‘Donald Judd: Furniture’는 저드의 가구 세계를 전면에 드러낸 국내 최초·최대 규모의 전시다. 

저드가 직접 디자인한 가구 38점, 가구 구조의 뼈대를 보여주는 드로잉 22점, 형태·색채 실험의 계보를 잇는 판화 37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가구 전시’라 부르기엔 너무 미학적이고, ‘예술 전시’라 하기엔 너무 생활적이다. 결국 저드의 세계를 직선으로 체험하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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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구는 예술이 아니다”…그러나 누구보다 예술적인 가구
단정한 직사각형 의자들. 장식은 없다. 솔직함뿐이다.

목재의 결, 금속의 반사, 구조의 균형. 저드는 가구에서도 ‘쓸모와 정직함’을 절대 기준으로 삼았다.

저드는 “디자인적 변주를 더한다고 해서 의자가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그의 가구는 지금 예술의 역사 안에서 더 빛난다.

저드의 아들이자 저드재단 아티스틱 디렉터 플래빈 저드는 이렇게 설명했다.

“아버지는 가구를 예술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명료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철학은 예술과 가구를 가르는 것이 아니었죠.”

1977년 텍사스 마파(Marfa)에 정착한 뒤, 주변 어디에도 ‘괜찮은 가구’를 파는 곳이 없었다. 저드는 결국 직접 만들었다.
임시방편으로 시작된 일은 곧 저드식 미학으로 확장된다.

가구는 기능적이어야 했고, 구조는 명확해야 했으며, 재료는 정직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버틸 품질을 갖춰야 했다.

결국 저드의 가구와 예술이 닮아 보이는 이유는 하나다. 같은 철학이 같은 직선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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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저드 : 퍼니처' 전시 전경. 사진=현대카드, SACK, Korea. Donal Judd Furniture ⓒJudd Foundation. *재판매 및 DB 금지


 ◆‘예술가의 방’처럼 구성된 전시장
이번 전시의 핵심은 “저드의 공간을 번역한다”는 현대카드 스토리지의 방향성이다.

그래서 전시는 단순한 ‘가구 전시’가 아니다. 저드가 생전 작업하고 생활했던 공간의 분위기를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게 한다.

1층: 목재 가구 + 목판화의 ‘선과 색’의 대화, 2층: 금속 가구의 구조적 존재감, 드로잉 공간: 가구의 구조적 사고가 기록된 설계의 세계.

가구와 드로잉, 판화가 삼각 구도를 이루며 저드의 사고가 재료 → 구조 → 공간 →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저드는 가구의 품질을 타협하지 않기 위해 치수·재료·마감·구조를 모두 기록해뒀고,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30여 점은 그의 설계도를 그대로 따라 제작된 리메이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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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저드 : 퍼니처' 전시 전경. 사진=현대카드, SACK, Korea. Donal Judd Furniture ⓒJudd Foundation.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는 ‘저드라는 세계를 살아보는’ 경험
그가 평생 되풀이한 건 단 하나, 직선. 하지만 저드의 직선은 결코 같은 직선이 아니다.

그 미세한 차이가 결국 세계를 새로 그렸다.

저드는 남겼다. “본질만 남겨도 세계는 충분히 아름답다.”

이번 전시는 그 문장을 가구의 언어로 번역한 하나의 거대한 공간적 문장이다.

가구는 기능이고, 조각은 개념이지만 저드의 우주에서는 둘 다 ‘공간을 만드는 행위’로 귀결된다.

선 하나, 비례 하나가 공간의 질서를 재구성한다.

현대카드는 “이 전시는 저드를 기념하는 전시가 아니라, 저드처럼 ‘생각하는 법’을 몸으로 배우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미니멀리즘은 차갑지 않다. 오히려 덜어냄을 통해 더 깊이 보게 만드는 따뜻한 감각이다.

의자들 사이를 걷고, 책상 앞에 멈추고, 선반의 구조를 따라가며 문득, 깨닫는다.

우리가 세계를 더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직선 하나로도 세계는 다시 그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아온 건 아닐까.

전시는 내년 4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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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저드 : 퍼니처'의 전시 전경. 사진=현대카드, SACK, Korea. Donal Judd Furniture ⓒJudd Foundation.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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