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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간송미술관은 근대 수장가들의 컬렉션을 조명하는 기획전 '보화비장華秘藏: 간송컬렉션, 보화각에 담긴 근대의 안목' 언론공개회를 15일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보화각에서 갖고 간송 전형필의 스승이자 ‘근대 최고의 감식안’으로 불린 위창 오세창의 수집 유물인 오리(吳履)의 '백운홍엽도(白雲紅葉圖)'를 선보이고 있다. 2025.10.15. [email protected]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비장한 전시다. 秘藏. ‘감추어 간직한다’는 뜻이라, 그 안에 ‘저항’, ‘보존’, ‘시간의 은닉’ 같은 간송 전형필(1906~1996)의 철학이 다 담겨 있다.
간송미술관 가을 기획전 제목 ‘보화비장(寶華秘藏)’은 단순한 수집의 개념을 넘어 ‘숨겨야 지킬 수 있었던 시대의 미학’을 상징한다.
15일 전시장에서 만난 김영욱 학예사는 “‘비장’은 1910~1950년대 수장가들이 실제 사용하던 용어로, 당시에는 ‘진장’이라고도 불렸다”며 “귀중한 소장품 가운데서도 특별히 ‘숨겨야 할 보물’을 뜻했다. 이번 전시는 ‘숨겨진 보물의 미학’이자, 근대 수장가 7인의 안목을 통해 간송 컬렉션의 뿌리와 시대적 맥락을 드러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비밀리에 작품을 구입·보관하며 문화보국을 실천했다.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은 “간송은 일제강점기 때 본인이 드러나는 걸 극도로 피해야 했다”며 “당시 ‘돈은 많지만 그냥 구입하는 사람’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이번 전시는 간송 컬렉션을 이루는 숨은 비장 7인의 수장 내력과 수장문화의 맥락을 새롭게 조명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간송에게 ‘비장’은 단순한 숨김이 아니라 예술을 지켜내기 위한 정신적 방패이자 실천의 방식이었다. 그는 격동의 시대 속에서도 ‘문화보국(文化保國)’, 즉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신념으로 고미술을 수집했다. 간송의 컬렉션에는 그 이전 세대 수장가들의 취향과 안목이 깊게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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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이 15일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보화각에서 근대 수장가들의 컬렉션을 조명하는 기획전 '보화비장華秘藏: 간송컬렉션, 보화각에 담긴 근대의 안목' 언론공개회를 하고 있다. 2025.10.15. [email protected] |
◆간송미술관 가을기획전 ‘보화비장’
간송미술관은 오는 17일부터 11월 30일까지 서울 성북구 보화각에서 가을 기획전 ‘보화비장(寶華秘藏): 간송 컬렉션, 보화각에 담긴 근대의 안목’을 연다.
이번 전시는 근대 수장사의 관점에서 간송이 어떤 작품을 선별·수용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와 공명한 7인의 수장가에게 바치는 오마주로 기획됐다.
2024년 재개관 이후 ‘간송 컬렉션의 형성과 구축 과정’을 재조명하는 3개년 프로젝트의 네 번째 전시이자, 2026년 간송 전형필 탄생 120주년을 기념할 특별전의 서막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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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간송미술관은 근대 수장가들의 컬렉션을 조명하는 기획전 '보화비장華秘藏: 간송컬렉션, 보화각에 담긴 근대의 안목' 언론공개회를 15일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보화각에서 갖고 영국 출신의 변호사인 존 갯즈비(John Gadsby, 1884~1970)의 수집 유물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국보), '청자기린유개향로'(국보), '청자오리형연적'(국보),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국보), '청자상감국화모란당초문모자합'(보물), '청자음각환문병'(보물), '백자박산향로'(보물) 등을 공개하고 있다. 2025.10.15. [email protected] |
◆간송이 품은 7인의 근대 수장가
‘보화비장’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7인의 근대 수장가 컬렉션을 한자리에 공개한다.
희당 윤희중, 송은 이병직, 존 갯즈비를 비롯해 운미 민영익, 위창 오세창, 석정 안종원, 송우 김재수 등 일제강점기 전후 한국 근대 수장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의 대표 소장품 26건 40점이 전시된다. 이 가운데 국보 4건, 보물 4건이 포함됐다.
2층 전시실에서는 중국 상해를 중심으로 교류하며 서화를 모은 운미 민영익의 ‘천심죽재(千尋竹齋) 컬렉션’, 근대 감식안의 토대를 세운 위창 오세창의 ‘천죽재(天竹齋) 컬렉션’, 안중식의 ‘경묵당’을 잇는 석정 안종원의 ‘경묵당 컬렉션’이 수장고에서 나왔다.
1층에는 송우 김재수의 ‘숭고재(崇古齋) 컬렉션’, 독립운동가이자 수장가 희당 윤희중의 ‘적고각(積古閣) 컬렉션’, 조선의 마지막 내관 송은 이병직의 ‘고경당(古經堂) 컬렉션’, 그리고 영국 변호사 존 갯즈비의 고려자기 컬렉션이 이어진다.
갯즈비의 도자 컬렉션은 이번 전시의 백미다. 국보 제4호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청자기린유개향로’, ‘청자오리형연적’,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을 비롯해 보물로 지정된 ‘청자상감국화모란당초문모자합’, ‘청자음각환문병’, ‘백자박산향로’ 등 총 9건이 출품된다. 가치만 약 300억 원으로 추정되지만, 단순한 금전적 평가보다 간송이 이 유물들을 1937년 일본 현지에서 직접 되찾아온 역사적 맥락이 중요하다.
송은 이병직이 소장했던 추사 김정희의 절필작 ‘대팽고회(大烹高會)’ 예서 대련(보물)도 함께 선보여 이번 전시의 격동의 근대를 관통한 열정과 신념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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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간송미술관은 근대 수장가들의 컬렉션을 조명하는 기획전 '보화비장華秘藏: 간송컬렉션, 보화각에 담긴 근대의 안목' 언론공개회를 15일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보화각에서 갖고 조선의 마지막 내관으로 알려진 근현대 서화가이자 수장가 송은 이병직(1896~1973)이 수집한 추사 김정희의 절필작 '대팽고회(大烹高會, 왼쪽)' 예서 대련 등을 공개하고 있다. 2025.10.15.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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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간송미술관은 근대 수장가들의 컬렉션을 조명하는 기획전 '보화비장華秘藏: 간송컬렉션, 보화각에 담긴 근대의 안목' 언론공개회를 15일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보화각에서 갖고 간송 전형필의 스승이자 ‘근대 최고의 감식안’으로 불린 위창 오세창의 수집 유물인 김홍도(金弘道)의 '검선관란(劍仙觀瀾)'를 선보이고 있다. 2025.10.15. [email protected] |
◆간송과 근대 수장문화의 맥락
1930~40년대는 한국 미술시장이 급격히 변화하던 시기였다. 경매와 전람회가 활성화되며 고려청자와 서화가 활발히 거래됐고, 수장가들은 각자의 취향과 철학으로 컬렉션을 형성했다. 간송미술관 보화각에 남은 작품 한 점 한 점은 이러한 근대 수장문화의 역사적 증언이다.
전영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간송 컬렉션은 간송 개인의 안목을 넘어, 동시대 수장가들이 함께 쌓아 올린 근대의 시선과 기록”이라며 “수장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모여 하나의 문화사가 되었고, 그 결실이 오늘의 간송 컬렉션”이라고 말했다.
전인건 관장은 “이번 전시는 간송이 당대 수장가들의 컬렉션에서 민족의 정수라 여긴 작품을 선별·수집한 과정을 조망하는 자리”라며 “근대 수장가들의 안목을 통해 간송 컬렉션을 새롭게 읽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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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간송미술관 2층에 선보인 심산 노수현 '무궁화'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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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심산 노수현 *재판매 및 DB 금지 |
◆광복 80주년 기념작, 노수현의 ‘무궁화’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전시의 문을 여는 작품은 심산 노수현의 ‘무궁화’다. 1946년작으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노수현이 간송 전형필에게 선물한 이 작품에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라는 애국가 후렴구가 새겨져 있다.
암흑의 시대 속에서도 문화로 나라를 지킨 간송의 신념과, 독립을 위해 헌신한 우국선열에 바치는 헌화를 상징한다.
간송이 일제강점기 속에서 예술로 저항했던 그 시절, 이 한 폭의 그림은 ‘미술의 저항’이자 ‘문화의 생존’으로 읽힌다.
오는 11월 30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해설 프로그램(오전 11시·오후 2시, 회당 30명)과 오디오가이드가 운영된다. 관람료는 성인 5000원. 미취학 아동과 국가유공자 등은 할인 또는 무료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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