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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바젤·프리즈 사막 위의 미술전쟁…오일머니를 컬처머니로[박현주 아트클럽]

등록 2025-10-14 09:30:24  |  수정 2025-10-14 10:23:46

내년 중동 진출…‘아트바젤 도하’·‘프리즈 아부다비’ 론칭

포스트 홍콩 시대, 세계 미술의 중심 사막으로 이동

국부펀드·문화정책 힘입어 글로벌 미술시장 재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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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다비 아트페어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홍콩이 지고, 서울이 뜨자 이제 세계 미술의 무대는 사막으로 옮겨가고 있다.

세계 양대 아트페어, 아트바젤(Art Basel)과 프리즈(Frieze)가 잇따라 중동 진출을 공식화하면서, ‘사막 위의 미술전쟁’이 예고됐다.

아트바젤은 지난 5월 카타르스포츠투자청(QSI)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내년 2월 카타르 도하 문화지구 ‘므쉐이렙(M7)’에서 ‘아트바젤 도하(Art Basel Doha)’를 출범한다고 밝혔다.

이어 5개월 뒤인 10월 13일, 프리즈는 아부다비 문화관광부(DCT Abu Dhabi)와 손잡고 2026년 11월 ‘프리즈 아부다비(Frieze Abu Dhabi)’ 개최를 공식화했다.

두 페어의 대결은 단순한 시장 확장이 아니라, ‘포스트 아시아’ 시대의 문화 패권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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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7_in_Doha_horizontal_Courtesy_of_Art_Basel *재판매 및 DB 금지

◆ 지는 홍콩, 뜨는 서울
한때 ‘아시아 미술의 수도’로 군림했던 홍콩의 전성시대가 저물고 있다.

정치적 불안과 규제 강화, 임대료 급등, 중국 본토 컬렉터의 이동 제약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메가 화랑들이 잇따라 철수했다.

페이스(Pace)는 H Queen’s 빌딩의 전시장 운영을 종료했고, 페로탕(Perrotin)은 빅토리아독사이드 공간을 닫았다. 레비 고르비 데이안(Lévy Gorvy Dayan) 역시 2024년 말 홍콩 지점을 폐쇄했다.

이들은 “홍콩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며 서울·도쿄·싱가포르로 중심을 옮기는 추세다.

서울은 그중에서도 단연 중심이다. ‘프리즈 서울’의 성공적 정착은 아시아 미술시장의 활력을 입증했고, 그 에너지가 이제 중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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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artment of Culture and Tourism, Abu Dhabi *재판매 및 DB 금지


◆오일머니에서 컬처머니로…사막의 르네상스
중동은 지금 ‘석유에서 예술로’의 대전환을 추진 중이다.

루브르 아부다비는 지난해 140만 명의 관람객을 모으며 중동 문화 르네상스의 상징이 됐다.

‘구겐하임 아부다비’는 2026년 개관을 앞두고 있으며, 도하의 문화복합공간 M7은 카타르의 ‘국가비전 2030’ 아래 창조산업의 허브로 떠올랐다.

리야드–도하–아부다비로 이어지는 ‘사막의 예술 삼각축’은 세계 미술시장의 새로운 전선이다.

중동의 국부펀드와 문화정책은 ‘오일머니’를 ‘컬처머니’로 전환하며, 글로벌 미술의 판을 새로 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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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 아부다비 론칭©️Department of Culture and Tourism, Abu Dhabi *재판매 및 DB 금지

◆프리즈, 아부다비 아트 인수…“아트바젤보다 한발 늦고, 한층 깊게”
프리즈는 단순히 새 페어를 여는 것이 아니라, 기존 ‘아부다비 아트(Abu Dhabi Art)’를 통째로 인수했다.

2008년 창설된 아부다비 아트는 11월, 역대 최대인 140개 갤러리가 참가하는 마지막 독립 버전을 선보인 뒤 2026년부터 공식적으로 ‘프리즈 아부다비’로 리브랜딩된다.

작년 가을에는 아트바젤이 약 2000만 달러 인수설로 협상을 벌였다는 소문도 있었다. 결국, 프리즈가 그 경쟁에서 승리한 셈이다.

프리즈의 이번 행보는 ‘문화 리더십’을 강화하려는 아부다비 문화관광부(DCT Abu Dhabi)의 전략과 맞물린다. DCT 회장 모하메드 칼리파 알 무바라크는 “2008년 창립된 아부다비 아트의 자연스러운 진화”라고 밝혔다.

◆ 프리즈의 새 주인, 오일머니의 자본
이번 인수 뒤에는 헐리우드 거물 아리 엠마누엘(Ari Emanuel) 의 등장이 있다.

그는 올해 5월, 프리즈를 엔데버(Endeavor)로부터 인수하고 ‘마리(MARI)’라는 새 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는 프리즈 외에도 마드리드·마이애미 테니스 오픈, 자동차 경매사 Barrett-Jackson 등을 소유한다.

파이낸셜타임즈등 외신에 따르면 엠마누엘은 20억 달러(약 2조7000억 원) 의 투자금을 확보했으며, 투자자에는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와 놀랍게도 카타르투자청(QIA) 이 포함됐다.

즉, 프리즈의 뒤에는 이미 오일머니가 흐르고 있다.

◆아트바젤 도하 vs 프리즈 아부다비…사막 위의 예술전
아트바젤 CEO 노아 호로비츠는 “도하는 중동·북아프리카 예술의 새로운 허브가 될 것”이라며 “작가와 갤러리, 컬렉터가 교차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프리즈 CEO 사이먼 폭스는 “아부다비의 문화적 리더십과 예술에 대한 헌신이 이번 협력의 토대”라며 “프리즈의 글로벌 플랫폼으로 지역 예술을 세계 무대로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페어 모두 문화 외교·투자·브랜드·관광이 결합된 초국가적 프로젝트다.

아트바젤이 도하에서 문을 열고, 프리즈가 아부다비를 이어받는다. 결국 사막 위에서 맞붙는 건 두 ‘예술 기업’이지만, 그 뒤에는 국가 단위의 전략과 자본이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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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3일 개막한 프리즈서울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그리고 서울…아시아의 교차점
사막으로 향하는 미술시계 속에서도, 서울은 여전히 아시아의 교차점이다.

‘프리즈 서울’이 만들어낸 활력은 아시아 시장의 중심을 다시 북쪽으로 끌어올렸고, 그 에너지는 이제 사막까지 번지고 있다.

결국, 사막 위에서 춤출 것은 예술이 아니라 자본이다.

‘사막 위의 미술전쟁’은 글로벌 자본과 문화정책, 예술 생태계가 얽힌 새로운 패권의 무대다. 오일머니가 합세한 이 자본주의의 신전(新殿)에서, 예술의 이름으로 또 하나의 전쟁이 시작된다.

아트페어는 더 이상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다. 그곳은 세계가 움직이는 속도와 욕망이 교차하는, 가장 뜨거운 현장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