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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쫓아가는 Chasing(detail), 2025, 205x69cm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복잡하게 얽힌 경험과 기억이 겹겹의 막처럼 존재한다. 그 막을 들추고 스치는 감각을 회화로 풀어내고 싶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13일 개막하는 이진주(45) 개인전 '불연속연속’은, 화면을 가르는 ‘막’과 이를 잠식하는 검정 속에서 회화의 긴장을 빚어낸다. 가려진 것과 드러난 것, 부재와 존재의 경계가 서로 맞물리고 이탈하는 장면들이 전시 전관을 채운다.
동양화를 전공한 이진주는 일상 속 낯선 장면과 대상을 전통 채색 기법으로 포착한다. 섬세한 필치와 오랜 관찰이 만든 시선은, 대상을 응시하는 동시에 에둘러 감싸는 태도를 품고 있다.
그의 화면에서 ‘막’은 관계를 가로막는 장벽이자 대상을 보호하는 은신처다. 코로나19 시기 관계의 단절을 경험하며 본격적으로 천착한 개념이다. 종잇장처럼 얇지만, 심리적·물리적 경계를 드러내는 회화적 장치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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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남은 5-Remaining, 2025, 60x54cm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번 전시는 ‘셰이프트 캔버스(Shaped Canvas)’ 연작, ‘블랙 페인팅(Black Painting)’ 연작, 입체 회화 등 총 54점을 선보인다.
이진주의 ‘블랙 페인팅’은 광목에 수간채색 기법으로 그려지며, 화면을 채우는 짙은 검정은 남편이자 동료인 이정배가 안료를 배합해 만든 ‘이정배 블랙’으로 완성된다. 단순한 색채가 아닌, 밀도 높은 심연으로서의 검정이다. 그것은 화면 속 공기를 단단히 붙잡고, 관람자의 시선을 안으로 끌어들인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전관은 층마다 다른 회화적 실험으로, 작가가 짜놓은 심리 지도처럼 느껴진다.
1층 전시장에는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자 최대 규모 셰이프트 캔버스인 ‘슬픔과 돌’(2025)이 걸렸다. 여섯 장의 흰 장막이 사선으로 늘어서고, 그 사이로 바위·인물·사물들이 불연속적으로 스쳐 보인다. 여백이 도려진 형상은 전시장 벽과 결합해 현실 공간까지 확장된다.
같은 층의 ‘겹쳐진-사라진’(2025)은 입체 회화 구조 속에 블랙 페인팅을 배치해, 외양과 내면·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간극을 사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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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슬픔과 돌 Sorrow and Stone(detail), 2025, 386x322cm(1)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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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겹쳐진-사라진 Layered-Erased(detail), 2025, 56x37x200(h)cm *재판매 및 DB 금지 |
4층 안쪽 공간의 ‘쫓아가는’(2025)은 ‘셰이프트 캔버스’와 ‘블랙 페인팅’이 결합된 작업이다. 얇게 휘어진 막 안쪽의 검정 배경 위, 두 인물이 포개어 서 있다.
한 인물은 자신의 손 윤곽을 그리고, 다른 인물은 녹아내릴 듯한 얼음과 연필을 쥔다. 발 아래의 날개 꺾인 새는 장면의 위태로움을 배가한다. 막의 어두운 내부는 심리적 무대이자 기억의 심연으로, 관람자를 안쪽 깊숙이 몰입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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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쫓아가는 Chasing, 2025, 205x69cm *재판매 및 DB 금지 |
이진주의 ‘불연속연속’은 삶이 품은 모순과 은유를 외면하지 않는다. 존재와 부재, 연결과 단절 사이에서 그녀의 회화는 마치 숨은 문장을 읽듯, 관객이 각자의 경험과 감각으로만 완성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이야기보다 장치다. ‘막’과 ‘검정’이 직조한 장면들은 조형적 실험의 밀도를 증명하지만, 그만큼 서사의 결을 옅게 만든다. 이 선택이 의도된 전략인지, 혹은 다음 장을 열기 위한 잠시의 멈춤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어둠 속에 숨겨둔 형상들이 언젠가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지금보다 더 단단해진 ‘이진주의 서사’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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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이진주 개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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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진주.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진주는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2009년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2014년 송은미술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아라리오뮤지엄, 송은, OCI미술관 등 국내 주요 기관과 롱뮤지엄·유즈미술관(중국) 등 해외 기관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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