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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승훈 '만다라 달항아리'. 사진=가나아트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변승훈이 도자에 발을 들인 것은 40년 전, 박물관에서 우연히 마주한 1만 년 전 토기 조각이었다. 지문이 남은 흙 파편에서 경이로움을 느낀 그는 전국의 도요(陶窯)를 돌며 전통 도자 제작 기법을 익혔다.
특히 1988년 안성 미리내 성지 인근에서 발견한 500년 전 분청사기 파편은 그의 작업 방향을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백자·청자와 달리, 분청은 서민적이고 자유분방한 미감을 지닌 문화유산이었다. 변승훈은 이러한 분청사기의 조형성을 현대적으로 계승·확장하며, 실용과 예술, 전통과 동시대성을 넘나드는 조형 언어를 구축해왔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SPACE 97과 공예관에서 24일까지 펼치는 변승훈 개인전 '滿空: 비움으로 가득한'은 작가의 40여 년 작업 세계를 조망한다.
'만다라 달항아리'를 비롯해 오브제와 생활자기 등 60여 점의 작품을 통해, ‘비움’과 ‘채움’의 순환 관계를 풀어낸다.
대표 연작 '만다라 달항아리'는 조선 백자의 전통 달항아리를 분청 기법으로 변용한 작품이다. 코일링(coiling) 기법으로 층층이 흙을 쌓아 올려 기계적 대칭에서 벗어나고, 달의 상징성과 불교의 윤회 개념을 결합했다.
표면에 새겨진 원형 문양은 한지를 덧붙이고 백색 화장토를 도포하는 반복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며, 시간의 축적과 수행성을 시각화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명도의 대비는 시간의 축적과 수행성을 시각화하며, 달항아리를 우주의 순환과 질서를 담아낸 하나의 공간으로 확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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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승훈, 대지의 노래 2007 분청토, 미리내토 160x203cm 62.9x80(h)in.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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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승훈 개인전이 가나아트센터에서 24일까지 열린다.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번 전시에는 부조 도자작품 '대지의 노래'(2007)도 소개된다. 목탄 드로잉을 토대로 흙 형상을 제작하고 유리를 덧입혀 재소성한 이 작품은 태풍에 흔들리는 나무의 생명력을 흙 속에 담았다. 투명한 유리 표면은 마치 빗물에 젖은 나무를 연상시키며, 회화성과 재료 실험이 결합된 변승훈의 실험 정신을 드러낸다.
공예관에서는 생활자기 시리즈도 전시된다. 찻잔, 사발, 화병, 푼주 등 일상 속에서 사용되는 그릇들은 전통 분청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가나아트센터는 이번 전시를 “도예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와, 흙이라는 원초적 재료를 매개로 ‘만공(滿空)’의 세계를 조형화해온 작가의 예술 궤적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라며 "‘비움’ 속에서 피어나는 ‘가득함’이라는 역설적 미학을 중심에 두고, 형태 너머에 축적된 시간과 사유를 깊이 있게 보여주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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