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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만든 기념비’ 이불 ‘스턴바우’, 국립현대미술관 상설전서 첫 공개

등록 2025-06-25 15:41:06  |  수정 2025-06-25 15:44:38

과천관서 '한국근현대미술 II'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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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25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첫 공개된 이불의  ‘스턴바우(Sternbau)’. 2025.06.2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MMCA·관장 김성희) 과천관이 26일 개막하는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I’는 1950~90년대를 아우르는 ‘한국미술 타임캡슐’이다. 전쟁과 산업화, 민주화라는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한국미술의 흐름을, 작가 70여 명의 작품 110점으로 압축해 풀어낸다. 이 중 17점은 ‘이건희컬렉션’이다.

지난달 개막한 1부(1880~1940년대)에 이은 이번 2부 전시는, 20세기 중후반 한국미술사의 전환기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두 전시를 합쳐 과천관에서는 총 58점의 이건희컬렉션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이불(61)의 설치작품 '스턴바우 No. 23'(2009)이다.

25일 과천관에서 언론에 먼저 공개된 이 작품은 11개 소주제의 전시 구성을 따라 도착한 마지막 방에서 관람객의 시선을 단숨에 붙잡는다. 아니, 시선을 흡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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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과천관에서 첫 공개된 이불 ' ‘스턴바우 No. 23’. *재판매 및 DB 금지

◆“이게 진짜 네가 바라던 미래야?” 이불 ‘스턴바우 No. 23’, 첫 공개
거울, 유리, 금속, 반사 필름 등 다층적 재료가 얽혀 공중에 부유하는 이 설치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조각된 우주’처럼 다가온다.

작품 제목 ‘스턴바우(Sternbau)’는 독일어로 ‘별 구조’를 뜻한다. 러시아 구성주의와 브루노 타우트의 유리 건축 실험에서 영감을 받은 이 조형물은, 미래에 대한 인간의 낙관과 그에 따른 불편한 뒷면을 동시에 껴안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작가의 세계관은 더욱 분명해진다. 기술과 신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꿈과 현실이 얽힌 이 기괴한 생명체는 찬란하면서도 차갑다. 그 빛은 따뜻하지 않고, 경외감을 주지만 결코 안심하게 두지 않는다. ‘스턴바우’는 단순한 기념비가 아니라, 조용히 살아 움직이는 존재다.

이불은 이 낯선 구조물을 우리 앞에 띄워두고 묻는다. “이 빛은, 정말 당신이 원했던 것입니까?”

이불 작가는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 ‘프로젝트’ 전시에 초대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냉장 유리 케이스에 날생선 63마리를 넣은 작품 '장엄한 광채'는 강한 악취로 개막 전 철거됐지만, 이를 본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의 초청으로 제4회 리옹비엔날레에 출품되며 전환점을 맞았다.

생선이 부패하는 과정을 전시로 승화시킨 이 작업은 아름다움과 추함, 삶과 죽음을 동시호흡하는 이불의 미학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이후 1999년 제48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참가해 특별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 확고한 위치를 다졌다. 2000년대 이후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적 건축 실험에 집중하며 ‘모뉴먼트’, ‘스턴바우’ 연작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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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MMCA 과천 상설전'한국근현대미술 II'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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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와 향기로 더욱 몰입감을 높인 윤형근 작가의 방.  *재판매 및 DB 금지

◆ 작가의 방, 감각으로 해석된 미학
이번 전시는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변곡점들을 ‘정부 수립과 미술’,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모더니스트 여성 미술가들’ 등 11개의 주제로 분해해 풀어낸다.

전시의 백미는 ‘작가의 방’ 체험형 공간이다. 김환기 방에는 맞춤형 향(수토메 아포테케리 협업), 윤형근 방에는 음악감독 정재일이 구성한 플레이리스트가 더해져 시청각·후각이 결합된 감각적 해석을 제공한다. 전시는 순환형 구성으로, 일부 작품과 공간은 매년 교체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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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과천관 3전시실 입구에 선보인 백남준의 '브람스'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재판매 및 DB 금지

김성희 관장은 “앞서 개막한 1부와 함께 한국근현대미술 100년사를 조망하는 상설전을 통해 국내외 관람객에게 한국미술의 역사와 가치를 전달하고, 동시대 한국미술의 근원을 성찰할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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