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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간송미술관 ‘화조미감’ 인기…학예사가 꼽은 '베스트 10선'

등록 2025/06/14 01:01:00

보물 2건 등 총 37건 77점 전시

이랑 학예사 "한국 회화 미의식 응축"

겸재 정선 '화훼영모화첩'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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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간송미술관 전경 ⓒ 대구간송미술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K아트 열풍 속, ‘고미술’이 조용하지만 강렬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용인 호암미술관 '겸재 정선'전이 누적 관객 11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대구에서는 간송미술관의 첫 기획전 '화조미감'이 조선 화조화의 정수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개막 한 달 만에 4만여 명이 다녀갔고, 하루 평균 4000여 명이 입장하는 등, 고미술의 위상이 새롭게 조명받는 흐름이다.

이번 전시는 조선 중기부터 말기까지,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300년에 걸친 화조화의 흐름을 조망한다. 보물 2건을 포함해 총 37건 77점이 소개된다.  특히 정선의 '화훼영모화첩'이 2년간의 수리 복원을 마치고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전시의 백미는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화조화가 전시되는 특별공간이다. 진경산수화로 잘 알려진 두 대가는 화조화에서도 ‘진경화조’라 불릴 만큼 독자적이고 한국적인 미감을 구현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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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이랑 책임 학예연구사가 화조미감 전시를 설명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를 기획한 간송미술관 이랑 학예연구사는 “화조화는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한국 회화의 미의식이 응축된 형식”이라며,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대표작 10선을 추천했다. 고요한 품격과 시적 감성이 어우러진 조선의 화조미감을 통해, K아트의 뿌리를 되짚어본다. 전시는 8월 3일까지다.

◆놓치지 말아야 할 ‘화조미감’ 베스트 1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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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속(趙涑, 1595~1668)고매서작 조선 17세기, 종이에 먹 100.1×55.7cm,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재판매 및 DB 금지

① 조속 '고매서작(古梅瑞鵲)'
매화 가지 위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먼 곳을 응시한다. 봄의 전령사로 불리는 매화는 담묵으로, 까치는 진한 먹으로 그려져 색감의 대비가 강렬하다. 몇 번의 붓질로 표현된 까치는 비백筆白을 통해 깃털의 질감까지 섬세하게 살아났고, 길게 내린 꼬리는 마치 매화 가지처럼 곧고 굳세다.
똘망한 눈동자와 야무진 부리에서 당당함과 고고함이 배어나며, 군자 매화와 나란히 해도 손색이 없다. 까치와 매화, 형상과 정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문인화의 미학과 조속의 절의가 한 폭에 응축되었다. 조선 중기 문인화조화를 대표하는 품격 높은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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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운(趙之耘, 1637~1691) 매상숙조梅上宿鳥 조선 17세기, 종이에 먹 100.9×56.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재판매 및 DB 금지

② 조지운 '매상숙조(梅上宿鳥)'
한밤을 지새운 듯, 고개를 떨군 새 한 마리가 매화 가지에 앉아 있다. 가지의 곡선은 숙조의 자세를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먹의 농담과 비백筆白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여백의 미와 절제된 구성이 어우러진 이 그림은 조선 중기 문인화조화의 절지영모화 계열을 대표한다. 아버지 조속의 화풍을 이은 조지운은 이 한 폭에 정적 속의 긴장, 시적인 울림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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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징(李澄, 1581~1653 이후) 《산수화조도첩山水花鳥圖帖》 <수변금계水邊錦雞, 심산백한深山白鷳> 조선 1642, 비단에 엷은 색 각 31.7×21.3cm,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보물 *재판매 및 DB 금지

③이징 '수변금계·심산백한(산수화조도첩 중)'
모난 바위와 그윽한 계곡, 그 사이로 한 쌍의 금계가 등장한다. 궁정화가로 활동했던 이징은 왕실 종친이자 화원이었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수묵과 담채, 섬세한 구성력으로 궁정의 취향과 문인의 감성을 동시에 구현했다. 다양한 화풍을 넘나들던 그의 화조화는 조선 중기 회화의 다층적 성격을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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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초충도》草蟲圖 전傳 조선 16세기, 종이에 색 136.0×408.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재판매 및 DB 금지

④신사임당 '초충도'
벌레와 풀꽃이 병풍 가득 펼쳐진다. 담백한 색감과 정갈한 필선에서 단아한 기품이 묻어난다. 신사임당의 진작으로 전해지는 이 병풍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라는 인물적 상징을 넘어, 조선 여성 화가의 존재감을 새긴다. 이후 정선의 '화훼영모화첩'에 영향을 준 대표 범본으로도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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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겸재 정선 화훼영모화첩 중 '하마가자'(두꺼비와 가지. 왼쪽)와 '과전전계'(외밭의 참개구리). 조선 18세기, 비단에 색 각 31.0×18.8cm,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재판매 및 DB 금지

⑤정선 '화훼영모화첩'
닭과 병아리, 들쥐와 두꺼비, 오이밭의 개구리까지-채마밭의 풍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2년간 복원 후 첫 공개된 정선의 이 화첩은 진경정신을 바탕으로 화조화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다. 사실성과 서정성, 색채와 구도 모두에서 겸재 정선의 노년기 절창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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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정(沈師正, 1707~1769) 수금문향水禽聞香 조선 18세기, 종이에 색 27.7×21.3cm,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재판매 및 DB 금지

⑥ 심사정 '수금문향(水禽聞香)'
연잎 사이 연꽃 향기를 맡는 물총새 한 마리. 가슴과 배의 연지빛, 잎의 비취색, 그리고 배경의 과감한 수묵 처리까지. 속도감 있는 붓질과 색의 여백에서 18세기 문인화의 자유로운 기풍이 살아난다. 간송컬렉션의 진주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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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상(李麟祥, 1710~1760) 서지백련西池白蓮 조선 1745, 종이에 엷은 색 26.2×51.8cm,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재판매 및 DB 금지

⑦이인상 '서지백련(西池白蓮)'
한 송이는 고개를 숙이고, 다른 한 송이는 피어오른다. 흰 연꽃 두 송이와 연잎 두 대만으로 화면 전체를 채운, 극도의 절제 속 기품이 느껴지는 구성. 이인상의 수묵과 담채는 문인화의 미학,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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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 황묘농접黃猫弄蝶 조선 18세기, 종이에 색 30.4×46.4cm,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재판매 및 DB 금지

⑧김홍도 '황묘농접(黃猫弄蝶)'
노란 고양이와 제비나비의 팽팽한 시선. 꽃을 찾은 나비, 이를 응시하는 고양이의 동그란 눈. 고요하지만 순간의 긴장감이 흐른다. 김홍도의 세밀한 관찰력과 유머, 그리고 화조화의 생동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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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 추림쌍치秋林雙雉, 《병진년화첩》丙辰年畵帖 조선 1796, 종이에 엷은 색 26.6×31.5cm, 개인소장, 보물 *재판매 및 DB 금지

⑨김홍도 '추림쌍치(秋林雙雉)'
단풍 물든 숲 속, 마주 선 장끼와 까투리. 깊은 산과 계곡을 배경으로 시적인 구성이 완성된다. 색과 선, 시정과 감정이 어우러진 김홍도 화조화의 진면목. '병진년화첩' 중에서도 단연 백미로 꼽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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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업(張承業, 1843~1897) 기응치토飢鷹馳兎 조선 19세기, 비단에 엷은 색 143.2×34.5cm,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재판매 및 DB 금지

⑩ 장승업 '기응치토(飢鷹馳兎)'
굶주린 매가 토끼를 노려본다. 조선 말기, 벽사와 장식의 의미를 아우른 화조화가 유행하던 시기. 장승업은 정밀한 묘사와 채색으로 이 긴박한 순간을 장식화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조선 회화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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