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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성훈 한국화랑협회 회장이 서울 종로구 협회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5.03.29. [email protected]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미술진흥법 이대로 시행되면 화랑들 고사합니다."
한국화랑협회 이성훈 회장의 취임 일성은 절망적인 소리부터 나왔다. 최근 뉴시스와 만난 그는 탄핵 정국과 경기불황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미술서비스업 신고제 도입'이라며 "'미술진흥법안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 조항을 일일이 들여다보며 인터뷰를 진행한 그는 화랑협회 사상 첫 '법조인 회장'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서울고등법원·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등을 지내고 현재 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 2월 제 22대 회장 선거에서 총 133명의 회원 화랑 중 72명의 표를 받아 윤여선 갤러리가이아 대표를 제치고 당선됐다. 1977년 인사동에 선화랑을 설립한 故 김창실(1935~2011) 제5, 8대 화랑협회장의 장남으로, 어머니 작고 후인 2011년부터 부인(원혜경)과 공동 대표를 맡아 선화랑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화랑협회는 국내 화랑 170여 곳이 가입한 단체로 ‘화랑미술제’ ‘키아프’ 등을 개최하고, 미술품 감정기구 등을 운영한다. 협회장 임기는 2년으로 무보수 명예직이다.
"앞으로 2년밖에 안 남았는데 선거 때 보니 회원들이 심각성이 전혀 없었다"며 "미술진흥법안을 알리자 '큰일 났다'는 분위기가 일면서 회장 당선에 큰 작용을 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미술진흥법 시행으로 순차 도입이 확정된 '화랑업 신고제(2026년)와 '재판매보상청구권(추급권·2027년)'에 대해 화랑업계 종사자들이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인터뷰 내내 법 조항을 일일이 읽고 따져보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화랑업 신고제나 추급권 도입은 현재 우리 미술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됐다"는 입장이다. 회장 자리에 앉기 무섭게 전문가들과 테스크포스팀(TFT)을 꾸리고 지난해 7월 제정된 미술진흥법 시행령의 모순을 꼬집고 있다.
◆'화랑업 신고제' 왜 문제인가?
"미술진흥법안 제 18조를 보면 '미술 서비스업을 하려는 자는 신고서의 기재사항, 첨부서류 등과 관련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특별자치시장, 특별자치도지사, 시장 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신고한 사항 중 문화체육관광부령으로 정하는 중요한 사항을 변경하려는 경우에도 같다'고 신고할 의무를 부과해 놨어요. 다음에 신고한 것이 변경될 때도 신고를 해야 되고. 문제는 이 '신고 요건'을 어떻게 평가할 것 입니다."
그는 "법이 치밀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고 강조했다.
미술 서비스업 신고 제도는 법 제정을 통해 화랑업, 미술품 경매업, 미술품 자문업, 미술품 대여·판매업, 미술품 감정업, 미술 전시업 등 미술의 유통 및 감정과 관련한 다양한 업종이 제도권 내로 편입된다. 현재 미술 서비스업이 별도의 제도 없이 자유업으로 운영되고 있어 관련 업종에 대한 지원이 어려웠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문체부는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관계자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세부적인 신고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사실 규제를 제일 덜 받는 게 신고제"라면서도 "화랑업의 신고제는 불확정 개념으로, 미술 발전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인지 등 신고 사항을 어떻게 규정할 것 인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음식점이라도 간이 음식점은 신고를 하면 할 수 있어요. 허가제로 가장 대표적인 게 건축이죠. 요건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판단 작용이 정해지는데, 화랑업은 이런 적용을 쉽게 할 수가 없어요. 신고라는 게 인적, 시설 물적 등의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이 합당하기만 하면 다 받아주겠다는 건데 그렇다면 화랑은 곤란한 문제가 생기는 거죠."
그는 "건물이 으리으리하고(시설), 고학력 큐레이터(인적)가 있고 직원이 많고(물적)하면 신고제 요건에 맞을 수 있다"면서 "대기업 백화점 등도 신고만 하면 화랑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이 때문에 협회에서 신고제를 비판 하는 이유"라고 했다.
"작가를 발굴해서 양성하는 화랑업을 건설업 면허처럼 적용할 수 없잖아요. 예술적 측면에 있어서 추상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화랑업을 신고제로 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현재 화랑업은 사업자 등록으로, 다른 나라에도 신고제나 허가제는 없다. "그동안 문제 많은 화랑들이 있었죠. 고객 등 치고 작가들 착취하고, 이런 일부 엉터리 화랑들 때문에 미술품이 투기품으로 오심되면서, 국민(컬렉터)과 작가들도 피해를 입으니까 정부가 나서 정리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입법을 한 것 같은데 세계 어디에도 화랑을 신고제로 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이 회장은 "현재 정부는 업계에서 의견을 수렴 중이지만 제대로 된 의견을 내고 싶어도 아무 설계가 없는 상태에서 뭘 신고해야지 모르고, 법을 제정하고 시행도 한번 안 했는데 폐지하라고 주장 하는 것도 지역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어 조심스럽다"면서 "스펙트럼이 다양한 화랑업은 시장의 자정적 기능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사실 화랑이라고 다 같은 화랑이 아니다. 소위 '대관 화랑'은 화랑협회 회원 자격이 안된다. "작가 발굴은 전혀 관심이 없고 공간 임대업만 하는 화랑들은 신청해도 떨어져 화랑협회 신규 가입 문턱이 높다는 불만도 많다. 3년 이상 기획전을 했나 안 했나 등 심사는 까다롭게 해, 10:1의 경쟁률을 보인다"고 했다. 준 회원인 화랑이 수명의 아트딜러들을 운용해 최근 자격 박탈된 일도 있다.
이 회장은 미술진흥법안 2조 6항에 있는 '화랑업'에 대한 정의가 답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화랑업이란 작가를 발굴 또는 양성하고 미술전시를 통하여 미술품을 대여, 중개하거나 판매하는 업을 말한다.')
"그런데 정책 입안자들도 화랑이 작품을 전시 판매하거나 중개해서 '돈을 버는 직업'이라는 인식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돈을 버는 것은 좋겠죠.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화랑은 작가를 발굴 지원 육성해서 훌륭한 문화 예술 향유 기반을 만들게 하는 것이 주된 기능입니다.
작은 화랑이라도 꾸준히 기획전을 열고, 자본이 부족하더라도 공적 신념을 실천해 나가면서 작가들이 작품을 잘 만들어 갈 있도록 지속적인 전시 개최로 작품을 판매 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것이 기본적인 화랑의 소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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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성훈(선화랑 대표) 한국화랑협회 회장이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협회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5.03.29. [email protected] |
◆"재판매보상청구권 유예해야"
2018년부터 논쟁이 된 재판매보상청구권(추급권)은 2027년 도입이 확정됐다. 미술진흥법 제3장 제24조에 미술품재판매에 대한 재판매보상청구권은 미술품이 작가로부터 최초 판매된 이후 재판매될 때 이를 창작한 작가가 재판매 금액의 일부를 보상받을 수 있는 권리다. 예외 조건은 있다. 500만원 미만과 작가로부터 직접 취득한 후 3년 내에 파는데 2000만원 미만인 경우는 제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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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매보상청구권은 일명 '추급권(Resale right)'으로 불린다. 고흐, 세잔 등 미술품이 비싼 가격으로 거래됨에도 불구하고 창작자 및 그 가족이 빈곤하게 삶을 마감하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응하고자 프랑스에서 1920년 처음 도입됐다. 재판매보상청구권은 작가 사후 30년까지 인정되며, 재판매보상금 요율은 작가 및 업계 의견을 수렴해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이 회장은 "정책적으로 만들어진 제도인데 실제로 그 원래 만든 목적을 달성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실효성에 대한 의문 제기로 '밀레의 만종'을 예로 들었다.
"밀레의 만종을 처음에 작가가 팔았을 때 75달러에 팔았어요. 저작권료가 10%라면 7달러 정도의 저작권료를 받고 밀레는 그걸로 끝, 그다음에 저작권자가 없어요. 그 다음에 누구한테 팔려도 작가에게는 전혀 혜택이 없어요. 음악은 노래를 계속 부르면 계속 돈이 들어오는데 왜 미술은 그게 없느냐 하지만, 저작권 성격상 당연한 거예요. 음악은 악보(종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악보 이미지와 가사 이미지가 중요한 거잖아요. 복제로 해서 또 노래 부르면 되는 것이지만, 미술품은 복제한 복제물은 가치가 제로(0)입니다."
그는 "저작은 인격권, 재산권으로 나누는데 저작 재산권 중에 제일 중요한 게 복제권이지만 미술품의 복제품은 가치가 거의 없기 때문에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음악은 작가가 죽을 때까지 돈을 받는데 왜 미술품은 없을까?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해서 프랑스에서 1920년 대에 만들어졌어요. 하지만 추급권은 다 상호주의 셈입니다."
"유럽의 시행 국가들도 겉으로 하는 척을 하지만 실제로는 큰 효과가 없더라는 분석이 있다"며 "화랑협회에 소속돼 있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고 여러 논문에 나오는 객관적인 자료가 그렇다"라고 강조했다.
추급권이 작가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드는 건데, 실제로는 작가 이익의 실효성이 없다는 게 무슨 이유일까?
"외국은 사후 70년입니다. 우리나라는 30년이지만. 외국의 경우 70년 동안 받는 사람을 보니까 안 받아도 되는 사람들 엄청난 거장들 이런 사람들은 계속 받더라는 거죠. 그런데 신인들은 리세일 뿐만이 아니라 세일이 안 되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전시회를 못한다는 거죠. 화랑이 부실해질 경우 전시회를 못하고, 작가 보호라는 원래 목적도 달성을 못하더라 이런 논거가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또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100원에 리세일하는 작품 수수료율을 5% 정도로 예상하면 105원을 줘야 하는데 매수인은 이전에 100원에 샀던 것을 105원에 사니까 거래가 위축되겠죠. 거래가 위축되면 화랑이 점점 힘들어질 것이고, 작가 발굴도 어려워질 수 밖에 없어요. 이게 첫 번째 역기능이고, 두 번째는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현실적 실태입니다."
"화랑이 그림을 2000만원에 파는데, 신고해야 됩니다. 매매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그림을 사는 입장에서 이 얘기를 들으면 현실적으로 살까요? 안 살까요?"
현재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5000억원 대로, 80%가 개인 컬렉터에 의존한다고 집계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 기업, 법인이 수요자입니다. 그러니 세금 자료가 나온다 해도 그리 부담될 게 없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경우에는 대개 그림이 좋아서 기호 혹은 향유 목적으로 사는데, 일일이 신고하면서 그림을 사고 싶진 않을 거란 얘기죠. 이런 법 제정으로 국내 미술시장이 더 위축되지 않을까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그는 또 법 조항을 읽었다. "26조에 보면 미술 진흥을 위한 사업을 전담하는 기관 또는 재판매 보상권을 가진 자로 구성된 단체로서 비영리, 그 다음에 작가 보상금의 업무를 수행하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는 이런 단체를 만들어서 둘 중에 하나로 하도록 법에서 규정을 해 놓았어요. 그런데 세부 조항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미술 진흥 전담 기관은 문화체육부 장관이 정하는 정부 산하 기관이 된다"며 "행정 기관이 개입하면 재판매 보상금 지급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요청할 수 있고 과세 자료로 다 쓰이게 될 것"이라며 이는 음성적 거래와 지하경제의 요인 될 것이라고 짚었다. "화랑은 파는 그림을 다 신고해야 되니, 구매자 이름도 신고서에 다 써야 합니다. 하지만 매수인들이 거부할 때 법적 의무를 면탈하기 위한 동조자 공범이 되는거죠. 아니면 숨어서 거래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누가 화랑에 그림 사러 올까요? 최악의 경우 적지 않은 화랑들이 문을 닫지 않을까 우려가 되는 겁니다."
또한 "재판매 보상금 지급을 위해 필요한 정보의 범위나, 제공 절차 및 방법 등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정할 것이냐, 구체적인 안은 무엇인가를 따져보고 있고, 요청을 받으면 따라야 된다고 규정했는데 이 또한 제재 규정 조항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미술품 거래는 돈 세탁 창구'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기에, 이번엔 '탈세범을 도와주는 일을 못하게 돼서 반대한다'는 소리까지 들을 수는 없다"며, "미술 시장의 유통 구조와 인식을 개선할 시간을 먼저 달라고 정부에 요청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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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성훈(선화랑 대표) 한국화랑협회 회장이 서울 종로구 협회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5.03.29. [email protected] |
◆기업 법인 미술품 구입비 공제한도 1000만→3000만원 확대해야"
"결국은 미술 시장의 주요 구매자 층을 기업 중심 수요자로 확대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기업이 미술품을 많이 살 수 있게 하려면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 10년 전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인상됐지만 시대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액수는 제한이 있지만 갯수는 제한이 없다. 그렇다고 상황 상 5000만원짜리를 사야 할 경우, 1000만원짜리 5개 샀다고 꾸미면 탈세범이 된다.
이 회장은 "1000만원 이하는 대학원생 정도 작품 값에 불과하다"며 "현실적인 측면에서 기업 법인의 미술품 구입 촉진을 위해 현재의 1000만원 상한선을 최소 3000만원으로 올리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래야만 신고제나 추급권 제도 도입에 순응해 나갈 수가 있다"며, "시행 시기도 최소 5년 정도는 늦춰야 우리 미술시장의 건강한 생태계 기반을 구축할 수 있겠다
"고 거듭 주장했다.
"법률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협회 회원들의 권익을 적극적으로 대변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이 회장은 현재 화랑협회 일에매진 중이다. 미술진흥법안 대응도 시급하지만 당장 실질적인 일들이 산적해 있다. 4월 화랑미술제에 이어 키아프의 미국 시카고아트페어 진출, 9월 여는 키아프 참여 화랑 심사까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신고제든 추급권이든 화랑업의 본질과 밀착되어 있다는 게 이 회장의 판단이다. "결국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화랑의 역할이 선순환 되어야 실효성 있는 제도로 정착된다"는 그는 "화랑은 문화유산을 만드는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어릴 적, 약사이던 어머니는 그림을 모았고, 덕분에 국내외 쟁쟁한 화가들의 그림에 묻혀 살았다. "1977년 대학 입학을 앞둔 당시 어머니가 화랑을 차린다고 하셨어요. 제가 '왜 장사를 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는데 어머니는 '화랑은 장사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저를 설득하셨어요."
그는 "어머니가 화랑은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문화 사업'이라고 강조했는데, 이제야 그 말씀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화랑협회장이 된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제가 화랑 운영도, 회장 출마도 안 했을 것이지만, 아마 대견하다고 말씀해주셨을 것 같아요. 어머니는 생전 스스로를 '화상'이라고 부르며 문화 사업가로서 자부심이 많으셨어요. 이번 선거에서도 어머니 덕을 많이 보면서 깨달았어요. 저희 부부에 이어 아들이 선화랑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데, 장사꾼이 아닌 화랑의 사명감으로 정통 기획 화랑으로서 대를 이어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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