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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충격→'돌가루 화가' 김근태 '담론'[박현주 아트클럽]

등록 2025-03-14 00:06:40  |  수정 2025-03-14 00:37:00

통의동 리안갤러리 서울서 개인전

석분 물감 덤벙 도자같은 '숨' 연작

유화물감 두꺼운 '결'→'담론' 신작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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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서울 통의동 리안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김근태 화백이 질문에 생각하고 있다. 2025.03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나는 보이지 않는 사유의 끝을 향해 걸어간다."

젊은 시절 미셀 푸코의 '말과 사물'에 빠졌던 그는 '언어의 변화'를 느끼며 항상 변해간다는 것, 그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했다.

물 흐르듯이 돌고 '자꾸 변해가는 것', 하지만 또 '변해가는데 그렇지 않은 것'. 그 시작된 지점이 어디일까 궁금해 했던 그는 "일생을 그 부분을 찾아가는 작업에 집중한 것 같다"고 했다. 작품 제목을 ‘담론(Discussion)’으로 지은 이유기도 하다.

"오랜 세월 알게 모르게 공부를 해왔는데 '시작 점'은 분명히 있어요. 제 작업을 어떻게 본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그 '시작 점'을 찾아가는 거꾸로 가는 세계에 있는 것 같아요. 몸이 좀 더 젊어지면 좋겠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몸은 자꾸 세월을 지나가고 있지만 정신은 되레 처음 출발점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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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갤러리 김근태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덤벙 '돌가루 화가' 김근태
나이 고희를 넘긴 화가 김근태는 이제야 '수분각위(隨分覺位: 이제 조금씩 되어간다)'라고 했다.

중앙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0년대부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담론' 주제로 연작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돌가루와 러버(rubber)를 사용해 직접 제작한 석분 물감으로 작업한다. '돌가루'를 무기로 도자의 표면 같은 ‘숨’ 연작, 유화 물감의 두꺼운 마띠에르로 이루어진 ‘결’ 연작을 만든다.

"외국 그림만 멋있다며 우리 것 김홍도, 정선의 그림 가치를 몰랐다. 우리의 도공들, 석공들이 스승이다. 만나 뵙지 못했지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를 드린다."

13일 서울 통의동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만난 그는 물감의 흔적만 있는 그림처럼 모호하고 추상적인 언어로 말을 쏟아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담은 것이 그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20번 넘게 밑 칠을 하고 '덤벙 분청'처럼 물감을 쓱 빼내듯 칠한 붓 질은 수행의 선조들인 도공, 석공들에 대한 오마주(hommage)가 담겼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 많은 변곡점도 있고 어려움도 많이 있었겠지만 어느 순간에 다 그걸 포용하고 안에서 끌어들이면서 오로지 작품으로만 다 승화 시켰고 만들어낸 것에 대한 감사함, 이 분들과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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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13일 김근태 화백이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25.03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림은 잘 그리는 걸로 해결되지 않는다"
40대인 1993년 처음 간 유럽 여행에서 본 '렘브란트 자화상'은 걷잡을 수 없는 충격을 가했다.

"학창시절 이미지로만 봤던 진짜 그림은 에너지가 너무 달랐다. 렘브란트의 충격, 그 감성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유럽의 역사, 지식이 축적된 걸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이건 아니구나. 내 옷은 아니었다는 것을…"

"서구 모더니즘에 바쳤던 20년 작가 인생의 붕괴였다"는 그는 "화가는 결국 사람, 사람의 마음을 그리는 존재"라고 자각했다. 3~4년을 그림을 못 그리고 방황하던 시절, 경주 남산에서 알아차렸다. 

"남산의 유적들을 보면서 아 이거구나. 내가 찾던 것을 알겠더라. 그래서 석굴암을 다시 가봤는데, 가서 보니까 알겠더라. 설명은 못하겠다. 그 당시도 지금도 못하겠지만 알겠더라. 몇 시간 사이에 전체 흐름이 눈에 펼쳐졌다. 3~4개월 만에 이루어진 일로 이후 사비나갤러리 개인전에서 돌 가루 작업이 처음 나왔다. 그때가 1997년이었다."

천 년 전, 이천 년 전 이름 모를 석공이 돌을 다듬어나가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돌 가루를 물감에 개어 쓰는 방식을 실험했다. 경주 남산의 탑들과 도자기를 관찰한 후, 석분과 접착제를 물감과 혼합하여 분청 사기의 질감을 구현하는 지금의 기술적 방법에 이르게 되었다. 각 작품은 평면의 캔버스를 채우는 붓 놀림의 미묘한 차이와 섬세한 깊이로 구현된 변주와 화음을 통해 무한한 이미지로 그때 그때 탈바꿈한다.
 
“그래서 나의 작품에는 숙련된 형태나 세련된 색채가 없다. 나의 그림에는 나무가루, 돌가루, 호분이나 석고 화장토 같은 것을 직접 쓰기도 하고 물감에 섞어서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로 손낙서 마냥 붓이나 나뭇가지 같은 것으로 일그적 거리는 짓거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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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갤러리 김근태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숨결' 순수한 붓질의 감각
젊은 시절 뭔가 항상 허전하고 채워지지 않았던 걸 비움으로써 '선(禪)의 세계'를 찾은 그는 오직 그리는 행위의 에너지에 몰입했다.

여백인 듯 여백 아닌 듯 화면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붓 질은 그의 '숨'과 '결'로 호흡한다.  '숨'이란 제목의 작품들은 주로 화면을 수평으로 분할 하는 백색과 황토색의 매끈한 표면을 가진 연작으로 나타난다. 

'결'은 분할된 영역 대신 푸루시안 블루, 바이올렛, 흰색, 검은색 등의 단색조 화면의 왼쪽에서 오른쪽 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지르는 붓질의 흔적을 강하게 드러낸다.

김근태는 이 두 연작을 묶어 '숨결'이란 덩어리로 묶어 놓았다. "숨을 쉬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강렬한 욕망에 속한다. 숨을 쉬지 않으면 생명을 연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근태의 회화는 사유의 세계이다. 그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은 마음의 본질이라는 화두와 만날 수 있다. 설령 그의 사유가 어떤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 해도 그림 그리는 자로서 자신의 행위를 지속해 온 그의 그림에서 회화의 또 다른 길을 읽어낼 수 있다. 김근태 작업의 주요 주제 중의 하나가 “적정(迹淨, Purity of Trace)”, 흔적의 순수성이었음을 기억해야한다. 그의 그림은 그림 그리는 마음과 행위의 순수성이 드러내는 자취가 고스란히 남겨지는 장이다.(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
붓질의 흔적들은 자연스러운 무의식 속에 나온다. 행위의 연속된 시간 속에서 단호한 한 순간을 놓치면 안된다. 생각이 들어가는 순간, 붓도 욕망에 취한다.

"요즘 그림이 너무 날씬해지는 것은 아닌가? 괜히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것 아닌가?"

그래도 이런 마음을 가다듬고 하던 일을 계속해 나간다. 단번에 스윽~ 숨을 쉬듯 덤덤하게 그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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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암벽의 느낌을 하얀색 유화와 검은 색 유화로 두껍게 그려낸 '담론'  *재판매 및 DB 금지
◆"그림이 좀 모자라면 어때요?"
거친 붓질과 투박한 물감의 ‘무아(無我)’의 경지에서 여유를 보이는 작품은 서양화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했다.

이번 리안갤러리에서 공개된 물감이 덕지덕지 두꺼운 '검은 그림'(Discussion 130x250cm)과 '하얀 그림'(Discussion 160x130cm)은 '사물의 실체는 파악하기 어렵다'는 소동파의 '여산진면목'이 담겼다.

"작업실에 인접해 있는 북한산 암벽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다. "암벽은 늘 그렇듯 알 수 없는 세계로 나를 초대한다. 이름 모를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간과 깊이에 숨이 막힌다. 암벽에 부딪혀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이는 순간, 바람 소리와 구름 한 점이 나를 벗어나게 한다.”

숨 막히는 암벽의 느낌을 물감의 질감으로만 표현한 작품은 시간의 깊이를 새겨 놓은 듯하다. (유화 물감 마르기는 몇 십년이 걸린다) 유화 물감을 그대로 짜 캔버스에 올려놓고 기름기를 쫙 빼서 만든 '검은 그림'은 "안료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상태를 더 존중한 마음, 그 암벽의 감흥을 계산 없이 그린 것"이라고 했다.

화면의 표면을 온통 뒤덮고 있는 이 질감은 마치 동양화에서 산이나 암석의 표현할 때 쓰는 '부벽준(斧劈皴)'을 닮았다. 도끼로 나무를 찍어내었을 때 생기는 수직의 단면을 층층이 쌓아 올린 듯하다.

하지만 그는 "이 또한 부벽준을 의식 한 것은 아니다"며 '회화가 단지 그림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시킨다.

"경험이 많아 다른 것은 안 보려고 하는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 겹겹이 쌓인 것을 한방에 벗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있는 작품"이라며 "환하게 진면목이 드러난 자기 모습으로 '그래, 인생이 이런 겁니다. 악수하고 술 한잔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선문답 같은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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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리안갤러리 지하 층에는 김근태 화백이 실제로 사용하는 석분의 원재료인 암벽의 돌덩이를 함께 설치했다. 관람객들이 작가의 근원의식에 더 가까워질 수 있게 하는 장치다.   *재판매 및 DB 금지


"외부에서 온 이미지, 철학적인 사유의 세계가 아니고 내면에 일어났던 사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은 아무것도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된 상황에 온 거지요. 그 상황이 지금까지 유지되면서 무르익어 가기 위해서 나는 지금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요."
무심의 경지에 오른 김근태는 다시 '담론의 세계'에서 소통을 원한다. 199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변주 되고 있는 '담론'은 이번 리안갤러리에서 초심으로 돌아간 설렘의 감정이 있다.

"내 그림을 부닥쳤을 때 어떤 마음일까? 궁금합니다. 그런 의문점을 던져 주는 장치를 한 게 제 그림의 태도입니다. 관람객들이 작품 앞에서 '이게 뭐지 도대체?, 내가 생각했던 건 이거였는데 다르네?,  왜 이게 있지? 왜 하얗지? 두께가 두껍지? 라는 반응을 기대합니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건드리고 같이 호흡하고 싶어요. 제 그림을 보는 분들이 대화하고자 한다면 기꺼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전시는 4월 30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