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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일 하듯 그린 '엉겅퀴 초상화'의 '방문'…강명희 화백 재조명

등록 2025-03-04 13:00:00  |  수정 2025-03-04 13:46:24

서울시립미술관 2025년 첫 전시 개막

김윤신 이어 한국 여성 작가 조명 전시

1972년 프랑스로 이주, 2007년 귀국

제주도서 거주 활동…추상 회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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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강명희 개인전 전시 입구. 사진: 홍철기 ⓒ 2025, 서울시립미술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땅에 놓인 죽은 엉겅퀴 네 가지를 그린 '엉겅퀴 초상화'이기도 한 이 작품은 ‘땅은 평면이자 죽음이고 모든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 1층 전시장 입구에 걸린 강명희(78)의 그림은 구체적인 형상없이 자연의 생생함을 그대로 전한다.

초록과 붉은색이 짓이겨져 어우러진 화면으로 눈길을 끌어당기는 작품 제목은 '북원'으로 2002년부터 2010년까지 8년간 걸쳐 완성한 그림이다. 가로 4m, 세로 5m가 넘는 대형 회화로 프랑스에서 제작됐다.

작가가 프랑스 투렌 지역에 마련한 18세기 농가를 개조한 작업실의 정원과 땅을 소재로 오랜 시간 작업했다. 어느 날 문득 한국에서 가져간 물감들을 모두 소진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작가는 눕힌 캔버스에 물감을 발로 짜내며 이 작품을 시작했다.

손수 풀을 뽑고 자갈과 식물의 뿌리들을 정리한 고운 땅을 보고 만지고 느끼면서 작품이 만들어졌다. 낫을 들고 정원을 다듬다가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작업 과정은 마치 땅을 일구는 농부의 행위를 연상시키는데, 실제로 작가는 "밭 일을 많이 할 때 작업도 잘 되었다"고 회상했다.

땅에 놓인 죽은 엉겅퀴 네 가지를 그린 이 작품처럼 강명희의 작품은 자연과 소통하며 생명의 근원을 마주하고 우주적
기운을 함축해 낸 과정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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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도' 작품 앞에 선 강명희 화백.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시립미술관 2025년 첫 전시로 4일 개막한 강명희 개인전 '강명희-방문 Visit'은 2024년 남서울미술관 김윤신 개인전에 이어 한국 여성 작가를 발굴 재조명하는 전시다.

1972년 프랑스 이주 후 국내 활동이 상대적으로 드물었던 작가의 예술적 여정을 조망하며, 1960년대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60여 년에 걸쳐 제작된 회화 125점을 선보인다.

1947년 대구에서 태어난 강명희 작가는 서울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에서 수학했고 1972년 프랑스로 이주했다. 한국 여성 작가로서는 드물게 1980년대에 프랑스 파리 퐁피두 센터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2007년 고국으로 돌아와 제주도에 거주하며 한라산, 황우치 해안, 대평 바다, 안덕계곡 등 작가가 방문했던 구체적인 장소와 자연에서 출발한 추상적 회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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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희 '서광동리에 살면서', 2018-19, 캔버스에 유채, 288×500c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전시는 자연의 본질, 그리고 존재와 자연과의 관계를 캔버스에 담아내며 독자적인 회화 영역을 구축한 강명희 작가의 시기별, 주제별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전시명 ‘방문’은 작가의 작품명에서 빌려온 제목으로 한곳에 완전히 정착하지 않고 이동하며 작업한 작가의 유목적 태도와 일시적 만남에서 비롯한 예술적 영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연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현대 사회에서 강명희 작가의 작품은 예술의 힘으로 시대의 상처와 아픔을 위로하고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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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강명희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잔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작가의 작품은 세계 혹은 자연과의 치열한 대화의 산물이며 오랜 시간에 걸친 무수한 붓질로 이루어진 것이다. 거듭된 수행과 정화의 과정을 거친 작품은 땅의 역사와 기억, 파괴와 죽음, 생성과 소멸을 함축하고 있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주는 강명희 작가의 회화를 감상하며 관객은 마치 경계 없는 자연 속을 거니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6월8일까지. 관람은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