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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형 한지 집합' 전광영 개인전…한국서 6년 만에 개최

등록 2024-12-04 11:05:41  |  수정 2024-12-04 11:22:02

가나아트센터서 대규모 전시

1980년대 초기작부터 2024년 최신작까지 2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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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 전광영 개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수천 개 삼각형 '한지 조각'의 거대한 반란은 이제 '치유'로 뭉쳤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일명 '한약 봉지 작가' 전광영(80)의 개인전(Aggregations: Resonance, In-between)이 4일부터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한국에서 6년 만에 여는 개인전으로, 1980년대 '빛'시리즈를 비롯해 대형 설치 작업과 치유 시리즈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 '집합(Aggregation)'연작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인다. 닥 나무와 닥 풀 우리나라 전통 한지로 만든 평면 16점, 설치 4점이 전시됐다.

“한자와 한글이 빼곡히 쓰여진 하나의 삼각형 조각은 서로 각기 다른 시대와 사상을 품던 옛 문헌을 출처로 한다. ······ 지식을 전파하는 수단이었던 옛 문헌의 한 귀퉁이들은 이제 나의 손에서 하나하나 각기 다른 생명을 지닌 정보의 최소 의미로 재탄생하게 된다. 논어를 출처로 하는 조각들이 나에 의해 새롭게 배열되면서 전혀 다른 의미로 재탄생하기도 하고, 모태(母胎)인 논어와 정면으로 대립하기도 한다.”(전광영)
전광영의 대표작 '집합'은 수천 개의 삼각형 스티로폼을 논어, 맹자, 법전이나 소설 등 고서(古書)의 내용이 담긴 한지로 감싼 후 종이를 꼬아 만든 끈으로 묶고, 화판에 촘촘하게 매달아 완성하는 작업이다.

1970년대 미국 필라델피아 유학시절, 한 때 추상표현주의에 심취해 있던 작가는 자신의 경쟁력을 한국 고유의 정신과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1982년 귀국했다. 그는 곳곳의 미술관, 박물관, 민속촌 등을 다니며 영감을 얻고자 노력했다. 그러던 중 그가 불현듯 떠올린 것은 어린 시절 큰아버지의 한약방에서 보았던 풍경과 물건을 보자기로 감싸는 우리의 문화였다. 두 소재 모두 전광영에게 한국의 정(情)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한약방 천장에 빼곡히 달린 약재 봉투는 전광영의 화면에서 삼각형의 구성 요소로 새롭게 태어났고, 이를 하나하나 한지로 감싸는 작업 방식은 보자기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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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영, Aggregation24-FE011, 2024,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145 x 112 cm
 *재판매 및 DB 금지


'집합'의 삼각형 조각을 싸고 있는 한지에는 서로 다른 고서의 내용이 적혀 있으며, 이들은 그의 화면에서 우연히 만나고 얽힌다. 전광영은 이러한 작업 방식을 사용해 각기 다른 지식, 역사, 사상 등을 기반한 이야기들이 시대나 지역을 초월해 인접하면서 조화를 이루거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때로는 충돌하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반복되었던 이데올로기의 대립, 계층 간의 갈등 등을 담은 세계의 축소판의 '집합'이다.

“서양은 ‘박스 문화’예요. 직육면체를 정확하게 재 차곡차곡 쌓아 유통하는 거죠.반면 한국은 ‘보자기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시집간 딸에게 친정어머니가 싸주는 보자기. 그 속에 하나라도 더 담으려는 마음.계량이 어렵고 보자기 모양도 망가지지만 그게 바로 한국의 정이자 영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전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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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센터 전광영 개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전광영의 '집합'은 1995년 처음으로 등장한 이래 다양한 형태로 변주됐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색채 사용에서 나타나는 변화다. 연작을 갓 시작한 1995년부터 한지를 갖가지 색으로 물들이거나, 부적이나 신문지와 같은 재료를 사용해 화려한 색감이 강조된 화면을 구성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의 단초는 이번 전시에 선보인 1980년대 작업인 '빛' 시리즈에서 찾을 수 있다.

빛 시리즈 작품은 평면 작업에서 시작된 작가의 구조적이고 구축적인 조형 방식으로 '집합' 시리즈의 토대가 되었고 부조와 같은 회화를 탄생 시켰다.  다채로운 색채 사용이 다시금 나타나는 근작은 전광영이 화업 초창기부터 보여 온 색채에 대한 애정과, 평면에 공간감을 부여하고자 지속한 매체 탐구의 결과가 종합판이다.

전광영은 한국인 최초로 뉴욕 브루클린 뮤지엄과 모스크바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제 59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로 선정되어 화제의 전시로 주목받았다. 영국 박물관(British Museum), 홍콩 M+, 호주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 중국 하우 아트 뮤지엄(How Art Museum) 등 세계적인 기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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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센터 전광영 개인전 전시 전경. 설치작업 'Aggregation19-MA023'와 함께 가로 11m, 세로 4m 벽에 펼쳐진 영상 작업 <Eternity of Existence>은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인다.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전시에는 '올해의 작가 2001-전광영'과 2022년 제 59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 '재창조된 시간들(Times Reimaged)'의 출품작도 공개해 그동안 국내외에서 주목받은 그의 작품 세계를 한자리에서 조망해볼 수 있다.   

특히 바닥에서 솟아오른 듯한 형상의 설치 작업 'Aggregation19-MA023'은 영상 작업 'Eternity of Existence'와 함께 배치되어 눈에 띈다. 가로 폭 11미터, 세로 폭 4미터의 벽을 가득 메운 거대한 나이아가라 폭포의 낙수는 압도적이다. 경이롭고 강렬한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 두려움과 의아함을 증폭시킨다.

작가는 "태초의 생명을 연상시키는 형태의 설치 작품과 영상 작업을 마주보게 놓아 수만 년의 시간을 품은 자연과 인간이 대면한 상황을 연출했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지구분화와 태초의 폭발 같은 흔적 속 긍정의 메시지가 가득하다. 최근 '집합'의 '치유 시리즈'를 전개하면서 기존 화면에서 표현하던 충돌의 상흔을 희망을 상징하는 밝은 요소와 나란히 배열해 위로와 울림이 가득한 공간을 선사한다.  전시는 2025년 2월2일까지. 관람은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