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윤종석·박성수 부부 화가 유라시아 횡단 자동차 미술여행-10]

등록 2023-09-15 15:20:41

러시아 20개 도시와 유럽 10국 54개 도시 거쳐 파리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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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20개 도시와 유럽 10개국 34개의 도시를 거쳐 드디어 만난 프랑스 파리의 상징 에펠탑.  *재판매 및 DB 금지


[유라시아=뉴시스] 윤종석·박성수 부부화가 = 파리에 도착할 즈음 긴 여행의 피로가 극에 달했다. 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우리는 파리에서 열흘간 머물 기로 작정했다. 도착하기 전 2014년 파리에 얼마간 머물렀을 때 인연이 닿았던 김형섭 작가님 을 통해 미리 숙소를 빌릴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역시 파리에서 활동하는 박수환 사진작가님 덕분에 칠공이도 안전한 주차장을 얻을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정말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전진해올 수 있었다. 첫 출발지 블라디보스토크를 시작으로 러시아를 통과하면서 만난 20개의 도시와 에스토니아,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독일의 함부르크와 네덜란드의 오테를로, 벨기에의 브뤼셀까지! 유럽의 34개의 도시를 거쳐 파리까지 총 10개국의 54개 도시를 통과했다. 정말 많은 아찔한 순간마다 항상 우리를 도와주던 천사들이 있었다.

파리에 도착한 날. 처음 간 곳은 우습지만 쌀국수집이다. 익숙함이 무섭다. 2014년 3개월 동안 머물면서 정말 자주 갔던 곳이었다. 당시 파리 생활을 도와주신 두 작가분과 동행한 식당에서 추억의 쌀국수를 맥주와 맛있게 먹는 순간, 이번 여행의 참맛을 되새기게 된다. 다시 추억의 카페에서 “카페 알롱제 씰부뿔레(아메리카노 주세요)” 해서 마시며, 이런저런 그동안의 여행 이야기로 피곤함이 바람처럼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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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미술관 재단 입구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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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재단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에서 진행중인 장 미쉘 바스키아와 앤디워홀 전시 *재판매 및 DB 금지


루이비통재단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에서 장 미쉘 바스키아와 앤디워홀의 전시가 한창 진행 중이라니, 도저히 궁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파리의 ‘핫 플레이스’ 루이비통재단미술관은 해체주의 건축가로 유명한 프랭크 게리가 설계했다. 2014년 파리 북쪽의 블로뉴 숲 안에 개관했다. 파리의 떠오르는 ‘랜드마크’가 된 것은 세계적인 빅 컬렉터인 루이비통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의 탁월한 컬렉션 작품과 게리의 건축물이 만났기 때문이다. 아르노 회장이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에 갔다가 건축물에 매료되어 설계를 의뢰했다고 한다.

마치 파편화된 작은 조각 오브제들이 어우러진 것처럼, 이 미술관 역시 대칭과 통일의 조화로움보다는 굴곡과 왜곡, 휘어짐과 겹침 등 상반된 요소들이 기묘한 조화를 이룬 것이 특징이다. 보통 우리나라 미술관은 월요일이 휴무지만, 이곳은 화요일에 쉰다. 관람 시간은 오전 11시~저녁 8시다.
 
참고로 금요일은 저녁 9시까지, 주말은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것이 특색이다. 입장료는 성인 16유로, 뮤지엄 패스로 입장은 불가. 오디오가이드는 대여할 필요 없이 어플을 미리 다운로드하면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근처 공원엔 한국의 정자도 세워져 있어 무척 반갑다.

루이비통재단미술관에 도착해 티켓팅 후 들어가니, 전시홀 입구서부터 ‘바스키아와 앤디워홀의 대형 협업작품’이 맞아줬다. 전시된 작품 수도 어마어마한데다가, 한 시대를 풍미한 서로 다른 감성의 두 거장이 교감한 흔적의 작품들로 보는 내내 설렘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앤디워홀과 바스키아의 두 사람의 사진과 편지, 인터뷰들이 무척 인상 깊었다. 만남과 인연의 시작부터 작업에 대한 글귀, 협업 작업 시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졌는지도 중간중간 볼 수 있어 어느 하나도 버릴 것 없는 전시 기획이었다. 자유로운 작품들에서 얻는 감정들이 나를 흔들었다.  스스로 가두지 않는 정신, 그리고 얽매이지 않는 용기, 아픔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자세!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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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디자이너 폴스미스가 기획한 피카소 전시. 피카소미술관. *재판매 및 DB 금지


다음날 우리는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을 찾았다. 피카소도 피카소지만, 무려 패션디자이너 폴스미스가 기획한 색다른 전시다. 폴스미스가 디자인한 공간에 안성맞춤으로 걸린 피카소의 작품들은 더욱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피카소의 작품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중후한 미술관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현대적인 느낌의 전시가 마음을 가볍게 흔들었다. 정말 작가의 인생은 짧지만, 그가 남긴 예술은 영원하다는 일상의 명언이 실감 났다.

다시 파리의 거리를 걸었다. 골목 이곳저곳의 숨어 있는 갤러리들을 방문했다. 마치 진짜로 숨은 보석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Galleria Continua, Perrotin에서 본 작품들의 감흥이 남달랐다. 그 밖의 작은 갤러리에서 본 작품들에서도 파리가 예술의 도시라는 것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

파리는 갤러리뿐만 아니라, 수많은 작은 상점들이 나란히 모인 작은 골목들이 참 예쁘다. 이것저것에 시선을 뺏겨 가게마다 들르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간혹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잔으로 에너지 충전한 뒤 다시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애초에 파리는 쉬고 싶어 온 도시인데, 정작 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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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벼룩시장은 추억의 역사를 공유할 수 있는 곳이다. 볼거리도 많고 잘만 고르면 좋은 가격에 정말 의미 있는 기념품을 얻을 수도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파리하면 벼룩시장을 빼놓을 수가 없다. 먼저 생뚜앙벼룩시장(Les Puces de Saint-Ouen)과 방브벼룩시장(Marche aux Puces de la Porte de Vanves)을 찾았다. 생뚜앙은 15개의 시장들로 이루어진 유럽 최대 벼룩시장이고, 방브는 아날로그 감성이 넘치는 벼룩시장으로 유명하다. 무려 9년 전에 파리를 방문했을 때 갔던 두 곳을 우리는 오랫동안 그리워했었다.

벼룩시장은 추억의 역사를 공유할 수 있는 곳이다. 볼거리도 많고 잘만 고르면 좋은 가격에 정말 의미 있는 기념품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람들이 가득한 재미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1~2유로에 작은 커피잔과 크리스털 와인잔을 두 개나 샀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떠나 집으로 가면 작업실에서 커피를 마실 때나 와인을 마실 때 파리를 다시 떠올릴 수 있겠지. 작고 행복한 기억이 오랫동안 머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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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명품 브랜드 카르티에의 퐁다시옹 카르티에(Fondation Cartier)에선 극사실주의 하이퍼리얼리즘 작가 론 뮤익(RON MUECK) 전시가 한창이었다. *재판매 및 DB 금지


다시 미술관 투어를 시작했다. 아트투어는 쉼의 또 다른 형식이라 여겼다. 파리의 남은 시간을 쪼개고 쪼갰다. 고품격의 우수한 디자인에 호화로운 보석, 시계 등의 액세서리로 유명한 프랑스 명품 브랜드 카르티에의 퐁다시옹 카르티에(Fondation Cartier)에 들렀다. 극사실주의 하이퍼리얼리즘 작가 론 뮤익(RON MUECK) 전시가 한창이었다.

역시 론뮤익의 작품은 극적인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거대한 두개골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탯줄이 선명한 거인 아기의 작품이 우릴 맞았다. 지하 공간에 있는 개, 구원자처럼 벽에 매달린 손바닥 크기의 작은 아기 형상, 검은 배에 타고 생각에 빠진 벌거벗은 한 남자 등등. 그의 작품들에서 전해지는 놀라움 이외에도 가만히 바라보게 만드는 ‘사유의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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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잡고 파리의 옛 증권거래소 건물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피노컬렉션(Pinault Collection) 입구. *재판매 및 DB 금지



비가 오는 파리의 거리를 분주히 지나 피노콜렉션(Pinault Collection)에 도착했다. 프랑수아 피노는 옛 증권거래소 건물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킬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오랜 파트너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Ando Tadao)와 손을 잡았다. 그곳에서 파리의 현대미술이 전하는 힘을 다시 한번 더 만날 수 있었다.

건물 안 중정의 우아한 곡선의 큰 구조물과 천정 벽화들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현대미술과 어우러져 오랜 예술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다. 전시 공간들은 다양한 기획으로 재미를 더했고, 보는 내내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작품을 보며 흥미를 느끼고, 내내 가슴을 울리고 있는 지금의 이 느낌과 감정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길 기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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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트투어의 필수 코스인 퐁피두센터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역시 팔레드 도쿄(Palais de Tokyo)와 나란히 있는 파리시립미술관, 그리고 퐁피두센터는 필수코스다. 팔레드 도쿄는 여전히 실망할 수 없는 전시를 만날 수 있었는데, 퐁피두센터의 전시는 생각보다 지루한 감이 있어 아쉬움이 남았다. 어쩌다 보니 파리에서의 열흘 동안 또 쉬지 않고 혹은 쉬지 못하고 꽉 채운 아트투어를 감행했다.

이제 다시 출발해야 하니 점검도 다시 한번. 돌아보면 파리에선 비록 ‘아무것도 안 하기’는 실패했지만, 그 어느 곳보다 마음의 평온함을 되찾았다. 다시 또 올 것이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해야지! 안녕, 나의 아름다운 파리.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