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갤러리현대 신성희 개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신성희(1948~2009)의 ‘꾸띠아주’와 ‘누아주’는 '회화적 혁명'이다."
캔버스 화면을 꼬고 엮어 만든 ‘누아주(엮음 회화)’ ‘꾸띠아주(박음 회화)’는 4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혁신적이다.
평면 추상을 해체하여 박음질하거나 엮고 꼬는 방식은 캔버스의 2차원 평면을 넘어 뚫려진 3차원의 공간이자 장소로서의 확장된 회화 세계로 여전히 독창적이고 세련미를 과시한다.
4일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가 새해 첫 전시로 펼친 신성희 개인전은 '회화의 끝은 어디인지', '작품이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탐색하고 깨닫게 한다.
신성희 '꾸띠아주, 누아주'전은 한국 회화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화가로 평가되는 신성희의 작업 세계를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했다. ‘누아주 (엮음 회화)’ 시리즈를 중심으로 10년 주기로 작업 세계에 큰 변화가 있었던 작가의 40여 년의 예술 여정을 회고할 수 있는 주요 작품 32점을 선보인다.
“허상의 그림이 아닌 공간의 영역을 소유한 실상으로서 회화의 옷을 입고 빛 앞에 서자! 작가 신성희는 우리들로 하여금 예술이라는 나라의 존재자가 되게 하였다.”-신성희, 작가 노트 『평면의 문: 캔버스의 증언』(2005)
 |
신성희 작가.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신성희는 1948년 안산에서 출생했다. 1966년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홍익대학교 회화과 진학하였다. 1968년 《신인예술상전》 신인예술상, 1969년 《제1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 1971년 초현실주의 화풍의 〈공심(空心)〉 3부작으로 《제2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1980년, 그는 파리로 이주하여 30여 년간 작가 활동을 이어갔다. 갤러리현대는 1988년 첫 전시를 시작으로,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중 이탈리아에서의 첫 개인전이었던 팔라초 카보초에서의 미니 회고전을 포함하여 2025년까지 총 10회의 개인전을 함께 했다. *재판매 및 DB 금지 |
 |
생전 신성희 작가 작업 모습. 사진=갤러리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꾸띠아주’와 ‘누아주’로 천착한 한 작가의 지난한 실험과 열정은 '콜라주'를 넘어 예술의 경지에 도달한 흔적을 강렬하게 전한다. 신성희의 회화 세계는 크게 네 시기 ‘마대 회화(극사실 물성 회화)’ 시리즈(1974–1982), ‘콜라주(구조 공간)’ 시리즈(1983–1992), ‘꾸띠아주(박음 회화)’ 시리즈(1993–1997), ‘누아주(엮음 회화)’ 시리즈(1997–2009)로 분류된다.
갤러리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1층 공간은 파리를 오가며 성북동 작업실에 머물던 시기에 완성된 작업들이다.
 |
신성희 《꾸띠아주, 누아주》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전시장 가운데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회화로부터'(2009)는 ‘누아주’ 시리즈의 비전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색의 연금술사'로도 불렸던 작가는 말려진 캔버스 롤을 바닥에 펼쳐 만족할 때까지 액션 페인팅 스타일의 추상회화를 그렸다. 이후 그 캔버스를 뒤집어 자로 정확히 일정 간격으로 선을 그어 가위로 잘라냈다. 잘린 색 띠들은 작업실 한쪽에 정렬되어 걸렸다. 작업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면 마치 거미가 거미줄로 집을 짓듯 신성희는 직관적으로 색 띠들을 직조해 입체적인 회화를 완성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은 회화, 조각, 설치물로 나아가 '입체적인 몸을 가진 회화'로 변신했다. 그 정점의 꼭대기엔 붓자루가 꽂혀 '회화로부터' 시작된 화가의 평면+입체의 통합 세계를 극대화해 보여준다.
 |
신성희 《꾸띠아주, 누아주》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
신성희 삼부작 회화 '공심(空心)'(1971)이 갤러리 전시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된다. *재판매 및 DB 금지 |
이 전시에는 신성희 회화의 초기작인 삼부작 회화 '공심(空心)'(1971)이 갤러리 전시에서는 첫 공개됐다. 신성희가 23세에 완성한 이 작품은 '제2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며 작가에게 유명세를 안겨 준 작업이다.
초현실주의 화풍의 내러티브가 담긴 그림은 평평한 화면을 넘어서 회화의 비전을 선구적으로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신성희, 자화상, 2002, 오브제, 캔버스에 아크릴릭, 54 x 43.5 x 10 cm *재판매 및 DB 금지 |
한편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작가의 열 번째 개인전은 작가 사후에도 대를 이은 '가족 같은' 화상의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화랑 창립자인 박명자 회장이 1980년대 초반 김창열(1929~2021) 화백 추천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던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면서다. 1988년 오광수와 이일(1932~1997)이 에세이를 쓴 도록이 발간되면서 신성희는 갤러리현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80년대 당시 신성희는 한국 미술계에서 찾아볼 수 없던 화려한 색채에 ‘종이 뜯어 부치기’와 ‘뚫린 공간’을 특징을 가진 작업을 통해 자신의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선보였다. 갤러리현대는 IMF 외환 위기를 겪던 1998~2000년 파리에서 트럭을 빌려 그의 ‘누아주’ 시리즈 신작 수십 점을 싣고 바젤에서 개최되는 아트 바젤 페어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3년 연속 완판 기록을 세웠고 현재까지 유족과 소중한 인연을 이어 왔다.
박명자 회장의 아들로 이번 전시를 기획한 갤러리현대 도형태 대표는 생전 작가와의 추억을 전했다. "1997년 파리 작업실을 방문했었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엮고 꼬는 작업을 같이 하면 작가님이 스페인산 와인을 나눠 주곤 했었다"면서 "신성희 작품은 부인, 아들과 딸이 꼬고 엮는 '가족 시스템'이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채색한 캔버스를 일정한 크기의 띠로 재단하고 그것을 박음질로 이은 작가의 실험적인 작업 덕분에 아들은 건축가로, 딸은 패션 디자이너(현재는 불어과 교수)로 성장했다.
 |
갤러리현대 신성희 개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
갤러리현대 신성희 개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1980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 후 색채에 눈을 뜬 신성희는 40여 년에 걸친 화업 동안 '색띠 작업'에 몰두했다. 2009년 서울에서 간암으로 작고할 때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 해체된 캔버스, 재봉질과 엮기를 통해 구축된 '회화적 공간'은 한국적이면서도 대담하게 서구적이며 독자적이고 독보적이다.
가벼움이 넘치는 시대, 캔버스를 찢어 꼬고 엮어 시간을 짠 예술가의 혼을 불태운 작품은 놀랍게 무한 진동을 일으키며 감각을 자극한다. 전시는 3월 16일까지. 관람은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