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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구, 반구대, 한국, 2019.ⓒ강운구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고래가 왜 세로로 서 있을까?"
다큐멘터리 사진가 강운구(72)는 50여 년 전 신문에서 접한 울산 반구대 암각화 속 고래를 보고 궁금증에 사로잡혔다.
"나만 궁금할까?" 그간 아무도 이런 질문도 하지 않았고 해석한 대답도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그 답을 찾으려고 나섰다.
반구대에는 300여 점이 그림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형태를 대략 알 수 있는 암각화는 237점, 그중에 고래가 62마리, 사람은 17명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가서 찾아보니 형태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많지 않았다. 세어보니 62마리 고래는 커녕 사람도 11명밖에 보지 못했다.
"태초에 빛은 있었으나, 사진술은 없었다." '호기심 천국'이었던 그는 카메라를 메고 암각화의 비밀을 찾아내기 위해 떠났다. 고고학적인 사진을 한다며 2017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 작업은 약 3년간 이어졌다. 중앙아시아 계열의 지역인 파미르고원, 톈산산맥, 알타이산맥에 걸쳐 있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4개국과 러시아, 몽골, 중국 등 총 8개국의 약 30여 개 사이트를 답사했다.
마침내 5000년 전쯤 제작된 암각화 속 사람들을 사진으로 포착하며 모진 풍파를 견디며 생생하게 건재한 암각화의 신비와 유장한 서사에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렸다.
오는 22일부터 강운구의 '암각화 또는 사진'이 서울 삼청동 뮤지엄한미(관장 송영숙)에서 선보인다. 러시아, 한국, 중국, 몽골 등 총 8개국 30여개 사이트의 암각화 총 150여 점의 신작을 공개한다.
"선사시대에 각 지역의 천재들이 바위에 저장한 암각화는 그 시대의 사진이다. 나의 사진들은 고대의 그이들에게 바치는 경의이다."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 된 한국의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도 만나볼 수 있다. 작품은 암각화로 대변되는 과거는 흑백사진으로, 현대인의 삶과 풍경은 컬러사진으로 구성된 이중구조를 가진다. 강운구는 암각화를 그린 고대의 사람들처럼 현시대의 시간성과 역사성을 기록하는 기록자의 시선으로 암각화는 곧 고대의 사진이라는 정의를 증명해내고자 했다.
그렇다면 반구대 고래는 왜 세로로 서 있을까?
거대 담론 사이에서 이런 쩨쩨한 의문은 풀렸을까?
"반구대 암각화를 찬찬히 보니, 거기에 해답이 있었어요. 문자가 없던 시대에 그림은 문자이며 언어죠. 암각화에는 고래 말고도 여러 종류의 물짐승이 수직으로 서 있는 짐승들이 꽤 있어요. 러시아 백해의 벨로모르스크에 있는 암각화 군에서도 고래는 수직으로 서 있어요. 반면 줄 달린 작살에 맞아 배까지 끌려온 고래는 힘이 다 빠져버려 작살의 줄도 팽팽하지 않지만, 거의 수평 자세로 묘사되어 있어요. 선사시대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구별하는 고유한 인식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러니까 "수직으로 서 있는 고래는 살아있는 고래를 뜻하고, 수평으로 그려진 건 죽은 고래”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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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구, '반구대, 한국'(2019) 부분. 서 있는 고래들 위로 가장 높은 곳에 사람이 양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서 있다. 강운구는 이를 선사시대의 '생각하는 사람'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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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로 서 있는 고래들 호기심에 그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요즘 이모티콘 처럼 재미있는 그림이 많다. 고래들 위로 가장 높은 곳에 한 사람이 머리를 싸매고 서있다. 강운구 작가는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봤다. "작살맞은 고래도 도망을 가버리고 살기 힘드네. 세상은 출렁이는 바다네."라며 '아이고 두야!' 머리를 치는 순간처럼 보인다. 결국 암각화는 시대의 산물, 곧 고대의 사진이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개척자라 불리는 강운구는 1966년부터 1975년까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사진 기자로 일했다. 이번 전시 작품과 강운구의 '암각화' 설명이 수록된 720쪽 분량의 두꺼운 사진집이 발간됐다. 오는 12월 9일 강운구 작가에게 직접 작품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됐다. 전시는 2024년 3월17일까지. 관람료 1만~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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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다큐멘터리 사진 개척자' 강운구 작가.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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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블르이, 카자흐스탄, 2017,ⓒ강운구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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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한미 삼청 전경.2022년 12월 개관 20년을 맞아 한미사진미술관이 서울 삼청동에 신축 건물을 짓고 뮤지엄 한미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주)한미약품이 설립한 국내 최초의 사진전문미술관으로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 한미약품 본사 빌딩 19층에서 전시했다. 삼청동 뮤지엄한미는 '물의 정원'을 두고 순환하며 관람할 수 있는 미술관으로 기오헌 건축사사무소의 민현식 건축가가 설계했다.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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