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외국인 감독…한국 비엔날레 리더십의 ‘불편한’ 공식 “언제까지 한국의 비엔날레에서 한국 큐레이터들은 역차별을 받아야 하죠?” 익숙하면서도 아픈 질문이다. 모 미술비평가의 이 물음은, 국제적 위상을 자랑하는 한국의 비엔날레에서 정작 한국인 큐레이터는 배제되는 현실을 다시 꺼내 묻는다. 최근 부산비엔날레가 2026년 전시감독으로 아말 칼라프(Amal Khalaf)와 에블린 사이먼스(Evelyn Simons)라는 두 해외 큐레이터를 선정했다. 조직위는 이들이 “사회적 실천과 도시문화, 지역성과 예술 간 관계를 탐구해온 역량 있는 감독”이라며, 여성 큐레이터 듀오이자 중동과 유럽의 복합문화적 배경을 지녔다는 점을 강조했다. 둘은 ‘불협하는 합창(Dissident Chorus)’이라는 주제로 부산 전역을 무대로 한 도시형 융합 전시를 예고했다. 한국 대표 비엔날레에서 반복되는 외국인 감독 인선은, 이제 불편한 공식처럼 여겨진다. 부산비엔날레는 최근 수년간 외국인 공동감독 체제를 이어왔다. 2024년 뉴질랜드 출신 베라 메이와 벨기에의 필립 피로트, 2018년에는 프랑스의 크리스티나 리쿠페로와 독일의 요르그 하이저가 지휘했다. 광주비엔날레도 다르지 않다. 2024년 프랑스 미술평론가 니콜라 부리오, 2026년에는 싱가포르 출신 작가 겸 큐레이터 호 추 니엔이 예술감독으로 선임됐다. 이쯤 되면 일종의 ‘공식’처럼 굳어진다. 한국의 주요 비엔날레들이 경쟁적으로 외국인 감독을 초빙해온 흐름은 낯설지 않다. 최근 10년 간의 주요 국제 비엔날레를 살펴보면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서울시립미술관) 모두 외국인 큐레이터에게 지휘봉을 맡긴 사례가 대부분이다. ‘글로벌 감각’과 ‘국제적 네트워크’를 이유로 내세운 선택들이지만, 정작 ‘한국의 컨텍스트’를 반영하는 데 있어 오작동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국제화는 중요하다. 낯선 시선이 만드는 창의적 균열과 세계적 연결성은 비엔날레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국제화’가 언제부터인가 ‘로컬의 부재’를 의미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2024 광주비엔날레'다. 당시 예술감독은 프랑스 스타 기획자 니콜라 부리오. 그는 한국 전통예술 ‘판소리’를 모티프로 삼았지만, 정작 그것을 ‘판과 소리(Pan & Sound)’로 번안하며, 한국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감각으로 제시했다. 한국적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타자의 해석으로 로컬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었다. 비엔날레 리더십의 편향은 예술계 전체의 구조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왜 한국의 비엔날레에서는 한국인 큐레이터가 주도하지 못하는가? 한국 예술의 동시대성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보조적 위치에 머물러야 할까? 한국감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6년 부산의 윤재갑, 2021년 광주의 이숙경, 2022년 부산의 김해주 감독. 그러나 이들 역시 테이트 모던 등 유럽 미술계와 중국 미술계 경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결국 ‘국제 네트워크’가 가장 강력한 선정 기준이라는 점만을 재확인하게 된다. 국제적 인지도가 없는 한국인은 비엔날레 감독으로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전례는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한국감독과의 불협화음도 있었다. 2016년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이었던 윤재갑 (중국 하우아트뮤지엄 관장)은 전시 이후 집행위원장과의 갈등을 공식 성명으로 발표하며 “비엔날레의 독립성과 공공성이 무너졌다”며 연임 반대를 호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는 "국내외에서 많은 조직과 행사를 경험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들이 사무국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3년에는 심사 1순위였던 한국인 전시기획자 김성연을 제치고 2위였던 프랑스 큐레이터 올리비에 캐플랑이 전시감독으로 낙점되면서 공정성 논란이 일었다. 당시에도 "왜 한국 비엔날레에 한국 감독은 없는가"라는 문제의식이 제기됐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외국인 감독 인선을 ‘국제성’이라는 명분 아래 반복되는 외국인 의존 현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국내에도 리서치 기반의 독립 큐레이터들이 왕성히 활동하고 있음에도, 이들은 좀처럼 비엔날레 리더십의 전면에 나서지 못한다. 이건, 구조적 배제다. 물론 외국인 감독 체제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반복될수록, “왜 한국 비엔날레에는 한국 감독이 없죠?”라는 질문은 점점 더 뼈아프게 돌아온다. "우리나라의 큐레이터들을 키울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럴 기회를 외국인들에게 내 주는 것이 아쉽다. 외국인이 맡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은 아예 못할 거라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역차별이 문제다." 비엔날레는 세계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세계’에 한국 기획자의 언어와 감각이 배제된다면, 그것은 세계성이 아니라 외면성이다. 외국인 감독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양한 관점과 글로벌 협업이 중요한 오늘날, 국적만으로 자격을 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흐름이 유독 ‘한국인만 배제되는’ 구조처럼 반복될 때, 그것은 단지 우연이나 실력 차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로컬에서 출발해 큐레토리얼 실천을 축적해온 이들은 좀처럼 ‘공식’의 바깥에 있다. 지방 미술관, 독립공간, 지역 페스티벌에서 묵묵히 현장성과 지역성을 탐구해온 큐레이터들은 매번 자격 밖으로 밀려난다. 기획자로서의 감각과 안목은 ‘국제 전시 이력’이라는 자격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사장된다. 30년 전 창립 멤버로 참여했던 윤범모 광주비엔날레 대표는, 다시 돌아온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제 진입에 방점을 찍어온 30년을 넘어, 이제는 K-미술문화의 정체성을 구축할 때다.” ‘광주 정신’과 ‘예향’의 지역 정체성을 예술로 승화시키겠다는 그의 말은, 로컬 리더십 복권의 선언처럼 들린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비엔날레는 한국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시점이다. 동시대성과 지역성, 두 축을 아우를 한국형 큐레이션과 미학적 자존감이 절실하다. 비엔날레는 시민 세금으로 치러지는 공공행사다. 그러나 기획 방향, 작가 선정, 예산 집행의 과정에서 ‘공공성’보다 ‘브랜딩’과 ‘글로벌화’가 우선되는 건 아닌가. 그리고, 늘 제기되는 질문 하나. “왜 한국의 유능한 큐레이터들은 해외 비엔날레에서만 러브콜을 받을까?” 정작 자국의 비엔날레에서는 기회를 얻지 못하는 한국 큐레이터들. 그래서 ‘국내 역차별’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건, 비엔날레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국제성의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한국 큐레이터는 아직, 입장을 허락받지 못한 채 문 앞에 서 있다. 우리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다시 우리 뿌리를 확인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세계가 공명할 수 있는 지역성이다. 로컬의 언어를 믿고 존중하는 일. 그 지점에서 비엔날레의 미래는 시작된다. 언제까지 한국의 비엔날레에서, 한국 큐레이터들은 무대 밖에 있어야 하나? 이 질문이야말로 지금 이 시점, 우리가 던져야 할 가장 동시대적인 ‘큐레이션’이다. 2025/07/29
윤범모·유홍준 70대 문화기관장의 귀환…경륜인가, 회귀인가 최근 문화계에 익숙한 이름 두 사람이 다시 공공문화기관의 수장 자리에 올랐다.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에,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됐다. 두 사람 모두 70대 중후반. 문화행정의 경험과 상징성을 갖춘 이들의 귀환은 문화계에 경륜과 안정감을 더할 수 있을까. 아아니면 세대교체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는 신호일까. 광주비엔날레를 이끌게 된 윤범모(74) 대표는 민중미술 연구를 기반으로 오랜 시간 미술사학자로 활동해왔다. 1995년 비엔날레 창설 당시 특별전 큐레이터로 참여했던 그는, 이번 선임을 통해 30년 만에 다시 같은 무대에 섰다. 국립현대미술관장, 다수의 비엔날레와 대형 전시 기획자로서의 경험은 비엔날레의 정체성 강화라는 재단 측 기대와 맞닿아 있다. 윤 대표는 문재인 정부 시절 국현 관장으로 임명됐으며,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자진 사퇴한 이력도 있다. 2023년 3월, 그는 “시절이 바뀐 지금 내 소임도 끝난 듯해 떠납니다. 할 말은 많지만 참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정권 변화에 따른 간접적인 압박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유홍준(76) 신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문화재청장을 지낸 뒤,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2022년 대선 당시에는 이재명 후보 캠프에서 K-문화강국위원장을 맡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한 그는, 문화유산 해설의 대중화에 기여한 대표적 미술사학자다. 이번 박물관장 선임에서도 그의 상징성과 국민적 신뢰가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처럼 각자의 분야에서 뚜렷한 전문성과 이력을 가진 이들의 귀환을 단순히 ‘회전문 인사’로만 보는 것은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70대 남성’, ‘국공립기관 경력’, ‘미술사학자 출신’이라는 공통분모는 현재 공공기관 리더십의 구조가 얼마나 협소한지 또한 보여준다. 동시대 미술계는 급변하는 감수성과 다층적 요구에 응답해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 젠더 감수성, 탈중심성, 생태 윤리, 기술·미디어 변화 등 새로운 시대적 화두와 감각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단지 ‘경험 있는 리더’가 아니라, ‘다르게 듣고 말할 수 있는 리더’가 요구되는 시대다. 특히 공공문화기관의 수장은 단지 행정가가 아니라, 시대와 감각을 매개하는 공적 리더여야 한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두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지난 경험의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으로 다시 듣고, 다시 말하는 능력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복귀한 두 기관장은 모두 평론가·전시기획자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윤범모 대표는 국공립관과 비엔날레에서 기획 경험을 쌓은 대표적 현장형 기획자이며, 유홍준 관장 역시 미술평론가이자 문화유산 해설을 통해 대중적 기획과 해석의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일각에서는, 공공문화기관 수장에게 필요한 역량은 기획자형 리더보다 ‘CEO형’ 리더십이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립미술관이나 박물관처럼 수백억 원 규모의 조직을 운영하는 기관장의 역할은 단순한 전시 기획이나 방향 제시를 넘어, 기부 유치, 조직 운영, 문화마케팅, 인력 관리 등 총체적 공공경영 능력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과도한 전시 개입은 오히려 전문 학예인력의 자율성과 조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결국 이번 인사는 단지 '누가 다시 왔는가'가 아니라, '그 자리에 무엇이 요구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문화기관장의 귀환은 세대교체나 경륜의 문제가 아닌, 역할과 리더십 구조에 대한 본질적 재점검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변화하는 문화생태계 안에서, 이들의 리더십이 단절이 아닌 연결, 반복이 아닌 전환으로 작동하길 기대한다. 경륜은 의미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의 감각과 호흡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경험은 금세 과거가 되어버린다. 2025/07/21
'살아있는 조각의 현장' 세렝게티 공존의 미학 세렝게티는 살아있는 조각의 현장이다. 7월 14일 밤,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텐티드 롯지 천막 숙소. 동물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뒤척이다가 맞은 새벽. 그리고 오전 8시, 사파리 짚차에 올라 세렝게티에 들어서는 순간, 관광객은 더 이상 관광객이 아니다. 거대한 야생의 무대에 발을 딛는 그 찰나, 우리는 ‘탐험가’가 된다. 탐험은 곧 발견의 전율로 이어지고, 발견은 본능을 깨운다. 인간은 환호하지만, 동물들은 무심하다. 코끼리도, 기린도, 얼룩말도, 오직 자신에게 집중한다. 이곳에선 모두가 자기 존재의 리듬에 충실하다. 나무, 풀, 바람, 동물… 그들은 이곳의 원주민이다. 방문자인 인간은 다만 경외심을 품은 방문자일 뿐이다. 여긴 말하자면 ‘거대한 야외 조각장’이다. 모든 존재가 저마다의 조형으로 우뚝 서 있다. 기린의 목선, 얼룩말의 무늬, 코끼리의 발걸음, 사자의 침묵까지. 세렝게티는 단지 풍경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조각의 현장이다. 이 거대한 초원 위에서 인간은 절대 짚차에서 내릴 수 없다. 인간은 여전히 두려움을 품고 있으며, 동물들은 결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초원 위 수많은 동물들은 군더더기 없이 산다. 얼룩말은 물가로 다가서기 전 조심스레 경계를 세운다. 대장은 언제나 선두에서 발걸음을 확인하고, 무리 전체의 안전을 확인한 뒤 물을 마신다. 그 경이로운 질서 앞에서 인간은 숨을 죽이고 바라본다. 물소리, 발자국 소리, 그리고 아주 작은 코끝의 경계들. 이들은 ‘협동’이라는 말보다, ‘조화’라는 말에 가깝다. 생존의 리듬이 이토록 아름답다니 감동의 순간이었다. 기린은 나뭇잎을 뜯어먹으며 풍경이 된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캔버스에 그려진 긴 붓질 같다. 그 우아한 선은 움직이는 드로잉, 살아 있는 선(線)이다. 코끼리는 길을 가로막지 않는다. 코끼리 무리는 마치 고대의 군대처럼 움직인다. 그저 묵직하게 지나간다. 존재 자체로 길이 되는 것이다. 서열, 간격, 속도 모두가 완벽하게 맞물려 있다. 작은 아기 코끼리는 대열의 중앙에, 가장 안전한 위치에서 보호받는다. 그 장면은 마치 대지 위의 살아있는 '고대 조각' 같다. ‘세렝게티는 살아있는 조각의 현장’이라는 문장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한 것이다. 하마가 사는 연못에 도착했을 땐, 말로 다 할 수 없는 냄새가 먼저 풍겼다. 고요하지만 결코 평온하지 않은 물 위. 둥그런 머리들이 하나둘 떠오르며 물살을 가른다. 이 정적인 무리도 일종의 살아있는 조각이다. 자연은 시각뿐 아니라 후각으로도 조각된다. 아름다움이란 때때로 불쾌함과도 공존한다는 진실을 이 하마들은 말없이 증명했다. 조각은 시각만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감각의 전체로 존재를 각인시킨다. 그리고 사자. 햇살과 바람을 이불삼아 대지를 점령한 사자들은 인간의 소리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은 소리 없는 위엄이었다. 죽은 듯이 쉰다, 그것이 사자의 품격이다. 숨 쉬는 정적 속, 생존은 완벽히 작동 중이었다. 죽은나무 그늘 아래 무리를 이룬 채, 때로는 눈만 깜빡이며, 꼬리 한 번 휘저으며 시간을 견디는 존재들. 나른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 무리, 가끔 머리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는 그 느릿한 움직임. 움직이지 않기에 더 강하고, 군림하지 않기에 더 위엄 있다. 강함이란 본래 조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이 드러누운 모습은 마치 ‘자연의 왕’이 아니라 ‘존재의 중심’처럼 보였다. 그 앞에서 인간은 그저 입을 다문 채 숨죽여 바라보는 카메라 뒤의 방문자일 뿐이었다. ‘세렝게티’라는 이름은 마사이족 언어로 ‘끝없는 평야(Siringet)’를 뜻한다. 탄자니아와 케냐에 걸쳐 있는 약 3만㎢ 규모의 생태계로, 지구상에서 가장 광활한 야생동물 서식지 중 하나이며, 198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사파리에서는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다섯 종류(사자, 코끼리, 버팔로, 표범, 코뿔소)의 야생동물을 게임 드라이브하면서 보는 것이 목표로, 표범이 제일 보기 어렵다고 한다. 이곳의 풍경은 수평선을 기준으로, 나무 한 그루, 구름 한 조각까지도 정교한 조형물처럼 다가온다. 그중에서도 아카시아 나무는 초원의 수호자 같다. 마치 마사이족처럼 대지를 지키고 선 조형물. 멀리서 보면 그늘 하나의 위치까지 계산된 듯, 공간과 생명이 한데 엮인 풍경이 된다. 한낮의 세렝게티. "하마다! 사자다! 코끼리야! 얼룩말이야!" 쉴 새 없이 터지는 탄성은 인간의 것이었고, 평온은 동물의 것이었다. 그 뜨거운 감탄조차 그들의 일상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가 관찰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감각. 야생은 구경거리가 아니다.'자연은 말없이 열려 있지만, 결코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인간은 이토록 환호했을까. 기린 하나, 얼룩말 몇 마리만 나타나도 짚차 위에서 터지는 박수와 감탄. 그것은 단지 ‘희귀한 장면’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원시성과 야생성, 문명과 제도의 틈에 억눌려 있던 ‘본래의 나’를 깨우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세렝게티에서의 환호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내가 살아 있다’는 신호였다. 짚차 위에서 환호하다, 어느 순간 조용해지는 사람들. 기린과 사자, 얼룩말과 코끼리, 하마까지…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말이 아니라 움직임이었고, 감정이 아니라 태도였으며, 표현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였다. 문명의 도시에서 인간은 스케줄과 의무, 타인의 시선에 얽매인 존재였다. 그러나 이 초원 위에서는,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 자기애가 회복되고, 존재감이 되살아나는 곳. 세렝게티는 인간이 스스로를 ‘리셋’하는 공간이다. 이제야 새긴다. 존재란, 그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세렝게티에서의 하루는 하나의 전시였다. 대지라는 갤러리, 동물이라는 조각, 바람이라는 큐레이터, 그리고 인간은 단지 관객이었다. 자연은 연출자가 아니었고, 우연은 곧 질서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또 하나의 이유. 그것은, 인간과 동물이 암묵적으로 맺은 하나의 약속 덕분이다. 이 거대한 초원 위에서 인간은 절대 짚차에서 내릴 수 없다. 인간은 여전히 두려움을 품고 있으며, 동물들은 결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서로의 삶을, 서로의 거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약속. 공존의 미학은 '약속의 미학'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침묵의 예술'이었다. 2025/07/15
안토니 곰리 GROUND, 나를 비추는 조각의 방 “판테온이 닫힌 무덤이라면, GROUND는 열려 있는 무덤이자 생명의 장입니다.”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말이다. 강원도 원주, 뮤지엄 SAN. 플라워 가든 아래로 천천히 이어지는 길 끝에, 땅속 깊이 묻힌 거대한 돔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직경 25미터, 높이 7.2미터. 콘크리트로 빚은 이 원형의 공간은 무덤 같지만, 그 안엔 생명이 숨 쉰다. 지난달 문을 연 ‘GROUND’는 곰리의 세계 최초 상설관이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협력해 만든 이 장소는 빛과 철, 침묵과 바람, 시간과 감각이 한 호흡으로 공존하는 조각의 성소다. ◆몸이라는 묘석, 시간이라는 조각 지하로 이어지는 좁고 어두운 동굴 같은 통로를 지나면, 천창 위로 빛이 쏟아진다. 빛은 해시계처럼 공간을 가르고, 곰리의 철제 인체 조각 일곱 점 위에 서서히 내려앉는다. 조각은 눕고, 앉고, 웅크리고 있다. 죽음을 말하는 형상이라기보다, 그저 시간 속에 숨을 고르는 존재들 같다. 곰리는 이 조각들을 "감각의 사건"이라 불렀다. 고정된 오브제가 아니라, 감응을 일으키는 매개이자 거울. 조각을 바라보는 순간, 철이 아닌 '나'라는 존재가 조각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철, 빛, 그리고 믿음 곰리는 철을 선택했다. 피와 태양, 흙의 색을 닮은, 시간과 함께 부식되는 생명 같은 재료. 그가 말했다. “몸은 흙으로 돌아가는 길을 기억하는 존재입니다.” 이곳에서 철은 더 이상 단단한 금속이 아니다. 빛을 머금은 살아 있는 표면이며, 산소와 대화하는 감각의 피부다. GROUND는 믿음과 초월, 시간과 육체, 기술과 사유가 서로 다른 속도로 교차하며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의 조각에는 늘 '믿음'이 있다.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네팔과 인도에서의 명상 수행을 통해 몸이 '존재의 감각'이라는 사실을 체화했다고 말했다. ◆조각은 회복의 예술 "우리는 다시 만질 수 있는 세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곰리는 말한다. 디지털 기기에 잠식된 시대, 사라지는 감각의 복원을 위해 조각이 필요하다고. GROUND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침묵 속의 조각은 우리의 무게와 위치를 다시 일깨운다. 그리고 당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무언의 언어로 증명한다. GROUND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곰리가 말한 대로, 사물의 장소가 아닌 ‘나’라는 우주의 한 점에서 울리는 파장이다. 2025/07/03
‘영희보다 무서운’ 오징어게임3…‘기호’로 다시 쓴 디스토피아 승자는 죽었고, 돈은 살아남았다. '오징어게임3'은 ‘성기훈의 저항’조차 체계 안에 봉합해 버리는 자본주의의 절대 권력을 드러낸다. 선함은 남았지만,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주인공 성기훈은 태어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죽음의 유산은 살아남은 자가 아닌, 새로 태어나 살아나갈 자에게 전해진다. 그러나 이 결말은 단순한 감동 서사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설계한 욕망의 기계 안에 ‘양심’이라는 기능이 어떻게 탑재되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게임의 승자는 사라졌지만, 피 묻은 456억 원은 빼돌려지지 않는다. 게임 설계자는 그 돈을 정확하고, 치밀하며, 윤리적으로 분배한다. 그 순간 자본주의의 경악스러운 봉합 능력과, 인간의 무력함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기호는 중립적…그러나 그 위의 죽음은 너무나 구체적 ‘오징어게임’은 인간의 본성과 자본의 시스템을 동시에 해부한다. 야망에 휘청이는 인간들, 자유를 외치지만 결국 시스템의 명령에 복종하는 구조적 노예들, 방향을 잃고 무기력해진 군상들. 성기훈이 아무리 저항하고 외쳐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인간은 게임을 바꾸지 못한다. 다만 다음 게임에 다시 참여할 뿐이다.” 시즌3는 거대한 서사를 축소해 인간의 비참함과 죽음이라는 필연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우리는 모두 참가자이며, 누군가 추락하고, 누군가는 다음 차례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본은 스스로를 리브랜딩한다. 잔혹한 생존 게임은 어느새 ‘사회복지 기금’ 같은 얼굴로 탈바꿈한다. 무섭도록 합리적이고, 너무도 냉정하게 따뜻한 손길. 우리는 그런 세계를 살고 있다. ◆기하학의 유토피아에서 디스토피아로 삶은 줄넘기다. 실패하면 죽는다. ‘영희와 철수’가 무표정하게 돌리는 줄넘기 속, 인간은 건너야만 살아남는다. 세모는 총을 든 집행자(폭력), 네모는 규칙을 전달하는 관리자(감시), 동그라미는 말 없는 실무자(노동). 이 단순한 기호들은 결국 인간을 희생의 순환 속에 가두는 디스토피아적 질서의 얼굴이다.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 그것이 ‘오징어게임’의 룰이다. 한때 바우하우스는 이러한 기하 도형에 보편성과 평등의 이상을 담으려 했다. 그러나 ‘오징어게임’은 그것들을 디스토피아의 상징으로 전도시킨다. 유토피아를 꿈꿨던 기하학은, 오늘날 디스토피아의 얼굴이 되었다. 시즌3의 마지막 무대는 붉은 원형 위에서 펼쳐진다. 거칠고 피를 흡수한 듯한 질감, 차가운 조명, 침묵하는 벽. 현대미술관의 하이퍼리얼리즘 설치미술을 떠올리게 한다. 456번은 사라지고, 222번이 새겨진 아기만 남는다. 죽음은 개인을 지우고, 생명은 시스템으로 편입된다. 삶과 죽음은, 기호 위에서 반복되고 순환된다. ◆피로 쓴 철학, 혹은 선의 유산 시즌3는 주인공의 죽음과 함께 마무리된다. 그가 남긴 유산은 새로운 생명에게 넘어간다. 456억은 이번엔 피의 상징이 아니라 미래의 씨앗처럼 쓰인다. 시즌1이 생존의 비극을 말했다면, 시즌3는 ‘생존 이후의 윤리’를 묻는다. “선은 끝내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 이 어쩌면 순진한 믿음은, 감독이 아이의 울음으로 관객에게 조용히 남겨 둔 유일한 위로다. 하지만 그 위로는 전처럼 강하게 울리지는 않는다. 뉴욕타임스는 “반복된 공식”을, 할리우드리포터는 “입체성의 실종”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시즌3는 마지막에 다시 묻는다. 이 이야기는 정말 끝났는가? 케이트 블란쳇의 깜짝 등장처럼, '오징어게임'은 또 다른 얼굴, 또 다른 게임으로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동그라미 위에 서 있고, 세모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네모의 감시에 무의식적으로 복종하고 있다. 게임은 끝났지만, 구조는 남았다. 그것이 '오징어게임'이 남긴, 영희보다 무서운 철학이다. 2025/06/30
‘대법원 조각’ 엄태정, 87세에 말하다…“조각은 세계를 건립하는 일” “예술(조각)이 세워지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장소 위에 건립하는 것이다.” 조각가 엄태정(87·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의 13번째 개인전 '세계는 세계화한다'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18일 개막한다. 1970년대 대표작부터 신작 조각, 회화, 드로잉까지 총 27점이 소개되는 이번 전시는, 조각이라는 매체를 통해 존재와 세계를 탐구해온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집약한다. 전시 제목은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개념에서 따왔다. 세계는 단일하고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인간과 사물, 장소와 시간이 관계를 맺으며 드러나는 ‘살아 있는 장’이라는 사유다. 그는 ‘법과 정의의 상(象)’(1995)으로 대표되는 대법원 정문 조각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7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조각가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라며 “대법원이라는 물리적 건물이 완성된 이후, 그 상징성과 정신성을 조각이 부여했다”고 회고했다. “대법원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제 작품이 바로 그것입니다. 조각이 세워지면서 예술성과 상징성이 더해졌고, 법의 공간에 신성한 영혼 같은 정신을 부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조각이 세계를 세우는 일이죠.” 엄태정은 조각을 ‘탈마법화된 세계에 저항하는 예술’로 정의했다. 정치화되거나 도덕화된 예술이 아닌, 무의식과 신비, 직관이 머무는 공간으로서의 예술. “예술은 반드시 마법과 영혼, 신비로운 세계가 내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 구리, 청동, 알루미늄 등 다양한 금속을 다뤄온 그는 “쇠의 물성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다"며 "그 안에서의 변화, 열기, 섬광, 밀도는 창작의 충동을 일으킨다”고 했다. 1969년 데뷔 이래 40여 년간 서울대학교 조소과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평균 5년 주기로 개인전을 열어왔다. 이번 전시는 1970~80년대 구리 조각부터 최근의 알루미늄, 회화, 드로잉까지 아우르며 작가가 평생 탐구해 온 조형 언어의 변주를 보여준다. 1995년 발표했던 구리·청동 조각을 비롯해, 독일 퀠른 전시에 출품하며 판매했던 ‘사물 망각’ 초기 구리 작업도 함께 선보인다. 수행과 치유라는 일관된 주제 아래, 재료와 형식의 변화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이어진 작가의 작업 세계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다. 엄태정은 “작가의 세계는 늘 진보해야 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라며 “신작과 구작이 어우러진 이번 전시는 고정된 형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구조로 진화해 가는 현재 진행형 작업”이라고 밝혔다. 그는 1960년대 초부터 조각의 형태와 재료에 관한 지속적인 탐구를 이어왔다. 초기에는 동양적 자연관에 기반한 추상 조각을 선보였다. 1970년대 중반에는 철에서 구리로 재료를 전환하면서 조형 언어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1990년대에는 조각의 공간성을 보다 심화시켰고, 2000년대 이후에는 조용하고 시적인 미학을 추구하며 알루미늄을 주요 재료로 삼았다. 그의 작업에는 동양철학, 우주론, 자연관이 깊게 스며 있다. 티벳 불교, 이태백의 객정(客情), 철학자 한병철의 관조적 사유까지, 세계를 바라보는 다층적인 관점이 조각에 투영됐다. 특히 루마니아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를 “나의 아버지”로 칭하며 정신적 계보를 잇고 있다. 네 차례에 걸쳐 브랑쿠시 고향을 방문했고, 수도원 수행과 불심의 전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브랑쿠시는 동양적 사유와 신비, 수행적 예술의 정신을 품은 인물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객정’ 시리즈처럼 유목적 존재로서의 조각도 등장한다. “객정이란, 우주 전체가 손님이라는 뜻입니다. 태양도, 달도, 모두 스쳐 가는 존재죠. 객정은 이태백의 시 제목으로 나이 드니 이 말이 마음에 깊이 와닿습니다.” 작품 '1000개의 찬란한–막고굴 시대'는 불교적 세계관과 동양적 시간성, 신성과 역사, 수행이 교차하는 장소성을 품는다. 막고굴, 바미얀, 석굴암으로 이어지는 조각의 영적 계보를 암시하며, 조각을 자비와 구원의 공간으로 보여준다. 조각에 그치지 않고 평면으로도 사유를 확장했다. 드로잉과 회화는 작가의 수행적 과정을 담은 도구다. 반복되는 비움과 채움, 섬세한 선과 빛의 조화를 통해 공간성과 시간성이 응축된다. 특히 이번 전시의 평면 작업은 브랑쿠시의 ‘무한주’를 연상시키는 형상으로, 조각과 회화, 사유가 맞닿는 경계를 보여준다. “예술작품의 의미는 무궁무진하다”는 엄태정은 “조각은 우주이며 하늘이고, 땅이고 산이며 인간이며, 강이 될 수도 있고,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일까지 모두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조각은 세계의 모든 존재를 열어놓는 예술이라는 그의 신념이다. 이번 전시는 조각이 어떻게 존재를 드러내고, 또 다른 세계를 여는 방식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는 “조각 예술은 희로애락을 함께 초대하며, 그 안에서 신성과 상징성을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신의 예술관을 마르틴 하이데거의 사유로 갈음했다. “조각 작품을 제작하여 세워놓음은 봉헌과 찬양이라는 의미에서 세워 놓음이다. 봉헌한다는 것은, 조각이 세워짐으로써 성스러운 예술 작품이 성스러운 것으로서 개시되고 신이 그 현존성의 열린 장으로 들어오도록 부름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예술의 ‘성스럽게 함’을 뜻한다.” 전시는 8월 2일까지. 관람은 무료. ◆조각가 엄태정은? 1938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 세인트 마틴스에서 수학했다.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연구교수를 거쳐 1981년부터 2004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를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2013년부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제16회 국전 국무총리상(1967), 한국미술대상전 최우수상(1971), 김세중 조각상(1989), 이미륵상(2012) 등을 수상했다. 그동안 게오르그 콜베 미술관(베를린, 독일, 2005), 성곡미술관(서울, 2009), 아라리오갤러리(서울, 천안, 2019),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서울, 2022) 등에서 주요 개인전을 개최했다. 상파울루 비엔날레(브라질, 1973, 1975), 프리즈 런던 스컬프처(영국, 2019) 등 국제 무대에서도 활동했다. 서울 올림픽공원(한국, 1988), 두브로바 조각공원(크로아티아, 1990), 인천국제공항(한국, 2002), 베를린 총리공관(독일, 2002) 등 국내외 주요 공공장소에 작품이 설치되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아라리오뮤지엄 등 국내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2025/06/18
제임스 터렐, 17년 만의 귀환…“빛은 제게 일용할 양식입니다” “저는 결국 한 사람의 예술가일 뿐입니다. 제가 하려는 일은 단 하나, 한 조각의 빛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빛의 조형가’로 불리는 미국 작가 제임스 터렐이 서울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11일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빛의 사제’라는 별칭답게 철학적이고 구도자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덥수룩한 흰 수염, 낮은 목소리, 그리고 단정한 눈빛. 터렐은 퀘이커교도다. ‘내면의 빛’을 삶의 신조로 여기는 이 전통은 그가 평생 빛을 탐구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면도를 하지 않는 삶의 태도처럼, 그의 작업은 꾸밈 없이 감각과 인식의 본질을 응시한다. 그는 60여 년간 탐구해온 빛 작업에 대해 “빛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질량과 파동성을 지닌 하나의 사물”이라며 “빛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빛 그 자체를 경험하게 하는 예술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빛은 일용할 양식이다”라고 표현하며, 소리처럼 저장되거나 전송될 수 없는 '빛의 물질성'에 주목했다. 특히 “빛을 소중히 대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그의 강조는 오늘날의 과잉 조명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페이스갤러리는 오는 14일부터 9월 27일까지 서울 전관에서 제임스 터렐 개인전 'The Return'을 개최한다. 2008년 이후 17년 만의 서울 개인전이자, 갤러리 설립 65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프로젝트다. 전시에는 신작 '웨지워크(Wedgework)'를 포함해 장소특정적 설치작 5점, 판화, 드로잉, 사진, 조각 등 총 25여 점이 소개된다. 어둠 속 공간에 교차 투사되는 빛의 평면은 공간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외에도 유리 구조물로 구성된 '글라스워크(Glassworks)' 시리즈, 천문학적 관찰에서 비롯된 사진 및 드로잉, 그리고 장기 프로젝트 '로든 크레이터(Roden Crater)' 관련 작업들이 전시된다. 이 프로젝트는 애리조나 사막의 분화구를 천문 관측소이자 예술 공간으로 전환하는 작업으로, 터렐은 이를 50년 넘게 지속해왔다. 터렐은 전시장 내에서 혼란감이나 구토를 느끼는 관람자들의 반응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빛의 인식은 소리와 다릅니다. 우리는 색을 맥락 속에서 인지하고, 그것을 통해 세계를 구성합니다. 어지러움이나 방향 감각 상실은 새로운 인식을 열어주는 자극일 수 있습니다.” 그는 “현실과 사이버 공간의 경계가 흐려진 지금, 지평선이 사라진 세상에서 새로운 감각의 지평을 여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빛은 무언가를 비추는 동시에 가리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밝은 도시의 밤은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만들죠”라고 덧붙였다. 터렐은 빛을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아닌, “영적인 재료이자 감각적 물질”로 보았다. “빛은 음악처럼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우리는 그 빛을 ‘먹고’ 살아갑니다. 일반 조명이 아닌, 모닥불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뇌파의 빛이 중요합니다. 인간도 밤의 헤드라이트 앞에 멈춰 선 사슴처럼, 빛에 감응하는 존재입니다.” 또한 그는 “빛을 묘사하는 회화의 전통을 넘어, 빛 그 자체를 다루는 조형을 하고 싶었다”며 “1967년부터 빛을 투사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LED 등 기술의 진화 덕분에 이제야 비로소 원하는 형태로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오래 살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웃었다. 제임스 터렐은 194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심리학과 수학을 전공하고 인지심리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조종사 자격증을 지닌 그는 항공 관제와 천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고, ‘지각’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예술에 투영해왔다. “빛은 사물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작품을 소장하려는 이들이 자주 묻는 질문을 소개했다. “제가 갖게 되는 건 도대체 뭔가요?”라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답한다. “이곳을 지나가는 빛을 소유하게 되는 거죠.” 예술에 대해선 담담했다. “예술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제 일을 할 뿐입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해선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한국은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팝 음악부터 클래식, 피아니스트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경계를 확장해가는 아시아의 강력한 중심이죠.” 그의 한국 사랑은 개인적 인연과도 맞닿아 있다. 터렐의 부인은 한국의 추상화가 이경림 씨로, 두 사람은 예술과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다. 현재 강원 원주의 ‘뮤지엄SAN’에는 터렐의 작품만으로 구성된 전용 전시관이 운영 중이며, 전남 신안군 노대도에는 세계 최초의 섬 위의 제임스 터렐 미술관이 건립 중이다. 한편 이번 전시는 무료 관람이 가능하지만, 3층 전시는 네이버를 통한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갤러리 측은 “8월 중순까지 토요일 예약은 이미 마감된 상태”라며, “사진 촬영은 금지된다”고 밝혔다. 이는 관람객이 명상하듯 작품에 몰입하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빛을 드러내는 작업, 나아가 빛 그 자체를 감각하게 하는 예술. 제임스 터렐의 ‘지각 예술’은 이번 여름, 서울에서 다시 한번 은은하게 발광하고 있다. 2025/06/11
정선 '화훼영모화' 부활…21세기 문화보국을 묻다 대구 간송미술관에서 '화훼영모화첩'을 마주한 순간, '21세기 문화보국'이란 무엇인가를 곱씹게 된다. 겸재 정선의 손끝에서 피어난 작은 생명들은, 단지 자연을 묘사한 그림이 아니라, 민족의 기억을 되살리는 회화다.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은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꽃과 동물, 곤충을 소재로 한 화훼영모화에서도 섬세하고 감각적인 필치로 탁월한 작품세계를 보여줬다. 그중 말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8폭짜리 ‘화훼영모화첩’은 갈대꽃 위의 호랑나비, 가지밭의 두꺼비, 수박을 훔쳐 먹는 들쥐 등 자연 속 생명들을 생생하게 포착해낸 수작이다. 이 화첩이 오랜 시간의 침묵을 깨고, 대구간송미술관 개관 기념전 ‘화조미감’을 통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단에 그려진 이 그림들은 그동안 장황(표구) 없이 8장 낱장으로 보관돼 있었다. 미술관 측은 두루마리나 족자처럼 말아서 보관할 때 생기는 손상 유형이 없었던 점, 각 그림의 크기가 가로 20.8cm, 세로 30.5cm로 크지 않았던 점 등을 고려해 이 그림들이 원래 병풍이나 화첩의 형태일 것으로 추정했다. 최종적으로는 각 그림에서 비슷한 형태로 벌레먹음(충해)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폭마다 각각 다른 형태로 충해가 나타나는 병풍보다는 화첩이었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수리·복원팀은 또 그림들의 충해가 두 장씩 데칼코마니 형태로 닮은 꼴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낱장으로 보관됐던 그림들이 사실은 호랑나비와 매미, 두꺼비와 개구리, 고양이와 쥐, 암탉과 수탉 등 서로 연관된 소재들이 짝을 이뤄 화첩의 좌우에 배치됐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작품에 사용된 안료와 기법도 과학적으로 분석됐다. A4 용지 정도의 작은 화폭이지만, 석록(말라카이트), 석청, 진사, 금 등 당대 최고급 안료들이 다양하게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금이라도 참개구리 부분의 노란색은 연백(납을 부식시켜 만든 안료)을 바탕으로 그 위에 금을 덧입혀 표현한 반면, 두꺼비의 배 부분은 석황 안료에 금을 더하는 방식으로 색감을 달리했다. 이러한 세부 표현은 단순히 정선의 공력 있는 ‘기술’을 입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 화첩은 그의 만년기 회화에서 드러나는 섬세한 감각과 조형 언어, 그리고 자연의 세부에 부여한 시적 질서를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중요한 사례다. 단순한 화조 묘사 이상으로, 화면 전체에 흐르는 리듬과 안료의 운용은 정선이 회화를 통해 감각과 상징의 조화를 어떻게 설계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복원은 단순히 훼손된 그림을 되살리는 기술적 작업이 아니었다. 미술사적, 과학적, 문화사적 해석이 동반된 총체적 복원이자 재발견의 과정이다. 각 그림의 짝을 복원한 충해 분석부터 고급 안료의 사용, 섬세한 색감 조절 기법까지 이 화첩은 정선 만년기의 예술 감각을 다층적으로 되살려낸 기록이자, 그 회화적 사유를 구체화한 흔적이다. 이 복원 작업은 미국 금융사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후원으로 가능했다. 세계 유수 미술관과 함께 진행하는 ‘예술작품 보존 프로젝트(Art Conservation Project)’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BoA는 지난 2019년 간송미술관 측에 참여를 제안했고, 간송은 이 화훼영모화첩을 복원 대상으로 제출해 총 6800만 원을 지원받았다. 루브르박물관의 ‘사모트라케의 니케’, 보스턴미술관의 반 고흐 작품 등과 함께 이 프로젝트에 한국 작품이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문화재가 세계 보존 프로젝트의 일원이 된 것은 상징적이다. ‘문화보국’이라는 오래된 이상이 국제적 공감대를 얻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복원을 마치고 공개된 '화훼영모화첩'은 8월 3일까지 '화조미감'전에서 볼 수 있다. 조선 시대 화조화를 모은 이번 전시에서는 보물로 지정된 단원 김홍도의 '병진년화첩',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신사임당의 '초충도' 병풍, 조선 중기의 대표적 화가인 이징(1581∼?)의 세련된 궁정 취향 수묵화조도인 '산수화조도첩' 등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조선 시기별 미감을 담은 화조화 37건 77점을 소개한다.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스승 오세창에게 들었던 말, 문화보국(文化保國). 일제강점기, 전형필이 생애를 걸고 우리 문화재를 지키려 했던 이 정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오늘날의 문화보국은, 무너진 것을 단지 되살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복원된 유산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 의미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전하며, 다음 세대와 함께 나누는 일까지를 포함한다.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생생히 되살아난 겸재 정선의 ‘화훼영모화첩’은 오늘날 ‘문화보국’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다.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이 지속 가능한 미래로 이어지기 위해선, 이제 그 무게를 함께 나눌 동행이 필요하다. 예술가만이 아니다. 관객, 시민, 제도, 그리고 기업까지. 이제 모두가 함께 써 내려가야 할 '문화보국'의 다음 문장이다. 2025/06/10
“샤갈은 유행에 흔들리지 않았다" 장윤진 학예사와 대화 "샤갈은 유행에 흔들리지 않았다." 7년 만에 귀환한 '마크크 샤갈 특별전:비욘드 타임'은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다. 시간과 차원을 초월한 영혼의 회귀다. 샤갈(1887~1985)은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시적인 화가로 불린다. 러시아 비텝스크에서 태어난 유대인 화가로, 파리 베를린 뉴욕 예술살렘 등을 오가며 국경과 언어, 시대를 초월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초록 말을 탄 신부와 꽃다발을 든 광대, 붉은 사랑과 푸른 꿈, 화려한 꽃의 향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고 스러져가는 사람들, 그 위를 날아오르는 한 마리 새의 이미지까지.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러시아혁명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샤갈은 작품마다 전하지 못한 회한을 남겼다. '색채로 쓴 영원의 순간'은 그의 서사를 더욱 간절하게, 그리고 아련하게 만든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 열린 이번 샤갈 특별전은 회화, 드로잉, 석판화, 스테인드글라스 등 총 170여 점의 작품이 관객을 기다린다. 특히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미공개 원화 7점은 이번 전시의 중심이다. 개인 수집가로부터 직접 협의해 국내로 들여온 이 작품들은, 오직 이번 전시에서만 볼 수 있는 단 한 번의 진경(眞景)이다. 파리 오페라극장의 천장화와 이스라엘 하다사 메디컬 센터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현한 몰입형 미디어아트 공간도 주목할 만하다. 해외에서 기획·제작된 이 설치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방식이며, 관객은 빛과 색으로 구성된 샤갈의 세계를 더욱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배우 박보검이 참여한 오디오가이드는 전시 개막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이탈리아·프랑스 큐레이터와 함께 샤갈 전시를 공동 기획한 예술의전당 장윤진 학예사는 “연대기보다 감정의 흐름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샤갈이 말한 ‘빛의 언어’, ‘감정의 기록’은 지금 여기, 서울에서 어떻게 다시 이야기되고 있을까. "무엇보다 새로움에 초점을 맞췄다"는 장 학예사의 시선에서, 이번 전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들어봤다. ◆국내에서 7년 만의 샤갈 특별전시다.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기획했나. 샤갈은 한국에서 이미 많은 사랑을 받는 거장이다. 전시도 여러 차례 열렸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샤갈의 또 다른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 먼저 첫 번째로, 그동안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일곱 점의 원화를 공개하는 전시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두 번째로, 샤갈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회화 작품을 넘어서는 광범위한 작품 영역이 있다는 점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 가져올 수 있는 단순한 회화를 넘어서 더욱 깊이 체감할 수 있도록 몰입형 미디어 공간을 함께 연출했다. 예술의전당이 오페라극장이 있는 공간인 만큼, 파리 가르니에 오페라극장 천장화와 같은 작품을 재현하거나, 샤갈의 작품을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모티프로 한 연출로 몰입감 있는 전시를 구성하려고 했다. ◆이번 전시 키워드이자 제목 ‘비욘드 타임(Beyond Time)’은 어떤 의미인가. 샤갈은 시간을 선형적으로 다루지 않는 작가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 화면 안에서 뒤섞이고, 감정과 기억이 자유롭게 흐른다. 처음에는 연대기적 회고전을 구성해볼까도 했지만, 곧 그것이 샤갈의 언어와 맞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연대기보다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구성을 택했다. 전시제목 '비욘드 타임'은 샤갈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 화면 위에 겹쳐 놓듯 공존시키며 보여준 독특한 시간의 개념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와 같은 ‘샤갈’의 시간 개념을 따르고자 했다. 주제와 이미지가 교차하고 반복되면서 느껴지는 작가의 감정에 한층 더 이입할 수 있는 감상이 될 수 있도록 관람의 흐름을 구성했다. ◆동시대 전시가 많은 가운데, 지금 이 시점에 샤갈을 다시 소개하는 이유는. '서거 40주년’이라는 숫자만 보면 과거의 인물 같지만, 사실 샤갈은 꽤 ‘현대적인 예술가’다. 그는 러시아 혁명과 세계대전, 망명과 유대인 정체성이라는 복잡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이다. 그럼에도 놀랍도록 일관된 예술 세계를 구축했고, 시대의 변화나 유행에 흔들리지 않았다. 망명생활, 심지어 금전적 성공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스럽게 작업하는 게 오히려 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시대적 흐름과 담론을 바탕으로 한 오늘날의 많은 전시 중에서 오히려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이는 샤갈의 작품들은, 시간을 초월한 확고함을 기반으로 현재의 관람객들에게 자기만의 세계를 확립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이번에 '새롭다'는 '몰입형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됐나. 전시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현대적' 요소들을 완전히 배재할 수는 없었다. 몰입형 공간은 해외측 큐레이터 폴 슈나이터와 설계자 가엘 르네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오페라극장이라는 요소는 예술의전당에도 상징적이기에, 한가람미술관 1층 전시실 내부의 특징인 높은 공간감을 살려 제작하게 되었다. 샤갈이 1960년 하다사 병원 스테인드 글라스 헌정 연설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나에게 스테인드 글라스 창은 내 마음과 세상의 마음 사이의 투명한 벽이다.” 샤갈이 빛을 통해 살아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던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 같은 경우는, 아무리 판화로(평면작품으로) 가져와도 그 공간의 현장감을 표현할 수 없었기에 미디어 프로젝션과 사운드를 이용한 현장감을 조성하여 회화와는 또 다른 감상을 전시 내에서 만들어 내고자 했다. 이번 전시는 이렇게, 방법으로서의 미디어 연출과의 접목을 통해 샤갈이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을 관객이 더 공감하고 체감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에 7점이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어떤 작품인가. 이번에 공개된 7점은 강렬할 컬러감을 보여주는 대형 회화도 있지만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판화를 완성하기 위한 스케치로서의 페인팅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에스키스(스케치)로 보존되었던 것이라 그 동안 이 회화 자체가 드러난 적은 없었다. 1920~1930년대의 시기는 시각예술품의 배급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쇄술과 에디셔닝 제작의 방법은 예술가에게 단 하나의 클라이언트를 위한 회화작품 보다 더 널리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새로운 작품 활동의 플랫폼이었다. 샤갈의 입장에서는 최종 결과물인 판화를 완성하기 위한 과정으로 그려내었던 원화를 이번 전시에서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이렇게 초기 스케치에 해당하는 회화와 판화를 함께 나란히 보면서 작가의 창작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독특한 감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가장 주목할 작품 중 하나는 '꽃병(The Jug with Flowers, 1925)'이다. 이번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 전시된 이 작품은 가장 초기작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생동감을 보여준다. 강한 붓터치, 아직 마르지 않은 듯한 물감의 질감,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아는 ‘샤갈 블루’와는 또 다른 색채의 깊이가 담겨 있다. 샤갈에게 ‘꽃’은 단순한 정물이 아니라 정체성과 감정, 생명력의 상징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 때로는 작가의 정체성, 생명력, 한편으로는 자화상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주요 오브제다. 이런 삶의 전반을 아우르는 꽃을 주제로 하는 작품 중에서도 특히 이 초기작품을 보고 있으면, 이 그림을 그린 이후의 샤갈의 작품 속에 펼쳐질 수 많은 감정의 흐름과 상상력의 세계를 예견하는 작품인 것 같아 그가 걸어갈 예술적 여정을 미리 엿본 듯한 감회가 새롭다. ◆170점 작품이 많다. 관람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감상법이 있다면.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1920년대 작품부터 1980년대 작품까지 반세기에 가까운 기간의 작품들을 보여드리고 있다. 전시는 연대기 순서가 아닌 샤갈의 정신 구조를 따라 8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기억, 주요 의뢰작, 파리, 영성, 색채, 지중해, 기법, 꽃이라는 주제를 통해 샤갈 예술의 다층적 구조를 읽어내도록 유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젊은 시기의 작품인 1920년대 작품은 가장 마지막 섹션에, 그리고 가장 노년의 작업이었던 80년대 작품은 첫 섹션에 위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상하는데 전혀 앞뒤 작품과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시간을 따라가는 전시가 아니다. 샤갈의 감정을 따라가듯, 느리게, 천천히, 이미지와 색채의 반복과 변주를 느껴보셨으면 한다. 작품을 정확히 이해하려 하기보다, 이미지가 불러오는 기억과 감정을 믿고 따라가다 보면 자기 안에 있는 어떤 이야기가 불쑥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샤갈은 그렇게, 아주 조용하게 마음에 말을 거는 작가다. 전시는 9월 21일까지 열린다. 2025/05/27
'되어보는 회화’…김남표, 감각의 수행자 “나는 그 대상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대상이 되려는 사람이다.” 존재를 감각하고, 그 감각을 물질로 환원하는 고유한 행위. 김남표(55)는 ‘지독한 회화주의자’다. 그에게 회화는 형상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실재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수행이다. ‘그린다’는 행위에 오롯이 몰두해온 그는 아카데믹한 구성에서 초현실적인 화면까지, 인상주의적 색채에서 극사실주의적 묘사까지 회화사의 다양한 문법을 끌어안고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낸다. 16일 성남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에서 개막하는 개인전 '누가 회화를 두려워하랴'는 그의 30년 회화 여정을 집약한 장면이자, 동시대 회화의 의미를 다시 묻는 조용한 반성문처럼 다가온다. ◆ '누가 회화를 두려워하랴' 전시 제목 '누가 회화를 두려워하랴'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 바넷 뉴먼의 작품에서 착안했다. 회화의 본질과 숭고에 대해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질문하고자 하는 김남표의 태도가 제목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화면 위에서 오직 손과 감각, 물감과 시간만으로 말한다. 기술과 매체가 무한히 확장된 시대에도 그는 끝까지 ‘묵묵히 존재하는 것’을 택했다. 회화의 형식과 언어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언제나 회화가 무엇인지, 그 본질을 향해 되묻는다. 김남표는 회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되어보는 것’이라 말한다. 배우가 인물을 연기하듯, 그는 풍경과 존재를 감각하며 그 안으로 진입한다. ◆ 풍경을 응시하며, 감각으로 바꾸다 이번 전시의 중심축은 ‘Instant Landscape’ 연작이다. 산과 바다 등 자연 풍경을 주제로 한 회화 작품 30여 점이 소개된다. 2007년부터 이어져온 이 연작은 풍경을 다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이 된 순간의 감각을 환기하는 작업이다. 산과 바다, 수평선과 채광, 미세한 온도와 바람의 감각까지-그의 대형 회화는 찰나의 경험을 화면 위에 ‘붙잡아두는 숭고’를 보여준다. 프랑스 파리 시테 레지던시에서 제작한 드로잉과, 제주에서 채집한 실경 수채화는 유화의 밀도와는 또 다른 투명한 감성으로 다가온다. 회화의 물성은 곧 감정의 물성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 안엔 빛보다 빠른 감각의 결이 흐른다. 산과 바다, 수평선과 채광, 바람의 온도와 소리까지-감각이 지나간 자리들이 즉흥적으로 발현된다. 한 번 본 그의 바다는, 이후의 바다를 바꾸어 놓는다. 어느새 ‘김남표의 바다’가 되어 감각의 잔상처럼 눈에 맺힌다. ◆‘색으로 공을 긁다’…'김남표식 실존 회화' 김남표의 회화는 관념을 말하지 않는다. 극사실의 밀도와 초현실의 감각이 교차하지만, 그의 회화는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작품에는 고요함 속의 필사적인 감각이 있다. 지금 이 시대에 회화를 끝까지 믿는다는 것-그 자체가 어떤 예술보다 급진적인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보는 이를 멈춰 세운다. 물감이 덕지덕지 얹힌 화면, 면봉과 손끝으로 그려낸 형상은 과잉의 물성으로 밀고 들어와, 때로는 ‘촌스럽다’는 인상마저 준다. 그러나 그 너머에는 존재의 결핍, 그리고 실존의 울림이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형상이 곧 공(空)이요, 공이 곧 형상이라는 그 말처럼, 김남표의 회화는 색(形)을 통해 공(空)에 이른다. 김남표 그림은 단지 시각적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물질에서 실존으로 이행하는 통로이며, 김남표는 그 물질의 덩어리 속에서 실존의 고유성을 긁어내는 화가다. 그에게 회화는 기술이 아니라 존재론적 언어다. 손끝의 촉각, 반복 불가능한 감각의 구조, 그 모든 것이 회화의 숙명이 된다. 김남표는 말한다. “존재를 감각하고, 감각을 물질로 환원하는 그 고유의 행위가 회화다.” 회화는 끝나지 않았다. 김남표는 여전히, 물감과 손으로 실존을 긁어내는 방식으로 회화를 믿는다. 그 믿음은 어떤 첨단 기술보다 묵직하고, 어떤 유행보다 고집스럽다. 그의 화면 앞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가 회화를 두려워하랴.” 전시는 7월 13일까지. 2025/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