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란 무엇인가...강요배 '추상(抽象)' 영락없는 촌부(村夫)였다. 허수아비에 입힌듯 옷자락은 헐렁했고, 가죽 혁대는 기댈곳 없어 자꾸만 밑으로 내려앉았다. 휘적휘적 걷다 혁대를 추스렸지만, 다시 허리춤을 벗어났다. 시선을 느꼈을까. "말라붙어서..."라며 엷은 미소를 보였다. 힘이 없던 노인같던 그가 돌변한 건 그림앞에서 서면서다. "'그림이란 무엇인가'가 화두였다" 제주 귀덕면에서 올라온 화가 강요배(65)다. 그가 입을 떼자 촌부처럼 보이던 외모는 고뇌하는 예술가로 이미지가 전환됐다. "포토그라피가 일상화되어 있는 상황속에서 그것과 차별성이 있는 것이 무엇일까로 출발했다"며 그가 그림앞에 다가가자 어둡던 그림들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 본관 전시장 입구에 걸린 '동동(冬東.2017)' 그림을 설명했다. "어둑한 하늘을 그렸다. 제주도는 두껍게 구름이 끼고(겨울에), 구름이 확 뚫리면서 햇빛이 화~후~쏟아진다. 많이 봤다. 하늘이 뻥 뚫린 것 같은...어느날 한 장면이기보다, 경험을 걸러내서 구상을 한 거다. 그렇게 제작된 그림이다." 인상주의(Impressionism)같은 작품이다. 가까이에서는 색과 색이 겹쳐 형상이 보이지 않지만, 뒤로 몇걸음 떨어지면 확연히 보인다. 분명 '언젠가 본 듯한 하늘 풍경 장면'이 떠오른다. 강요배는 "인상적이다는 것은 마음에 확 찍혔다는 것이다. '인상파'라 할때도 상자는 코끼리 '상'자를 쓴다. 그렇다면 상을 끄집어낸다는 뜻인데, 미술사적 용어가 아니라, 그 말 그대로 상(象)을 따라서 그린게 이번 그림"이라고 했다. 25일부터 학고재갤러리에서 3년만에 여는 이번 개인전 주제는 '상(象)을 찾아서'다. 제주 풍경과 제주 작업실에 오가는 고양이와 자연의 벗들을 포착해낸 신작 30여점을 걸었다. 그는 "주역 64괘의 괘상도 '상', 상징의 '상', 철학 영역인 현'상'학을 쓸때도 코끼리 '상'자를 쓴다"면서 "그 '象'이라는 게 '상을 새기고 상을 끄집어 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작업했다"며 유난히 '상'자의 의미를 강조했다. '象'. 한문의 '상'자는 '코끼리를 보지 못하던 옛 시절의 상형문자로, 유골을 보고 만든 그림 글씨'다. '코끼리 상’은 형상, 인상, 추상, 표상 등의 미술 용어에서 ‘이미지’를 뜻하는 글자다. "코끼리를 끌어낸다는게 대단한 것인데, 현시대에서 쓰고 있는 추상(抽象)이라는 개념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추상'은 일반적으로 미술사에서 '구상'과는 반대되는 용어다. 형태가 없는 그림, '무엇을 그렸는지 알수가 없는 그림'을 뜻한다. 한라산 정상의 설경, 파도가 바위를 치고 올라가는 장면, 푸른 하늘의 구름… 전시장에 걸린 그림은 형태는 알수 없지만 어떤 '풍경'이나 장면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는 왜 '상'에 집착하는 것일까. 전시 주제 '상을 찾아서'는 무슨 뜻일까. 그는 '추상', '앱스트랙트(abstrac)'라는 뜻을 재해석했다. "지금까지 추상이라는 말은 오인되어 왔다"고 했다. "라틴어를 봤더니 abstract에는 '축출한다', '끌어낸다'는 뜻이 있었다. 애매하게 그리는 것, 기하학적으로 그리는 것이 '추상'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추상"이라고 강조했다. "요즘엔 포토그라피에 의존하는 수가 많다. 그것은 표피에 말려드는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그러면 복사기 아닌가. 창조하는 것 없이 그냥 자기가 있는 것만 해야 한다. 그 중간이 (기계적인 장치)없어야 한다"며 "정수를 뽑아내는 작동. 강렬한 기억, 바로 그 것, 그것만 잡으면 된다. 그게 추상"이라며 확신에 차 말했다. 강요배의 화론은 내면에 들어온 심상(心象)을 추상(抽象)으로 펼쳐놓는 것이다. 그는 매일 집에서 작업실을 오가며, 외출하고 여행하며 제주의 풍경을 본다. 같은 것을 반복하여 경험하는 것 같지만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다른 장면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이 마음에 남은 장면을 기억하고 여과하고 담아두었다가 작품으로 나온게 이번 신작이다. 그러나 전시장에 걸린 작품은 '구상'처럼도 보인다고 하자, 따지고 보면 "추상과 구상은 반대되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용어의) 덫에 걸렸다"고 했다. "서양에 꿀리고 싶지 않고, 동양의 것에 그대로 가고 싶지 않은 자존심때문이다. 난 동양에 태어났는데 서양화가로 불린다. 이런 문제... 그래서 '그림이 무엇인지, 내가 동양화가인지, 서양화가인지를 넘어서자고 작업한 게 이번 작품"이라는 것. "추억이라는 것도, 중요한 흐름만 남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기억이라는게 포토그라픽처럼 세세하게 찍히지 않는다. 대충대충 사는 거지. 모든 것을 스캔할 수 없다"면서 "'하이퍼리얼리즘'은 징그럽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말, '그림이란 무엇일까?' "소재들을 빌려오는 것 뿐이지. 내가 어떻게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게 중요한 것 아닌가?"라고 되물으며 "강렬한 요체로 간직한 것. 군더더기를 버리고 단순화하여 명료하게 하는게 '그림'"이라고 딱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 관찰'을 10년간 했다. 발품팔아 지도를 만든 김정호처럼 샅샅이 자연을 돌아봤다. 그러다 굳이 그렇게 그릴 필요가 있을까. 외부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핑겟거리일수도 있다는 것"이라며 "결국 문제는 내 안에 있다"고 했다. 그는 "내가 감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움은 외부 사물로부터 발산되는 듯 하지만 내가 그것을 평소와 다르게 바라보는데서 생기는 것"이라며 "사물의 기운생동 또한 사물로부터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내 그림은 나와 사물간의 상관적 관찰의 결과물이다." 이태호 미술사학자(서울산수연구소장)는 "형상(形象)’에서 ‘형’은 눈에 보이는 것(Form)을, 상은 마음에 남은 것(Image)을 말한다"면서 "강요배는 눈을 감고 상념에 잠기면 되살아난 형상에서 찾는 ‘추상(抽象)’의 본래 의미를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인 묵죽도나 사군자 그림을 추상화의 한 형식으로 본다"는 그는 "사생보다 기억으로 외워서 그린 이번 강요배 그림은 한국인이 표출한 동양적 이미지, 진경화(眞景畵)라 할 만하다"고 평했다. 강요배는 1980년대 민중작가로, 1990년대 제주4·3항쟁 연작을 완성한 '제주 화가'로 유명하다. 1952년 제주 삼양동 출생 강요배는 제주의 아픔이 이름에 서려있다. 강요배의 아버지는 1948년 봄, 제주 4·3 항쟁을 몸소 겪었다. 육지에서 출동한 토벌대는 빨갱이라는 명목아래 사람들을 색출했다. 색출 당한 사람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혹시 모른다는 이유로 함께 처형당했다. 순이, 철이와 같이 당시 널리 쓰인 이름의 사람들은 이유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나갔다. 강요배의 아버지는 그 참담함을 지켜보며 자신의 자식 이름은 절대 남들이 같이 쓸수 없는 이름 글자를 찾아서 尧(요나라 요), 培(북돋을 배)를 써서 '강요배'라고 지었다. 화가의 길은 어린 시절 마을 도서관에서 빌려본 그림책 때문이었다. 197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2년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민중미술가'가 된 것은 1981년 ‘현실과 발언’의 동인이 되면서부터다. 현실과 시대, 그리고 역사와 미술의 문제를 고민하며 '인멸도'(1981), '탐라도'(1982), '장례명상도'(1983), '굳세어라 금순아'(1984) 등의 시대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을 발표하며 시대정신과 그것의 미학적 실천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서울 창문여고에서 미술교사로 6년간 일하기도 했다. 이후 한겨레 신문에 소설가 현기영의 '바람 타는 섬' 삽화를 그리게 되면서 제주 4·3 항쟁에 대한 강렬한 충격이 일었다. 슬픔과 분노로 얼룩진 4.3 역사화를 완성하고 1992년 '강요배 역사그림-제주민중항쟁사'를 학고재에서 선보였다. 이 전시는 4·3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며 역사 주제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름다운 제주에서 일어난 잔인한 학살은 일반인들에게도 충격을 주었고 제주를 다시 인식하게 했다. 1992년 서울 생활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 그는 고향 제주로 돌아왔다. 지도를 들고 제주의 자연을 찾아나섰다. 제주의 역사를 알고 나니 자연 풍경이 조형적 형식이 아닌 감정이 담긴 대상으로 다가왔다. 제주 자연의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지 25년째다. ‘추상(抽象)’으로 꺼낸 제주풍경의 이번 전시는 "회화가 추구하는 본질을 꿰뚫었다'는 평가다. 땅의 역사와 자연의 형질까지 통찰한 작품 세계는 역사, 철학서부터 지리서까지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독서량이 힘이라고 한다. 제주 귀덕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는 이태호 미술사학자는 "주역을 꿰던 강요배는 이제 칸트(Immanuel Kant)의 미학 개념을 소화한 듯하다. ‘무관심성’이나 ‘공통감각’의 칸트 얘기를 유난히 입에 올렸다“면서 "그림에 대한 내 생각이 남들도 공감하고, 모든 이가 그렇게 부담 없이 그림을 그린다면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래서인지 ‘추상’에 대해 이야기를 잇던 그는 “내 그림이 어떻게 보이냐”고 물으며 이전과 달리 궁금증을 보였다. '강렬한 기억의 요체'로 나온 그림은 윤기 없이 거친 느낌이다. 번들번들거리는 것을 싫어하는 탓도 있지만 투박하고 성근 제주의 땅과 돌과 풀, 나무에 어울리는 도구를 나름 개발한 덕분이다. 선들이 거칠게 서걱대는 작품은 빗자루, 말린 칡뿌리, 구기거나 서너 겹 접은 종이 붓을 만들어 쓴다. 1994년 '제주의 자연'전 뒤부터 20년 이상 써온 '종이붓'으로 아픈 역사의 대지를 녹여내고 있다. '강요배 속'에서 끄집어내고 쏟아낸 그림 때문일까. 무게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가벼워 보이는 그는 움푹패인 볼에 검은 눈빛만 형형했다. 그림에 미쳤던 ‘고흐의 상’이 보인다고 하자, 싫지 않은 기색이다. "매력적인 사람이지”라며 쑥스러워하던 그는 “고흐는 독서량이 많았다"면서 허허 웃었다. 이번 전시는 1,2부로 나눠 여는 대형 전시다. '상을 찾아서'는 1부전으로 6월 17일까지 열린다. 2부전은 강요배의 민중미술 역사화를 한 자리에 모은 '메멘토, 동백’전이 6월 22일부터 이어진다. hyun@newsis.com 2018/05/28
공중부양한 1.2톤 대리석조각과 박은선 "500만원만 빌려주세요" 자존심 때문에, 가족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말. 갤러리를 찾아가 손을 벌렸다. "300만원밖에 없는데…" 박여숙화랑 사장이 건네준 그 돈은 '눈물의 씨앗'이 됐다. 1997년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싣고간 '박은선'은 질긴 목숨과 가난의 멍에, 어쩔수 없는 조각가의 운명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전쟁 같은 노동'으로 바둥쳤다. "지난 25년 세월동안 작업장에 서 있는게 내 모습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위기감과 긴장감이 힘"이었다. "그걸 놓치면 제 삶이 무너질 것 같았다" 인맥도 없고, 금수저도 아니었다. 피눈물을 쏟아내며 '절망의 벽'을 깨트렸다. "매일 낭떠러지 끝에 서있어 죽을 것 같은 위기감을 거치면서 '파괴하고 해체하고 조립하는' 이런 작업이 완성됐죠" 이젠 성공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한국인 박은선이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수억의 스폰을 받아 유럽 각국 대도시에 작품을 설치한 것은 자랑이 아니라 자부심입니다." ‘이탈리아가 사랑하는 조각가’로 불리는 조각가 박은선(53)이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대리석으로 무장한 조각과 함께 온 그가 국내에서 10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서울 성수동 서울숲갤러리아포레 더페이지갤러리에서 16일부터 20여점을 선보인다. 총 600여평 층고 5.4m 6개의 공간은 리뉴얼 한 더페이지갤러리의 재개관전으로 마치 '박은선 조각'을 위한 맞춤형 공간처럼 보인다. 미술관같은 상업갤러리의 변신 덕분에 '박은선 대형 조각'전이 열리게 됐다. 15일 더페이지갤러리에서 만난 조각가 박은선은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작업"이라며 "머릿속에 항상 꿈만 꾸던 작품, 좋은 전시장을 만나서 이런 전시를 한 것 같다"고 뿌듯함을 보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우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난다. 거대한 대리석 기둥 3점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4~5m 길이로 늘어진, 중력을 거스르는 설치를 통해 보는 순간 압도당하지만 슬쩍 겁도 난다. '혹시 떨어지지 않을까,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까.' 작가가 눈치챘다. "이 작품을 매단다고 하자 건물 관리인이 긴장하고 갤러리 스텝도 겁을 먹었다. 정확히 한 점당 무게는 1200kg, 1,2톤인데, 겁먹는 사람들을 위해 1200kg이 안된다고 처음에 거짓말좀 했다. 하하" 하지만 "이 정도 무게는 무게도 아니다"라고 했다. "유럽에서 작품설치할때는 30톤 넘는 작업도 있다"는 그는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익숙해져 있다"고 했다. "이탈리안인드도 내 작업에 흥미있어 한다"면서 그 이유는 "노동적인 면과 금전적인 모든 걸 해내서 이 자리에 와 있다는 것, 그걸 신기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수학자처럼 공간과 무게 중력 계산을 철저히 한다. 천정에 특수 장치를 한 뒤 매단 조각이지만 긴장감이 있다. 뒤틀린듯 빈 균열과 흰 대리석 때문일까. 육중함보다 가볍게 떠있는 느낌이다. 넓은 공간에 여백과 함께하는 작품은 관람객을 위한 것이다. "대리석 조각이다보니 서양적이라고 하는데, 완성된 작업에서 오는 느낌은 동양적이다. 난 한국사람이니까. 매달린 기둥 하나 때문에 주변에 놓여있는게 없어야 한다. 동양화에서 난(蘭)을 하나하나 치면서 달라지는 여백처럼, 상상력을 동원시키는 공간이기때문이다. 관객 여러분들이 많은 상상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천장에 매달린 '무한 기둥' 작품은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이는 신작이다. 평생 긴장감과 위기감 속에 살아온 작가의 흔적이 고스란히 박혀있다. 그는 "내 작품들은 이탈리아에서 25년간 살아온 삶 자체"라고 했다. 작가는 경희대 미술대학을 졸업 후 1993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카라라 예술국립아카데미를 졸업했다. 이후 한국에 들어왔지만 전업작가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유학까지 갔다왔는데 작품은 팔리지 않고, 결혼한 부인이 생계를 이었다. 남자로서 무능함,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패배감이 자살 직전까지 내몰았다. "마지막으로 살아보자"며 '포장마차나 오뎅장사라도 해볼까'라며 기웃거렸다. 부인 대신 아이들을 돌보며 보내는 하루, 주변에선 "어느 회사 다니다 잘렸냐"며 수군거렸다. IMF 시절이었다. "이대론 안되겠다. 작업해야겠다"고 이탈리아로 향한지 25년째, '작업장 귀신'처럼 살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는 조각가에겐 천국이다. 작가는 "재료를 찾기 위해 온 곳인데, 실제로 재료뿐만 아니라 주변에 연장과 공구도 30분 거리안에 다 있다"며 만족한다. 피에트라산타는 거대한 대리석 산지와 가까워 세계적 조각가가 몰려든다. 미켈란젤로, 도나텔리, 헨리 무어, 페르난도 보테로 등 세계적인 조각가들이 작업 터로 삼은 곳이다. 평생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살아온 그가 이탈리아에서 반짝인건 10년이 지나면서다. 2007년 7~8월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시 초청으로 ‘베르실리아나 축제의 대규모 야외 조각전에 초대되면서다. 단 한 명의 조각가를 초청하는 행사로, 이전에 헨리무어, 페르난도 보테로 등 세계적인 조각가들이 참여했다. 이후 현재까지 이 축제에 유일하게 초대된 한국 작가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어느 도시에서나 어느 빌딩앞에 새로 들어서도 '항상 있었던 것 같다'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2015년부터 유럽에서 러브콜이 이어졌다.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피사 국제공항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개인전을 2년간 열었고,포르테바르드요새 박물관, 빌라기를 란다 시립미술관 등에 초대되며 이탈리아에서 ‘박은선’을 각인시켰다. 또 3년마다 여는 스위스 바드라가르츠트리엔날레에 초청돼 세계적 조각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유럽 각지에서 50회의 개인전 및 200여회 이상의 그룹전에 참여한 작가는 한국미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업적을 인정받아 2015년 국민훈장을 외교부로부터 수여받았다. 세계적인 조각 평론가 루치아노 카라멜은 그의 작품에 대해 "외형의 선택에서 이탈리아 예술의 영향이, 넓은 의미로는 동양적, 명확하게는 한국적인 측면이 보인다"며 "추상조각임에도 동양적 미를 느낄 수 있다"고 평했다. 동서양이 합체된 작품. 그는 애초부터 "내 정체성을 찾는 작업을 안했다"고 했다. "내가 만들고 있는 자체가 동양적"이라는 그는 "작품을 제작할 때 여백을 고려하는데 현지에서 그러한 여백이나 기둥에서 보여지는 선 등을 동양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했다. 돌의 결을 따라 의도적인 균열을 만들고 틈을 내는게 이색적이다. 기하학적, 추상적 형상 가운데 부드러운 곡선미를 강조한 그의 작품은 전통조각의 관념을 깼다. 색이 다른 두개의 대리석 판을 켜켜이 쌓아 올리면서 원형, 사각형, 원반과 같은 조각의 외형을 마름질하고 그 과정의 시간들을 겹쳐간다. 작품은 제의에 가까운 수행적 태도를 통해 나온다. 거칠게 파괴된 돌과 정교하게 표면처리된 돌 사이의 긴장은 자연스러움과 인공적인 것, 과학적인 엄격함이 작품 안에 공존하면서 완벽한 균형과 질서 속에 에너지를 상승시킨다. 동양과 서양, 고전과 모던, 균형과 불균형, 통제와 자율성이 대립된 작업은 순전히 '망치'에서 나왔다. "미켈란젤로 시절부터 조각은 대리석 한 덩어리에서 떼 나가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스타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만들던 조각작품을 망치로 깨버렸다. 깨고 나니 느낌이 좋더라. 깨고 부수고 짜맞추면서, 아~ 나와 너무 닮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작업은 깨는 것으로 시작한다. 처음부터 깨고 숨통을 열어주며 붙여나간다. "왜냐고요? 돌은 생명이 없어요. 생명이 없는 자연석에 생명을 넣고 싶어 깨는 겁니다." 이번 전시는 '쉼 쉬는 돌의 시간'을 타이틀로 박은선이 유럽에서 일궜던 그의 작업을 총 망라해 보여준다. 다섯 개의 길죽한 조각품이 모여 있는 것과 달리 검은 조각을 따로 빼놓은 전시장 안에서 그가 말했다. "저는 이탈리아에서 스스로 왕따로 자청하면서 살아왔어요. 따로 떨어져 있는 강렬한 검은색은 바로 제 모습입니다. 인종차별하면 넘어가지 않고 덤볐고, 작업하면서 힘들면 부수고 깨고 성격을 그대로 표출했죠. 인생 반을 넘어가면서 말로 상처줬던 주변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어요." 깨지고 비어 날씬하게 세워진 작품들은 스스로 근력있게 탄력성을 보인다. 신전 기둥처럼 또는 외계의 나선처럼 무한 회전해 위로 아래로 파고들 듯 하다. 그는 "작품에서 살아 있는 숨소리, 비명소리를 듣는다"면서, "내 작품에는 100%의 내 삶이 스며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수십 톤의 대형 돌 조각을 보면 모두 무모하다고 입을 모은다. 혼자하면 6개월~8개월. 최근에는 로봇과 3D를 이용해 마름질하면 한 달에서 석 달 정도 걸려 완성되는 작품이다. 인생에 한 방은 없다. 반복의 힘은 무섭다. "매일 같이 작업하다보니 쉬워요. 하루도 끈을 놓지 않고 작업하다보니 내 것이 됐고, 하루 일과가 됐죠." 비틀어진 사각형 조각이 뽀족한 모서리로 서 있는 작품앞에서 그는 "무게 중심이 틀어지면 위험 부담이 많다"며 "작가로서 여전히 25년 전 모습과 똑같이 살고 있다. 제 자리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300만원 들고 이탈리아에 갔을때, 중고 자전거 한대만 있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먹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을 가지고,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그때가 좋았다. 지금은 찾는 사람도, 연락도 많다. 작업만 하고 싶을 때, 절실할때, 그때가 생각난다"고 했다. "아, 돈 갚았냐고요? 그럼요~ 그 다음해 바젤아트페어에서 작품이 솔드아웃됐거든요. 하하하." 서양미술의 핵심, 건축과 조각이 태어난 본토로 들어가 조각가로 희석됐지만, 25년간 정체성을 지켜왔다. 서양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 긴장감과 균형감이 박은선 몸에 체화되면서 해체와 접합의 한 덩어리로 '박은선 조각'을 재탄생시켰다. 25년간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그의 조각혼도 중력을 거스른 '무한기둥' 처럼 '공중부양'을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작가로 인정받기까지 많은 시간, 오래 걸렸죠. 그래서 지금의 저는, 건방지다고 할 지 모르지만 항상 자신감 있습니다." 그동안 '가벼운 조각' 일색이었던 국내 조각 시장에 '박은선 숨쉬는 조각'이 묵직한 균열을 가하고 있다. ‘박은선 조각이, 은근하게 유럽에서, 선방했다는 것을’. 보고 만지면 느껴진다. 전시는 6월30일까지. hyun@newsis.com 2018/05/16
만화 '세일러 문' 추상화로 변신 시킨 윤향로 작가 최근 출판가에 90년대 인기만화였던 '곰돌이 푸’가 베스트셀러 1위를 휘어잡고 있다. 월트 디즈니 캐릭터 '곰돌이 푸'의 대사와 행복 메시지를 엮은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책이다. 90년대 일요일 아침을 함께한 디즈니 만화동산 '곰돌이 푸'를 보고 자란 세대가 현재 30~40대로 소비문화를 이끄는 주역인 덕분이다. 책은 만화의 추억과 힐링의 공감대를 높여 인기를 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술시장은 이미 '만화 세대'가 점령했다. '만화같은 그림'은 팝아트의 또다른 줄기로 뻗어나와 젊은 작가들의 전유물처럼 자리잡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진짜 '만화 캐릭터'같은 그림이 캔버스에 들어왔다. '눈 큰 그림' 마리킴의 작품과 한국화로 그려낸 손동현의 슈퍼맨·베트맨·울버린이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며 인기를 끌었다. 급변하는 세상, 그래서 순수회화속 '캐릭터 그림'은 벌써 식상해졌다. 90년대생들의 캐릭터 그림 이후 잠잠했던 미술시장에 10여년만에 진정한 '만화 세대' 작가가 등장했다. 86년생. 4살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고 예고, 미대를 나와 화가가 됐다. 어릴적 TV만 틀면 나왔던 만화는 아이를 지배했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한국에술종합학교 평면조형전공으로 석사 졸업했지만, 화가로 데뷔 시킨건 만화였다. 다섯번째 개인전을 서울 이태원 P21에서 여는 윤향로(32)작가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작업의 바탕이다. 어릴적 강렬하게 접했던 만화의 이미지를 발췌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변형한 후 캔버스 위에 회화로 그려낸다. 하지만 작품은 전혀 만화같지 않다. 만화의 흔적은 찾아볼수 없는 추상화로 변신했다. "일본의 유명 미소녀 만화 주인공이 변신하거나 악당과 전투할때 에너지 혹은 아우라가 발산되는 장면들이에요." 11일 P21 전시장에서 만난 윤향로 작가는 "만화 주인공보다는 그걸 제외한 장면을 화면 캡처해 추상적인 이미지로 옮긴 것"이라며 "다양한 표면 질감으로 평면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관심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추상회화 ‘Surflatpictor’시리즈는 만화라는 빼대로 보면 이해가 쉽다. 짙푸른 색감이 압도적인 'Screenshot' 그림의 경우 만화 '달의 요정 세일러 문'이 배경이다. 소녀들을 홀리며 유행어가 된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어'라며 변신하는 순간 빛나는 아우라를 캡처한 것. 요즘 말로 '포텐 터지는' 그 장면을 옮겨온 것이다. 세일러문 부터 밍키등 소녀 변신 만화에 빠졌던 작가는 만화 오타쿠는 아니라고 했다. 변신 만화보다 '달의 아이'로 유명한 시즈미 레이코를 좋아한다면서 "소녀 변신 만화 계보도 만들어볼까하는 생각도 해봤다"며 유명 만화 제목을 줄줄이 뀄다. 만화의 한 장면을 추상화로 변신 시킨 윤향로의 작업은 "대중문화의 이미지들을 어떤 방식으로 추상회화로 만들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작업은 IT세대 작가답게 디지털 가공을 거쳐 나온다. 이미지 파일을 자르고 조정하고, 변형하는 도구의 기능과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효과를 탐구한다. 선정된 애니메이션 화면을 컴퓨터의 '화면 캡처' 기능을 통해 독립된 개체로 만든다. 이후 디지털 편집 소프트웨어인 포토샵으로 '확대 크롭' 해 본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된 이미지를 회화로 옮긴다. 이렇게 만들어낸 형상은 붓이 아닌 에어브러시로 캔버스 위에 그려져 디지털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표면에 가깝게 매끈하게 표현된다. 이미지의 에너지 입자를 가져와 추상회화로 내놓는 방식이다. 작가는 이 과정을 "이미지를 추적해 나가는 여정"이라며 컴퓨터의 알고리즘이 유추해 만들어내는 가상의 이미지에 주목한다고 했다. 이전엔 영상과 프린트 작업도 했다. DC코믹 커버 이미지를 그린 작업으로 윤향로 이름을 알렸다. 등장인물들이 제거된 상황에서 남는게 무엇인가. 어떤 풍경이 남아있을까. 사건의 주체들이 빠져나갔을때 어떤 모습일까가 궁금해서 그린 그림이지만 만화 덕후들은 단박에 그 장면을 알아보는 그림이다. 윤향로의 이번 개인전 타이틀 ‘Surflatpictor’은 작가가 지어냈다. 초-납작함, 과다한 평평함으로 해석될 수 있는 ‘surflat’과 ‘pictor’의 합성어다. 디지털 이미지의 생산과 편집 방식, 회화 평면의 공간적 확장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을 넌지시 암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사용하는 이미지 변주 방식인 콘텐트 어웨어 기능 자체를 거울의 반사를 이용했다. P21 갤러리 공간에 거울을 설치해 3차원적인 효과를 연출했다. 거울 옆에 설치된 작품은 유리에 UV 인쇄하여 스크린 위 얇고 투명한 이미지를 구현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주한 커다란 거울에,나 자신과 그림이 함께 들어간 듯한 착시를 선사한다. P21갤러리는 좁은 공간이지만 그 공간에 맞게 작품을 제작하고 작품을 설치할수 있어 젊은 작가들이 다양한 실험욕구를 자극하는 전시장이다. 다양한 매체 실험후 2~3년전부터 회화를 집중적으로 작업하고 있다는 작가는 "나는 이미지를 정리하고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소비됐던 이미지를 수집하는 사람"이라는 그는 "이번에 선보인 작품의 바탕이 된 세일러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당시 유명했던 만화들의 콘텐츠를 가져와서 비트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설가 알랭드 보통에 따르면 '미술은 경험을 보존하는 방식'이다. 화가는 무엇을 기념해야 하고, 무엇을 생략해야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이다. 90년대 만화를 보고 자란 화가는 삭제된 현실(이미지)을 복구하는 능력자가 됐다. 결국 "예술이라는 것은 자기 인식을 누적시켜 타인에게 그 결실을 전달하는 훌륭한 수단"이다. 만화 이미지를 세련되게 추상회화로 옮겨낸 작가는 "많이 보는게 힘이 된다"며 "앞으로 좋은 작품을 많이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했다. 전시 기화가 잘 주어지지않는 젊은작가들의 곤궁한 현실을 반영하는 말이다. 작품은 호응을 먹고 큰다. 그림도 보는 만큼 안다. 많이 보고, 많이 봐야 느낀다. 예술을 이해하는 능력을 쌓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다. 전시는 6월 10일까지. hyun@newsis.com 2018/05/11
봉이 김선달같은 '모노크롬' 제이콥 카세이 동시대 모노크롬(monochrome)회화 작가들은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같다. 그냥 있는 것과,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작품'이라며 팔아먹으니 말이다. 작가들 입장에서는 '아트(art)를 모르는 무식쟁이'라고 할수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아트'라는게 무엇인가. '삶이 예술' 아닌가. 이미 일상이 예술이 된 세상속에서 '작품'으로 분류되면 고고해져 대중과 거리를 두는 아이러니를 발한다. 모노크롬 그림, 어렵게 보이지만 알고 보면 쉽다. 세계미술용어 사전에 따르면 다색화(polychrome)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단일한 색조를 명도와 채도에만 변화를 주어 그린 단색화다. 한가지 색만 쓰는 색채뿐만 아니라 내용, 주제, 선, 형태를 거부하고 전통적 미술 개념에 대한 반발로 시작됐다. 특히 1960~1970년대에 이르러 하나의 주요한 추상회화 양식으로 자리잡았다.이들의 작품은 완벽하게 감정이 여과되었다는 호평을 받은 반면에 '지나친 결벽증에 의한 삭막한 공백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나라 단색화가들도 모노크롬의 영향을 받았다. 2000년에 정의된 단색화 이전엔 '모노크롬 화가'로 불렸다. 같은 단색이지만 서양의 모노크롬과 한국의 단색화가 다른 점은 작품에 녹아든 정신성, 몰아일체 수행으로 이뤄졌다는 차이가 있다. 모노크롬 그림은 "나도 하겠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캔버스에 한가지 색만 칠하거나, 칠도 없는 하얀 캔버스 자체를 날카롭게 베거나, 점 하나 찍고도 '대단한 추상화 작가'로 평가 받는다. 반면 '도대체 뭘까', '뭘 그린걸까'로 골치아프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래서 '추상회화'의 고개는 숙여지지 않고 있다. 특히 '미니멀한 모노크롬'은 여전히 동시대 미술을 쥐락펴락한다. 이런 측면에서 '봉이 김선달'같은 모노크롬 작가가 미국에서 날아왔다.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제이콥 카세이(34)다. 서울 통의동 리안갤러리에서 흰색 모노크롬 회화 신작전을 10일부터 펼친다. 리안갤러리 안혜령 대표가 아트바젤등에서 눈여겨보다 5년전부터 섭외해 겨우 성사된 전시"다. 젊은 작가지만 이미 '실버 페인팅'으로 해외 미술계에 떠오른 스타작가다. 2005년 미국 뉴욕대학교(파인아트)졸업후 2008년 뉴욕 유명 갤러리 303갤러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2009년 뉴욕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에서 작품 매진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2010년 11월 아트 옥션에 처음으로 나와 30세 이하 미국 작가 경매가 최고를 기록했고, 전 세계 30세 이하 작가 경매가 TOP 10에서 1~6위와 9위를 싹쓸이 했다. 2015년 크리스티 11월 경매에서 50호 크기 2점이 추정가를 뛰어 넘은 한화 1억4624만원에 팔리면서 일약 '실버 페인팅' 작가로 몸값이 높아졌다. 특히 '억만장자 컬렉터' 피노 회장이 제이콥 카세이의 작품을 소장한게 알려지면서 '컬렉션 잇템'으로 떠올랐다. 작품은 아주 간단하다. 제이콥 카세이를 '핫한 작가'로 등극 시킨 '실버 페인팅'은 그야말로 봉이 김선달의 '대동강 물'처럼 나왔다. 리안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자동차공장에서 도색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도색을 하던중 반짝이는 '실버색'에 반했어요. 아무것도 없는 색상이라는 생각에 미니멀리즘의 실험을 시작했죠. 사진 작업도 해봤는데 사진은 인화하면 그대로 나오지만, 실버 페인팅은 컨트롤이 불가할 정도로 우연성이 가미된 작업입니다. 페인팅 흐르기에 따라 굳어지는 모습이 불규칙하게 나오는데서 착안해 미니멀리즘의 방향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본 것이죠." '자동차 도색 알바'를 뛰다 원래 있던 은색으로 만든 '실버 페인팅'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불투명한 거울을 연상시키는 카세이의 페인팅 작업은 오늘날 미니멀리즘의 현재 진행형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전기 도금 기술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실버페인팅은 주변의 세상을 흐릿하게 반사하는 거울과도 같다. 색의 움직임은 그림의 표면을 흔들고 빛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실버 페인팅'은 조각인 동시에 회화로도 불린다. 비춰진 자신을 보고 그 다음 자신이 서 있는공간을 보게 하며 상호작용하는 작품은 2차원의 회화이면서도 공간과 상호작용을 하여 3차원성을 갖는 특징을 보인다. “저는 환경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작품을 하고 싶어 페인팅을 선택했습니다. 생각한대로 곧이 곧대로 작업하는 것은 거부합니다. 저를 흥미롭게 하는 부분은 내가 그 장소를 처음에 찾게 됐던 이유와 나의 관심을 사로 잡았던 반응에 대한 의문 제기입니다”. 이번 한국 전시에서는 유명한 '실버 페인팅'은 볼수 없다. 한국에서 첫 개인전인 만큼 최신작을 내놓았다. 리안갤러리 공간에 맞춘 '한국 맞춤형' 작품을 선보인다. 극도로 단순화된 형태의 흰색 모노크롬 회화지만, 차이가 있다. 오크 나무로 프레임을 짜 다양한 형태로 선보인다. 직사각형을 기본형으로 템플릿 자를 연상시키듯 한쪽 혹은 양쪽 가장자리 선이 오목하거나 볼록한 형태다. 성신영 전시 디렉터는 "카세이의 작품은 단순히 회화라는 하나의 예술적 범주의 차원을 넘어서 회화와 조각의 탈 영역적 양식의 조형적 실험"이라고 했다. 회화의 가장자리 틀을 다루는 방식때문이다. 현대 회화사에서 그림의 엄격한 사각형 틀에서 벗어나 벽 공간으로의 확장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가 시도했지만 카세이의 작품은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캔버스는 윤기 없는 완벽한 흰색 모노크롬으로 처리한 반면 오크 목재를 프레임을 사용하여 시선이 자연스럽게 가장자리로 이끌리게 한다. 성신영 디렉터는 "프랭크 스텔라가 시도했던 회화는 공간의 벽, 공간으로의 확장으로 이해되지만, 카세이가 도입한 오크 프레임은 회화 평면 공간을 벽 공간과 완벽하게 분리된 공간으로 만든다"면서 "여기에서 카세이 작품의 이중적 ‘모순’의 미학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흰색의 회화인데도 다양한 형태의 오크프레임이 두드러져 '미니멀리즘 조각' 같기도 하다. 일정 간격으로 전시장 벽면에 걸리자 작품과 작품 간의 연결고리를 생성시키며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환영도 선사한다. 뭔지 모를듯한 카세이의 작품은 결국 전시장 벽면을 '오크 프레임'으로 드러냈다는 얘기다. 흰 전시장 벽을 캔버스에 다시 흰색으로 칠하고 그걸 구분짓기 위해 오크나무로 프레임을 짰다. 그러자, 벽과 벽이 분리되어 그림이 되고, 화면과 틀이 분리되면서 또 하나의 조각(오브제)으로 보이는 작품이다. 모노크롬 회화, 추상회화의 흐름을 잇는 작가인가?라고 묻자 그는 "거창한 사조나, 흐름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며 "그것보다는 물체 본연의 존재를 강조하는 '오브제 미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이번 신작은 '평면을 벗어나려는 회화의 입체화' 시도다. 모노크롬화의 탈을 쓴 오브제 조각이다, 젊은 작가답게 공간에 박제된 그림이 아니라 공간과 감상자의 반응에 반응하는 영리한 작품이다. 무엇을 그렸는지 고민하고 어려워할 필요가 없다. 고정된 감각을 비틀어 지각 경험을 확장시킨 것에 불과하다. 물리적 형태 그 자체에 국한되어 '무엇을 보느냐'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를 환기시킨다는 점이 우월하다. 모노크롬 전통의 틀을 살짝 바꾼 아이디어가 재기발랄하다. 흰색에 프레임 하나 짰을뿐인데 고급스런 작품이 되는, 제이콥 카세이의 모노크롬 회화가 동시대 현대미술시장에서 각광받는 이유다. 이번 신작은 4000~5000만원선이다. 전시는 6월 26일까지. hyun@newsis.com 2018/05/10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미디어아트로 개관전 연 이유? 3일 아모레퍼시픽그룹 미술관이 공개됐다. 서울 한강로 신용산역과 연결된 신사옥 1층에 마련된 미술관은 동시대 최첨단 미술의 향연을 보여준다. 개관 기념전은 멕시코 태생의 캐나다 작가 라파엘 로자노 헤머(52)의 작품이 들어찼다. 26년간 기술을 기반으로 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대중과 교감해 온 미디어아티스트다. 이 전시는 작가의 최초 한국 개인전이자, 아시아 회고전이다. 미술관측은 "작가가 강조하는 사람과 관계, 공동체의 가치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잘 맞기 때문에 첫 기획 전시의 주인공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공공미술프로젝트를 활발히 펼쳐온 작가답게 전시는 '함께', '다같이'를 추구한다. 미디어아트의 기본은 인터렉티브(interactive)다. 작품은 관람객이 참여해야 완성된다. 작가를 알린 1992년도 초기작 'Surface Tension'(표면 긴장)부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 맞춘 신작 5점을 포함, 총 29점을 전시했다. 사옥 1층 미술관 로비부터 작품이 시작된다. 지름 3m의 거대한 3D 원형 조각 'Blue Sun'이 끌어들인다. 지난 10년간 태양에 대해 나사(NASA)와 작가가 협업한 결과물로, 태양 표면에서 포착되는 불꽃과 얼룩, 요동치는 움직임이 원형으로 구현됐다. 작품은 342개의 널에 부착된 25580개의 LED 전구들이 켜졌다 꺼졌다 하며 오로라같은 신비함을 선사한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과 퀘백 현대미술관의 공동지원으로 제작됐다. 지하 전시장은 그야말로 '한바탕 놀이마당'처럼 연출됐다. 첫번째 작품은 '모래판'이 등장한다. 미국 LA의 산타 모니카 해변에서 진행한 공공프로젝트를 실내로 옮겨와 거대한 인공 해변을 꾸몄다. 70톤의 모래를 깔아놓은 작품은 관람객이 스스로가 주인공이 된다. 신발을 벗고 모래판에 들어가 움직이면 그 자체가 작품이 된다. 미술관측이 작가에게 제안한 작품으로 가장 예상밖의 즐겁고 새로운 작품이어야 한다는 주문이 있었다.서로 만지고 공간을 점유하고 서로 바라보고 함께 있다는 느낌을 경험으로 완성된다. 하나의 놀이로서 관람객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것이 컨셉이다. 나의 지문을 기록할수도 있는 작품도 있다. 220배로 확대 가능한 전자 현미경과 심장 박동 측정기가 내장된 센서에 손가락을 넣으면, 센서를 통해 지문이 곧바로 화면의 가장 큰 칸에 나타나며 심장박동에 맞추어 진동한다. 지문을 사용한 일종의 죽음의 상징, 즉 메멘토 모리라고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마치 거대한 영상 회화처럼 보인다. '우리는 같은 사람, 인간'이라는 것을 벅차게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240 개의 투명 백열전구로 구성된 'Pulse Room'은 검은 방의 울림을 심장소리로 완성한다. 전시장 한 켠에 위치한 내장된 센서를 두 손으로 잡으면 심장 박동을 측정한다. 관객이 인터페이스를 잡으면 컴퓨터는 맥박을 감지하고, 참여자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전구가 맥박의 속도에 따라 깜빡이기 시작한다. 인터페이스가 측정한 데이터가 전시장에 방출되는 순간, 모든 전구들은 꺼지고 기록된 시퀀스가 한 칸씩 이동하며 빛을 내며 심장 박동소리로 맹렬하게 화답한다. 전시된 모든 작품들은 키네틱 조각, 생체측정 설치작품, 사진, 상호반응 우물, VR, 나노 기술, 사운드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최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구현됐다.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뉴스, 문학, 취조실 거울, CCTV와 같은 감시장치 등이 작품 내용을 구성하며, 맥박, 목소리, 지문, 초상, 발화시 공기의 파장, 인체의 움직임, 상대방과의 거리 등 우리의 몸과 움직임이 인터페이스로 활용된다. 데이터 과학 용어이자 이번 전시 제목인 ‘Decision Forest’는 관람객의 선택, 그리고 관람객과 작품의 상호작용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결과값을 의미하기도 한다. 3일 한국 기자들을 만난 라파엘 로자노헤머 작가는 "지난해 4월 방한해 공사중인 신사옥을 보면서 구상한 전시를 완성했다"며 "1992년 최초 작품부터 월드 프리미어 5점이 포함되어 있어서 중간 회고전 성격이다. 한국 관객이 어떻게 봐줄지 긴장되고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캐나다 콘코디아대학교에서 물리화학을 전공한 작가는 컴퓨팅 기술을 예술화해 대중과 예술의 쉬운 소통을 주선하고 있다. 최신 기술을 이용하는 미디어아티스트 작가인데 "뉴미디어로 불리는게 싫다는 그는 자신의 작품은 전혀 새로운게 없다"고 했다. 그는 공공장소에서 컴퓨터, 프로젝터, 사운드 디바이스, 센서, 로봇 등 전자 기기 기술을 이용한 대규모 인터랙티브 설치를 통해 관람객과 실시간 소통하는 작가로 일반인에게 알려졌다. 미디어아티스트로서 "대중을 작품의 일부로 참여시킨 것에 대해 백남준에 빚지고 있다"면서 이번 전시의 한국 관객들의 반응을 더욱 궁금해 했다. 작가는 그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작품과 교감하기를 바란다. 스스로 작품 일부가 되어 직접 체험하고 느끼라고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전시가 끝난후에야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즐겼다, 어떻게 반응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 같아요. 작품 전반이 테크놀러지의 양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전시여서, 과연 이것이 유희적일지, 무섭고 폭력적일지 그 반응이 무척 궁금합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개관전은 아모레퍼시픽 그룹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걸린 그림, 세워놓은 조각이 아니라, 미디어아트를 선정한 건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의지다. 관람객이 작품에 끼어들도록 유도하는 전시 작품들처럼 대중과 가깝고 친밀하게 소통하는 미술관이 되겠다는 바람이다. 신사옥과 함께 눈길을 끌지만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첫 개관이 아니다. 1979년 태평양박물관이 모태다. 2009년 아모레퍼시픽미술관으로 명칭을 바꿔 경기도 오산과 용인에서 미술관을 운영해오다, 올해 2월 신사옥으로 들어왔다. 우리나라도 '박물관·미술관 1000개 시대'지만 미술관 문턱은 여전히 높다. 서울에만 재벌기업이 운영하는 미술관은 10곳이다. 삼성미술관리움(삼성), 아트센터나비(SK), 아트선재센터(대우), 금호미술관(금호아시아나), 성곡미술관(쌍용), 대림미술관(대림), 한미사진미술관(한미약품), 포스코미술관(포스코),세화미술관(태광그룹), 일우스페이스(한진그룹)등이 있지만 대중들과 공감을 이루는 미술관은 손에 꼽기 힘들다. '누구나 올 수 있는 열린 공간’을 표방하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또 하나의 '재벌 미술관'이 될지, '열린 미술관'이 될지는 기획력에 달렸다. 이번 개관전에 초대된 라파엘 로자노헤머 작가가 말했다. "한국에도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가 많다. 문경원·전준호는 물론, 장영혜중공업, 최우람 작가와도 친하다. 그런분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그런면에서 '재벌 미술관'들의 개관전은 늘 해외 작가로 열리는 건 아쉬운 점이다. 전시는 8월26일까지. 관람료 1만2000원. hyun@newsis.com 2018/05/03
대충 그렸는데 쿨내 진동...알렉스 카츠 "저는 앤디워홀에 약간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정말 뛰어납니다." 최근 미국 뉴욕 가고시안갤러리 출판담당이자 베스트 셀러 작가인 데릭 블라스버그와 인터뷰에서 그는 "1960년대 함께 활동했지만 워홀을 파티에서 보기만 했을뿐 어울리지는 않았다"고 했다. "좀 더 문학적인 모임에 속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어쩔수 없다. 그의 작품에서는 팝아트 황제 앤디워홀(1928~1987)의 그림자가 있다. 영화 장면같거나, 광고판 같은 그림이다. 특히 남성보다는 여성을 내세운 초상화 같은 작품으로 일명 '카츠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알렉스 카츠(91). 독창적인 초상회화 세계를 구축한 그는 현재 '현대 초상 회화의 거장'으로 불린다. 1960년대 이래 인물초상을 그리며 가장 '뉴욕적인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앤디워홀이 '미술계 끝판왕'으로 활약했던 1960년대 알렉스 카츠도 뉴욕에 살고 있었다. 미국 산업사회 부흥기와 함께 뉴욕은 TV, 영화, 광고 등 새로운 미디어의 도시이자 바넷 뉴먼, 프란츠 클라인으로 대표되는 색면 추상, 잭슨 폴록의 올오버 페인팅(All over Painting), 제스퍼 존스, 앤디워홀의 팝아트 등 새로운 시각 예술이 공존하는 예술의 도시였다. '부흥의 도시'에서 화가로 살아내야 했던 그는 특정 미술 사조에 편승하지 않았다. 다만 거장들의 기법을 모방해 섞었다. 색면과 인물의 모습을 결합한 카츠만의 독창적인 '초상화 스타일'을 창조한다.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과 앤디워홀 팝아트, 또 '액션 페인팅' 잭슨폴록의 기법이 들락날락한다. 가장 큰 특징은 단색의 대형 화면에 인물을 배치하는 것. ‘크롭-클로즈업’의 방식을 이용한 대담한 구도로, 광고 사진이나 영화의 클로즈업 장면 같아 관람자가 인물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이 같은 기법은 '카츠 스타일'이 됐다. 그림은 묘하다. 팝아트도 아니다. 최근에 제작한 작품 '코카콜라'는 브랜드명도 없지만, 색채만으로 코카콜라를 보여주며 여유와 휴식을 나타낸다.앤디워홀의 작품 '캠벨수프', '코카콜라'와 다른 차이다. 워홀의 코카콜라가 대통령도, 마릴린 먼로도 마시는 기회와 평등의 나라의 가치를 보여준다면, 카츠의 '코카콜라'는 평등의 의미보다는 쿨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전한다. 특히 선적인 움직임을 강조하면서 선과 색, 브랜드의 이미지가 결합된 새로운 화면을 보여준다. 캘빈 클라인 속옷을 입은 작품도 마찬가지. 캔버스는 카메라의 프레임이 되고 캘빈 클라인 로고에 담긴 자신감과 세련됨이 독특한 화풍으로 완성됐다. 거장이라고 하는데,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은 대충 그린 느낌이 강하다. 배경도 명암이나 그림자도 없이 단색으로만 칠해져있다. 여성의 동작을 포착하며 순간 순간의 제스추어에 집중하는 그만의 기법이다. 이 때문에 젝슨폴록의 페인팅을 이어받았다는 평이다. 자세히 봐도 더욱 결코 잘 그린 그림이 아니다. 균형이 맞지 않고 왜곡된 느낌을 연출한다. 이주은 미술사학자는 "순간 포착을 하기때문에, 카츠가 순간에 봤기 때문에 너무 공들여 그리면 그 느낌이 사라지기 때문"이라며 "카츠가 그린 인물은 현재성에 가두어놓은 작품"이라고 했다. "초상화속에 인물이 가진 상징이 아니라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속적인 현재 시제속에 머물게하는, 순간적인 아름다움에 감수성을 입힌 작업"이라는 것. 구상과 추상이 혼성되어 있는게 '카츠 스타일'의 매력이다. 배경을 한가지 색으로만 칠해 색면추상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마크 로스코처럼 영혼이 깃든 것은 아니고 '쿨하고 세련되게' 사물을 바라본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허물어 미술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장르인 초상화를 가장 아방가르드한 기법으로 재해석해냈다는 평가다. '카츠 스타일'을 한자리에서 볼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롯데뮤지엄은 ‘알렉스 카츠, 모델&댄서’전시를 25일 개막한다.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개최되는 대형 전시로 초상화, 풍경화, 설치작품(컷아웃)등 70여점을 선보인다. 특히 올해 92 세의 고령에도 열정적으로 작업한 최신작 CK, 코카콜라 시리즈를 세계 최초로 서울에서 공개하는 의미있는 전시다. 전시에는 60여년간 평생을 그려온 영원한 뮤즈인 부인 ‘아다(Ada)’ 작품도 나왔다. 카츠의 화면에서 아다는 우아함과 신비함을 가진 주인공이다. 뉴욕 상류사회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단색의 대형 화면에 클로즈업된 인물을 배치하는 카츠만의 표현방식은 아다의 고혹적인 분위기를 더욱 극대화했다. 알렉스 카츠는 그의 부인 ‘아다’의 초상화를 250여점 이상 그렸다. 아다를 만난 1957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아다를 그려내고 있다. 카츠의 초상화가 인기를 끌수록 아다는 아름다움의 표본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카츠도 자랑스럽다. "아다는 유럽적인 아름다움과 미국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진 완벽한 모델이다. 만약 그녀가 지금보다 2인치만 더 컸다면 미스 아메리카가 되었을 것"이라며 "그녀는 무용수와 같이 풍부한 제스처를 표현해주었다. 나는 진정한 행운아”라고 했다. 아흔이 넘은 그는 여전히 주 7회 매일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전업화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가족을 부양하고 싶었지만 일이 풀리지 않았다. "작가로서 삶을 산다면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대가들과 경쟁하고 싶었다"고 했다. 늘 거대한 화면에 그림을 그리는 카츠는 "제품을 생산하고 싶지는 않다"며 워홀의 후예들과는 다르다는 뉘앙스로 선을 그었다. "내 작품들은 전부 다 다른 사이즈의 캔버스에 그려지고 소재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고 자부했다. 간단하고 쉽게 보이는 만화같은 작품이지만 "내 작업의 근간은 사실에 기반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전시 도록에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새로운 댄서 시리즈는 그들이 보여주는 표정과 제스처를 묘사하고 있다"며 "캘빈 클라인과 코카콜라시리즈는 현실의 일부분으로서 존재하는 개인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시도"라고 밝혔다. 전 세계에서 러브콜하는 작가로 현대미술 대가가 된 알렉스 카츠는 1951년부터 200여 건의 개인전과 500여 건의 단체전을 진행했다. 메트로폴리탄, 모마 미술관, 휘트니, 브루클린,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워싱턴의 내셔널 갤러리, 사치 컬렉션, 테이트 미술관 등 전 세계 100곳의 국공립 미술관에 알렉스 카츠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살아남은 자가 강자다. '팝아트 황제' 앤디워홀보다 오래 살아남은 그는 '세계 10대 화가'로 등극해 동시대인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뉴요커'로' 뉴욕 사람들'을 브랜드화해 '뉴욕적인 화가'로 불리는 카츠는 결국 '삶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보편적인 에너지를 보여준다. 왜 현대인들은 '카츠 그림'에 열광하게 됐을까. 현실은 예측할수 없는 변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써놓은 알렉스 카츠의 '쿨내 진동'하는 멘트가 힌트다. "그림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당신에게 그림이 필요할 뿐. 그림이 바로 당신이 되어야 한다." 전시는 7월23일까지. hyun@newsis.com 2018/04/24
'오용길'로 통하는 '수묵대길' 조선시대 겸재 정선(1676~1759)이 있었다면 대한민국에는 한국화가 오용길(70)이 있다. 정선이 진경산수화를 창시했다면, 오용길은 진경산수화를 이어받아 21세기 버전으로 업데이트중이다. LTE급으로 급변하는 현대미술 흐름속에서도 한눈 팔지 않았다. 먹과 붓, 지필묵이 사라져가도 오로지 '수묵 풍경'에 천착했다. 50년째 한 길로 걸어오자 한국화단은 '오용길'로 이어졌다. 올해 고희가 된 그는 겸재 정선처럼, 새로운 그림을 그려냈다. 지난 몇년간 중국의 명산들을 돌아본 후 터지는 감탄을 화폭에 담아냈다.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한 오용길 개인전은 한국화단의 기념비적인 전시로 기록 될 것 같다. 100호에서 500호, 2m~3m 이상의 대작들로 웅장하고 수려한 명산의 모습을 포착한 수묵 산수풍경이다. 중국의 명산 (황산, 무이산, 태행산, 안탕산)을 다룬 그림 25점을 걸었다. 생동감 넘치는 봄 풍경을 담은 그림은 수묵담채의 깊은 여운을 살려 빼어난 동양적 미감에 압도된다. 작품에 달린 '태행(太行)'이라는 제목이 이번 전시를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중국의 명산을 만난 과정이 오 화백에게 큰 감흥과 행보였음을 보여준다. 맑고 파릇파릇 청아한 기운을 머금고 있는 나무와 온갖 식물들이 대형 화면속에 어우러져, 감상하고 있으면 마치 봄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듯한 흡입력이 느껴진다. 근경과 중경은 오용길 특유의 잔붓터치로 마감한 담필의 특성을 제대로 살렸다. 가까이 보면 나무 이파리들, 풀 하나에도 생명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원경에 배치된 산의 묘사는 하늘과 맞닿을 만큼 높게 치솟은 기암절벽을 먹색의 연한 담묵으로만 처리함으로써 그 규모와 멀어져가는 자태를 보기 쉽게 대비시켰다. 덕분에 기운생동하는 암벽의 특성을 유지함으로써 풍광의 장엄함과 함께 대형 화면의 긴장감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먹으로 그린 그림, 촌스러운듯 하지만 직접 보면 그 생각이 변한다. 꼼꼼하고 차분하게 이어지는 화면속 리듬과 풍경은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옛날 그림 같지만, 우리가 늘 보고 느꼈던 풍경을 거울처럼 비춰내고 있다. 늘 사생을 다니고,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깊은 수묵의 전통미와 신선한 현대적 미감이 교묘하게 융합된 하모니는 새삼 놀라움을 선사한다. 화면 곳곳에 작게 등장하는 점경인물을 찾아보는 맛도 있다. 나들이 나온 듯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과 등산복을 입고 하산하는 사람들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점경인물의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법은 오용길 수묵풍경만이 갖는 특별한 장치다. "일부러 엉뚱하게 그려야 대접받는 시대다. 나처럼 하면 고리타분하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오용길이 그린 그림에 갈채를 보내지만 현대미술 흐름으로 보면 완전 구닥다리다. 하지만 나는 구닥다라라도 상관없다." 전시장에서 만난 오 화백은 자신을 '구닥다리'라고 칭하면서도 즐거움이 넘쳤다. "그림같지 않은게 그림 대접받는 세상은 짜증나지만 그렇게 돌아가는 세상, 나는 나 좋은대로 해왔다"며 "나만큼 먹을 잘 다루고 사물을 다뤄 본 사람 있냐, 나는 늘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1980년대부터 그는 실경산수화를 발표해왔다. 기존의 관념적 전통산수화에서 탈피해 친근한 풍경을 다룬 수묵화로 한국화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특히 1990년대부터 시작한 매화, 산수유, 벚꽃 등을 화면 가득히 그린 화사한 그림은 작가 특유의 화풍으로 많은 작가들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80년대 미술시장에서 이왈종, 이숙자, 황창배, 박대성 등과 함께 스타작가로 꼽혔다. 90년대 서양화의 인기속에 인기 작가들도 '서양화같은 한국화'로 변했지만 그는 먹을 놓지 않았다. 한국화 전문 화랑도 동양화를 외면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전통 수묵화의 대를 이으면서 현대적으로 계승한 독보적인 한국화가로 꼽힌다. 이제 한국 미술사를 이야기할때, 오용길을 빼고는 안될 정도로 존재감 있다. 수묵담채화 대가인 그는 "무엇보다 그림은 품격이 있어야한다"고 정의했다. "서울예고때 김병기 선생이 해준 말씀으로, 지금도 마음 바닥에 그 말이 있다"고 했다. 서울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27세에 1973년 국전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아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한국화의 권위있는 상인 월전미술상·의재 허백련 예술상·이당미술상·동아미술상 등 상이란 상은 휩쓸었다.1978년 수도사대 교수가 된후 이화여대로 옮겨 미대 학장을 역임했고, 현재 이화여대 명예교수이자 한국 수묵화의 맥을 잇는 후소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화가가 된 건 "팔자"라고 했다. "어떤 시절에 누구를 만나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가 중요하다. 난 태어날적부터 끄적거렸고, 내가 봐도 잘 그렸네! 할 정도였다. 그림 그리는게 좋았다. 누구도 가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예고에 들어갔다. 당시에 형과 누나가 소질을 살려야 되는 세상이라니까 부모님도 그냥 보내주었다. 좋은 학교 들어가니 좋은 선생을 만났고 교수가 됐고, 그래서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다"며 "그런대로 팔자가 좋았다"며 미소지었다. 한국화를 전공한 것도 그냥 좋아서였다. "중학교때였다. 경복궁 향원정 건물에서 국전을 선보였다. 그곳에서 본 동양화는 멋있고 가슴이 뛰더라. 유화도 있었는데 칠한 물감이 보이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먹으로 그린 작품을 보면 와우~감탄이 났고 나도 저렇게 해야지, 한게 벌써 50여년이 넘었다" 왜 그림을 좋아했을까?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좋은데, 시켜서 하는건 안돼, 좋아서 해야지." 그는 그림처럼 담담하고 뚜벅뚜벅 걸어왔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이것도 갖고 저것도 갖고 그건 욕심쟁이"라면서 "무리없이 대학도 가고, 교수도 됐고, 화가로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특히 "그림이 부끄럽지 않게 나오니까" 화가로서도 만족한다고 했다. '한국화가 죽었다'는 세간의 말들과 달리 그의 해법은 단호했다. "한국화 작가들이 좋은 것을 보여주면 되는데, 그게 약하다. 박대성 화백같은 비중있는 작가들이 많아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그런 작가가 많지가 않은게 문제다" "젊은작가들도 지필묵을 아예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한국화는 몇년해서 되지 않는다.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견딜 재간이 없다. 환호와 반응도 없고, 그러니 얄궂은 울긋불긋 그림으로 가지 않나" 한국화 호시절도 있었다. 그는 "80년대는 한국화가 걸리기만 해도 팔리던 시대였다"며 "당시 송영방 이영찬 이종상 같은 선배들이 한국화 붐이 일었을때, 일명 '돈맛'을 본 세대였다. 이젠 그 세대가 너무 조용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오 화백은 "급변하는 시류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화단은 좋은 작가들이 좋은 그림을 보여주면 살아난다. 한국화가 침체된 요인 중 하나가 작가들이 좋은 것을 보여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은 대규모 전시장으로 웬만한 화가들이 엄두를 못내는 전시장이다. 대개 그룹전과 아트페어로 활용하는 전시장으로 이번 오 화백의 전시는 그래서 주목된다. 최근 몇년간 보기 드문 대형 한국화전시여서 이례적이다. "나는 자랑할게 있다면 내 그림에는 누구하나 털끝 하나 안 건들었다. 오용길이가 다했다, 이건 자랑"이라며 활짝 웃었다. 주변에서는 젊은 작가들보다 더 왕성하게 작업한다고 입을 모은다. 부지런하고 성실함과 정확함은 오 화백의 최고 덕목이다. 이번 전시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차곡차곡 그려 쌓았다 공개하는 신작이다. 중견작가의 잠재된 역량과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하는 대작을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서양화 일색인 현대미술시장속에서 한국화는 죽었다고 단정하는 시선이 있지만, 제 몫을 해내는 중견화가의 활약이 있기에 한국화의 또다른 비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당연히 하겠지. 조바심 낼 것도 없고, 좋은 것 계속 보여주면, 오용길 안 부르고 누굴 부르겠어. 입으로 떠들어선 안돼. 이번 그림 보고 아, 역시~오용길이는 한국화에서 빼먹으면 안되겠네 이런 소리 나올 것 같지 않아?" 나이 70에도 대형 작품을 완성해 전시하는 화백은 신바람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인 '오용길 삼행시'를 건네자, 역시나 자신감과 자부심을 과시했다. 오~. "오호라" 용~."용길이가 힘 좀 썼네" 길~. "길길이 날뛰면서, 좋아하면 미쳤다고 그렇겠지? 하하하!" 전시는 21일까지. hyun@newsis.com 2018/04/14
강박증이 만든 그림...최병진 '팟홀' 최근 몇년간 미술시장서 보기 드문 화풍이 등장했다. 매끈한 극사실회화와 팡팡튀는 팝아트류의 작품이 주를 이뤘다면, 이 그림은 한마디로 규정할수 없어서 신선하다. 그렇다고 아주 색다르거나 독특한 기법은 아니다. 어디선가 본 듯하고, 오래된 그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색감이 묘한 '표현주의나 입체파 그림' 같기도 하다. "미술사적으로 접근한건 아니다. 파편화돼 보인다는 그런 느낌때문에 차용했다." 화가 최병진(45)은 예술가로서의 천형을 견디고 있다. 말로는 글로는 쓸 수없는 느낌을 그림으로 풀어낸다. '그림은 모든 걸 아우르는 종합예술'이라는 측면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의 그림은 자신의 몸에서 나온다. '강박'과 '콤플렉스'가 작업 밑천이다. 13년전부터 시작된 강박증 때문이다. 강박에 쌓일때면 일어나는 "경화되는 느낌"이 강력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물질의 위협과 공포는 상상이 더해져 "숨을 쉬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 압도된다. 병원에서도 딱히 치료법은 없다.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물치료가 고작이다. 강박이 시작되면 몸이 딱 굳는다. "공포에 감각이 곤두서며 살결에 닿는 모든 공기가 느껴지고 임계점(臨界點)에 다다르면 서서히 얼어붙는 것 같은 말로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 그러다 "작업으로 해볼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이전에도 그 같은 증상이 나왔지만 밖으로 나타내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틀안에 가두고 감췄다. 그 '경화된 느낌'을 화폭에 끄집어내자 증상이 완화되는 듯했다. 강박으로 일어나는 기분 나쁜 몸의 변화와 그 체험을 그려본 작업은 공포의 무게와 강박의 공기를 점점 누그러트렸다. 그렇게 나온 그림은 철벽을 두른 듯하다. 회색의 조각들이 들러붙어 얼굴을 감싼 그림, '초상 시리즈'가 탄생한 계기다. 강박을 그려내면서 점차 자아의 실마리를 찾아갔고, 무심코 콤플렉스가 고개를 다시 들었다.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소년으로 남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화폭은 다시 콤플렉스를 꺼내왔고, '군상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작가는 자신의 강박과 콤플렉스를 '팟홀'에 빗대어 설명했다. "반복해서 복구해도 비가 오면 다시 드러나는 팟홀처럼 인간의 강박과 콤플렉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극복되리라 기대했지만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는 것. '팟홀'은 하천 침식작용에 따른 기반암의 구멍이나, 빗물에 의해 도로 아스팔트 포장에 생기는 구멍을 말한다.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팟홀(Pothole)'을 주제로 최병진의 제 4회 개인전을 열고있다. 2007년 그룹전에서 이화익 대표가 눈여겨본 후 2012년 개인전을 열었고, 6년을 기다려 최병진의 신작을 선보이는 전시다. 이번 전시에는 초상 시리즈와 군상시리즈 25점을 걸었다. '초상' 시리즈가 강박을 테마로 삼고 있다면 '군상'시리즈는 자신의 콤플렉스에 대한 이야기가 뿌리다. '군상 시리즈'중 이번 전시 대표작으로 내세운 '사랑의 막대기'는 작가의 성장기 성적인 콤플렉스를 표현했다. 남자 3명이 기둥에 묶여 있는 그림에 대해 작가는 "보이지 않는 막대기를 짊어지고 뭔지 모르지만 신체를 부벼가면서 싸우는, 늪에 빠진 것 같았던 삐뚤어진 학창시절을 담았다"고 했다. 웬지 '겉늙어'보이는 인물들은 작가의 모습이다. 그는 "나이를 먹어도 콤플렉스가 하나도 해소가 안되고 컸구나라는 생각이 이 작업의 동기가 됐다"며 "그래서인지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모습과 그로데스크하게 신체를 왜곡시키고 자연스럽게 명암과 면을 파편화시킨 작품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성장기의 콤플렉스'를 담아낸 군상 시리즈는 자조적인 유희, 블랙 코미디에 바탕을 뒀다. ‘어른의 탈을 쓴 미숙한 청년’같은 화면속 인물들은 꽉차게 들어앉아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여준다. 작가는 "꿈틀대고 일그러진 몸짓, 접촉하여 욕구를 채우는 인물들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배치되는 공간을 좁아보이게 왜곡시켰다"면서 "결여를 채우지 못한 채 시간에 의해 어른으로 포장되어서 어색하게 자리 잡은 나의 모습"이라고 했다. 평면이면서 입체적으로도 보이는 작품은 탄탄한 기본기로 무장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미술입시를 거친 예원예고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작가의 '강박'과 '콤플렉스'가 완성한 그림은 아이러니하다. 회색톤의 철갑을 두른 듯한 '초상 시리즈'는 마치 게임속 캐릭터 같아 재미있다는 반응으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보는이의 다양하고 열린 해석이 그림의 매력이다. 대개 그림 제목에 '무제'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게임 캐릭터 같은 초상 시리즈는 군상시리즈와 달리 제목이 없다. 딱딱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숫자를 달았다. 전시는 30일까지. hyun@newsis.com 2018/04/12
'내일의 작가'...노화랑 '新 200만원'전 서울 인사동 노화랑이 개관 40주년을 맞아 새 변신에 나섰다. 매년 봄이면 완판 행진하던 '200만원'전을 올해는 '미래 작가'들을 화려하게 선보인다. 1999년 '미니아트 마켓'을 타이틀로 매년 봄 열어온 '작은 그림-200만원'전은 미술시장 대중화의 활력이다. 국내 유명원로 작가 소품 한점을 200만원씩 파는 이 전시는 작품을 걸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이두식 윤형근 서세옥 민경갑 송영방 이우환 하종현 이왈종 전광영등 원로부터 이석주 황주리 이수동 주태석 지석철 등 중견작가까지 매년 20명의 작가당 10점씩, 200점이 순식간에 솔드아웃되는 사태로 노화랑은 해마다 즐거운 비명이었다. 안전하게 진행하던 '효자 아이템’을 제치고 젊은 작가로 새 기획전을 여는 건 인사동 터줏대감 화랑의 사명감때문이다. 노승진 대표는 "그동안 일반 미술애호가들이 컬렉션하기 쉽지 않은 중견과 원로작가들을 선보이며 미술시장 대중화에 나섰다면, 올해부터는 유능한 작가들을 소개해 새내기 미술애호가들의 컬렉션 진입문을 넓히겠다"고 밝혔다. "미술시장의 성장은 예술성 높은 작품과 진정으로 미술문화를 사랑하는 미술애호가들을 확대하는 것"이라는 그의 화랑 운영 철학이다. 새 봄 전시 타이틀은 ‘내일의 작가-행복한 꿈’이다. 올해는 김덕기, 김동유, 노세환, 박성민, 박형진, 송명진, 윤병락, 이강욱, 이동재, 이호련 작가가 초대됐다. 이들 작가 10명의 3~12호 소품 100여 점을 전시 판매한다. 점당 판매가격을 시중보다 최고 30% 낮은 균일가 200만원으로 책정했다. 김덕기는 가족 모두가 꿈꾸는 행복을 화려하고 즐겁게 그림에 담아낸다. 색채는 점점 더 화려하고 과감하고, 현란하게 변화하고 있다. 김동유는 이중초상, 크렉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일이 더 많은 그의 작품은 작은 픽셀을 쌓아 제작하는 작가다. 유명인의 초상으로 또 다른 유명인을 그리는 그의 작품은 이진법을 사용하는 디지털과 닮아 있다. 노세환은 회화작가같은 사진작가다. 바나나는 바나나고 사과는 사과인데, 작품 속에 흐르는 에로틱한 느낌이 그의 작품을 약간 낯설게 한다. 박성민은 얼음 속에서도 싱싱하게 빛나는 식물과 과일을 사진보다 더 정밀한 극사실화로 담아낸다. 박형진은 동화같은 그림이다. 연한 초록색을 품은 커다란 새싹, 역시 화면 전체를 차지할 만큼 큰 개와 아이를 주로 그린다. 송명진은 눈에 친숙한 것들인 것 같지만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을 만들어내고, 윤병락은 사과작가로 재현의 정치경제학이 작동되는 현대사회의 현상을 표현하고 있다. 이강욱은 거시세계와 미시세계, 세포와 생물, 가시공간과 비가시공간을, 이동재는 쌀을 하나하나 붙여 형상을 만들고, 유명노래의 알파벳을 하나씩 붙여 제작한다. 이호련은 섹시한 작가로도 알려져있는데 여인들의 옷차림과 포즈를 통해 관음증을 자극하는 작품을 보여준다. 이번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서울대, 홍익대, 중앙대, 경희대, 동국대, 경북대, 목원대 등 출신 학교도 모두 다르고, 40대에서 50대 초반으로 연령도 다양하다. 그만큼 개성이 뚜렷하다. 같은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없고, 주제와 소재 역시 개성이 두드러져 이들의 그림은 말 그대로 한국현대미술의 다양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한국현대미술이 다양함과 복합성을 갖추어 나가고 있을 정도로 작가 계층이 두터워졌다. 다시 말하면 미술시장의 스펙트럼이 넓어졌고 미술애호가 계층도 확대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미 화랑가에서 유명세를 탄 작가들을 모은 전시라고 치부할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작가들이 소품을 내놓기는 더욱 이례적인 전시로 화력 40년의 노화랑 내공이기에 가능한 전시다. 대부분 10여년전 미술시장 호황기때 작품이 날개돋힌듯 팔려나간 '스타작가'로 경쟁 아닌 경쟁을 해왔다. 이들은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 기획전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화랑과 국내외 옥션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며 믿고 사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작품들은 제각각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소재와 기법의 차별화는 있지만 모두 '노동집약적 작업'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작다고 허투루 그린 그림이 아니다. '스타 작가'들의 100점이 걸린 이번 전시, 과연 누구 작품이 먼저 완판 될지 주목된 가운데 윤병락, 김동유, 이동재 작품이 벌써 품절됐다. 작가들도 긴장모드다. 전시는 20일까지. hyun@newsis.com 2018/04/09
혼족 시대 '가족 판타지’ '머니 머니' 해도 가족이 최고다. 늘 함께해 투닥거리며 웬수같아도 가족은 '우리 편, 내편'의 최전선이다. 가족에 죽고 사는 작가 하면 미술시장에서 화가 김덕기(50)가 꼽힌다. 가족을 소재로 동화같은 풍경화를 담아낸다. 밝고 경쾌한 색감으로 가족의 행복을 전달한다. 그림은 작가의 그림일기다. 서울에서 10여년간의 교직생활을 접고 경기 여주로 내려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 한적한 마을의 정원이 딸린 주택에서 아내, 아이와 함께 지낸다.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화폭에 풀어낸 작품은 화려함으로 눈부신 그림처럼 "가족이야말로 삶을 지탱해주는 에너지의 원천"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아이가 그린듯한 사람들과 현란한 원색에 가려졌지만, 그림속을 살펴보면 민주적이다. 똑같은 크기로 반복적으로 찍은 점점점이 '화룡정점'이다. 나무와 나무, 꽃들이 동등한 모습으로 자연에서 노니는 가족을 지켜주고 있다. 물감을 찍어 그린 '점묘법'같은 그림은 튜브에서 바로 짜낸 원색으로 칠해졌다. 팔레트에서 물감을 혼합해 쓰지 않는게 특징이다. 서양화 재료인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지만,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이라는 흔적이 숨어있다. 화면 전체 색감은 우리 전통색인 '오방색'으로 완성한다는 점이다. 2008년부터 '작업실에 재고가 없을 정도'로 인기를 누린 작가다. 처음 미술시장에 등장했을땐 뻔한 구상화였는데 이제 그의 그림은 초현실화같은 느낌을 준다. '혼족'시대와 '아파트 공화국'에 사는 현실에서 큰 나무가 있는 정원 딸린 집에서 4명 가족이 사는 모습은 '판타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매년 봄이 되면 화랑가에서 러브콜하는 그림으로 올해는 롯데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선보인다. 5일부터 '가족, 함께하는 시간'을 타이틀로 50호 신작 한 점과 작가의 스타일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1호 크기 20여점을 전시한다. 초기작부터 근작, 완성작으로 탄생하진 못했지만 자체로도 비구상 작품이 될법한 비컷 작품들도 공개한다.전시기간인 7일, 28일 2차례 '김덕기 작가의 미술학교'를 진행한다. 선착순 11팀 (1팀당 최대 4명, 부모님 포함 초등학생&미취학아동)이 작가와 함께 '가족’ 그림을 그려볼수 있다. 전시는 29일까지. hyun@newsis.com 2018/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