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르포] 미술관 들어설 대왕암공원 가보니 "백남준 작품이 보였다"

등록 2021-07-18 10:18:47

울산시, 옛 교육연수원 자리에 미술관 건립 추진

꽁꽁 닫힌 옛 교육연수원…백남준 작품 이미 왔다?

반구대암각화 전통과 맥 닿는 작품… '거북' 추정

행정당국, 보안 또 보안…"건물 안에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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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 구미현 기자 = 미술관이 들어설 울산 동구 대왕암공원 내 옛 교육연수원 자리. 2021.07.17.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구미현 기자 = 특급 호텔이나 리조트가 아닌 미술관이었다.

울산시는 동구 대왕암공원 옛 교육연수원 자리에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시립미술관에 이은 제2의 미술관이다
.
시는 올 연말 옛 교육연수원 건물에서 시립미술관 소장품 특별전을 여는 등 실험적 시도를 거쳐 미술관 건립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앞서 올해 연말 개관하는 시립미술관 소장품 1호도 발표했다. 세계적인 미디어아트 거장 백남준 작품이라고 했다.

문화 불모지 울산에 연이어 들리는 대박(?) 소식에 나름 문화 애호가라 자부하는 기자의 마음이 들떴다. 그래서 미술관이 들어선다는 공원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백남준을 떠올렸다. 

◇솔숲·바람…천혜의 비경 자랑하는 대왕암공원
 
울산의 12경 중 하나인 대왕암공원을 찾은 16일 정오. 이날은 303m 전국 최장 ‘출렁다리’ 개장식이 열린 다음날이었다.

출렁다리를 건너려고 줄서 있는 구름 인파가 신기했지만 기자는 발걸음을 돌렸다.

목적지는 미술관이 들어설 옛 교육연수원. 울기등대를 지나자 해안 둘레길과 함께 눈앞에 탁 트인 바다가 펼쳐졌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30도로 폭염의 기세가 연일 맹위를 떨쳤지만 시원한 바닷바람과 솔숲이 만들어주는 그늘이 흐르는 땀을 저절로 식혀줬다.

교육연수원 본관 건물에서 바라본 동구 앞바다의 모습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하늘 높이 솟은 빼곡한 소나무와 해안의 몽돌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곳을 미술관으로 지어야겠다고 결정한 행정당국의 깊은 뜻이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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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 구미현 기자 = 옛 울산교육연수원에서 바라본 대왕암 앞 바다. 대왕암은 울산 12경 중 하나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2021.07.17.  *재판매 및 DB 금지

◇꽁꽁 닫힌 교육연수원…백남준 작품 있다? 없다?
 
“반구대암각화로부터 이어지는 전통과 산업화 4차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지역 정체성을 살리는 미래형 디지털미술관 건립이 목표다. 이미 그런 작품을 준비했다.”

송철호 시장이 최근 한 방송 토크콘서트에 출연해 한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시립미술관 1호 소장품으로 백남준의 걸작을 확보했다는 소식도 연이어 들려왔다.

기자의 머릿속에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혹시 교육연수원 건물에 그 작품이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10월 북구 강동동으로 이전한 뒤 폐쇄돼 문이 굳건히 잠긴 건물들을 바라봤다.

교육연수원 본관 맨 오른쪽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건물과는 달리 입구 현관부터 3m 크기의 송판으로 한치의 틈도 보이지 않도록 막아 놨다. 건물 옆으로 가보니 통나무가 쌓여져 있었다.

혹시 작품을 통나무를 도르레 삼아 이동시킨 것일까? 한참을 서서 송 시장의 발언을 되짚고, 그나마 알고 있는 백남준의 작품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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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20일 서울 DDP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에서 열린 '백남준 10주기 특별전시, 백남준 쇼' 기자간담회에서 백 작가의 작품 '거북'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의 작품 100점, 임영균 작가가 찍은 백남준 사진 43점 등 총 143점을 통해 백남준 작가가 걸작을 완성하기 위해 걸어온 인생 여정을 재조명하는 무대다. 2016.07.20. [email protected]

◇TV부처·TV가든·거북·로봇…미술관 1호 소장품은?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산업도시 울산, 반구대암각화 그리고 대왕암공원과 맥을 같이 하는 작품일까? 끊임없는 궁금증이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역의 한 문화계 인사는 1호 소장품에 대해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소장품일 것이라고도 했고,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다다익선’ 급의 작품이 될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백남준 작품 중 최대 걸작 중 하나란 소리인데, 그 작품들 중 울산의 지역적 전통과 맥락이 닿는 작품이라면 바다 해양 생물을 모티브로 한 ‘거북’은 아닐까?란 생각이 조심스레 들었다. 백남준의 전성기 시절 제작한 작품 중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Turtle(거북)'은 166대 모니터 3채널로 10m×6m×1.5m의 대형작품이다.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거북형상을 선사문화 원형이라고 한다면 그럴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대왕암공원의 지형적 모습도 거북형태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반구대암각화의 거북 이미지가 해양과 근접한 대왕암공원에 얹힌다. 송철호 시장이 지역 정체성을 살리는 작품을 준비했단 말이 이 의미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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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 현관 입구부터 송판으로 막아놓은 울산 동구 대왕암공원 내 옛 교육연수원 부속 건물. 2021.07.17. *재판매 및 DB 금지


◇보안 또 보안…"안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자의 상상을 확인해야 하는 시간. 교육연수원 건물 관리를 맡은 울산 동구청 공원녹지과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 계장은 기자의 뜬금없는(?) 취재 내용에 대해 친절히 응대했다.

건물에 보관하고 있는 내용물이 궁금하단 게 기자의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담장 계장은 “별게 없다”라고 하더니 혹시 모르니 직접 현장을 다녀와서 알려주겠다고 까지 했다. 30여분 뒤 담당 계장은 “가보니 비료, 삽, 부직포 그런 것 밖에 없더라”라고 했다. “보안상의 이유로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니냐”라고 물었더니 “상식적으로 이런데 절대 (작품이) 있을 리가 없다”고 답했다.

울산시는 다음주 중으로 시립미술관 1호 소장품을 비롯한 컬렉션에 대해 발표한다고 한다. 울산도 곧 해안을 따라 새로운 문화 시대가 열린다. 기자의 추측이 한낱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래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