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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윤범모 관장 "제 생에 이런 컬렉션은 두 번 다시...행복한 관장 실감"

등록 2021-05-08 05:00:00  |  수정 2021-05-17 09: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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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주변에서 행복한 관장이라고 하던데 이제야 실감이 나네요."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복 받은 관장이다. 2019년 미술관장으로 임명된 후 이전 관장들과는 달리 순탄하게 근무하며 행운의 여신까지 함께하는 분위기다. 

개관 52년 사상 처음으로 미술관 누구도 상상 못했던 '이건희 컬렉션'이 넝쿨째 굴러왔다. 삼성가에서 1488점을 기증했다. 4월28일 삼성에서 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을 미술관에 기증한다고 발표한 이후 바로 작품이 반입됐다. 현재 과천관 수장고에 안착했다.

7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난 윤 관장은 "꿈도 못꿨는데, 이러한 대량 작품의 기증은 우리 일생에 두 번 다시 만나기 어려운 참 기록적인 쾌거"라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들어온 '이건희 컬렉션'은 회화 조각 공예 드로잉 판화 등 근현대미술사를 총망라했다. 김환기 박수근 장욱진등 한국 근현대미술 작가 238명의 1369점과 피카소, 샤갈, 르느와르 등 외국 근대 작가 8명의 작품 119점이다. 유영국의 작품이 187점으로 가장 많고, 이중섭 작품이 104점, 유강열 68점, 장욱진 60점, 이응노 56점, 박수근 33점, 변관식 25점, 권진규 24점 순으로 집계됐다.

또 모네, 고갱, 피카소,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마르크 샤갈 등 해외 거장 작품들도 포함되어 국립현대미술관은 처음으로 이들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게 됐다. 모두 조건없는 기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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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김환기, 산울림 19-II-73#307, 1973, 264x213cm. 지금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 김환기의 절정기 점화는 한 점도 없었다. 이번 기증품을 통해 컬렉션의 공백을 메워준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2021.5.07 . photo@newsis.com

'이건희 컬렉션'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을때 윤 관장의 바람은 소박했다. "그저 우리 미술관에 빠진 부분을 채웠으면 좋겠다. 근대기 대표작가의 작품 100점 만 와도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현재 국립미술관인데도 김환기의 제대로 된 '점 시리즈'가 없거든요 . 아시다시피 고가품이고 미술관 1년 작품 구입 예산 2~3년 치를 합쳐야 김환기 대표작 하나 살 정도 밖에 안 되니까. 꿈을 꿀 수가 없었죠." 국립현대미술관의 1년 미술품 구입 예산은 48억원 안팎이다.

하지만 내심 바라기만 했던 일이 현실로 이뤄지면서 윤 관장은 '행복한 관장'으로 불린다. 미술관의 제1은 소장품 확보인데, 그 어려운 일이 윤 관장 임기내에 저절로 들어오면서 미술관 새 역사의 신기록을 세운 관장이 됐다.

1000점 이상의 대량 기증은 사상 처음으로 '이건희 컬렉션' 덕분에 미술관 소장품은 1만점을 시대를 맞이했다.

 "소장품 8500점 무렵에 우리는 언제 1만점을 돌파하냐며 직원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다른 외국 유수의 미술관을 보면 소장품이 10만점이다 20만점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부러울 뿐이었지요. 우리는 1만점도 안 되는 데 언제 따라가야 하는가 이런 부끄러운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죠"

50여년간 미술관 총 소장품은 8782점. 그동안 피카소등 내로라하는 작품 하나 없어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자존감이 낮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 우리 국립현대미술관도 1만점 소장품 시대에 진입했다"는 윤 관장은 "주변에서 행복 관장 행복 관장하는데 각별히 행복 관장임을 더 느끼고 있다"며 뿌듯함을 보였다.

'이건희컬렉션'으로 소장품 1만점 시대를 맞은 미술관은 한국 근대미술사의 빈 공백을 메꾸는 한편 수준 높은 한국 근대미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기회가 마련됐다.
  
윤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근대미술 컬렉션의 질과 양을 비약적으로 도약시켰다"는 점이 이번 기증의 가장 큰 의의라고 했다.

그는 이건희 회장의 유족에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특히 두 분의 용단에 의해서 이뤄진 일"이라며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에 감사하다"고 했다.

윤 관장은 삼성가와 인연이 있다. 1984년 중앙일보사 신사옥이 새로 문을 열면서 아트홀과 갤러리를 새로 열었는데 당시 갤러리 개관 실무 책임을 윤 관장이 맡았다.  그는 "당시 중앙일보사 상무 직함이었던 홍라희 전 리움관장이 갤러리를 담당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그 인연이 저로 하여금 미술계 현장에서 지금까지 일을 하게 했고 또 오늘 이런 자리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아요."

윤 관장은 1982년 미술 평단에 등단한 이후 30여 년간 근대미술사학자이자 평론가·기획자로 활동했다. 호암갤러리 큐레이터, 가천대 교수를 지냈고, 동국대 석좌교수로 활동하다 관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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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는 28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 측이 이 회장 소장품 11,023건 약 2만3천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중섭 '황소'.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2021.04.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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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이중섭, 흰소, 1953~54, 30.7x41.6cm. 이중섭은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시절부터 소를 자주 그렸고, 해방 후에는 특히 여러 점의 소 그림을 남겼다.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진 약 5점의 ‘흰소’ 중에서 이 작품은 1972년 개인전과 1975년 출판물에 등장했다가 행방이 묘연했는데, 이번 기회에 알려져 의미가 각별하다.힘겹게 앞을 향해 나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처절한 인상을 주는, 자조적인 느낌의 ‘흰소’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2021.5.07. photo@nwsis.com

근대미술사학자인 그는  이번 '이건희컬렉션'에 더 큰 감동을 했다. 희소가치가 높고 수집조차 어려웠던 근대기 소장품이 이번 기증으로 크게 보완되어 한국 근대미술사 연구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한국화가의 ‘대표작’이 대거 기증되어 미술관의 한국화 컬렉션 질을 현격히 높였다는 평가다. 이상범이 25세에 그린 청록산수화 '무릉도원도'(1922), 김은호의 초기 채색화 정수를 보여주는 '간성(看星)'(1927), 김기창의 5m 대작 '군마도'(1955) 1975년 출판물에 등장했다가 행방이 묘연했던 이중섭의 흰소(1953~54) 등이 미술관으로 들어왔다.

수집예산이 적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좀처럼 구입하기 어려웠던 박수근, 장욱진, 권진규, 유영국 등 근대기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골고루 망라되어 있고 근대미술 희귀작도 압권이다.

나혜석의 진작으로 확실하여 진위평가의 기준이 되는 '화녕전작약'(1930년대), 여성 화가이자 이중섭의 스승이기도 했던 백남순의 유일한 1930년대 작품 '낙원'(1937), 총 4점밖에 전해지지 않는 김종태의 유화 중 1점인 '사내아이'(1929)도 소장품으로 합류했다.

그간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중, 1950년대 이전까지 제작된 작품은 960여 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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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나혜석, 화녕전작약, 1930년대, 33x23.5cm.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2021.5.07 . photo@newsis.com

윤 관장은 "이번 이건희 컬렉션중 김은호, 박래현, 김기창, 김종태, 백남순 작품 등은 1992년도에 출판된 호암미술관 소장 한국근대미술 명품 부록에도 소개된 삼성에서 아끼는 대표 작품들"이라며 "이번 기증품의 수준을 제고시키기 위해 삼성에서 아끼는 작품까지 흔쾌히 내놓아 더욱 감사하다"고 했다.

외국작가의 작품은 8명의 작품(119점)이지만 금액으로 따지면 천문학적 금액이다. 인상파 화가 모네의 '수련'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작품과 유사한 그림이 446억(소더비 경매)에 낙찰된바 있어 현 시가는 500억대로 추정되고 있다.

윤 관장은 "해외 거장들의 작품이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됐다는 사실도 상징적"이라며 "모네, 고갱, 피카소,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마르크 샤갈 등 거장의 작품들을 국내에서도 만나보게 된 의미가 크다. 이 가운데 피카소의 도자기는 112점으로 이 작품으로만 개인전을 치를만한 규모"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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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파블로 피카소.무제, 도자기.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2021.5.07 .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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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살바도르 달리, 켄타우로스 가족, 1940, 35x30.5cm.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2021.5.07 photo@newsis.com

이건희 컬렉션 특징은 어떨까.

윤범모 관장은 "한마디로 동서고금이 망라되었다"라고 정의했다.

그는 "우리 한국 근현대 미술과 서양의 현대 미술까지 두루두루 아우르는 광폭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르, 시대 또 작품의 성격 등 야주 다양성이 특징이다. 특히 젊은 작가의 배려, 지원 이런 점도 특기사항이 아닌가싶다"며 "오랜 시간 열정과 전문성이 스며든 컬렉션의 결과로 제 생에 이런 컬렉션은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운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관장은 "미술관 컬렉션이 양적·질적으로 대폭 성장하고 해외미술관과 견줘도 될 만하다"며 "내년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뮤지엄에서 열리는 한국 근대미술전에도 이건희컬렉션 중 일부를 선보여 수준 높은 한국 근대미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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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신학철, 한국근대사-종합, 1982-82, 390x130cm.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2021.5.07 photo@newsis.com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수장고에 입고된 이건희컬렉션은 기증작품 검수, 상태조사, 등록, 촬영, 저작권 협의와 조사연구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조사와 분류가 끝나면 미술관 공식홈페이지에 공개된다. 공식 명칭은 ‘이건희컬렉션’으로 전시, 출판 등 활용시 작품기본정보에 함께 명기된다.

미술관 소장품 1만점 시대를 연 '이건희 컬렉션'중 1만번의 등록 번호를 가질 작품도 귀추가 주목된다. 

미술관은 "입고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겠지만 1만번째 번호는 상징성이 있어 어떤 작품이 될 것인지 설렌다"고 했다. 현재 미술관 100번째 소장품은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이고, 1000번째 작품은 배륭 작가의 회화 '구가시리즈 83'이 등록되어 있다.

윤 관장은 "이건희 컬렉션은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새롭게 쓰게하는 컬렉션"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소장하고 관리할 것인지가 숙제로 평생 수집한 미술품을 국민의 품으로 보내준 고인과 유족의 정신을 기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삼성가의 기증과 관련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문체부는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건희 미술관'이 될지 미술계의 바람인 '근대 미술관'이 될지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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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사진 = 문화체육관광부) 2021.4.28. photo@newsis.com

"이건희 컬렉션중 최고 작품을 꼽는다면요?"

모든 작품이 소중하다. 공식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고 머뭇거리던 윤 관장은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저는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입니다.5m가 넘는 ‘벽화'크기의 대작으로, 한때 중앙일보사에 걸려 있었던 작품이었죠. 1980년대 이후 실견이 불가능했어요. 이번에 미술관에 기증되어 다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이 작품의 가치는 환산하기쉽지 않죠. 아마 요즘 경매에 내놓는다면 시작가는 300억~400억 되지 않을까요?"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는 김환기가 한국전쟁 시기부터 즐겨 그렸던 소재로, 평생 지극히 아끼고 사랑했던 조선 백자를 들거나 머리에 이고 있는 여인들이 여러 명 등장한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환도한 후 자주 등장하는 ‘광화문’으로 상징되는 조선 건축과 길거리의 노점상, 꽃과 새 등 그가 즐겨 그린 1950년대의 소재들이 총출동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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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백남순, 낙원, 1937, 166x367cm. 백남순(1904~1994)은 나혜석과 마찬가지로 도쿄여자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1세대 서양화가이다. 1920년대에 파리 유학을 가서 미국 유학 출신의 임용련을 만나 결혼한 후 1930년에 귀국했다. 이들이 함께 부부양화전을 개최한 것이 당시 엄청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임용련과 백남순은 함께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고보에서 영어 및 미술 교사로 재직하였고, 그곳에서 이중섭, 문학수 등 다음 세대 서양화가들을 가르쳤다.
한국의 무릉도원 전통과 서양의 아르카디아 전통이 묘하게 결합된 독창적인 작품으로, 1930년대 백남순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전해지는 만큼, 역사적 의미가 각별하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2021.5.07. photo@nwsis.co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은 7월 덕수궁관에서 개최되는 '한국미, 어제와 오늘' 전에서 도상봉의 회화 등 일부 작품이 첫선을 보인다. 이어 오는 8월부터 내년 3월까지 세 차례에 나뉘어 공개될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