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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작가가 펨바 CDP센터 아이들과 함께 자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민병훈 감독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실로 꿰맨 건 감정이었어요."
‘모모와 빙고’로 알려진 박성수 작가는 지난 6월, 서울 도로시 살롱에서 개인전 '조금의 그늘과 깊은 비밀'을 열었다.
296일간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뒤, 1년 4개월간 작업실에 머물며 만든 자수 회화들이 공개된 자리였다.
그는 오랫동안 유화로만 작업해왔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자수를 더한 새로운 회화로 방향을 틀었다.
바늘과 실, 그리고 천천히 꿰매는 감정의 시간이 그림 속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전시가 끝나자마자, 그는 짐을 꾸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펨바 섬으로 향했다. 아이프칠드런이 주관한 국제예술나눔 프로젝트에서 박성수는 현지 아이들과 함께 자수를 수놓았다. 이전에도 그는 2024년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에서 열린 예술나눔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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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개최한 도로시 살롱 개인전에 선보인 물감과 자수가 어우러진 박성수 작품. 각각의 캐릭터가 선명하게 존재감을 발한다.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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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캐릭터 속 돋보이는 파란 심장과 주황색 여우는 자수로 수놓아져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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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횡단중 애트니 화산 폭발을 보고 마음속 감정을 터트려 밝고 환한 그림으로 나온 박성수 자수 회화. *재판매 및 DB 금지 |
◆“하고 싶은 작업이 너무 많아졌어요”
“전시가 끝나니까, 진짜 ‘나다운 작업’이 뭔지 더 선명해졌어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오히려 차분해졌고요.”
경기 남양주 수동리 작업실에서 만난 박성수는 그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작업 방식부터 뚜렷하게 변화했다.
유화에 자수를 얹고, 기호적 이미지와 동양화적인 평면 구성으로 화면을 해체했다.
어릴 적 동화와 성인의 환상이 겹쳐진 무의식의 복합도시처럼, 각 장면은 독립된 꿈의 파편 같고, 전체는 감정의 지도처럼 구성된다. 이 회화들은 마치 '무의식의 풍경화' 같다.
모모와 빙고가 뛰노는 작은 캐릭터들, 파란 심장, 여백 위의 나무와 새들… 겉보기엔 아기자기하지만, 그 안엔 시간을 통과한 감정이 실로 꿰매져 있다.
“그림 속에 감정이 많이 들어갔어요. 자수는 그걸 더 천천히 꿰매게 하죠. 바늘은 시간을 통과하는 도구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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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양주 수동리 작업실에서 박성수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
자수는 단순한 ‘덧입힘’이 아니다. 찢어진 마음을 꿰매는 감각, 시간의 무늬를 새기는 반복 행위다.
실로 천을 뚫는 느리고 강한 손놀림엔, 무너진 감정을 정리하는 의식이 깃들어 있다.
이 자수화들은 ‘소리 없는 밀도’를 품고 있다.
화면은 환상으로 가득하지만, 그 환상은 극도로 통제된 감정 상태에서 나온 것이다.
기억과 감정, 의식과 욕망이 서로를 스케치한 장면들. 자수할 줄 몰랐는데, 어쩌다 하게 됐다는 말 속엔 기술 이전의 감정, 계획보다 앞선 본능, 그리고 오래된 기억의 직감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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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작가가 펨바 아이들에게 자수를 가르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
◆“펨바 아이들과 실을 꿰며, 내가 꿰매진 느낌”
7월 7일부터 16일까지, 박성수는 펨바 CDP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수 수업을 진행했다.
바늘을 처음 쥐는 아이들, 손끝이 떨리는 작은 시도. 그 옆에서 박성수는 천천히 실을 잡아주며, 말없이 응원했다.
“아이들이 처음엔 바늘을 무서워했어요. 하지만 실을 손에 쥐고 천에 첫 땀을 놓을 때, 표정이 달라졌어요. 그 순간을 같이 꿰며, 저도 꿰매졌달까요. ‘나도 이게 필요했구나’ 싶었어요.”
“아이에게 실을 건네며 ‘유캔 두잇, 돈 워리’라고 했어요. 그 한마디에 다 담긴 것 같았어요. 말보단 바늘, 그게 더 진심을 전하더라고요.”
자수는 작업이자 대화였다. 삶을 천 위에 수놓고, 감정을 실로 이어주는 일.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 내가 뭘 느끼는지 솔직히 보여주는 게 중요해졌어요. 자수는 느리지만, 감정은 깊어지죠. 이제는 그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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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작가에 펨바에서 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는 나의 작은 이 삶의 일상을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기 얼굴처럼 고운 빈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은 어쩌면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툭 던져진 어떤 것을 사라지기 전에 그리며, 다시 또 다른 말들이 쏟아진다. 그림 속에 가득한 것들은 어쩌면 미지의 시공간 같지만, 그 안에서 나는 감정과 정서에 집중하려 애쓴다. 그러다 혹 누군가의 기억과 감정이 우연히 들여다보이기를 바라면서.”(작가 박성수)
펨바에서 꿰맨 시간은 그의 작업에도 스며들고 있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 그곳에서 함께 꿰맨 색과 마음들을 천천히 기록 중이다. '조금의 그늘과 깊은 비밀'을 알게됐다.
이제 박성수의 자수 실은 다시, 누군가의 마음 위를 천천히 지나 작은 회복의 길을 수놓을 것이다.'감정을 꿰매는 이 느린 작업이,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박성수 작가는 그렇게 믿는다.
“아이들과 꿰맨 작은 하트, 붉은 선, 울퉁불퉁한 첫 땀들… 그 안에 정말 많은 감정이 있어요. 다음 작업에서, 아마 그 기억들이 다시 올라올 것 같아요. 이미 제 마음에 실로 꿰매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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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작가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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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회화로 확장된 박성수 작품. 박성수 남양주 작업실.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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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작가가 펨바에서 수놓은 자수회화가 작업실에 걸려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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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자수회화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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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자수회화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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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개인전 조금의 그늘과 깊은 비밀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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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개인전 조금의 그늘과 깊은 비밀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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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와 빙고가 뛰노는 미로. 박성수 작품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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