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

[박현주 아트클럽] '어둠의 자식'에서 환골탈태한 오치균 "밥이 문제"

등록 2016-03-04 18:03:36  |  수정 2017-11-14 1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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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초기 뉴욕시리즈에 해당하는 'figure'시리즈는 자신의 처한 외롭고 고독한 삶이 기묘하고 어둡게 담겼다.
금호미술관서 뉴욕 시리즈 100점 전시
어둡고 탁한 그림, 생동감 넘치게 변화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봄날'의 이 명대사가 좀 생각나는 전시가 있다. '사랑'을 '사람'으로만 바꿔보면 딱이다.

 '어떻게 사람이 변하니?'.

 이럴수가 있나 싶을 정도다. '어둠의 자식'에서 환골탈태했다.

 4일 금호미술관에서 개막한 오치균의 '뉴욕 1987~2016'전은 극과 극이다. 뉴욕1~2기(1987~1995년대)와 뉴욕 3기(2014~2016)은 흑백TV에서 Full  HD 컬러TV급으로 변환된 화면이다.

 "왜 이렇게 봤나. 지금은 상상이 안되는데, 그때는 이렇게 까맣고 어둡게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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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4일 금호미술관에서 오치균이 자신의 부인이 어떻게 살거냐며 근심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던 표정을 담은 그림을 가리키며 '그땐 그랬다'며 웃고 있다.
  30년전 뉴욕에 간 오치균의 삶은 고되고 퍽퍽했다. 뉴욕에 살았지만, 여유가 넘치는 센트럴파크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하로 다니며 거지들(홈리스)만 눈에 들어왔다.

  "저게 나다" 검은 화면에 뭉뚱그려진 형상을 그려놓고 살았다. 1987년 브루클린 대학원에서 수학하던 시기부터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1990년까지 4년간 그린 초기 뉴욕시리즈는 빛과 차단되어 있다.

 거대도시 뉴욕에서의 고독한 삶은 어둠속에 갇혔다. 전시장 3층 한 벽면을 차지한 ' figure(피규어)'시리즈는 기묘하고 착잡한 심정을 전한다. 자신을 그린 인체는 동물처럼 원초적인 모습으로 좌절과 분노의 감정에 싸인 모습들이다.  지하철 플랫폼을 담은 'Subway'와  지하철역사 한 모퉁이에 사물도 인간도 아닌 것 처럼 늘어져 있는 'homeless' 그림도 어둡고, 참 어둡다.

 4일 전시장에서 만나 오치균은 들떠 있었다. 큐레이터가 작품을 설명할때마다 부연 설명을 하겠다며 나섰다. 검은 동그란 선글라스를 껴 레옹같던 이전 모습이 아니다. 안경도 없이 온 얼굴을 드러낸 그는 자주 웃었고 말도 많았다.

 "근심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내에요. 이건 제 딸이죠"

 80년대 후반 "어떻게 살거냐며 째려보는 아내를 그린 그림"앞에서 미소를 진 그는 "그때는 공부하고, 일하고, 사는게 급급해서인지 모든게 어둡게 보였고, 찌질한 사물들이 모두 나 같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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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금호미술관에 걸린 뉴욕 2기 시리즈 작품.뉴욕의 마천루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보여준다.
'고독이 춤추던' 뉴욕 1기 시기를 지나면 1993년~1995년까지의 뉴욕 2기 시기는 변화된 관심사를 보여준다. 개인전을 준비하기 위해 방문한 뉴욕에서 체류가 길어지며 거주하게 된 시기로 이때는 경제적 안정과 생활의 여유가 뒷받침된 때다. 어둔 내면세계의 정서가 지배적이었던 뉴욕 1기와 달리 뉴욕의 마천루들이 만들어내는 지평선과 빌딩숲을 그린 '엠파이어 스테이트' 시리즈, 특히 눈이 쌓이 겨울 도시풍경을 그린 '설경'시리즈는 음울한 도시가 아닌 자연으로서의 뉴욕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이 시기의 작품들도 회색조, 청록색등 음울한 색감은 여전하다.

 HD급 컬러TV로 변한 것 같은 작품은 2014년부터 시작된다. 같은 풍경, 같은 장소인데, 보는 눈이 달라졌다. 색을 밝혔다. 맥시멀리즘이다. 경쾌해진 색감과 마티에르는 뉴욕의 공원과 거리 풍경을 일렁이듯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보통 작가들이 젊었을때, 분출하고 색을 많이 쓰는데 나는 철도 더 없어지고 왜 이러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뉴욕에 가서 프랭크 스텔라 전시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 분이 나와 같더라고요. 초창기에는 까맣게 미니멀리즘으로 그리다가 지금은 입체로도 그리고 표현의 절정을 보이는 작품을 보면서 위로로 받았어요".

 그는 이번 금호미술관 전시를 준비 하면서 스스로 놀랐다고 했다.

 "분명, 느낀 그대로 그린 것인데, 비교해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나무가 있어도 나무를 빼고 그렸고 보이지도 않았어요. 평론가들이 '문명에서 자연으로 돌아왔다'고 하겠지만, 그런걸 생각하고 그리지는 않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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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화려해진 '뉴욕 3기'시리즈를 설명하는 오치균 작가.
같은 건물을 그린 그림이다. 20년전에는 네모 창문을 획일적으로 그려낸 건물을 화면에 건조하게 담아냈다면, 뉴욕 3기 2014년에 그림 그림은 노란 잎들이 풍성한 커다란 나무가 건물을 가리고 앞으로 등장해있다.

 이렇게 보이게 된 이유는 '여유감'때문이라고 했다. "뉴욕의 지하철이 그때는 어둡게만 보였는데, 지금은 정말 밝게 보이더라니까요. 지금까지 암흑속에 살았으면 어떻게 하나. 문제는 마음인 것같다. 지금은 '마음의 장막이 걷혔다'고 표현했다.

 그는 '돈은 숫자일 뿐'이라고 했지만, 돈은 모든 걸 돌려놓는 힘이 세다.

 오치균은 "먹고살아야 했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관심이 달라졌다"면서 "달리 보이는 세상이 재미있다"고 했다.

 시선이 달라진건 2년전부터다. 2013년 가을경 괜히 센티멘털해졌다. 바쁘게 지나온 7~8년을 뒤돌아봤다. '뉴욕 가을은 어땠나?'. "생각이 안나더라고요. 그래서 떠났어요. 센트럴파크에 갔더니 단풍이 흐드러졌어요. 왜 그전에 이런게 안보였을까. 여유가 생기니까 같이 동화되는 것 같아요".

 이후 뉴욕에서 2년간 '신나게' 그림을 그렸고, '색기'가 넘치는 '뉴욕 3기'가 탄생했다. 절실함보다 여유감이 넘쳐서 일까. 이 그림은 '오치균스럽지 않아' 좀 낯선 느낌이다. 두터운 질감이 툭툭 칠해진 같은 기법인데 너무 화려해서 생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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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금호미술관 1층에 전시된 화려해진 오치균의 뉴욕 3기 시리즈.
'인상파 그림'과 같다. 한걸음 떨어져 보면 풍경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물감의 격렬한 흔적만 몸서리쳐져 있다. 오치균 그림은 '핑거 페인팅'이다. 붓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그린다. 다른 작가와 큰 차별화다.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캔버스에 찍어 바르는 '임파스토' 제작방식이다. 30년째 붓이 된 손은 의외로 곱다. "작업하기전에 핸드크림을 많이 바른다"는 그는 "손으로 하는게 운명인 것 같다"며 반질반질한 손바닥을 보여줬다.

 오치균은 2007년부터 미술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작가다. 그의 암울한 '뉴욕 2기'시기 그림들과 90년대 후반 어두운 그림들은 화랑가와 경매시장을 강타했다.

 생존한 국내 작가 중 가장 작품 값이 비싼 작가 중 한명이다.  일단, 경매장에 그의 이름만 나오면 품절사태가 벌어졌다. 2007년부터 유명해졌다. 1998년작 ‘사북의 겨울’(108×162㎝)이 2007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6억181만원(약 503만1500홍콩달러)에 낙찰되면서다. 국내미술시장에서 '오치균=사야할 그림'이 됐다. 2013년 '전두환 전 대통령 컬렉션' 경매에 나온 10점도 모두 팔려나가 화제가 됐다. 작품은 꾸준한 인기다. 지난 2015년 9월  K옥션 경매에서 감(145.5×97cm)이 1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금호미술관 전시는 그를 겸손하게 하고 있다.

 "30년전 '홈리스'그림을 보따리로 싸와 개인전을 했었는데  다시 '뉴욕 시리즈'로 전시하게 되서 묘한 기분"이라면서 오치균은 '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말 어려운 시기를 겪어오며 깨달은건 "밥을 우선 먹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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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금호미술관 전관에서 오치균 뉴욕시리즈 전시가 4월 10일까지 열린다.
"밥이 해결 안되면 힘들어집니다. 기분이 행복하면 슬픈걸 봐도 관심이 안가듯, 너무 슬프면 아무리 햇빛이 맑아도 우울하잖아요. 부자 화가가 되어서 이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작품에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운이 좋아서 성공한 것"이라며 "밥 이 해결된 요즘은 자유롭게 그림에 집중할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제가 저에게 두가지 칭찬하고 싶어요. 첫째, 그림을 그리면서 밥을 먹고 살고, 밥 걱정을 안하게 된 것. 두번째는 몸이 약하게 태어나 이도 빠지고, 원시시대 같으면 40대에 죽었을 몸인데, 죽을때 쯤에 운동을 하고 노력(술담배 끊고)해 20대처럼 건강해진 것. 이 두가지가 자랑스러워요".

 스키니 흰바지와, 짧은 봄버점퍼를 입은 오치균은 "20대에 빌빌 거리다가 회춘했다"며 활짝 웃었다. 올해 62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모습으로'화백'이라고 쓰기가 민망한 작가다.

 "제가 성공할수 있었던 건, 매니아 컬렉터들 덕분입니다. 어려운 시기, 넘어질려고 할때 나타나 그림을 사주던 매니아들이 있었어요. 돈이 많은 사람들도 아니었지만 정말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이런 분들이 우리 미술을 받쳐주고 있지 않나. 이번 전시를 하면서 그분들이 생각났어요. 정말 고맙고 힘이 됐어요. 감사합니다."

  '뉴욕 시리즈'를 통해 그의 30년간의 작업과 인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영원한 것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를 살려낸 어두운 그림부터 화려하게 변한 100여점을 선보인 전시에는 유명한 '감', '산타페'시리즈는 없다. 전시는 4월 10일까지.02-720-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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