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

[박현주 아트클럽]54억5천 만원 '노란 호박'…쿠사마는 누구?

등록 2021-11-24 05:00:00  |  수정 2022-03-10 18:00:33

서울옥션 23일 '윈터 세일' 경매서 낙찰

52억원에 시작, 1억씩 호가 현장서 팔려

올해 경매 최고가...42억 원 마르크 샤갈 ‘생 폴의 정원' 넘어

쿠사마 작가 낙찰 최고가도 경신…올해 266억치 경매

현재 만 91세 생존하는 최고 여성 미술가

강박 정신질환 48세부터 정신병원서 살며 작품 활동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54억5000만원에 팔린 야요이 쿠사마, Pumpkin. acrylic on canvas,116.7×90.3cm(50), 45.9×35.6in, 1981. 사진제공=서울옥션.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54억5000만원, 54억5000만원에 낙찰됐습니다. 탕!"

일본 대표 미술가 쿠사마 야요이(92) 회화 노란 '호박'이 대박을 터트렸다. 올해 한국 경매 최고가와 작가 국내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올해 지금까지 국내 경매에서 거래된 최고가 작품은 42억 원에 팔린 마르크 샤갈의 ‘생 폴의 정원’이다.

23일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열린 '윈터 세일' 경매에서 쿠사마 '호박' 그림은 52억원에 경매에 올랐다. 1억씩 호가해 최종 54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서면이 아닌 현장에서 낙찰받아 주목됐다. 올해 코로나속에도 아트페어 흥행 얼풍과 낙찰률 80%를 넘는 경매시장 활황인 가운데 정점을 찍었다는 반응이다.

지난달 서울옥션 경매에서 36억5000만원(Gold Sky Nets) 낙찰된 최고가를 한달만에 갈아치운 기록이다. 'Gold Sky Nets'는 메가스터디 수학 1타 강사인 현우진씨가 낙찰받았다고 직접 알려 화제가 됐다. 그는 지난달 직접 경매장에 나와 36억5000만원짜리 작품을 낙찰받고, 자신의 SNS에 직접 낙찰 소식을 알려 이슈가 됐다. 현 씨는 '쿠사마 애호가'로 올해  붉은색 ‘인피니티 네트' 등 쿠사마 작품을 약 120억원어치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슈퍼 컬렉터'로 등극했다. 하지만 이번 '노란 호박' 낙찰자는 현씨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54억5000만원에 팔린 노란 '호박'은 어떤 그림?

54억5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은 쿠사마의 회화 ‘호박’은 국내 소개된 작품 가운데 가장 큰 50호(116.7×90.3㎝)다.

쿠사마의 1981년작으로 추정가가 54억원에 매겨질 정도로 희귀 작품이었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에 따르면 쿠사마가 본격적으로 호박 연작을 시작하던 초기작이라 희소성이 높다. "특히 쿠사마 작품은 구작(舊作)일수록 가격이 높은 편"이라며 "번 작품도 최고 70억선까지도 기대했다"고 했다.  1980년대 초 그린 '호박'은 쿠사마가 한동안 그리지 않았던 작업을 재개하며 본격적으로 '호박' 연작을 시작한 해다.

호박은 일명 '땡땡이 그림'의 최고봉이다. 1950년대 일본에서 미국으로 떠났다가 생활비 부족과 병세 악화로 1972년 고국인 일본으로 돌아온 이후 시작됐다. 점의 반복인 물방울 무늬를 캔버스에 가득 채워 넣은 호박은 강박증이 만들어낸 걸작이다.

쿠사마는 1980년대에 호박에 더욱 집중했다. 물방울무늬에 색을 입혀 생동감을 더했고 2000년대에는 모든 작품에 형형색색의 점이 뒤덮여졌다. 알록달록해진 점들이 회화, 판화, 설치, 패션, 영화 등으로 퍼지며 '쿠사마 땡땡이 호박'의 위력을 과시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케이옥션 11월 경매 출품작, 야요이쿠사마, Pumpkin screenprint 90.8×67.5cm (edition 20/50), 1988 추정가 1억5000만원~2억.

쿠사마 '호박'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다. '호박' 중 최고가는 2019년 4월 소더비홍콩경매에서 5446만 홍콩달러(한화 약 82억4300만원)에 낙찰된 2010년 작 노란 '호박' 그림이다.

국내 최고가 경신에 이어 해외 경매도 주목된다. 오는 12월 1일 열리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 쿠사마 노란 호박(Pumpkin(LPASG)'이 추정가 68억~99억원에 출품됐다. 또 높이 2m가 넘는 2017년작 호박 조각 'PUMPKIN'도 추정가 43억~58억원에 나와있다.

'호박'은 판화가격도 상승세다. 24일 열리는 케이옥션 경매에는 150개 에디션 ‘노란 호박’이 추정가 1억5000만~2억원, 120개 에디션의 ‘붉은 호박’이 1억2000만~1억5000만원에 출품됐다.

쿠사마의 작품은 올해 10월 말 현재까지 국내 경매에서만 약 266억원 어치가 거래됐다. 작가별 낙찰 총액은 이우환(약 350억 원)에 이어 2위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26일 현우진씨가 서울옥션 경매에서 36억5,000만원에 낙찰받은 쿠사마 야요이의 금빛 작품. (사진=현우진 인스타그램 제공)[email protected]


한편 '호박' 보다 더 비싼 쿠사마 작품은 '1타 강사'가 애호하는 '그물' 시리즈다. 2019년 4월 소더비 홍콩경매에서 1959년작 ‘끝없는 그물(INTERMINABLE NET) #4’이 795만 달러, 당시 환율로 약 90억3000만원이었다. 쿠사마가 미국으로 이주한 후 1959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5개의 회화 작품 중 하나다. 쿠사마 특징인 동그란 패턴이 '그물망(網)'처럼 증식되어 끝없는 공간이 무한대로 연결되는 듯한 작품이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쿠사마 야요이. 사진 제공=예술의전당.


호박 '때땡이 그림' 야요이 쿠사마는 누구?

일명 '땡땡이 작가'로 불리는 세계적인 작가 쿠사마 야요이는 글로벌 아트 마켓을 주름잡는 생존하는 최고의 여성 미술가다. 망(net)과 점(dot) 등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세계를 장악했다.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작품이 판매된 유일한 작가, 여성 아티스트 역대 경매 낙찰가 1위 (2014년 710만 달러),  2016년 타임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자신을 괴롭히는 ‘강박과 트라우마’를 예술을 통해 승화시킨 작가로 유명하다. 1929년 일본 나가노 마쓰모토시 출신으로 1947년 교토시립예술학교에 진학한 쿠사마 야요이는 1952년 첫 개인전을 열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는 폭력적이었다. 부모를 피해 1958년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일본 전후 예술가 중 최초로 뉴욕으로 간 예술가다. 29세에 뉴욕에서 예술가로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혁명의 시작이었다. 도발적인 퍼포먼스를 끊임없이 펼치며 자신의 몸을 캔버스 삼아 점과 그물을 무수히 그렸다.

'앤디 워홀'과의 싸움 등 처절하고 치열한 예술세계를 펼치다 1973년 일본으로 귀국했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에서 검정 땡땡이 무늬의 노란 호박 설치미술로 전 세계 미술계에 눈도장을 찍었다.

검정색 빨간색 초록색 등 다양한 색감의 '땡땡이 작품'은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작품이지만 ‘최근 10년간 가장 작품값이 많이 오른 여성작가’로 선정됐다.

특히 그의 '노란 호박'은 땡땡이 작품의 진수다. 국내 미술시장 웬만한 컬렉터라면 필수템인 '호박 그림'은 그 중에서도 노란 호박이 최고다.

일본 나오시마 섬에 설치된 그의 '노란 호박'은 바닷가 앞에 거대하게 설치되어 전 세계인의 아트투어 성지로까지 등극했다.(나오시마 상징인  2.4m 크기 '노란 호박'은 지난 8월 태풍 9호 루핏의 영향으로 바다에 떠내려가 쪼개져 미술애호가들을 안타깝게 했다.) 국내에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로비에 거대한 노란 호박 조각이 설치되어 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현재 나이 만 91세. 10살 무렵부터 시작된 땡땡이 그림은 여전히 무한반복되고 있다.  '환영'·'강박'·'무한증식'·'물방울 무늬' 등 일관된 개념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끊임없이 반복하는 물방울 무늬는 그녀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상징한다. 쿠사마 야요이는 “예술가가 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벽면을 타고 끊임없이 증식해가는 하얀 좁쌀 같은 것들을 벽에서 끄집어내어 스케치북에 옮겨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강박과 환각의 정신질환이 수십년째 이어오고 있지만 쿠사마는 붓을 놓고 있지 않다. 48세부터 현재까지  도쿄 세이와 정신병원에서 종신환자로 입원해 있다. 병원에 스튜디오를 마련, 날마다 출퇴근하며 작업하고 있다. "작품 활동이 유일한 생명 수단과 다름이 없다"는 작가는 "예술이 없었으면 이미 자신의 손으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빨간 단발 가발이 트레이드마크다.

명품 패션브랜드 루이비통과 손잡고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고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등의 미술관에서 대규모 순회 전을 개최했다. 국내에서도 2013년 대구미술관, 2014년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전이 열려 30만명이 넘는 관람객을 동원해 화제가 됐다.

강박적인 물방울 무늬에 대한 집착은 보는 이의 시선을 현실 너머의 세상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불안의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한 행위에서 나아가 이 세상도 함께 치유되기를 소망하는 작가의 바람이 담겼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