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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아야할 화가 37명 인생극장…'살아남은 그림들'

등록 2020-10-23 11:10:50  |  수정 2020-10-23 11: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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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그림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꼭 그 배경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예술은 시대의 거울이 되기 마련이다. 화가의 삶, 그리고 그림에 얽힌 사연을 알고 나면 감동은 배가 된다.

이 책 '살아남은 그림들'은 제목처럼 '살아남은 기쁨'을 제대로 누린다.

저자 조상인은 서울경제신문 미술담당 기자로 속도감 있고 리듬감 있는 문체로 사라져간 화가들을 모셔와 명작의 맛을 전한다.    

파란의 시대를 산 한국 근현대 화가 37인의 작품과 삶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현했다. 살면서 꼭 알아야할 우리나라 화가 그림들 150여점을 소개한다.

화가들의 치열했던 삶과 그들이 살았던 시대상까지 그려내 왜 이 그림이 이렇게 그려졌는지, 왜 이런식으로 화폭에 나오게 됐는지를 알수 있게 한다.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 나혜석.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낸 그녀는 어딘가 불안한 눈빛의 '자화상'을 남겼다. '한국 인상파의 시초' 오지호는 일본에 유학해 미술을 배웠지만 이후 한국의 빛과 색을 그려내려 애썼고 또 성공했다.

또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한 최영림은 전쟁이 끝나고 20년도 더 지나서야 그간 간직해 온 감정을 실어 한국전쟁의 비극을 그렸다. 강직한 성격 탓에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고초를 겪었던 화가 윤형근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을 전해 들은 뒤, 언제나 꼿꼿하던 화폭 속 기둥들을 비스듬히 무너뜨렸다.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이응노는 교도소에서도 간장으로 그림을 그리고, 밥알로 조각을 빚었다. 척주측만증으로 평생을 고생한 손상기는 팔을 들어올리기조차 힘들었음에도, 급격하게 성장하는 도시 속에서 소외된 이들을 화폭에 담았다.

화가는 화가 나도 그리는게 화가다. 이 책에 나오는 37명의 화가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숨 막히는 식민지배 하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붓을 놀렸고, 총탄이 날아드는 피난길에도 스케치북을 들고 다녔다.

세상과는 동떨어져 그림만 그리는 '팔자 좋은 사람들'이라고 치부하는 화가들의 치열한 인생극장이 이 책에 담겼다.

책에 실린 150점에 달하는 한국 근현대 미술의 대표작들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국공립미술관의 대표 그림들이다. 독자들이 책을 보고 실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쉽도록, 개인 소장품보다는 미술관 소장품 중심으로 고른 저자의 배려가 담겼다.

그림은 완전 쌍방향이다. 당신이 마주 서 바라봐 줄 때 호흡이 시작되고 살아나는 기기묘묘함이 있다. 이 책 '살아남은 그림들'이 유혹하는 이유다. 404쪽, 눌와, 2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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