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

[박현주 아트클럽]'미술판 도깨비' 금보성의 '1억 상금'

등록 2019-11-18 07:59:33  |  수정 2019-11-25 17:42:54

'김흥수 미술관' 인수 '금보성 아트센터' 설립

2016년 한국작가상 제정...60세 이상 작가 선정

1회 유휴열, 2회 이흥덕 수상 대규모 개인전

사비로 지원 미술계 없던일 세무조사만 3년째

미술~전봉건 문학상까지 총 10개 상금도 지원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한글작가이자 금보성 아트센터를 운영하는 금보성 대표가 서울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19.11.1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미술판에 '도깨비'가 있다.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정확한 건 미술시장이 불황으로 치달을때 등장했다는 것. 2012년, 서울 평창동에서 35년 역사를 가진 그로니치 화랑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다. 그 문을 다시 열어 '갤러리 평창'으로 문패를 바꾸면서 알려졌다.

금보성, '젊은 화랑주' 이름은 불과 1년만에 떠올랐다. 그해 30억원에 부동산에 나온 김흥수 미술관을 매입하면서다. 2013년 '김흥수 미술관' 간판은 '금보성 아트센터'로 바꿔 달았다. 2012년 11월13일 장수현 관장이 별세하고, 김흥수 화백이 살아있던 때였다. 김 화백이 빚에 허덕여 미술관이 헐값에 팔렸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후 2014년 '한국의 피카소'로 유명했던 김흥수 화백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김흥수 미술관'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신 '금보성 아트센터'를 남겼다. 땅값 비싼 평창동에 미술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도깨비'로 불리는 금보성(54)대표 덕분이다.

"원래는 '김흥수미술관'으로 그대로 하려고 했는데 김흥수 화백님 때문에 이름을 바꿨어요." 

건물이 매각 되고 김흥수 화백은 갈데가 없었다. 미술관뿐만 아니라 김 화백의 자택까지 팔렸기 때문. 금보성 대표는 "그러면 여기 계세요" 했고, 김 화백은 그 자택에서 그대로 기거했다. 미술관에 있던 김 화백 그림이 다 빠지던 어느 날 화백이 말했다. "내가 자네를 모르는데 내 이름을 쓰면 되나..."

"앗 걱정 되시면, 화백님 이름을 안쓰겠습니다. 제 이름을 쓰겠습니다."

"내 본명이 김보성이다. 등록을 하려니까 '의리~' 김보성이 있어 등록이 안돼더라. 그래서 성씨인 김(金)을 '금'으로 바꿔 금보성이라고 했다."

'금보성아트센터'를 개관했다고 알리자 '자장면집 이름 같다'는 소리가 더 많이 들렸다. 그는 되레 "자장면을 사줄테니 많이 오라"고 했다며 개의치 않았다고 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제 1회 한국작가상 수상한 유휴열 화백

자장면집 같은 금보성이 '도깨비'로 회자 되기 시작한 건 2016년부터다. 총 상금 1억. 미술판에 세상 없던 최고의 상금을 내건 '한국작가상'을 제정했다. 신진, 유망작가가 아닌 60세 이상 작가들이 대상이었다.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가지면서도 소외되고 저평가된 작가를 찾는 공모전이다. 1회 선정 작가는 전주 모악산 기슭에서 작업하는 유휴열(70)화백. 58여년간 작업에 매진하며 한국미에 천착해온 내공이 인정받는 순간이었고, 지역작가로만 알려진 '유휴열' 이름 석자를 미술판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2018년 2회 '한국작가상'에 이흥덕 작가가 선정되면서 '금보성아트센터'에 이목이 쏠렸다. '한번 하고 말겠지'라는 시선과 달리 '1억 상금' 공모가 이어지자 도마에 올랐다. '전시만 해주고 상금은 안준다'등 의구심의 소문이 고개를 더 들었다. (사실과 달랐다. 1회 수상작가인 유휴열 화백도 그런 소리를 들었다며 의미있는 일을 하는데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시도 하고 두툼한 평론집까지 받고 1억을 받아 화실을 증축했다고 했다.)

그래서 만났다. 1억 상금 '한국작가상'은 왜 만들었는지, 돈은 어떻게 충당하는지, '도깨비'같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억 '한국작가상' 왜 만들었나

▲2015년이었다. 영국에서 '석유 부자'를 만났는데, 내가 화가라니까 그림 팔러왔냐고 묻더라. 그러면서 한국에 그림 그리는 사람이 있냐고 했다. 얼결에 백남준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가 '바보 아니냐'면서 '남준백'이 어떻게 한국사람이냐고 반문하더라. 태어난 곳이 한국이라고 한국 작가냐, 왜 남의 나라 사람을 이야기하냐고 했다. 충격이었다.

-정말 충격이다. 이때는 우리나라 단색화가 세계 미술시장에 주가를 올린다고 하던 때인데...그 사람이 너무 한국미술을 모르는 것 아닌가.

▲아니다. 영국에서 주식펀드를 주무르는 사람이 소개해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세계 재벌급 부자다. 귀국해서 고민했다. 정말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찾아봐야겠다. 서울대-홍대 교수 말고, 작품 하나만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작가. 그래서 시작했다.

-그런데 왜 60세 이상의 작가를 대상으로 한건가.

▲진짜 '한국다움'이 묻어나길 바랐다.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본 경험이다. 1회때 유휴열 화백을 선정하자 '잘했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지방작가를 선정했다고 욕도 들었다. 하지만 '한국작가상'의 정체성과 맞는 작가였다. 선정까지는 1년이 걸린다. 6개월은 공모, 6개월간 치열한 심사가 이뤄진다. 100명 이상의 작가가 공모했다.  최종 작가가 선정하면 10여명의 평론가들이 후보의 작업실을 방문한다. 장르는 상관없지만 작품수를 헤아린다. 기본적으로 5000점이상 되어야한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제 2회 한국작가상 이흥덕 작가

-조건이 까다롭다

▲평생 작업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대개 중견작가들 작품은 기본 1000점은 넘지만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작가는 많지 않다. 최종 후보 작가로 올라왔어도 작업실에 작품이 없으면 탈락한다. 그래서 수상 작가가 되기까지는 쉽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해 뽑은 2회 수상자인 이흥덕 작가도 훌륭하다. 한국미협과 공동으로 작년에 시상식을 가졌지만 오는 20일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신작 전시와 함께 시상식이 열린다. 21세기 풍자도 같은 이흥덕 작품은 '한국적 팝 아트'로 민중미술을 떠나, 시대성과도 맞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작가상'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해외에서 한국 작가가 누구냐고 물었을때 머뭇거리지 않고 소개할만한 작가를 발굴 육성하는 거다. 어디에 내놔도 열심히 작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 유휴열, 이흥덕 화백은 세계 만방에 소개해도 가능성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화가가 대통령이 될수 없지만, 하나의 국가가  될 수 있다. 

-화가가 국가라니...

▲스페인 갔을때 어디를 가나. 피카소 미술관에 들르지 않나. 세계의 문화강국은 화가들이 먹여살린다. 파리 루브르, 오르세, 노르웨이 뭉크미술관...21세기에는 작가 한 명 한 명이 국가이자 나라다. 그래서 유휴열은 화가가 아니라 '국가'이고, 이흥덕도 이제 '국가'와 같은 존재다. 피카소 그림을 보러 스페인을 가는 것처럼 한국에 유휴열, 이흥덕을 보러오게끔 해야 한다. 미술시장, 작가들을 조명하는 것은 좋은데 단색화 시대처럼 만들어가는 것은 좋지 않다. 다양한 작가들의 그림을 인정하고 소개하는 '다양한 국가'를 만들어가는 것을 화랑이나 아트딜러가 해야한다.

-1억 상금이 화제다.

▲사실, 1억 상금 한국작가상 공모전은 총 2억8000만원이 든다. 1억은 작가에게 지급되고 나머지는 전시비와 평론집 제작에 투입된다. 1회 유휴열 평론집은 총 40여명의 인사들이 작품에 대한 평을 썼다. 평론비만 1인당 100만원으로 4000만원이다. 미술평론가뿐만 아니라 철학자 시인 법조인 목사 교수 등에 의뢰해 글을 받았다. 한 명의 작가를 이렇게 많은 사람이 글을 쓴 평론집은 처음일 것이다. 국내 모든 잡지에도 광고를 한다.

-평론비가 4000만원. 그렇게까지 돈을 쓰는 이유가 있나

▲개인당 단 돈 100만원이지만, 우리 작가를 꼭 기억하게 하고 싶어서다. 물론 계산하면 돈이 아깝다. 주위에선 평론 수십명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냐고들 하지만, '한국작가상과 작가를 평론가들이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보람이 있었나.

▲1회때 유휴열 화백 평론을 일면식도 없던 홍익대 서영희 교수에 글을 부탁했을때다. 서 교수가 왜 나를 선택했냐고 물었을때, 피카소 미술관에서 근무했었지 않나, '죽은 피카소와 싸울만한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유 화백을 만난 서 교수는 이런 사람이 왜 아직까지 무명이냐, 이렇게 좋은 작가가 무명인게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유휴열의 작품:삶과 놀이의 화엄세계'를 주제로 거의 논문급으로 평을 썼다. 바로 이 점이다. 이렇게 제도권에 없지만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작업하는 우리 작가를 알리고 싶다. 다양하게 글을 실은 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작가가 그린 우리 그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궁금했다. 유명 대학을 나오고 메이저갤러리에서 속해 있어야만 관심을 받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작가가 많다. 이들이 돌아가시면 어쩔 것인가. 때가 되면 '한국작가상' 작가를 모시고 세계 미술시장을 노크할 예정이다.

-1억 상금,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인가
 
▲미술판은 존경하는 어른이 필요한 시대다. 작업을 묵묵히 하는 진정한 화가를 조명하고 싶다. 젊은 신진작가들만 찾는 화랑계 추세로 원로작가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곰삭음의 시간을 견디며 우리다움을 표현해내고 지켜오면서 한국 미술을 발전시켜오는 이들의 공적을 빗대어 볼 때 1억 원이라는 상금은 결코 많은 돈이 아니다. 작업에 대한 보상을 해주고 싶다.

-후원도 없다. 개인이 주는 1억 상금, 어떻게 마련하나.

▲전적으로 내 사비로 준다. 그림을 통해 벌었으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도와줘야겠다는 의지다. 주변에서도 미쳤다고 한다. 미술관도 대관하면 돈을 벌고, 그림도 팔면 나누면 되는데 왜 초대전만 하고 그림팔린 돈도 다 돌려주느냐고 한다. 그러면 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한번 해보니 되더라. 1년 해보니 괜찮았다. 2년째도...그렇게 지금까지 왔다. 진짜 내가 그린 그림을 팔아서 상금을 마련한다. '무슨 돈으로 하냐'고 의아해 하지만, 돈이 생기니까 한다. 빚내서는 안 한다.

-미술판이 불황으로 힘들다고 하는데 거꾸로 간다. 

▲내가 그로니치 화랑을 인수할 때도 미술시장은 어려웠다. 경기가 안좋아서 그 화랑이 문을 닫았는데, '갤러리 평창'을 할때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왔다. 해외 관광객도 방문해 늘 붐볐다. 그래서 더 큰 공간이 필요해서 찾고 있는데, 마침 김흥수미술관이 매물로 나온 거였다. 헐값에 샀다고 하지만, 리모델링만 10억이 더 들어갔다.

-금보성 자금에 대한 흉흉한 소문도 있다.

▲나도 들었다. 세 가지가 있던데. 첫번째는 재벌 마님의 후원, 두번째는 펀드를 받았다, 세번째는 조총련 돈을 쓰고 있다.는 말이 세간에 돌고 있더라. 정확이 이야기하겠다. 재벌 마님 후원? 그건 절대 아니다. 난 결혼도 했다(부인은 동갑내기로, 이불회사를 운영한다) 생각보다 내가 자산이 많다. 회사도 운영하고 부동산도 있다. 펀드? 수익이 나야하는데 무료 전시하는데 무슨 이익이 나나. 이것도 아니다. 조총련 돈? 내가 일본에 오랫동안 있어서 그런 소문이 난 것 같은데 조총련이 공짜로 왜 돈을 퍼주겠나. 1억 상금때문에 3년 넘게 세무조사를 받고 있지만 문제가 없다. 당당하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한글 작가' 금보성이 12일 오후 서울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작품은 한글 윷놀이 시리즈. 작가로 활동하며 금보성아트센터를 운영한다. 2019.11.12. [email protected]

-그림만 팔아서 미술관을 운영하고 상금을 주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대학 1학년때 첫 전시를 연 후 현재까지 국내외에서 개인전만 58회 열었다. '한글 시리즈' 작품은 구상 비구상 공공미술까지 넘나든다. 30년 넘게 작업하며 쌓아온 고객층도 다양하다. 

-'한글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유명세는 없지 않나.

▲금보성이 되기까지 7개의 가명을 썼다. 가장 많이 알려진게 '금요비'다. 화가가 되기전 시인이었다. 그 이전엔 목사였다. 신학대를 졸업했고, 15년간 해외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다. '한글 시리즈'는 시를 쓰면서 착안했다. 시를 쓰다보니 시에 색을 올리면 그림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미술학원도 다니지 않았고, 누구에게 그림을 배워본 적도 없다. 한글을 풀어 퍼즐처럼 만들고 색을 칠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상, 비구상으로 변했다. 그렇게 한글 시리즈는 윷놀이, 아리랑 시리즈로 진화했고 '한글 작가'가 됐다. 

-잘 팔리는 비법이 있나.

▲내 휴대폰에 있는 고객만 1만여명이 넘는다. 이 친구가 잘 하고 있나 없나 관심있게 봐주는 거다. 페이스북에 지속적으로 내 활동을 일기쓰듯 알린다. 누굴 만나고 누구 전시를 하는지 몰래하지 않고 다 공개한다. 한국작가상 시상식이 돌아오네, 어떤 작가가 상을 타네를 다 알고 있다. 그들이 도와준다. 한때 내 그림을 가지고 있으면 성공한다는 말이 돌았다. 재벌 정치인 군인 언론인 기업인 심지어 스님도 내 그림을 사갔다. 수십년전부터 맺어온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글로 그림을 그린 그림. 한글 그림은 그 자신만을 위한 그림이다. 이름을 풀어 퍼즐처럼 맞춰 기운생동을 색칠한다. 누군가는 부적같은 그림이라고도 한다. 돌잔치는 물론 기념일때마다 주문이 들어온다. 윷놀이, 아리랑시리즈로 접목한다. 예를 들어 박현주를 아리랑시리즈로 해달라고 하면 행복하고 즐겁고 축제처럼 이름을 분리시킨다. 윷놀이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윷을 던져 후두둑 떨어지는 것처럼 이름을 분리해 신명나게 만든다. 그 사람의 이름에 축복을 해주는 거다. 하나밖에 없는 내 그림. 맞춤형 그림이다. 그러니 살 수 밖에 없지 않나. 

-예술은 지난한 작업이라고 하는데, 그림 참 쉽게 한다.

▲왜 그림을 어렵게 그리나. 편하고 쉽게 한다. 이름을 배열해야 하니 조수도 없다. '문자도'같은 개념이지만 다른 구조다. 선으로 드로잉하는거다. 머뭇거림 없이 두두둑 하면서 슥슥 그린다. 어젯밤에도 100호짜리 4점을 했다. 아무런 어려움 없다. 1분도 안걸린다. 컬렉터와 이야기를 하면 금방 머릿속에 싹 들어온다.  그 사람 에너지에 따라 채도를 배열하면 끝이다. 내가 그렸던 그림을 사가는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맞는 그림을 그려서 주는거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한다. 한글로 하니까 더 의미있다. 어려울 것 하나도 없다. 손이 생각보다 빠르다. 금방 그린다. 즐겁게. 얼마든지 작업을 할 수 있다. 누군가는 한글이니까 쉽게 하지 하지만, 이 방법이 나오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틈틈히 늘 그림을 그린다. 저 자두도 내가 그렸다.(벽에 걸린 자두는 진짜 자두처럼 감쪽같다. 추상화 한글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그림이다)

작가를 도와주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자신은 화가라고 강조했다. "한글 시리즈를 더욱 흥이나고 아름답게 진화시켜 세계인들과 교감하고 싶은 게 꿈입니다"

-자신의 그림을 팔아서 화가를 돕는다. 참 아이러니하다.

▲나도 신기하다. 목사의 길을 가던 나에게 하느님은 왜 그림을 그리게 했는지 모르겠다. 2012년 갤러리를 시작하면서 현재까지 1만6000명의 전시를 했다. 상금을 주는 것도 계속한다. 1억 상금 말고도, 올해의 작가상 3500만원 등 청년작가 지원뿐만 아니라, 전봉건 문학상 등 총 10개의 상금을 지원한다. 5년째 비행경비 숙소를 다 제공하는 해외평론가 세미나도 열고 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한글 작가' 금보성이 12일 오후 서울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작가로 활동하며 금보성아트센터를 운영한다. 금보성 아트센터는 작가들에게 대관료를 받지 않고 전시를 열도록 하고 있다. 판매 수익도 모두 전시 작가가 가져간다. 또 매년 60세 이상 원로 작가 1명을 선정해 1억원을 지원하는 '한국작가상'과 2명의 신인 작가를 선정해 3500만원의 창작지원금을 주는 '올해의 작가상' 공모전을 열고 있기도 하다. 작가 오른쪽에 비친 그림자는 조각가 이용재가 금 작가의 얼굴을 본따 만든 작품을 조명에 비춘 것. 2019.11.12. [email protected]


'머니게임'이 치열한 미술판에서 돈을 퍼주는 그는 긍정의 힘이 원동력으로 보인다.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고마움을 표현했다.

"작가들이 이 멀리 평창동 골짜기까지 와서 전시를 하니 감사할 따름이죠. 갤러리가 밥 먹을 힘만 있으면 우리 화가들을 알려야 합니다. 케이팝이 한류를 만들어 세계를 흔드는 것처럼 우리 한국미술도 그런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분명 될 수 있어요."

-돈 안되는 일만 하고 있다. 왜 혼자 이런 일을 할까, 후회는 안해봤나.

▲옛날 일제때 간송 전형필이 우리나라 작품을 못빠져나가게 했는데, 지금은 작가를 해외 진출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림으로 번 돈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미술관을 예배당으로 쓰지 않고 작가들 전시를 무료로 열어주고 있는 것도 그 이유다. 내가 미술판에 봉사할 수 있는 곳이다. 셈을 안하고 싶다. 상을 주는 곳이 많지만 기억이 안난다. 그게 오히려 감사하다. 잊어버리니까 좋은 것 같다. 내년에는 '김흥수 미술상', '황창배 미술상'도 만들 계획이다.

"상을 너무 남발하는 거 아니냐고요? "작가들이 잘 살 수 있다면, 또 유족들이 화가의 명예를 높이는데 도와주고 싶어요. 쥐어짜서 하는 저보다는 어느 기업인이 눈을 조금만 돌리면 더 크고 폼나게 할 수 있겠죠. 누군가는 꼭 해야하는데, 누구도 안하니 제가 하는 겁니다. 다른 이유는 없어요. 제 몫을 하고 나면 또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을까요? 왜 이렇게 하냐고 물으면 답이 안나와요. 하하하"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