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

[박현주 아트클럽]'오브제 회화' 작가 유선태 "난 뼈속까지 장식적"

등록 2015-10-30 22:32:37  |  수정 2017-11-14 11: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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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화가 유선태
【서울=뉴시스】 박현주 기자= "그림 그리는 인생이 허무해도 허망하지는 않아요. 삶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그림 그려야 한다는 신념은 있었지요"

 '오브제 회화' 작가 유선태(58)는 "재능이 있는데 ??히는건 죄악"이라며 예술가로서 행복하다고 했다.

  화가로 살기는 쉽지 않았다. 20~30대엔 힘들어서 죽고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전당포를 들락날락했다. 자동차에 LPG가스가 없어 작업실을 못가기도했다. 크리스마스때 주머니에 딱 200~300원만 있었던 때도 있었다.

 "결혼반지도 시계도 없다"며 양손을 내밀었다. 몇년전 가느다란 금반지 하나씩을 부인과 나눠꼈다며 반지를 만지작 거렸다.

 '강해야 한다' 다짐했지만 가장 두려운 적은 가족이었다. 불효했고 가난했다. 그래도 다른 생각은 못했다. '오로지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그 신념'만이 견디는 힘이었다. 그림을 그려서 먹고 사는건 널뛰기보다 더 힘들었다. 45세가 넘어서야 겨우 생계 걱정에서 벗어났다.

 "그 순간을 어떻게 견디느냐가 문제다. 후회는 안해요. 그래도 불행하지 않는 건, 좋아하는 것을 해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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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태, 말과 글 - 나의 정원, 2015
마치 격언처럼 짧은 문장으로 말하게 된 건 샤르트르 때문이다. 대학시절 '말과 글'을 읽고 또 읽으면서 그 문장에 푹 빠졌다. "너무나 분명하고 명료해서 감탄이 나왔지요. 이렇게 명료하게 글을 잘쓰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그는 샤르트르의 '말과 글'을 작품에 도입했다. 10여 년 전 어느 늦가을이었다. 아틀리에 앞 아름드리 나무의 잎들이 어느새 모두다 떨어져 있는 걸 보고 깨달았다. “저게 바로 예술이다".

 남은 잎과 떨어진 나뭇잎들이 떨어져 오로지 침묵으로 남은 글처럼 느껴졌다. 샤르트르의 간결한 순환의 언어가 다가왔다. "말은 순식간에 없어지기도 하지만 한번 뱉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고, 반대로 글은 썼다 지우고 다시 쓸수 있지요. 예술은 말과 글이 더해져 형상화되지 않습니까"

 작품은 장식적이다. 두꺼운 책, 작은 바이올린등 오브제와 그림이 한통속으로 붙어있다. '그림이 오브제이고, 오브제가 그림'이다. 너무 장식적이지 않냐고 하자 "내 장점이다. 난 뼈속까지 장식적"이라고 강조했다. "어릴적부터 장식적인게 좋았다"는 의미다.

 프랑스 유학시절 벼룩시장에 만난 '골동품'이 작품의 영감이 됐다. "오브제를 보는 순간 작품이 떠오릅니다. 천생적이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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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태, '말과 글' 설치 전경.
그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버리는 순간, 그것만큼 잔인한 건 없어요. 버려진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 나에게 있는건 최고의 특혜지요"

 "끝나버린 과거는 없다. 끝나버린 시간으로서 정리된 과거는 없다"고 강조하며  골동품 오브제를 껴놓은 작품은 "멈추지 않는 시간을 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은 시공간을 오간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자연과 건축, 외부와 내부, 순간과 영원, 말과 글, 그리고 오브제와 자연물 등의 이원적 개념들이 동시에 등장한다. 작품마다 빠지지 않는 자전거 타는 사람은 작가의 자화상이다.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 나아가야만 하는 자전거 타는 사람의 뒷모습은 작가 삶에 대한 은유이다. 그는 "포르테 기호보다 아름다운 사인은 없다"며 작품마다 '첼로같은 포르테'를 섬세하게 그려넣는다.

 앤틱 제품과 통합된 작품은 동서양이 '교배'됐다. 파리에서 전시하면 '동양적'이라고 하고, 우리나라에서 전시하면 '서양적'이라고 한다. 초현실주의 작가 마그리트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정작 작가는 "마그리트는 관심조차 없었다"고 했다.

 하나의 풍경에서 또 다른 풍경이 생성되고 중첩되는 건 태생에서 비롯됐다. 그는 쌍둥이다. 본능적으로 또 다른 하나를 항상 생각한다. 형은 의사의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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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태, 말과 글 - 그림 속에 그림, 2015
30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유선태 개인전이 열린다. '말과 글-30년의 이야기'가 주제다. 풍경의 확장과 순환을 개념으로 한 작품 30여점과 대형 책, 축음기,타자기등 ‘회화 속 오브제, 오브제 속의 회화’를 모티브로 한 20여 점의 오브제를 함께 전시한다. '세상에서 가장 말이 많은 곳' 여성의 가슴과 음부, 엉덩이를 그린 에로틱한 시계도 선보인다.

 전시장은 환영의 속성이 극대화됐다. 그림과 조각과 오브제가 분별이 없다. 이전과 달리 작가는 모든 공간을 장악하고 즐긴 듯하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오가며 착시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연극적인 무대처럼 꾸며 노골적으로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트롱프뢰유화'의 천국같다.

 "예술은 끊임없는 호기심"이라는 작가는 "4년전부터 단색의 어두움에서도 벗어나 색채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다"며 활짝 웃었다. "그림 그린다는게 이렇게 즐거울수 있구나~. 22년만에 처음 알았어요.하하하~" 전시는 11월 29일까지. 02-7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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