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

[박현주 아트클럽]이종목, 동양화는 그를 만나 비로소 진화했다

등록 2015-10-19 09:08:10  |  수정 2017-11-14 11:05:30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이종목 개인전 '워터페이스'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변화가 많다. 현대 수묵화의 진화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전시다."

 한국화가 이종목(58) 이화여대 교수가 2008년 이후 7년 만에 여는 개인전은 '한국화가'라는 고정관념을 깬다.
먹으로 화선지에 자연을 그린 전통적 의미의 수묵화 전시가 아니다.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젊은 작가의 추상화 전에 온 듯하다. 무지개 색으로 낙서한 듯한 그림, 그리다 만 듯 칠하다 만 듯한 그림들이 걸려있다. 검은 빛만 품고 있는게 아니라 파랗고 붉은 다양한 색채가 휘감기듯 칠해져 있다.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렸다.

 '그리다 만 것 같다'고 하자 그가 말했다. "그림은 '딱 이거다'가 아니다. 그 찰나, 그 순간 역동적인 에너지가 운행되고 있다는 표현이다."

 이 교수는 "내 작품은 바위나 거대한 산맥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힘을 담아낸 것"이라며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들여다 보면 산과 나무, 계곡이 존재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이종목 '워터페이스'전.아트사이드 갤러리
설명 덕분일까, 막 그리고 막 칠한 듯한 그림은 보면 볼수록 모양을 달리한다. 한 호흡으로 이뤄진 붓질과 오방색의 변주는 꿈틀대는 듯 에너지를 뿜어낸다.

 "크로키 사생을 수 만 장 하자 체화돼 나온 결과물"이다. "동양화가는 서양화가보다 4배의 시간과 노력이 든다"고 강조했다. "기법이 문제가 아니라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미술감독, 영화 '취화선'의 작품 제작에 참여하며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진 작가다. 서울대학교 회화과와 같은 대학원(동양화 전공)을 졸업한 후 독일, 일본, 호주 등지에서 19차례나 개인전을 열었다.

 초기에는 그도 수묵과 색채를 다양하게 사용했다. 도시, 인물, 자연풍경과 더불어 과감한 재료를 도입해 물성과 질감과 동세를 강조한 '새' 시리즈를 선보였다. 하지만 현대미술의 흐름은 동양화의 한계를 절감케했다.

 "일반 산수화를 그리는 것이 답답했다". 1992년부터다. "이 시대 한국화가로서 변화를 꾀하고 싶다"는 욕심은 '동양화의 초심'으로 돌아가게 했다. "기본으로 돌아가 자연을 직접 마주하자." 중국 대륙을 육로로 횡단했고 인도, 일본에도 머물렀다. 동양의 문화를 몸으로 체득하자는 심산이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이종목 '날마다 태초다' (2015)
"우리 미술을 꽃 피우려면 우리 미술의 원형 전개 과정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책에 의존하면 아무런 힘이 안 된다"고 짚었다.

 실험과 연작의 세월이 이어졌다. 직접 자연을 대하면서 작품에서 장식 요소가 빠져나갔다. '또 다른 자연–겨울산' 연작이 발표됐고, 물이 가지는 순수한 매력을 유장한 수묵 미학으로 풀어낸 '물처럼' 연작에 몰두하기도 했다. 마주한 산(山)과 물(水)의 경계를 10여년 동안 넘나들면서 작가는 자연과 인간이 내외적 시공간을 초월하면서 자유로운 절대 개체로 존재하는 '이너 사이트(Inner Sight)' 연작도 내놓았다.

 이후 우주 삼라만상이 과학질서와는 또 다른, 서로 상반된 에너지의 결합방식으로 무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 경이로운 모순의 신성함을 홀리 패러독스(Holy Paradox) 시리즈에 쏟아냈죠. 살아있는 생명력이 펼쳐지는 현상을 화폭에 담아낸 게 이때부터입니다."

 이번 전시는 오랜 기간 주창해온 '모필 수묵미학'의 정체성이 발현된 결과다. 현장에서 직면하고 체화된 작업은 손끝에서 절로 나온다. 붓으로 색을 쓰면 회화가 되지만 글씨로 쓰면 서법이 된다. '서화'의 통합 과정이 입체물로 튀어나왔다. 지난 한 해 안식년 기간 '도자기의 성지' 중국 징더전(景德鎮)에서 작업한 세라믹 인장작업이다.

 "도자기 작업이 그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전시장에 나온 도자 작품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매끈하거나 모양이 있는 게 아니라 삐뚤삐뚤 쓴 글씨처럼 알수 없는 형태다. "경덕진에서도 이상하고 신기하게 보더라고요. 동양화가라고 하니 이해를 하더군요"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이종목 교수가 대형 서예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독특한 모양으로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인장 작업은 알고보면 한국의 자연을 담은 입체화된 산수화다. 작품 바닥에는 모두 그림같은 전각이 새겨져 있다. 낙관으로도 사용한다. "인장예술은 동양화를 동양화답게 만드는 요소다. 문자를 벗어나 이미지를 드로잉 했다. 인장을 찍는다는 행위를 확대 해석하면 조각품이 된다".

 세로로 길게 바닥까지 늘어뜨린 대형 서예작품도 걸렸다. 서체를 가늠할 수 없는 한문이 묘한 리듬감과 조형성을 드러낸다. 노자에 나오는 말, '중묘지문'이라고 했다. '허다한 묘한 것들이 나오는 문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중국, 한국에도 없는 서풍"이라며 "난장판 같지만 자연스런 호흡으로 다가오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전시는 일타삼피다. '워터페이스(Waterface)'를 타이틀로 그림, 서예, 세라믹 등 3개 장르를 선보인다. 주제는 하나다. 수묵의 정신. 결국 동양화가 추구하는 '기운생동'이다. 다양한 매체와 재료를 실험해 나온 작업은 화조와 서예가 하나로 통합된 과정을 추구한다. "글로벌한 시대에 한국적인 것을 내세우는 것은 촌스럽다. 동서양이 결합한 작업을 맘껏 하고 싶다. 이번 작업은 그래서 보람있다."

 막 그리고, 막 한 것 같은데도 생명력이 감도는 이번 전시는 곧 21세기 현대 수묵화의 진화 현장이다. 거문고 현을 뜯는 소리가 어우러져 작품을 감상하면 묘한 긴장감도 전해진다. 전시는 30일까지. 02-725-1020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