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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발견의 기쁨'...스페이스K, 라이언 갠더 '변화율'

등록 2021-06-23 15:12:55  |  수정 2021-07-05 09: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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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라이언 갠더 The End_animatronics, mouse, audio_19.5 x 24 x 22 cm_2020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거나 볼 수 없을 때가 많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개념미술가이자 설치 작가 라이언 갠더(45)는 예기치 못한발견의 기쁨을 누리게 한다.

‘창작’이 아닌 ‘발견’된 물건들을 늘어놓고 일상의 세계가 얼마나 놀랍도록 기호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지 보여준다.(물론 전시장에 있으니 달라 보인다)

갠더는 “관람객이 스스로 무언가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 모든 것을 직접 알려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의 개인전이 서울 마곡동 코오롱의 문화예술 나눔공간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린다.

‘변화율 (The Rates of Change)’을 제목으로 설치와 조각, 평면, 사진, 텍스트에 이르기까지 시간성에 천착한 작품 28점을 선보인다. 미술관 루프탑에는 야외 조각도 설치되어 한층 특별하게 갠더의 예술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풍자와 위트를 선사한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흘려보는 평범한 사물들에 대해 새로운 경험을 부여하는 작품들이다.

작품 '우연의 에이전트 (Agent of Happenstance)'와 '연결의 에이전트 (Agent of Connectivity)'는 홀로그램으로 가상 구현된 달걀과 전화기를 직접 잡아보도록 유도하는데, 이 같은 행위를 통해 평범한 사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맞게 한다.

또 '모든 종류의 0보다 257도 낮은 온도'라는 작품은 전시장 천장에 실물 크기의 헬륨 풍선을 띄운 것처럼 보이지만 고광택 유리 섬유로 만들어져 있다.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재현한 '움직이는 오브제, 또는 의도 (A Moving Object, or Intent)' 또한 사실은 견고한 청동에 채색한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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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영국의 개념 미술가 라이언 갠더(Ryan Gander) 개인전 '변화율(The Rates of Change)'이 오는 24일부터 9월 19일 까지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에서 열린다. 전시장 바닥에 연출한 '젋은 작가에게'는 여덟살 시절의 자신을 젋은 예술가로 상정하여 써 내려간 자필 편지를 관람객과 공유한다. 2021.06.23. pak7130@newsis.com
구겨진 편지를 전시장 바닥에 툭 던져놓은 '젊은 작가에게 (Letter to a young artist)'라는 편지도 작품. 여덟 살 시절의 자신을 젊은 예술가로 상정하여 써 내려간 내용을 관람객과 공유하는 식이다.

유년 시절의 기억과 상실감을 주제로 한 이 작품들처럼 현실을 벗어나 상상의 영역으로 관람객을 이끌기 위해 갠더는 우연과 사고의 속성을 유머와 위트에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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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영국의 개념 미술가 라이언 갠더(Ryan Gander) 개인전 '변화율(The Rates of Change)'이 오는 24일부터 9월 19일 까지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에서 열린다. '난 다시 뉴욕에 가지 않을거야' 작품은 쥐가 파먹은 갤러리 벽의 구멍에 20파운드 지폐를 구겨 넣어 미술계에 만연한 엘리트주의를 비판한 작품이다. 2021.06.23. pak7130@newsis.com

풍자적인 면모도 엿보인다. '난 다시는 뉴욕에 가지 않을거야'는 쥐가 파먹은 듯한 갤러리 벽의 구멍에 20파운드짜리 지폐를 구겨 넣어 미술계에 만연한 엘리트주의와 속물주의를 비판하기도 한다.

작가의 예언 쥐 시리즈 중 하나인 '끝(The End), 2020'는 작고 낮은 시선을 가진 존재가 삶의 메시지를 들려준다. 외치는 사람들 속에서 어린아이의 작은 목소리로 삶의 본질을 질문하는 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 관람객은 평소 잘 취하지 않는 자세로 웅크린 채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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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영국의 개념 미술가 라이언 갠더(Ryan Gander) 개인전 '변화율(The Rates of Change)'이 오는 24일부터 9월 19일 까지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에서 열린다. 사진은 조작 작품으로 '우리의 긴 점선 (또는 37년 전)'이다. 작가의 아버지가 은퇴 기념으로 회사에서 받은 롤렉스 시계와 집 근처에서 발견한 자갈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자신의 시간을 돈으로 교환한 아버지가 이제는 자본주의적 체제에 의해 시간을 되돌려 받게 되었음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2021.06.23. pak7130@newsis.com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스페이스K 서울 전시장의 루프탑에 설치되는 '우리의 긴 점선 (또는 37년 전)'이다.

자갈에 채워진 손목 시계 모양을 한 이 검정색 콘크리트 조각은 마치 거인이 남겨 두기라도 한 듯 기념비적인 스케일로 확대되어 있다.

일생을 자동차 공장 엔지니어로 일한 작가의 아버지가 은퇴 기념으로 회사에서 받은 시계와 집 근처 해변에서 발견한 자갈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자신의 시간을 돈으로 교환한 아버지가 이제는 자본주의적 체제에 의해 시간을 되돌려 받게 되었음을 이야기한다.

출근 기록부 대신 소유하게 된 시계는 아버지에게 자유의 기호로 작동한다. 하지만 조각으로 만들어진 시계는 작동하지 않으며 오히려 작동하지 않을 때 시간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이 유발된다.

시계라는 기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으며, 작품 속에서 엄청난 크기로 확대되어 시간의 무게와 중요성을 떠올리게 한다.

이외에도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동안 구상한 '기호' 시리즈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소통 시스템으로서 회화에 접근한 이 신작에서 갠더는 한국, 아랍, 일본, 로마 글자가 결합된 특수한 언어를 추상적 문양처럼 제시하여 관습적 기호가 아니라 자연적 기호로서의 회화를 실험한다.

이장욱 스페이스K  큐레이터는 "라이언 갠더는 작품 자체를 해석해야 할 대상이나 숨겨진 단서로 구성된 하나의 통합체로 구현하여 관람객 스스로 연상과 상상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도록 안내하는 스토리텔러"라며 "그동안의 낡은 인식과 진부한 맥락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9월17일까지. 관람료 3000원~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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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스페이스K 서울 라이언 갠더 전시 전경.
전시장 '스페이스K’는?
‘스페이스K’는 2011년 과천에서 시작한 코오롱의 문화예술 나눔공간이다. 2020년 9월 강서구 마곡동에 확대 개관했다. 마곡지구 문화공원 2호에 연 면적 약 600평(2044m2) 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곡선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건축물을 뽐낸다. 코오롱그룹이 2018년 마곡산업단지에 ‘코오롱 원앤온리(One&Only)타워’를 건립한 것에 따라 공공기여 형식으로 약 105억 원을 들여 건립됐다. 서울시에 기부채납한 뒤 향후 20년간 운영한다.

‘스페이스K’는 단순히 미술 작품만을 관람하는 공간이 아니라 예술을 활용한 코오롱의 차별화된 사회공헌활동으로 의미가 있다. 2011년 개관 이후 총 152회 전시를 개최, 437명의 작가를 지원해왔다. 특히 국내 신진작가, 경력이 단절된 작가 등을 발굴해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국내에 덜 알려진 해외 작가 전시를 개최, 지원과 후원을 통해 현대미술 저변 확대에 힘쓰고 있다. 올해 첫 기획전으로 마이애미 출신 회화 작가 헤르난 바스의 전시(2월~5월)를 열어 화제가 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