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오세열, 개인전...'함지박 회화'에 담은 시간의 피부

등록 2021-04-08 15:21:52  |  수정 2021-04-08 17: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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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오세열, 무제 Untitled, 2019, 함지박에 혼합매체 Mixed media on wooden bowl, 69x46cm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사각 함지박에 들어선 남자의 꼬리가 눈길을 끈다. 하얀 뼈다귀를 숨긴 것 같기도 하고, 언뜻 꼬리같기도 하다. 또 장난감 태엽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가 그린듯 동심이 깃든 그림은 1945년생, 올해로 76세인 오세열 화백이 담아냈다.

그는 함지박을 회화의 지지체로 자주 활용한다. "완성된 그림을 액자에 끼우는 관습에서 벗어나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일상 속 함지박이 작업에 들어오자 '회화-조각’으로 탈바꿈됐다. 그림 안에서 콜라주 형식으로 활용되던 오브제(함지박)가 화면 그 자체로 확장되면서 새로움을 전한다.

새롭지만 익숙한 듯한 작품에 대해 박영택 미술평론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주어진 사각의 틀은 대부분 단색으로 마감되어 있거나 두 면으로 분할되어 있다. 또는 가로선이 그어진 노트의 행간을 연상시키거나 칠판 자체인 것처럼 위장되어 있다. 따라서 화면은 캔버스이자 공책, 흑판 등으로 몸을 바꾸면서 시선을 교란시킨다. "

압권은 화면 바탕이다. 외형적으로는 단색조의 화면이지만 그 안은 상당히 풍성한 표현적 변화를 동반하고 있는 붓질과 두터운 마티에르로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

박영택 평론가는 "오세열의 바탕 화면 자체가 이미 많은 사연과 풍부한 표정, 깊은 시간을 지닌 피부를 저장하고 있다”고 평했다.

평범해 보이는 작품을 두고 '꿈보다 해몽'이라고 하겠지만, 예술은 인간의 감각을 깨우는데 있다.

캔버스 위에 단색조의 물감을 수차례 쌓아 올려 바탕을 마련하고, 뾰족한 도구로 화면을 긁어내고 화가는 몸을 깎는 마음으로 화면을 구성해나간다. 그러다보면 물감 층 가장 아래의 하얀 표면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오세열은 자신의 작업 과정이 마치 “유년의 순수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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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오세열, 무제 Untitled, 2021, 캔버스에 혼합매체 Mixed media on canvas, 112x145.5cm
낙서하듯, 소꿉장난하듯 작업하는 오세열 화백이 개인전을 연다.

8일부터 서울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은유의 섬'을 타이틀로 작품 24점을 선보인다. '함지박 회화' 2점도 걸렸다.
 
학고재 갤러리는 4년전인 2017년 오 화백의 개인전을 열어 대박을 터트렸다. 순수함과 동심이 깃든 작품에 러브콜이 이어졌고 미술애호가들에 인기를 끌었다.

이번 전시는 오세열의 작품세계를 총제적으로 재조명한다.

오세열 화백은 사회의 역동적인 변화를 겪으면서도 오롯이 자신의 내면에 몰두하기를 고집해온 작가다. 유년의 감각을 재료 삼아 특유의 반(半) 추상 화면을 구성한다. 아이와 노인의 마음이 공존하는 화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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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오세열, 무제 Untitled, 1998, 캔버스에 혼합매체 Mixed media on canvas, 106x80cm


오세열은 후기 산업사회를 겪으며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에 대해 고민했다. “물질적인 것에만 매달리다 보니 정신적인 것이 소멸해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오세열의 화면은 직설적인 어조 대신 은유의 화법을 구사한다. 아이의 동심이 살아 숨 쉰다. 평평한 물감 층을 긁어 만든 흔적들이 비밀스러운 암호처럼, 장난기 가득한 낙서처럼 화폭 위를 부유한다.

 학고재 박미란 큐레이터는 "'마음을 돌아보는 예술로 현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오 화백의 작품은 지친 인간의 마음을 보듬는 장소"라며 "거리두기와 비대면 시대에 이번 작품을 통해 각자의 내면의 순수를 다시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전시는 5월5일까지. 관람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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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오세열 화백. 사진=학고재갤러리 제공. 2021.4.08. photo@newsis.com
오세열 화백은 누구?
오세열은 1945년, 종전 및 해방을 배경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되던 해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전쟁의 폐허 한가운데서 유년기를 보냈다. “어린 시절에는 하루 중 그림 그리는 시간이 제일 소중했다.”

서라벌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삼십대에 조선화랑, 진화랑 등 당대 최고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서른아홉 살이 되던 1984년, 유럽의 대표적인 아트페어 피악에서 남관, 박서보, 김기린, 이우환 등과 함께 작품을 선보였다.

학고재(서울; 상하이), 바지우갤러리(파리), 폰튼갤러리(런던), 보두앙르봉갤러리(파리) 등 국내외 유수의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천), 교토시립미술관(교토, 일본), 부산시립미술관(부산)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천), 대전시립미술관(대전), 프레데릭 R. 와이즈만 예술재단(로스앤젤레스, 미국) 등 주요 미술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