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45년전 핫했던 퍼포먼스 이강소 '선술집' 갤러리현대에 재연

등록 2018-08-23 18:44:42  |  수정 2018-08-24 10: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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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강소 작가가 1973년 명동화랑에서 열었던 '소멸(선술집-왼쪽)'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전시장에 그대로 재현됐다. 당시 사용된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전시장에 들어서 45년전 그 날의 분위기를 소환해내고 있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1973년 서울 명동화랑에서 열렸던  이강소 퍼포먼스 전시 '소멸 (선술집)'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1층 전시장에서 재연됐다.

 황갈색으로 변한 나무 테이블 8개, 의자 16개, 입간판, 막걸리, 팔각 성냥갑이 놓여져 흘러간 시간을 소환한다.

 그림을 걸던 하얀 전시장에다시 불러온 45년전 '선술집'은 그 흔적만 남아 21세기 관객을 맞는다. 당시 분위기는 흑백사진으로 걸려 왁자했던 그 날의 풍경을 상상해볼수 있다. 관람객들은 70년대 선술집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 탁자와 의자에 앉아 막걸리와 안주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퍼포먼스에 참여하게 된다. 막걸리와 안주 판매 수익금은 모두 아동 복지 기금으로 전달된다.

 이젠 ‘오리 작가’로 유명한 이강소 작가(75)는 "갤러리현대의 제안으로 70년대의 작업 중 재현이 가능한 설치나 프로세스적인 작업을 골라 전시를 하게 되었다"며 "이렇게 집중적으로 재현하게 된 일도 처음이지만, 이 전시에 참여하는 관객들이 어떤 체험들을 할지 기대가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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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23일 갤러리현대에서 이강소 작가가 1973년 명동화랑에서 선술집 퍼포먼스를 열었던 45년전 자신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다.

 '선술집'은 당시에도 획기적이었지만, 지금도 파격미는 유효하다.  

 일상의 한 단면을 갤러리 ‘화이트 큐브’라는 장소로 통째로 옮겨온 전시 이벤트다. 전시장인데 선술집이고, 선술집인데 전시장이었던 당시 이강소의 '선술집'은 무심코 지나쳤던 상황을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했다. 작가는 상황만 제공하며 오히려 관객들이 자유롭게 참여, 스스로 주체가 되는 한판 연극같은 전시 퍼포먼스였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선술집'은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현대미술의 전개: 1960년대 중반 -1970년대 중반 전환과 역동의 시대'전시 당시 재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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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강소, 무제-75031, 1975, 닭, 짚, 멍석, 모이통, 노끈, 분필, 횟가루(왼쪽), 갤러리현대에 재현된 1975년 닭 퍼포먼스(오른쪽)

 갤러리현대 전시장 2층은 1975년 제 9회 파리비엔날레에 출품되었던 닭 퍼포먼스 '무제-75031'가 등장했다. 

 전시장에 설치된 말뚝에 닭의 발목을 묶어 닭이 정해진 반경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한 뒤, 횟가루와 닭의 발자국으로 닭이 돌아다닌 흔적을 유추할 수 있는 작품이다.  ‘닭의 퍼포먼스’ 동안 닭은 전시장에 3일 동안 사육되고, 전시 기간 동안에는 닭의 흔적과 그 과정을 찍은 사진만 설치된다.

 작가의 '누드 퍼포먼스' 작업도 흑백사진으로 볼수 있다. 자신의 몸에 물감을 칠하고 캔버스 천으로 닦아냈다. 몸으로 쓴 자화상같은 작업으로 몸을 닦은 흔적은 구겨지고 물감이 덕지한 천으로 남아 '퍼포먼스 회화'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 작업은 1977년 퍼포먼스 작업 이후에 1978년도에는 설치 작업으로도 전시되었다.

 지하 1층에는 1971년 '제 2회 AG전'에서 소개했던 '갈대'가 배치되었다. 작가가 직접 낙동강에서 찾은 갈대를 흰 석고와 시멘트로 고착해 거대한 흰 갈대밭으로 재연한 작품으로, 박제된 자연을 통해 상실과 죽음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고요하고 적막한 갈대밭을 거니는 경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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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강소-소멸, 갤러리현대 지하1층 전시 전경, 2018

 이강소는 관습과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 말, 신체제 그룹을 결성하며 본격적으로 현대미술 활동에 뛰어들었다. 71, 72년에는 AG(아방가르드협회) 그룹전에 참여하며 실험적인 성격의 작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73년, 74년에는 '현대작가초대전'과 '대구현대미술제'를 직접 기획, 새로운 예술에 대한 열망을 가진 동시대의 작가들을 집결시켜 작가이자 기획자로서 적극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이강소가 주도적으로 이끈 '대구현대미술제'는 회화뿐만 아닌 이벤트, 전위, 영상, 대지예술 등 실험미술을 폭넓은 범위에서 수용하며 작가들의 자유로운 참여를 유도했다. 이강소 자신 또한 미술제에 설치, 퍼포먼스,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선보이며 해프닝, 이벤트, 퍼포먼스와 같은 서구미술의 영향 속에서 독자적인 표현 방식을 구현하기 위한 실험을 전개했다.

 이강소에게 70년대는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자신만의 언어로 치환하는 과정이자,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실존적 문제와의 대면이었다. 이후 80년대부터 회화로 돌아서 추상회화를 지속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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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1974년 대구에서 열린 '한국실험작가전'에서 처음 전시되었던 사과 판매 작품이 갤러리현대 입구에 설치됐다. 었다. 74년 당시에는 ‘1개에 50원’이란 명패를 붙이고 사과를 팔았다. 작품 제목은 '생김과 멸함'으로  일상의 단면적인 이야기를 간추린 작업이다. 2018년 8~9월 전시에는 사과 한개에 2000원에 판매한다. 유니세프 기금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소멸 (선술집)'. 1973년 명동화랑에서 열린 이강소 첫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소멸'은 소멸되지 않고 갤러리현대에서 9년만에 여는 전시 타이틀로 다시 등장했다.

 작가는 "'소멸'이라는 전시 제목은 지금 생각해도 답답하고 막막한 단어"라면서 그 당시 전시는 즐거운 발표회는 아니었다"고 했다.

 "국가나 사회가 어려운 처지에서도, 상아탑이란 교육환경에서, 그림을 좋아하면서 청년으로 성장한 사람이, 서울에 하나밖에 없는 현대미술 전문화랑(명동 화랑)이 기회를 준, 생애 첫 개인전에서 이런 제목으로 화랑을 아예 선술집으로 둔갑하게 했으니, 분명 즐거운 발표회는 아니었을 것입니다.이상적인 꿈을 꾸며 청록색의 그림을 그리던 청년이 상아탑을 떠나자 회색의 세계와 부닥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세계는 희미한 회색의 안개에 휩싸인 곳, 그곳에서 저는 공중에 떠 버려져 자신의 주소 조차도 잊어버린 것과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라 기억해 봅니다."
 
 세월이 가고 세상은 변했지만, 45년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없는 작가의 작품 세계는 '열린 세계'다. 

 “나의 모든 작품은 보는 사람과의 관계, 보는 사람에게 작용하는 관계를 중시한다. 있는 것, 존재하는 것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작용하는 관계 속에서 움직이는 상태를 중시한다.“

 가져다 놓고, 움직이게 하며 흔적만 남겨, 그것들을 상상하게 하고 있는 그의 퍼포먼스는 회색의 선과 면이 유려하게 그려진 '오리 그림'과 일맥상통한다.

 회색 추상화 '오리 작가' 이강소의 반전같은 전시지만, 한번에 '기의 흐름'으로 담아낸 '오리 그림'의 생명력의 원천을 볼수 있는 전시다.  또한 1970년대 미술가들이 변화에 뜨겁게 몸무림쳤던 한국현대미술판을 되돌아볼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10월 14일까지.
 
 hyun@newsis.com